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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젊은이들이 왜 교회를 떠나는가?(1)
박철 | 승인 2006.09.08 00:00


요즘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난다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새라면 새가 둥지를 떠난 모습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왜 교회가 젊은이들에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는지? 함께 얘기해 봅시다.


-토론 내용-
1.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2. 교회의 이상적인 모델은 어떤 모습일까?
3. 떠나간 젊은이들을 다시 교회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런 내용을 담아 자연스럽고 격의 없는 토론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긴 글은 리플레이를 해주시고 가급적 리플을 달아 토론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간은 일주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박철목사가 정리하여 신문지상에 발표하겠습니다.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박철)

21세기에 60년대 옷입은 교회

샘물 : 요즘 교회가 옛날의 권위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교회가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없었다고 봅니다. 성서의 말씀대로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라는 사고의 전환이 없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여전히 목회자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해 교회가 움직여지고, 시대의 요구와 젊은이들의 요구에 대하여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옷은 21세기의 자본주의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교회의 틀은 6-70년대의 낡은 몸체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의 생각은 천박한 것이고 옛날의 고루한 생각이나 형식 교리는 거룩한 것이라는 억압이 아직도 교회 내에 큰 무기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젊은이들과 맞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가장 큰 문제는 대형교회들의 횡포입니다. 소위 교회세습, 이단시비, 마구잡이식 교회 운영과 목회자의 독점, 목회자의 성적문란행위 등, 도무지 하나님의 교회라고 볼 수 없는 일들을 교회가 저지르고는 아무런 문제의식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백광모 : 제 생각에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을 수밖에는 없는 것이 한국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아실 테니 접고요. 그렇지만 앞으로 문제들이 하나씩 들춰날 것이고 거기에서 걸러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근본주의적 신앙이 장점도 있지만 큰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한국교회 대부분이 근본주의적 신학을 안고 있습니다. 앞으로 국민소득 2만불이 도래하고 주5일 근무가 이루어지면서 국민 의식이 높아지면 무당(?)같은 신앙은 서서히 사라지리라 생각됩니다.

인터넷 시대 젊은이 이해 못하는 교회

임종숙 : 체계적인 프로그램과 리더의 부족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과 물질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기다리며 세워나가는 일데 서툰 것이 현실입니다. 지금 당장 어떤 것이 눈에 보여야만 직성이 풀리니까요. 저도 사역을 시작하기 전 대형교회에 있어보았지만 감탄할 수밖에 없는 여러 면모들을 갖추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비판만이 능사는 아니지요. 지역교회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이 사실 제한되어지는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린다든지 집에서 텔레비전 보는 것이 훨씬 즐겁다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제가 말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즐기기 위한 것만이 아닌 말씀으로 세워가는 양육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도 즐거움으로 할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딱딱하고 형식화된 예배만으로는 글쎄요. 믿음이 없어서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 갖습니다.

김광진 :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교회는 모이기도 하지만 떠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빛이 조그만 공간에 갇혀 있어서야 무엇에 쓰겠습니까. 젊은이들은 세례요한처럼 광야로 나가야 합니다. 문제는 젊은이가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떠나는 것입니다. 왜 이 시대에는 신앙이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것일까요.

암울한 시기, 더 어두웠던 시기에는 기독교에 희망이 있던 시기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세상을 이끌어가던 담론 중 상당부분이 기독교적인 것이었습니다. 지금 기독교가 그런 역할을 못하는 것이 단순히 세상이 더욱 세속화되었기 때문일까요? 세상이 너무 물질화되었기 때문일까요? 젊은이들의 기호에 맞기에는 너무 감각이 뒤쳐진 구식의 문화적 코드를 가진 것이기 때문일까요?

혹, 더 이상 교회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요? 더 이상 교회에 생명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요? 아니면 더 이상 교회가 오늘날의 삶의 도전에 응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과거 우리사회에 대한 도전에 교회는 앞장서 대응하고, 사회가 따라오기에 벅찬 대답을 내어놓았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사회의 고통에 대해 무엇을 내어놓고 있습니까.

