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누가 어떻게 개혁을 일으키고 이루어야 할까요? 개혁의 주체는 누구이어야 하나요? 그것은 루터와 그 후예들에 의하여 적당한 정도로 주장되었던 “만인사제설”을 성서에 근거하여 철저하게 실천함으로써 드러날 것입니다. 개혁의 주체를 말할 때에 그 근거를 루터의 만인사제설에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이론의 근거가 되었던 성서에 두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목사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제자이고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교회 개혁을 위해 끊어야(斷) 하는 것들

교회 내에서 권위적 직무를 독점했던 목사들의 특권을 내려놓고, 일반 그리스도인들은 그 특권을 받아야 합니다. 목사들은 교인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눈치를 보고, 교인들은 목사들의 요구와 협박에 잘 보이기 위하여 안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서로가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여 부패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눈치를 보는 사이에 커지기만 하는 부패의 눈덩이를 깨뜨리는 단(斷)이 필요합니다. 동료 목사들과 이야기하다가 자주 올라오는 화제가 있습니다. 특히 기장이나 (소위) 진보적인 교회의 교역자들이 푸념하듯이 하는 말입니다. ‘차라리 (소위) 보수적인 교회에서 사역하는 것이 더 편하겠다.’

그것은 목사들에게 또 하나의 유혹입니다. 그 때마다 저는 말합니다. ‘그렇다고 보수회귀 할 것이냐? 지금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있었을 텐데, 조금 편하자고 다시 돌아갈 것이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부패의 눈덩이를 단! 할 수 있는 방법은 주체성의 회복입니다. 주체성을 회복하는 일은 자기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기라는 씨앗에 이웃의 거름과 공동체의 햇볕과 자연의 바람과 물이 필요합니다.

주체성을 회복하는 일은 자기만을 위한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그렇게 성장한 나무는 그늘이 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마침내는 다시 거름이 됩니다. 교인들의 주체성은 목사를 예수님의 제자로 바로 서게 하고, 목사의 주체성은 교인들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바로 서게 합니다.

저는 목사 안수를 받으면서 역설적으로 ‘목사답지 않은 목사’가 되기로 다짐하였습니다. 이런 아이러니를 통하여 표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제가 이렇게 다짐한 가장 큰 이유는 교회와 목사의 이중성 때문입니다. 사회 속에 있는 많은 교회들이 자기의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해 스스로 이중적인 탈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인인 목사가 그러한 교회적 상황에서 가식적이고 위선적이 됩니다.

이 둘은 이제 서로의 한계를 느끼지만 서로에게 핑계를 전가하면서 굴러가는 양상입니다. 이러한 고리를 끊기 위해서 스스로 생각한 것이 “목사답지 않은 목사”입니다. 이는 목사로서의 책임을 소홀히 여기거나 방기하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 할 수 있는 고리를 찾으려는 몸부림입니다.

또한 저는 교회에서 사용하는 용어 중에서 의도적으로 성(聖) 자를 빼려고 노력합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바리새의 어원이며 ‘분리하다, 구별하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분리되었다는 의미로 교회에서 거의 모든 말에 ‘성’자를 붙여서 사용합니다.

성서, 성도, 성전, 성례, 성부, 성자, 성령, 성만찬, 성노회, 성총회 등등.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의미의 거룩함은 스스로를 왕따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점점 게토화 됩니다. 또한 목사의 직무에 성 자를 붙이는 것은 스스로의 특권을 강조하는 일입니다. 성만찬 집례를 목사에게만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사랑의 식사’, ‘나눔의 식사’ 라는 이름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오늘 개혁의 주체에 대하여 목사와 교인들의 관계에 대하여 말씀드릴 때에, ‘그래도 우리 교회(혹은 교단)는 건전하고 좋은 편이 아닌가? 다른 교회보다 더 개방적이며 많은 부분에 있어서 개혁을 실천하지 않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에겐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당장 보완되고 고쳐야 할 것도 있고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곧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느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사명을 따라서, 목표를 향하여 달려갑시다.”(빌립보서 3:13-14)

교회개혁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는가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이어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 활동은 주로 기적을 동반합니다. 처음에 두 가지의 기적은 엘리사의 활동의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엘리사가 일으킨 기적은 신비한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곳에 담긴 야훼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입니다.

