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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땀 흘렸던 첫 번 결혼 주례이야기돌아보니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더 큰 것이었더라
박철 | 승인 2017.11.11 23:45

나이 서른 후반에 처음으로 결혼주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신랑신부 될 사람이 내게 찾아와서 결혼주례를 부탁했을 때, 내가 장가라도 가는 것처럼 마음이 기쁘고 설렜습니다. ‘멋지게 결혼주례를 해야 할 텐데!’ 결혼식장에 참석한 사람들이 내 주례사에 감동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혼자 씩하고 웃었습니다.

신랑보다 더 신났지만

주례사를 몇 날을 준비했는지 모릅니다. 다듬고 또 다듬고 나중에는 한편의 산문시가 되었습니다. 결혼식 전날 밤, 왠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결혼식 당일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일찌감치 목욕탕을 다녀오고, 세탁소에서 찾아온 단벌양복을 입고 거울을 한 열 번쯤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이발소를 갔습니다. 헤어드라이를 하지 않고 가르마도 자연스럽게 하고 살짝 기름만 발랐습니다. 준비가 완벽했지요.

▲ 이문희 김윤자 집사 부부. 신혼초 모습 ⓒ박철

결혼식장에 한 시간 먼저 도착해서 큰 거울 앞에 내 모습을 비쳐보니 근사한 청년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신랑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주례자는 보통 식장에 제일 늦게 도착하는 법인데 한 시간 먼저 와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서성댔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장 분위기가 가라앉은 게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습니다. 신부 아버지가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연락이 왔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례를 하게 될 신랑신부 두 사람은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동생 같은 청년이었습니다. 그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사랑을 하게 되었고, 또 두 사람의 속마음조차 훤히 들여다 볼 정도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신부는 집안환경이 복잡해서 어려서부터 작은집에 얹혀살았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두 사람의 결혼을 정작 아버지와 새엄마가 반대하였습니다. 신랑의 나이가 너무 많고 궁합이 안 맞는다는 이유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고모부가 대신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하기로 하고 수습이 되었습니다. 시작 시간 5분을 앞두고 나는 헛기침을 하며 단상에 섰습니다. 식장을 정리하는 간단한 멘트를 하고 침착하게 결혼식을 진행했습니다. 순서지에 있는 식순에 따라 신랑이 먼저 입장을 하고, 그 다음 신부가 입장을 하고, 서로 맞절을 하고 결혼식은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주례사보다 신랑신부의 마음을 읽었기에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제 문답을 해야 할 차례인데 예문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결혼식은 시작되었는데, 예문을 갖고 온 다음 다시 할 수도 없고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순발력을 발휘해서 예식을 진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 앞에 서 있는 아름다운 신부는 계속 눈물을 흘리는데 하도 눈물을 흘리니까 들러리 하던 여자가 손수건을 갖다 주었습니다. 신부가 우니까 나까지 마음이 짠한 게 눈물이 나오는데, 주례자가 주례하다 울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정말 난감했습니다.

대충 요령껏 순서를 때우고 주례사를 해야 할 순서가 되었는데, 아뿔싸! 이번에는 주례사 원고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며칠 동안 고치고 또 고쳐 만든 공들여 만든 주례사 원고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잠깐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이발소에서 원고를 들여다보다가 예문하고 원고는 놔두고 성경가방만 갖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눈앞이 아찔한 게 그렇게 달달 외운 원고 내용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속으로 “주여! 내게 지혜를 주소서. 종의 입술을 주장하여 주소서. 당신만을 믿습니다.” 기도를 하고 더듬더듬 주례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별안간 원고에도 없었던 말이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 결혼 가정의례 예문집. 기독교의 모든 관혼상제는 예문에 따라 예식을 진행하게 된다. ⓒ박철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 서있는 두 사람은 내가 잘 아는 사람입니다. 나는 지금 신랑신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여기 서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이 두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신부는 참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신부가 살아온 환경이나 과정을 너무나 잘 압니다. 신부는 위로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두 사람이 연애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너무 기뻤습니다. 신부는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지만

신랑신부는 그때 그 사실을 지금도 모릅니다. 처음 결혼식 주례자로 데뷔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손에서 진땀이 납니다.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는 어쩌다 결혼 주례를 하게 되면, 예문하고 주례사 원고 챙기는 일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지금 아들 둘을 낳고 잘 살고 있고, 가끔 울 내외를 보러 부산까지 찾아오고 있습니다.

어사지간, 세월이 지나 24-25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때 결혼주례를 앞두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발소 거울 앞에 선 30대 후반 청년은 이제 하늘의 뜻을 알아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의 나이를 지나, 허리도 약간 구부정해졌고, 눈도 침침해졌고, 걸음걸이도 굼뜨고 완전 중늙은이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어디 가서 ‘꼰대’라는 소리 안 들으려고 나름 애를 쓰고 있답니다.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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