한우아 : 첫째, 인터넷시대변화에 교회젊은이들의 사고도 많이 변화되고 있습니다. 예전의 일대일 성령의 체험이라든지 은혜는 찾아보기 힘들고 믿음의 뿌리를 내리기 전에 여기저기서 유혹의 손길이 먼저 뻗치기에 유혹을 뿌리칠 자아도 부족하고 잡아줄 목회자와 교인들 간의 상호 사랑이 부족하기에 방황하면서 교회를 떠나며 잠시 느끼는 쾌락과 오락 등에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둘째, 교회는 누구나 힘들고 지칠 때 기도할 수 있는 처소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 교회가 성장하면서 물질적으로나 심적으로 부담이 되어 목사님의 눈치를 보는 경우도 종종 있고 목사님과 상담을 하고 싶어도 목사관, 사택의 문을 두드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회는 잠시 모였다가 흩어지는 장소가 아닌 바라만 봐도 눈물이 나오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기도처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건물이 거대하고 웅장한 교회 보다 내적으로 살아있는 교회가 필요합니다.

셋째, 예전에 거룩, 엄숙이란 고정관념에서 이제는 젊은이들을 이해하며 주님을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찬양, 축구, 족구, 등산, 산행, 사진등)을 신설해서 나누고 대화할 수 공간을 마련해 주며, 일시적인 오락 모임이 아닌 그 공간에서 주님과 가까워 질수 있도록 먼저 목사님이 솔선이 되셔야 한다고 봅니다.

더 큰 문제는 젊은이들의 교회에 대한 거부감

박철 : 가장 큰 문제가 젊은이들이 교회에 대해 심각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지요. 전에는 교회에 똑똑한 젊은이 들이 몰려 들었어요. 그래서 교회가 사회적으로 많은 인재를 양성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많이 모이는 교회도 주보를 보면 젊은이들 숫자가 매우 미미할 뿐만 아니라, 청년부활동도 거의 사장되어 있지요. 물론 그렇지 않은 교회도 있지만. 대안을 찾기 전에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집었으면 좋겠어요. 왜 젊은이들이 교회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게 되었을까요? 자신들의 경험을 여기서 얘기하는 건 곤란할까요?

교회가 소위 경제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교회에 들여와서 교회성장이라는 새로운 교회패턴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엄청난 양적 성장을 했어요. 우리나라 고속적인 경제성장으로 인해 많은 사회병리 현상이 생긴 것처럼 교회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그러다 보니 젊은이들은 비판의식이 강한데. 교회가 젊은이들의 요구(need)를 귀담아 듣지 않고, 성장 일변도로만 나가다보니, 젊은이들과 갭이 생기게 된 것이 아니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교회의 교회다운 지향점을 잃어버리고 성장만 외치니 젊은이들의 생리와 맞지 않고 충돌이 생길 수밖에요. 그리고 그런 젊은이들의 갈등을 믿음이라는 잣대로 '믿음 없는 자'로 단정 짓고 말았어요.

푸르름 : 3월경에 강남향린교회에 가 본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일 예배시간에 젊은이들 특히 미혼이나 갓 결혼한 젊은이들이 참 많아서 오히려 제가 어색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도 그렇고(국악으로 하니까) 설교도 무척 진보적 이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의 의식은 비판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 70-80년대의 한국교회는 성장기에 있었기에 비판을 수용했지만 성장기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든 한국교회는 목회자나 교회를 개혁하고 비판하는 것은 아주 싫어합니다. 자기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데 젊은이들이 교회에 있으려고 할까요? 너무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인데 70-80년대에는 미혼남녀들이 이성을 만날 기회가 드물었습니다. 저만해도 고교1학년 때 선생님이 여자친구 있는 사람 손들어 보라 하니까 60명중에 1명이 손들더군요. 하지만 그 당시 교회는 자연스럽게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어도 서로 어울리려고 교회를 찾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오죽하면 교회를 연애당이라고 놀렸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사방 어디에도 널려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현재 교회에 다니는 젊은이들은 과거에 비해 신앙이 매우 깊은 친구들입니다. 요새는 연애하려고 교회 다니는 젊은이는 없다시피 하니까요. 요새도 교회보고 연애당이라 칭하는 사람 보았습니까? 그 만큼 거품이 빠진 것이지요.

백광모 : 리플이 많네요. 고무적이네요. 책을 하나 권하고 싶네요. 아마 박철목사님의 생각과 크게 벗어나지 않다고 생각되는데요. 지성수 지음, '옛날 하나님 요즘 하나님', 예루살렘출판사. 좀 된 책인데 잘 분석한 책이라 생각됩니다.

