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바로크 음악과 고전주의 음악조선의 글/길과 청의 선: 바로크와 고전주의 ②
최병학 기자 | 승인 2017.10.26 23:29

서양 고전 음악(Classical music)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로마를 통해 서유럽으로 전파되었다. 로마 제국이 무너진 후에는 기독교 교회 음악(성가)으로 이어졌고, 중세 시대(Medieval)의 이러한 선법(旋法)이 ‘장조, 단조’ 등의 조성음악 체계로 대체되어 1900년까지 계속되었다. 르네상스(Renaissance) 음악은 15세기 초에 문예부흥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후 17세기 바로크(Baroque) 시대에는 르네상스 시대까지 성악만 고집했던 음악에서 탈피해(물론 성악음악 분야에 새로운 기법들이 급속히 발전한 시대도 바로크 시대이다), 악기 연주가 새로운 음악의 행태로 탄생했다. 이 시기에 현악기를 비롯한 서양 악기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후 고전주의(Classical era) 시대에 들어서 기악음악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소나타 형식의 악곡 형태가 나타났으며 이를 토대로 교향곡이 발전하였다.(각주 1)

여기서 영화와 연결해서 살펴볼 바로크 시대는 우리가 익히 들었던 비발디(Vivaldi), 바흐(Bach), 헨델(Handel) 등이 활동한 시대이며 고전주의 시대는 하이든(Haydn), 모차르트(Mozart), 베토벤(Beethoven) 등으로 유명하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이 1636년 12월에 있었으니, 바로크 시대 초기라 할 수 있으며, 비발디가 1678년, 바흐와 헨델이 1685년에 함께 태어났으니 서양과 조선에 동시대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바로크를 찬양하는 철학자 질 들뢰즈(G. Deleuze)는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1988)에서 이렇게 말한다.(각주 2) “바로크는 무한한 주름의 작업을 발명하였다. 문제는 주름을 어떻게 유한하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무한하게 이어나갈 것인가이다. 즉 주름을 어떻게 무한히 실어 나를 것인가가 문제다.”

주름은 사람의 피부에 있는 것으로, 손금의 경우 하나의 큰 선으로 보이지만, 사실 미세한 주름들로 이루어져 있다. 주름의 모양이 사람마다 다르듯, 사람들의 표정이나 움직임도 다르다. 바로크 시대의 예술은 이러한 무수히 많은 주름을 표현한 것이다. 가령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화자인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의 <자화상>(1659)은 얼굴에 내재한 삶의 굴곡을 주름으로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는 기쁨과 분노, 환희와 절망, 공포와 용맹과 같은 ‘세계의 모든 속성’이 ‘내재’해 있다. 따라서 무한한 존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들뢰즈에게 있어서 바로크의 주름은 ‘내재적인 무한성’을 의미한다. 들뢰즈가 발견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나의 실선으로 환원될 수 없는 무수한 주름들의 발견, 그리고 이것이 곧 바로크의 실체이다.

반면 고전주의는 주름보다는 실선을 중요시한다. 따라서 데생이 강조된다. 주름과 실선의 차이가 바로크와 고전주의의 차이이며, 이것은 ‘변화/획일성’, ‘차이/동일성/의 대립에 다름 아니다.

조선의 길과 청의 길은 차이와 동일성의 대립이며, 조선의 글과 청의 글은 ‘변화(칸의 말대로, 문체를 꾸며서 부화한 문장, 뜻이 수줍어서 은비한 문장, 말을 멀리 돌려서 우원한 문장, 말을 구부려서 잔망스러운 문장, 말을 늘려서 게으른 문장)’와 ‘획일성(칸의 말대로, “말을 접지 말라. 말을 구기지 말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의 대조이다.

▲ <그림1> 렘브란트 자화상(1659)

바로크 음악의 특징은 통주저음(through bass, 숫자 붙은 베이스)이다. 계속저음(basso continuo)이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베이스(저음)를 끊임없이 이어주는 것이다. 심장박동처럼 잘 들리지는 않지만 긴장감을 유발한다.(각주 3) 동시에 시작도 끝도 없이 저음이 반복되면서 곡의 서사적 완결성을 방해한다.

또한 <그림2>과 같이 베이스에 숫자가 붙어있는데, 따라서 통주저음은 숫자표저음이라고도 한다.(각주 4) 악보에 주어진 저음 외에 연주자가 임의로 연주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같은 곡이라도 다른 곡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바로크 음악과 달리 고전주의 음악은 ‘제시부-발전부-재현부’라는 체계적이고 완결적인 소나타 형식을 통해 화음과 선율의 형식을 강조한다. 따라서 비형식적으로 반복되는 저음의 소리, 곧 정서적 강도(intensity)를 유발하는 바로크식 음의 긴장감은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서양 근대 음악이 자기완결적이며 거시적 체계와 형식에 얽매이는 것이다.

게다가 고전주의 음악에서 악보는 항상 동일한 의미를 전달해야하는 언어의 개념과도 같기 때문에 같은 곡은 다시 연주하더라도 같은 곡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크와 고전주의의 이러한 차이에서 들뢰즈는 개념의 동일성에 깔려 죽은 차이를 다시 복원시킨 것이다. 따라서 바로크의 부활은 차이의 부활이 된다.

