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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0도에 얼음 깨고 보쌈 놓던 추억아내를 지극히 사랑했던 못난 남편의 순애보
박철 | 승인 2017.10.22 01:20

지금부터 30년 전, 우리 내외가 강원도 정선에서 살던 때였습니다. 그때 나는 정선 아라리의 한줄기인 ‘덕송리’라는 동네에서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가난하게 살았지만 우리 내외에겐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교회마당에 나가서면 어스름한 새벽, 아직도 별빛이 그대로 남아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날을 비쳐주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앞강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내 가슴 깊숙이 전달되어, 나는 하느님께 내 인생의 전부를 바쳐도 조금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에게 찾아 온 갑작스러운 변화?

설이 지난 지 며칠 안 되어 아내는 갑자기 회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민물고기 회가 먹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름철에는 가끔 민물고기를 잡아 회를 쳐 초장에 찍어 먹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아내는 한 저름 먹으면 끝이었습니다. 그러던 여자가 영하 10도의 날씨가 계속되는 한겨울에 민물고기 회가 먹고 싶다는 것입니다.

▲ 아내 김주숙. 주일학교예배를 마치고 교회 종각 앞에서. ⓒ박철 목사

“아니 이 여자가, 시골에서 고생하고 살더니 살짝 어떻게 되었나?”

그런 한심한 생각도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그 동네에서 물고기를 제일 잘 잡는다는 아저씨를 찾아가서 겨울철에 어떻게 하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냐고 자문을 구했습니다. 연숙이 아버지라는 사람은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도사님예! 어째 정신이 잘못된 거 아닌기요. 아니 한겨울에 얼음이 꽝꽝 얼었는디 어데서 고길 잡는다 말이오.”
“얼음을 깨고 보쌈을 놓으면 어떨까요?”
“미친 짓이래요. 어데 얼음물에 보쌈을 놓는다고 고기가 들겠소?”

연숙이 아버지는 아예 말도 꺼내지 말라는 투로 나무랐습니다. 나는 집에 돌아와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보쌈 차비를 했습니다. 스텐이나 양은대접 안에 밥덩이와 된장을 으깨어 붙이고 못쓰게 된 헝겊으로 아구를 두르고 고무줄로 묶고, 동전보다 조금 큰 구멍을 뚫었습니다.

장강(長江)에는 매서운 칼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강이 휘어져 흐르는 여울목에는 얼음이 두껍게 얼지 않고 약간의 살얼음이 얼었습니다. 큰 돌을 들어다 머리 위에서부터 아래로 집어 던집니다. 그러면 얼음이 깨지면서 찬물이 튑니다. 그 물을 다 뒤집어쓰고 옷을 입은 채로 물 속으로 들어갑니다. 온몸이 얼얼하게 얼어붙습니다. 이제 보쌈을 놓기 위해 돌둑을 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물살을 막아주어야 보쌈이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물속에서 씨름을 하다 보니 온몸이 물에 젖고 어금니가 달달거리는데 완전 자동입니다. 보쌈을 놓고 물 밖으로 나오니 금방 젖은 옷이 얼어붙는데 사람 고드름이 될 지경입니다. 덜덜 떨면서 집에까지 허위단심 달려갑니다. 아랫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언 몸을 녹입니다. 아내는 공연한 짓을 한다고 핀잔을 줍니다. 나는 속으로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부디 보쌈에 물고기가 많이 들게 해달라고….”

가난한 시골 목사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느님

그 이튿날, 정오쯤에 다시 장강엘 나갔습니다. 과연 보쌈에 물고기가 들었을까?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엉덩이까지 오는 물속에 들어가 보쌈을 찾습니다. 물이 깨끗하니 바닥까지 환하게 들여다보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릇마다 물고기가 가득 들었는데 양은 대접이 묵직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대접 안에서 피라미가 파닥거립니다. 보쌈을 여덟 개인가 놓았는데 하나만 안 들고 나머지 일곱 개 대접에 물고기가 보통 7-8마리가 들었습니다. 나는 추운 줄도 모르고 펄쩍 뛰면서 보쌈을 건지고 피라미를 소쿠리에 담아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그야말로 개선장군이 따로 없었습니다.

▲ 그 시절 아내와 함께. 덕송교회 사택 앞에서. ⓒ박철 목사

피라미를 잘 드는 칼로 비늘을 대충 벗기고 뚝뚝 잘라 초장에 찍어먹는데, 아내가 “맛있다, 맛있다”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먹는 것이었습니다. 저 혼자 민물고기 회 한 대접을 다 먹더군요. 얼마나 물고기 회에 환장을 했기로 그걸 다 먹을까. 아내가 회를 먹은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마음이 짠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회를 그렇게 맛있게 먹는 모습을 그때 처음 보았습니다.

한 달이 지난 다음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 아내는 우리 집 첫째 의빈(넝쿨)이를 임신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임신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이지요. 여자가 임신을 하게 되면 평소에 잘 먹지 않던 음식도 먹고 싶어 한다는 얘길 들었는데 그 얘기가 맞는다는 걸 그때 실감했습니다.

그때 30대 초반이었던 아내가 이제 예순이 넘었습니다. 30년 세월이 강물처럼 흘렀습니다. 가끔 그 시절 강원도 정선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아내를 위해서 영하 10도가 넘는 겨울에 얼음을 깨고 들어가 보쌈을 놓았던 나는 희대의 팔불출이었는지, 아니면 아내를 지극히 사랑했던 못난 남편의 순애보였던지, 아무튼 한 겨울 영하 10도 이하의 날씨에 얼음을 깨고 들어가 보쌈을 놓았던 그 시절이 사뭇 그리워집니다.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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