민주화 시대에 유신체제 고수한 교회 운영체제도 문제

하얀모래 : 교회조직의 운영체제도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게 하는 큰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뿐만 아니라 장년들도 구시대적인 교회체제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의 운영에 실망하는 많은 교인들이 좀 괜찮다고 소문난 교회로 수평 이동하는 경우도 참 많이 있지 않습니까? 교회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소속된 교회에서 어느 정도 자기 나름대로 노력을 해보지만 굳어진 체제 속에서 따돌림만 당하다가 절망감을 느끼는 가운데 도피처로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대형교회로 옮기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교회의 도덕성이 사회의 도덕성보다 훨씬 우위에 있었는데 지금은 교회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서 교회다운 교회를 찾아 방황하고 있는데 한국교회의 장래가 빤히 보입니다. 목사님들의 물욕과 명예욕, 권력욕이 엄청납니다.

사회는 민주화되고 모든 정보는 공유가 되고 있는데 교회의 운영체제는 70년 유신시대와 똑 같은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담임목사 1인에게 모든 권한이 주어지는 체제이지요. 권한의 하부 위임은 없고 부서의 자율권도 거의 없지요. 부교역자는 담임목사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면서 담임을 맡을 기회만 기다리고 있다면 심한 말이 될는지요. 위계서열이 어떻게 보면 군대보다 더 한 것 같기도 합니다.
교회헌법의 교회조직에 대한 규정을 보면 유신헌법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도 않습니다. 개교회가 자율적으로 교회규정을 정할 수 있지만 그런 교회가 얼마나 됩니까?

교회조직도 협업화 분업화 되어야 합니다. 목사님들은 목회의 전문가답게 목회에 전념하시고 부교역자는 말로만 동역자라 하지 말고 진정한 동역자로 사역에 종사할 수 있게 신분보장과 권한도 주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오직 TOP만 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전문적인 능력을 살려서 나갈 때 현재 보다는 나아질 것 같습니다. 재정이나 기타 교회내의 업무는 성도들이 맡는 그런 체제로 나가야 될 것입니다.

박철 : 역시 하얀모래가 모래바람을 일으키는 군요. 역시 기대한 것만큼 정곡을 찌르는군요. 계속 날카로운 필봉을 휘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여하튼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점과 젊은이들이 교회를 기피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좀 더 밀도 있게 다룬 다음 해결책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토론의 맥이 끊어지지 않게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믿음만 강조하고 실생활은 표리부동한 목회자

이동하 :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사회적요인도 한몫 한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교회가 젊은이들이 놀이공간과 정보공간 등 사랑방 역할을 했지요. 그래서 교회에 젊은이들이 넘쳐났고요. 그런데 요즘 교회가 이런 공간기능을 못하는 거지요. 그저 교회는 예배하는 곳으로만 남아 있는 거예요. 그만큼 교회가 발상의 전환을 못하고 있어요.

철새들이 철따라 우리나라에 마물다고 철이 지나면 또 다른 나라로 가는 것처럼, 오늘의 교회가 설령 젊은이들이 와도 이들을 받아 줄만한 분위가 전혀 없어요. 또 교육수준도 엄청나게 높아졌어요. 의식이나 지적인 수준이 그만큼 높아지고, 전문의식과 함께 비판의식이 뚜렷한 젊은이들이 많은데, 교회가 목사의 설교가 이들을 쫒아가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목사의 권위적이 카리스마로 이런 요구와 분위기를 제압하려고 하니 누가 교회에 남아 있겠어요. 다 떠나고 말지.

하얀모래 : 제가 가장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의 삶속에서 교인으로서 뭔가 다르다는 소리를 들어야 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위 이동하님도 말씀하셨지만 교회의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믿음은 엄청 강조를 하는데,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것은 애써 무시합니다. 오직 믿음만이 구원을 얻지 선한 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고 잘 가르치지 않습니다.

