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영화 “Mother”(마더)!에 대하여<마더!>, 요청하오니 저들을 멸하소서 ①
최병학 기자 | 승인 2017.11.08 02:12

숲 속 외딴 곳에 집이 한 채 있다. 이곳에 아내(제니퍼 로렌스 분)와 남편(하비에르 바르뎀 분)이 산다. 글 쓰는 작가인 남편은 창작에 몰두하지만 영감이 떠오르지 않고, 진흙으로 집 벽을 칠하는 아내는 도와줄 방법이 없다.

어느 날 이 집에 한 사람(에드 해리스 분)이 찾아온다. 그는 옆구리에 상처가 있다. 그리고 다음 날 그의 부인(미셸 파이퍼 분)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그들의 두 아들이 찾아오고 형은 동생을 죽인다. 조문객들이 집을 찾아 온다. 그리고 집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마더는 이들 일가족과 조문객 모두를 내쫓아버린다.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온다. 마더는 임신을 하고, 남편의 작품은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이 평안은 짧게 끝나고, 남편의 작품을 추앙하는 팬들이 집으로 몰려오자, 마더는 환대가 아닌, 환멸을 느낀다.

마침내 태어난 아기마저 이방인 팬들에게 빼앗겨 죽게 되고 분노로 인해 마더는 집을 폭파시킨다. 모든 이방인(타자)들을 불로 태워 죽인 것이다. 성경이나 신화적인 전이해가 없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마더!(Mother!, 2017)>는 봉준호의 <마더(Mother, 2009)>와 같이 어머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영화이자, 봉준호의 영화와 달리 신화적인 확장성을 지니고 있고(특히 모신의 경우), 환대와 용서, 상처받을 가능성에 관한 담론들을 펼쳐 보인다.

사실 평론가 이동진이 훌륭하게 썼듯이 영화는 성경의 이야기를 잔뜩 차용하고 있다. 인용해보자.(각주 1)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한 캐릭터를 신으로 본다면, 그 집에 처음 찾아온 커플은 아담과 이브 같다. 창조의 날들이 끝날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이 덧붙여지는 창세기 구절처럼, 신은 이 영화의 아담이 좀 수상한데도 보자마자 호의를 표한다. 아담이 화장실에서 구역질을 할 때 엿보이는 그의 옆구리 상처는 이브를 만들 갈비뼈를 떼어낸 흔적이다. 그렇게 창조된 이브는 그 다음날 집으로 찾아온다. 그 둘은 결코 만지면 안 되는 귀중한 크리스털을 깨뜨린 후 서재에서 추방된다. 금기의 선악과를 따먹어서 에덴 밖으로 내쫓긴 구약의 상황 그대로다. 몸이 아픈 아담은 실락원의 결과로 필멸의 존재가 된 인간의 운명을 드러낸다. 서재에서 쫓겨난 둘은 방에서 섹스를 한다. 그러니 이제 그 결과로 자식들이 등장할 차례다. 들어서자마자 싸움판을 벌이는 형제는 카인과 아벨처럼 보이는데, 신이 멱살을 잡는 것은 역시 차남이 아니라 장남이다. (성경에서 신은 형 카인보다 동생 아벨을 더 흡족해한다.) 결국 카인은 아벨을 죽이고 그 집엔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이 남는다.”

길지만 좀 더 인용해 보겠다.

“후반부에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한 캐릭터(이후 ‘마더’로 지칭)가 낳는 아기는 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보인다. 마더가 후미진 공간을 간신히 찾아 아이를 낳은 뒤엔 성경의 동방박사들이 그랬듯 선물이 답지한다. 광기에 들뜬 군중은 마치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팔을 뻗은 아기를 옮긴 끝에 살해한다. 이후 사람들이 아기의 몸을 뜯어먹는 끔찍한 모습은 ‘이것은 내 살이다’라며 예수가 상징적으로 떼어 준 떡을 제자들이 먹었던 성찬식을 글자 그대로 그려낸 난폭한 유머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물론 이동진의 분석처럼 영화가 끌어들이는 것은 기독교적인 맥락만이 아니다. 산 채로 희생자의 심장을 꺼내 신에게 바치는 것은 잉카제국의 제의이며, 파괴의 순간이 새로운 창조의 원동력으로 바뀌는 순환의 사이클은 힌두교 신화이다. 첫 방문자(아담)가 사용했던 라이터(매우 중요한 상징인데)는 의미를 곁에 명확히 새겨놓았듯이, 북유럽 신화 속 여신 프레야(Freyja)이다.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 남편은 오딘(Odin)이다.

아무튼 영화는 마더를 대지의 여신 가이야(신통기), 미의 여신이자 사랑의 여신(북유럽 신화), 곧 태초의 어머니 모신(母神)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이 모신에 대한 학대의 역사였다. 영화는 ‘모신 학대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의 문명도 현재 그러하다.

(각주 1) 이동진, 「‘마더!’ 거대한 이야기를 한 손에 쥐고 폭주하다」, 『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 참조(http://magazine2.movie.daum.net/movie/40928)

 

▲ 영화 <Mother(마더)> 포스터

최병학 기자  hak99@pusan.ac.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병학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윤인중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인중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0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