물이 좋지 않아서 사람들이 죽고 유산하는 일이 있는 성(여리고)에서 엘리사는 샘의 근원에 소금을 넣음으로써 물을 맑게 고칩니다. 그것은 희망을 상실한 시대에 희망을 소생시키는 이야기입니다. 죽음의 기운이 드리워진 샘을 생명의 샘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 방법은 샘의 근원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당장 눈앞의 현상만을 치유하고 어루만지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 새로운 그릇에 담긴 소금을 사용합니다.

▲ 제네바 바스티옹 공원에 세워져있는 종교개혁의 중심 인물들을 기념하는 길이 100m에 달하는 거대한 석상. 석상 중앙에 4개의 석상이 서 있는데, 왼쪽으로부터 파렐(Farel), 칼빈(Calvin), 베자(Beze), 녹스(Knox)이다.

비유나 이야기를 읽을 때에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물 속으로 나를 이입하는 일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의 나 우리의 모습은 누구 혹은 무엇과 비슷한가, 나 우리는 누구 혹은 무엇을 닮고 싶은지를 생각하면, 그 비유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다가오고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무엇과 비슷하고 무엇을 닮고 싶습니까? 우리는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그릇을 만들고, 그 그릇에 담긴 소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죽음의 문명과 문화, 죽임의 세력을 지지하고 확장시키는 근원을 바꾸기 위한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노신의 작품 중에 “사소한 사건”이라는 글이 있는데,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씌여진 짧은 글들입니다.

“어느 겨울날 ‘나’는 급한 용무가 있어서 인력거를 타고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길을 거너려 하던 한 노파가 그 인력거에 가볍게 치어 길바닥에 넘어졌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것은 별로 심각한 충돌도 아니었고, 노파는 쓰러지기는 했지만 곧 혼자 일어나서 걸어갈만했다. 그래서 마음이 바빴던 ‘나’는 인력거꾼에게 지체하지 말고 그냥 가던 길을 달려가라고 일렀다. 하지만 인력거꾼은 ‘나’의 명령을 묵살하고, 노파를 정성스럽게 부축하여 바로 근처의 파출소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보는 ‘나’의 눈에 갑자기 그 남루의 인력거꾼의 뒷모습이 크게 보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노신은 수많은 글을 통해서 민중의 어리석음과 노예근성을 끊임없이 그리고 가차없이 질타하면서 ‘진정한 혁명’을 위한 싸움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의 활동과 글의 원천이 바로 이러한 사소한 사건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개혁의 원천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합니다. 생명의 원천인 물을 맑게 하는 소금, 새로운 그릇에 담긴 소금이 되기 위해 거듭나야 합니다. 나를 먼저 개혁하고 변화시키는 일이 필요합니다. 소금이 물에 녹아지는 변화가 있어야지만 물을 맑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하면서, 그 일을 방해하고 조롱하는 세력들을 단호히 거부하고 그 길을 당당히 걸어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2017년은 모든 교회 공동체가 온전한 하느님의 공동체, 예수님의 원하셨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모두가 지혜와 기를 모을 때입니다. 예배의식의 세세한 부분부터 선교 지향이나 교육정책에 이르기까지 주체적으로 함께 만들어 갑시다. 많이 이루었다고 자만하거나 만족하지 말고,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두려워하거나 주저앉지는 맙시다. 희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면, 그의 사랑이 함께 할 것입니다. 

이제 500년 전의 교회개혁의 역사와 그 의미를 생각하면서 우리를 돌아봅시다. 우리의 크고 작은 행동이 교회개혁과 사회변혁을 위한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개혁과 변혁을 바라는 사람들의 염원을 자극하고 그 염원을 이루는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와 사회를 구분하지 않고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하는 현장에서 하나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공동체를 절대화하지 않고 사랑과 평화를 위해 협력하기를 바랍니다.

함께 성서를 읽으면서 성서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개혁의 대상이 되게 함으로써 무지와 나태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해방하는 복음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