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의 글은 바로크적이다. 그리고 칸의 글은 고전주의적이다. 명길의 글에는 조선이라는 나라에 내재한 삶의 굴곡이 깃들어 있다. 이 굴곡은 다름 아닌 주름이여 이 주름은 하나의 뚜렷한 실선이 아닌 무수히 많은 미세한 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삶의 무게를 넘어서지 못하고 그 무게에 짓눌려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흔적을 글은 담고 있다. 기쁨과 분노, 환희와 절망, 공포와 용맹이 주름져 놓여있기에, 어느 한 글이라도 근접할 수 없는 무한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무한한 주름으로 이루어진 명길의 글은 초월적인 의미에서 무한한 존재가 아니라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재적으로 무한한 글(존재)’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명길의 글 바닥에는 통주저음과 같은 긴장감, 곧 심장박동이 리듬을 탄다. 반복되는 저음을 통해 마치 시작도 끝도 없이 계속 진행되는 조선의 비극적 운명을 드러낸다. 동시에 명길의 글은 길을 찾고자 하는 숫자표저음이다. 연주자에 따라 혹은 동일한 연주자라 하더라고 때와 상황에 따라서 다른 연주가 가능한 바로크 음악처럼 여러 가지 다르게 읽힐 수 있는 해석학적 지평을 갖고 있다. 이 글에 조선의 길이 있는 것이다. 

반면 칸의 글은 고전주의 음악처럼 조선에 항복을 제시하고(제시부), 이를 직선적으로 발전시킨다(발전부). 마침내 다시한번 재현하며(재현부) 체계적이고 완결적인 소나타 형식의 자기 완결적이며 거시적 체계와 형식을 완성한다. 길을 제시하나, 그 길은 주름을 곧게 펴는 직선의 길로 무수한 주름들이 쓰러져가고, 죽어가는 처참한 흔적으로 그 뒷 배경으로 남긴다. 

이러한 청의 길은 동일성의 철학자 헤겔(G. W. F. Hegel)의 길이며, 모순을 변증법의 동일성의 논리로 발전시켜 정점에 다다른 고전주의의 길이다. 사실 서양고전주의는 루이 14세의 절대주의 이념의 영향을 받는다. 보편성과 통일성을 추구하는 고전주의의 이념은 절대주의의 이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바로크 문화가 불균형과 부조화를 강조한 것에 비해 고전주의 문화는 균형과 조화를 강조한다. 그것은 절대주의 이상인 질서와 균형, 법칙을 예술에 반영한 결과였다. 

고전주의의 이상이 가장 잘 표현된 것은 루이 14세 때의 베르사유 궁전(1662~1702년 완공)이다. 물론 축제를 위한 임시 건물이나 궁전 내부와 정원 장식 등에는 바로크적 잔재가 남아 있지만 궁전 전체의 균형과 절도, 장엄함, 좌우 대칭은 고전주의 예술의 완전한 표본이 된다.

▲ 고전주의의 대표작 베르사유 궁전

사실 헤겔의 변증법에서 동일자와 부정적인 것, 혹은 동일성과 모순은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 그리고 겉으로는 차이의 논리를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확장한 듯이 보이지만, 들뢰즈에 따르면 지극히 세련된 형태로 위장된 동일성의 논리에 불과한 것이다. 왜냐하면 헤겔의 모순은 동일성의 지평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헤겔은 이것을 모순의 ‘근거(Grund)’라고 부른다. 궁극적으로 모순은 근거라는 동일한 지평으로 해소되는 과정에 불과한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남성과 여성은 오로지 성이라는 지평에서만 모순적 관계를 지니고, 따라서 인간이라는 동일한 지평으로 해소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차이는 모순의 근거에서 동일성으로 귀속되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다. 청이 조선에 강요했듯이, 강한자가 약한자에게 못 할 짓이 없듯이! 

따라서 들뢰즈는 차이를 ‘개념적 차이(diffréence conceptuelle)’와 ‘차이 자체(différence elle-même)’로 구분한다. 전자는 변증법적 구분에서와 같이 개념적 종차에 의해서 하나의 개체를 다른 개체와 다른 개체를 구분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조선과 명, 청나라를 개념적 차이로 구분한다면 중화주의와 오랑캐라는 유교의 명분으로 구분되어 김상헌의 길은 당연하다. 따라서 김상헌은 자신에게 당면한 길을 당면할 뿐이다. 

동시에 청과 조선의 경우, 명나라라는 지평에서도 모순적 관계를 지닌다. 물론 광해군과 소현세자는 이 모순을 외교적으로 잘 활용하였다. 모순을 청나라의 힘과 명나라의 명분이라는 동일성에 귀속시키지 않고, 차이의 반복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명에 동일적인 조선의 사대부들은 광해군을 인조반정 쿠데타로, 소현세자는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따라서 들뢰즈는 동일성과 모순의 자리에 차이와 반복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이때의 차이는 차이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한 개체로서 ‘나’라는 인간은 다른 누구와 어떤 점에서 종차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절대적으로 다른 존재이다. 이러한 절대적 차이는 동일한 지평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절대적 다름이 차이 자체이다. 이 절대적 다름의 차이를 보여주는 이는 소설과 영화에서 서날쇠(고수 분)이다. 

서날쇠는 자연 환경을 자신의 몸 안으로 받아들여서 그 직접성의 관계 위에 삶을 건설하는 이다. 그의 삶의 모든 무늬와 질감은 노동하는 근육 속에 각인되어 있다(서날쇠는 대장장이다). 삶에 대한 순수한 본능으로 김상헌의 뜻을 받들어 임금의 격서를 지방의 근왕병에게 전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물론 김상헌에 대한 선의의 ‘동의’ 정도로 김훈은 그리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서날쇠의 모든 삶의 흔적들은 종차적 차이를 넘어 차이 자체를 지향한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 그의 자연스러운 삶을 통해 이를 잘 보여준다. 차이 자체는 자연스러운 본질이라는 것이다. 동일성에 귀속되지 않는. 따라서 이러한 모습이 동일자에 의해 모순이 극복되지 않는 차이 그 자체가 존중받는 들뢰즈가 꿈꾸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반복되기를. 그러나 역사는 종차적 차이의 동일성의 논리로 지금 반복되고 있다. 조선의 길은 남한의 길로, 청의 길은 미국과 중국의 길로. 아,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최병학 기자  hak99@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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