▲ <그림2>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BWV.1043 1악장 첫부분 일부

박자와 리듬에 관해서도 살펴보자. 들뢰즈에게 박자, 혹은 박절(拍節)은 마디를 구분하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거시적인 구조로 분화의 논리와 관련이 있다. 반면 리듬이란 강도를 나타낸다.

고전주의 음악에서 리듬은 화성이라는 거대한 형식과 구조에 묻혀 무시되었지만, 화성, 박자, 조성 등의 거시적 구조가 아니라 음색, 세기, 강도와 같은 음 자체의 미시적인 차원에서 발생하는데, 획일적으로 개념화할 수 있는 박자와 달리 리듬은 심장을 동요해서 몸으로 반응하게 만든다.

종합하면, 바로크 음악가들은 고전주의 음악가와 달리 연주할 때마다 자신의 방식대로 새롭게 연주한다. 이것은 곧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때의 차이는 ‘분화(différenciation)’가 아닌 ‘미분화(différentiation)’를 의미한다. 분화란 ‘종차적 구분’, 혹은 ‘개념적 구별’을 뜻하고 미분화는 수학의 미분과 같은데, 들뢰즈에 의하면 ‘강도의 차이’로 드러나는 것이다.

가령 10m는 5m의 두 배라는 개념적 구분이 가능하지만, 섭씨 10도와 5도의 차이는 오로지 강도의 차이로만 구분할 수 있다. 따라서 바로크 음악에서 모든 연주의 차이는 악보나 개념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감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강도의 차이는 반복의 결과로 만들어 진다.

(각주 1) 이후의 음악사를 살펴보면, 18세기 후반에는 실내악이 확립되었고, 19세기에는 음악에서 국민악파, 곧 민족주의 음악이 등장하였다. 20세기는 다양성의 시대인데, 음악양식들이 빠른 속도로 다양화되었다. 무조성과 불협화음의 타악기적 처리, 박절(拍節, measure, 박자)의 비대칭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실험음악도 등장하였다. 현대 서양 음악이 꽃핀 것이다. 참고로 클래식 음악의 유파별 시대 구분을 한다면, 중세(476~1400)-르네상스(1400~1600)-바로크(1600-1760)-고전주의(1730~1820)-낭만주의(1815~1910)-국민악파(19세기)-후기낭만주의(19세기 후반)-인상주의(20세기 전반)-현대 서양음악(신 고전주의, 20세기 후반)으로 볼 수 있으나, 다양한 견해가 상존하고, 명확한 시대 구분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각주 2) 들뢰즈의 사유는 박영욱, 『보고듣고만지는 현대사상』 (바다출판사, 2015)의 ‘반복이 만들어낸 주름의 아름다움: 들뢰즈와 렘브란트’를 참조.
(각주 3) 바로크 음악이 아이들에게 좋다고 하는데, 현악기의 통주저음 체계가 아이들의 아이큐(IQ) 향상에 탁월한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사실 통주저음은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느꼈던 어머니의 심장박동 소리와 주파주가 동일하기 때문에 아이의 두뇌 안정에 도움이 된다. 뇌과학자들은 바로크 음악이 α뇌파 상태를 유도하는 최적의 음악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뇌파 유형은 주로 알파(α), 베타(β), 델타(δ), 입실론(θ) 4가지로 나뉘는데, 알파 상태는(약 8~13헤르츠까지) 사람의 집중력과 학습 효율이 최상인 상태를 말한다. 아이들이 공부하면서 주파수대역이 8~13헤르츠 간의 알파파 음악인 바로크음악을 들으면 뇌파는 알파 파동에 맞추게 돼 공부하는데 쉽게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각주 4) 기타코드 읽는 방식과 거의 비슷하나 조금 다르다. 읽는 방법을 소개하면, (1) 숫자는 구현할 화음의 음정관계를 표현한다. (2) 아무 표기도 없는 경우는 삼화음의 기본형을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장조라면 도미솔, 단조라면 라도미. 즉 숫자 3, 숫자 5는 때때로 생략된다. (3) 삼화음의 제1전위를 표현하는 경우 숫자 6을 쓰거나 위에 6, 아래에 3을 써준다. 이럴 경우 장조라면 미솔도, 단조라면 도미라가 된다. 제2전위를 표현하고자 한다면 위에 6, 아래에 4를 쓴다(솔도미, 미라도 같은 화음). (4) 음정의 증감을 표현하기 위해 #(또는 +), ♭(또는 숫자 위에 빗금 (/))을 사용한다. 같은 목적으로 제자리표도 사용 가능하다. (5) 만약 음은 변하지 않는데 숫자만 변한다면 음정과의 관계대로 화음만 변화시키고 베이스음은 그대로 내주면 된다. 반면 숫자는 그대로인데 음만 변한다면 첫 번째에서 구현한 화음은 그대로 두면서 베이스음만 변화시킨다. (6) 화성을 사용하지 않기를 작곡가가 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tasto solo(그 음만 연주하라) 라고 표기하거나 숫자 0으로 표시한다.

 

최병학 기자  hak99@pusan.ac.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병학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윤인중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인중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0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