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민담은 부자에 대한 풍자로 가득하다. 지난번에 아들 간수 잘 못한 콩가루 부자 집안 이야기를 풀이 했으니 이번에는 지옥에 간 부자 이야기를 전하려고 한다. 민담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로 잘 알려져 있다(눅16:19-31). 사실 지금까지의 예수 민담 해석은 다소간 전복적인 성격이 강했다. 통상적인 해석을 뒤집는 측면이 있어서 불편함이 있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옥에 간 부자 이야기는 그러한 익숙함에서 벗어날 필요가 없다. 예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실상 지옥에 간 부자 이야기의 주인공은 분명 부자다. 부자는 이름이 기록되지 않고, 나사로의 이름이 오히려 잘 알려져 있지만(각주 1) 그는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사실 이야기에서는 아브라함보다 비중이 약하다.

뵈젠(W. Bösen)은 이야기의 주인공인 부자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부자들(πλούσιοι)은 신약성서 시대에 대토지 소유자 외에 몇 안되는 대상인들과 납세임차인들 뿐이다.”(각주 2) “이들은 백성들의 놀라운 시선을 받고 부러움을 사기도 하고 또한 미움을 받기도” 하면서 “고독하게 사회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차지한다.”(각주 3)

부자의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은 가장 부유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날마다 잔치를 벌였다는 사실은 부자의 재산이 엄청났음을 의미한다.(각주 4)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부자는 농민들의 고혈을 빨아서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며 살았다. 그는 날마다 잔치를 즐기며 호화롭게 살았지만 극빈자들의 고통을 외면했었다.

부자는 유대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천국에서 아브라함을 만나고 아버지라 부르며, 아브라함도 부자를 “얘”(τέκνον)라고 부른다. 그는 유대인이다. 그와 그의 형제들은 모세와 예언자를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지옥에 왔고, 그 형제들도 지옥에 갈 것이다.

▲ “Lazarus” ⓒThe Fitzwilliam Museum, Cambridge. UK

나사로는 거지(πτωχὸς)였다. πτωχὸς는 가난한 자, 극빈자, 거지등으로 해석된다. 이는 상대적 빈민과 구분되는 절대적 빈민을 가리킨다. 나사로는 거지(πτωχὸς)였다. 크로싼(J. D. Crossan)은 이 단어의 복수형 πτωχοι를 가난한 자들(the poor)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극빈자들(the destitute)로 번역하자고 제안한다.(각주 5)

나사로는 엘리아잘(하나님이 돕는다)의 약칭이다. “그가 누워 있었다는 말로 미뤄 장애인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피부병을 앓고 있는 거지였다.” 역설적인 이름이다.(각주 6) 하나님이 돕는 사람인 나사로가 하나님의 도움을 얻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각주 7)

예수의 이야기는 2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1막은 이승의 이야기고, 2막은 저승의 이야기다. 예수의 이야기에 따르면 2막의 배경인 죽은 이후의 세계에서 이들의 운명은 전혀 다르다. 부자는 음부(게헨나)의 불꽃 가운데서 고통받고, 극빈자였던 나사로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다. 둘의 처지가 극단적으로 바뀌어 있다.

1막에서 힘있고 커 보이던 부자의 캐릭터는 2막의 저승에서는 코믹한 캐릭터로 바뀌게 된다. 이승에 있을 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고 먹으려고 했던 나사로의 처지와 저승에서 너무 뜨거워 손가락 끝에 물을 묻혀 시원하게 해 달라고 애원한다. 이 때 청중들은 크게 웃었을 것이다. 사람이 지옥에서 괴로워하는데 어찌 웃느냐고? 그런데 그 부자는 사람이 문 밖에서 굶어죽어갔는데 매일 잔치하지 않았는가? 죽고 나니 운명이 역전된 것이다.

오늘날의 교리적인 시각으로 이 예수의 민담을 들으면 심히 당황스럽게 된다. 오덕호는 설교자들을 위한 비유풀이에서 이러한 당혹감을 토로한다.(각주 8)

부자와 나사로가 등장하는 이 지옥에 간 부자 민담의 세계에는 바울이 말하는 ‘이신칭의’나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구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거지 천국 부자 지옥’이다. 교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낯선 세계, 충격적인 세계이다.

부자는 유대인이다. 모세와 예언자, 즉 성경을 알고 있다. 그런데 부자는 지옥에 간다. 나사로도 그렇다. 그가 믿음을 가졌다든가 올바른 생활을 했다는 이야기가 없다. 그냥 그는 거지였다. 그런데 그는 천국에 간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천국과 지옥에 가는 조건에서 현세의 사회-경제적 신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누가복음 6:20-25절에 예수는 이렇게 말씀한다. 지옥에 간 부자 이야기의 해독에 중요하기에 길지만 인용해 보고자 한다.

예수는 가난한 자들에게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으시고 그냥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선포한다. 가난한 자들은 그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가난한 자들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그러나 부자들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부자에게는 화가 선포된다

어떤 사람은 이 선포에서 가난한 자는 그냥 천국에 들어가지만, 부자는 회개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해석한다. 누가복음 전체를 살펴보면 그런 측면이 있다. 부자에게는 화가 선포되어 있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회개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 자신의 재물을 내어놓는 구제가 있어야 한다.

예수의 이야기를 들었던 빈곤한 계층의 사람들은 이야기의 서두에서 잔치하는 부자와 죽어가는 나사로를 보면서, 나사로에게는 동정을 느끼고 몰인정한 부자에게 반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나사로가 천국에 가는 모습을 보고, 부자의 내세의 고통을 들으면서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가난하고 이 세상에서 고생만하고 죽어가는 자들에게 예수의 민담은 희망과 위로를 준다.

비록 이 세상은 이렇지만, 저 세상은 역전되어 있다고. 그들은 특히 부자가 감히(!) 아브라함이 말하는 이야기에 토를 달고 교만하게 대답하는 말을 들었을 때 폭소를 터트렸을 것이다. 부자의 태도는 상당히 건방지고 교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자의 형제들이 모세와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자가 살아와도 듣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다시 한번 크게 웃었을 것이다.

예수의 이야기에서 부자와 나사로는 결코 만나지 못한다. 그들 사이에 있는 현세의 간격은 내세에 까지 이어진다. 아니 현세에는 대문이라는 간격에 불과하지만 내세에는 결코 건널 수 없는 큰 구렁텅이가 있다. 그러나 현세에는 아직 만남의 가능성이 있다. 부자들이 자신의 대문을 열어 놓기만 한다면!

김재현  verticalk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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