강한 자, 있는 자를 위한 설교이지 없는 자, 약한 자를 위한 설교는 없습니다. 기득권세력을 대변하는 종이매체를 통하여 정보를 입수하는 기성세력들은 학생, 노동자, 촛불시위 등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인터넷을 통하여 진실이 무엇인지 알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 아는데 교회에서는 그런 행동들은 온당치 못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교회가 사회의 변화를 시키고자 의지와 노력도 없습니다. 지금 이대로가 좋습니다입니다.

도시교회의 담임목사님들 강단에서 모습과 생활상의 모습이 정말 표리부동한 분이 많은데 삶이 뒷받침 되어 주지 않는 설교는 정말 공허합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기도를 많이 하면 인격적으로도 더욱 성숙해져야 될 것 같은데 인격적으로 존경 가는 목사님이 너무 드뭅니다.

젊은 사람들 요즘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직장을 잡기도 쉽지 않습니다. 직장에 들어가도 정말 빠르게 발전하며 변하기 때문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무지 노력해야합니다. 마음 속의 갈등도 심합니다. 교회에서 그러한 젊은이들에 대한 바른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하는데 그런 양육프로그램도 부족하고 어른도 아니고 청소년도 아닌 위치에 있어서 참여도 지원도 안 되는데 젊은이들에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지원이 동시에 되어야 됩니다.

교회의 어른들은 젊은 사람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면 얘들이 설치고 다닌다면서 제동을 거는데, 좀 설칠 수 있도록 교회에서 장을 마련해 주면 젊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커녕 더 불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인 세대인데 교회는 수동적인 자세만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인식의 빈곤, 더이상 젊은이 설득 못해

박철 : 젊은이들이 교회를 기피하는 것에 대해 어지간히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오늘 하루만 더 토론하겠습니다. 오후에는 도시교회 목사들의 얘기도 들어보는 기회를 갖도록 주선해 보겠습니다. 일단 처방을 내리기전에 문제파악을 좀더 심도 있게 해보자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도덕성에 대해서 젊은이들이 좋은 느낌을 갖고 있지 못한 듯한데 여러분들의 생각이나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교회가 일반사회보다 수준 높은 도덕성과 역사의식을 담보하고 있어야 사람들이 교회를 시대의 희망으로 보고, 사회의 구조악과 부조리에 대항할 수 있는 양심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겠어요?

이동하 :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목회자들이 도덕성의 결여와 역사인식의 빈곤입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시절 교회는 권려의 시녀노릇을 했습니다. 청와대에 부르면 영광으로 알고 달려가 조찬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그걸 자랑했습니다. 젊은이들이 사회민주화를 갈망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며 죽어갔을 때 교회는 무관심했습니다.

51.8이 광주에서 일어났는데도 교회는 침묵하고 나중이라도 진상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집단적 도그마의 온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는 대신 엄청난 부를 축척하게 되었고, 대형화되어 갔습니다. 교권의 핵심에는 언제나 부흥사들이 중요한 요직을 차지했습니다. 권력과의 타협을 시도했습니다. 정의감이 있고 의식 있는 젊은이들을 용공분자로 내모는 일에 교회지도자들이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대형교회 지도자들이 시청에서 나라를 위한 기도회를 개최해서 빨갱이 모가지를 찔러 죽이자며 인공기를 불 지르고, 미국 국기를 손에 들고 흔들면서 파도타기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6.10항쟁의 주요무대인 이 민적의 민주화의 성지에서, 효순 미선의 촛불시위로 잠자던 민족혼을 일깨워 민족의 자존을 외쳤던 그 곳에서 나라를 위한 기도회를 한다면서 참으로 반역사적인 짓거리를 감행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오늘의 한국교회를 어떻게 보겠어요? 심한 분노와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한국교회 전체가 욕을 먹는 짓을 한기총이 앞장서서 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단 집행부에서 아무런 대응책이나 입장표명이 없어요. 참으로 통탄할 일이예요.

늦은자 : 샘물, 하얀모래, 김광진, 이동하, 임종숙, 백광모, 푸르름님 등 모두 동의되는 옳은 의견입니다. 전 비슷한 의견을 지지하는 의미에서 조금 더 부가하고 싶군요. 첫째, 교회가 전하려는 진리가 과연 청년들을 향하고 있는지 의문이군요. 소위 기독교적 복음 자체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은 마당에 기독교에 청년들이 오기를 바라는 것은 상갓집 벌려놓고 풍류 마당패 찾아오길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의 오랜 게으름과 구태로 인하여 청년들에게 합당한 복음의 능력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이 예수님에 의해 새로 해석되고 바울과 제자들에 의해 다시 씌어졌듯이, 오늘날에도 성경이 계속 새롭게 기록되어야할 것입니다. 조물주는 여전히 살아 역사하고 계신데, 그분의 말씀인 성경이 죽은 문서로 변하여 그분을 대변하지 못하게 된지 오래되었습니다.

젊은이더러 '오라'만 말고 찾아가야

둘째, 교회가 복음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현대 교회의 행태가 사람들이 흠모할만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진 것으로 판명된 지 오래되었는데도, 아직도 종교개혁 당시 수준의 구태를 고수하는 모습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가 그러했듯이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변화해야할 것입니다.

당시의 랍비와 같은 목사라는 직제, 당시 율법을 대신할 만한 성경이라는 문자적인 굴레, 당시 제사장들과 그리도 닮은 교단의 행태, 당시 레위인들을 닮은 집사, 장로 등 직분자 교인들, 당시 성전 번제와 닮아 형식화되고 과시적으로 변질된 예배, 이런 것들을 보고도 교회가 변화의 바다에 뛰어들지 않는다면, 청년이 아니라 누구라도 품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자신이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던 천주교보다도 고착된 모습임을 누구나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가 가진 복음이 진정한 복음이라면 진리의 능력과 생명의 다이나믹을 증명해야할 것입니다. 이미 죽은 냄새를 풍기는 것을 산 것이라고 강변하며 함께할 것을 권고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정수를 가진 청년들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청년들이 교회로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의문시됩니다. 현대의 삶에서 청년들은 자기 나름의 거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한자리에 머물러 계시면서 사람들더러 찾아오라고 하셨습니까? 제 스스로 찾아가지 않고 교회를 흡사 감옥처럼 만들어 놓고 들어오라고 하면 누가 들어오겠습니까?

교회가 청년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공부하고 애써도 변변한 취직도 어렵고, 한탕 하는 것 이외에는 꿈꾸어볼 무슨 희망도 발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들이 당장 필요한 것을 채워줄 공급처가 되어야 합니다. 로마의 지배 속에 청년에게 별다른 소망이 없었던 예수님 당시처럼, 지금도 맘몬신의 지배 속에 유리방황하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의 청년들을 불러 희망을 주는 calling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기독교의 전승적인 체제가 아니라 청년들을 돌보아줄 수 있는 공동체로서 필요한 곳에서 귀납적으로 형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신앙으로부터 멀어지는 젊은이들

이진홍 : 교회의 보수적인 성격이 진보적인 젊은이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으로 논의가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진보적이지 않은 젊은이들도 교회로부터 멀어지는 현상은 이와 같은 접근 방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진보적인 젊은이들이 좋아할 수 있는 교회들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그 진보적인 젊은이들은 굳건한 신앙만 가지고 있다면 전체적으로 보아 우리나라 교회에 다니는 젊은이들의 숫자는 크게는 차이가 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기독교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특수성만 고려하여 풀기에는 논의의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이 굳건한 신앙만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신앙적인 소양에 적합한 교회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젊은이들이 어느 특정의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며 이 점에서 김광진님의 의견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문제가 짧은 지면으로 의견을 압축하기에는 너무 큰 것으로 되고 또한 이 문제에 관하여 대외적으로 제 의견을 발표할 수 있을 만한 그릇이 되지도 못하며 제가 진행형으로 늘 고민하고 찾아다니는 문제이긴 합니다만, 우리나라와 외국의 진보적인 신학자들의 견해를 옮기면, 전통적인 신앙관 안에는 현대의 젊은이들이 선뜻 믿기 어려운 부분이 상당히 많고, 결국 머리가 믿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문제를 정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신학자들이 분석하여 제기한 문제 자체에 관하여는 저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만, 이 분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에 관하여는 많은 고민이 있습니다. 이에 관하여는 다른 기회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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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토론은 박철 목사가 운영하는 느릿느릿이야기(slowslow.org)에서 2003년 7월 5일부터 12일까지 온라인상에 있었던 것입니다. 정리를 해서 발표하려고 했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두차례에 걸쳐서 발표하겠습니다.

박철  pakchol@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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