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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자리에서 평화의 길을 찾자한반도 통일과 교회의 책임 ④
조헌정 | 승인 2017.11.13 00:22

지금은 외부보다 내부단속이 더 중요한 때

전쟁은 한반도의 초토화는 물론, 평택과 괌에 있는 수만 명의 주둔 미군으로 말미암아 세계대전으로 확전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미치지 않는 한 전쟁은 불가능하다. 다만, 구석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려고 달려들기에 살아갈 길을 내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여기서 한국과 미국의 입장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남한은 이러한 대북적대정책으로 말미암아 그 후유증으로 자살률 최고, 출산율 최저국가가 되어 있으며 빈부격차 또한 세계 1위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나 깊은 문제를 안고 있다. 남북통일과 맞물려 우리 사회의 내부 결속이 더 중요한 시점이다.

▲ 남북의 통일은 퍼즐 맞추기처럼 힘들다.

단적으로 최근 사회 문제로 다시금 떠오르고 있는 주택 소유를 보자. 현재 7만 명이 평균 7채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개인 한 사람이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개수가 천 채이다. 국회의원과 국장급 이상 관료 절반 이상이 두 채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절반 이상의 국민이 무주택자로 전세와 월세의 설움을 당하고 있다. 그들이 이 현실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일까? 왜냐하면 대부분의 다주택소유자들은 본인이 돈을 벌어 구입한 것이 아니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계속 심화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정치 비리가 심화되면 촛불 혁명이 일어나듯이 빈부격차가 극심해지면 민중폭동이 일어나게 된다. 이는 역사가 말해주는 것이다. 어느 사회나 단체나 교회나 불만이 쌓이면 폭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금수저 흙수저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일종의 전조이다.

사회퀴즈: 현재 남한 상류층 1%가 차지한 땅의 비율은? (50% 이상) 주식부자 1%가 시가 총액의 몇%를 차지하고 있는가? (63%) 참조, 미국은 상위 1%가 소득의 14%.

사회퀴즈: 1963부터 1979년까지 강남의 땅값은 몇 배가 올랐을까? (힌트 강북은 같은 기간 25배 올랐다.) 무려 천배가 올랐다.

자유에 기초한 개인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이것이 무한 경쟁이 되면 결국 폭동으로 변하니 이를 미연에 막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누진세를 통해 의료, 교육, 복지 시스템을 공고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럼 왜 경제 15위 국가인 남한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가?

그건 우리가 버는 돈이 다 우리 손으로 들어오지 않고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2만 5천불이다. 그러면 4인 가족 평균 1억 2천만원이 되어야 한다. 노부모가 살아계신다면 평균 수입 2억원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건 꿈같은 이야기이다.

그러면 돈이 어디로 새고 있는가? 가장 큰 구멍은 해외 자본 투자 몫과 국방비 지출이다. 삼성과 현대가 아무리 수출을 많이 해서 돈을 번다해도 수익의 대부분은 미국투자가들의 손으로 흘러 들어간다. 한미FTA를 눈앞에 드러난 수치로마나 보아서는 안 된다. 집을 수채씩 갖고 있는 부자들이 남한에만 집을 갖고 있을까? 아니다 대부분 미국에도 집이 있다. 이런 투자는 수치에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으로부터의 비싼 무기 수입과 미군주둔 유지비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금 재주는 곰(남한)이 넘고 돈은 주인(미국)이 챙기고 있다. 남과 북이 엄청난 비용을 군사비로 지출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현재 남한은 국가예산의 15% 북은 30%를 군비에 쏟아 붓고 있으며 남에는 60만 북에는 백만이 넘는 군대가 있다. 가장 창의력이 뛰어난 젊음의 시기에 남한은 2년 북한은 7년을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하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군복무인가?

현실을 당장 바꿀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희망하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오늘의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남한은 OECD 국가 중 복지비율 최저이다. 평생을 이 사회의 복지를 위해 일을 해온 노인들이 존경 대신에 하루의 끼니를 걱정해야 한다면 자살 외에 다른 길은 없는 것이다.

남한의 장로교 교단 숫자가 200개가 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나라들은 교단을 통합해가고 있는 반면 계속 분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수 사랑을 신앙의 기본으로 가르침을 갖는 한국교회가 북한에 대해서만은 예외로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신앙이 이념(이데올로기)에 먹혀 버린 상태이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는 사마리아 땅을 통과하여 한 여인과 대화를 한다. 우리는 대화 내용에만 관심하고 있지만, 사실 요한이 강조하고 했던 것은 당시의 국가보안법의 역할을 하던 정결율법을 깨고 사마리아 땅을 들어간 예수님의 파격을 말하고 있다. 진정한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는 답을 통해 남의 유대가 만들어 놓은 예루살렘 성전 유일성 그리고 사마리아가 주장하는 세겜성전 유일성 모두를 배격한 것이다. 곧 유대 종교가 만들어 놓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시행되는 분열지배정책(Divide and Conquer Strategy)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뜻하는 朝三暮四라는 말이 있지만, 일반 백성들은 자기보다 못한 계층이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는다. 일본에는 오래 전부터 부라쿠민이라는 천민 계층을 만들었지만, 이외에도 조센징을 비롯한 오키나와, 흑해도 사람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계급을 통해 일본 평민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아베정권은 반북정서를 계속 자극함으로 평화9조를 깨고 군사대국으로 나아가고자 하고 있다.

미국은 한미일군사정보교류를 넘어서서 일본이 군사강대국으로 나서 자신들의 군사비 지출을 줄이고자 한다. 일본의 군사강국화는 결국 제2의 한국침략으로 나아갈 것이다. 크게 보아 남북대결 또한 외세에 의한 지배전략인 것이다. 남한 내에서의 지역감정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70년대 유행했던 노래를 기억하고 있다. 가수 양희은이 부른 ‘작은 연못’이란 노래다. 한 우물에 두 마리의 물고기가 있었는데, 서로 싸우다 한마리가 죽자 그 시체가 썩어 물이 더러워지자 그도 또한 죽어간다는 얘기이다. 박정희는 이 노래를 금지곡으로 만든다. 1972년 ‘74민족공동선언’을 발표했지만, 그게 거짓이었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실현 가능한 통일정책

우선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화되어야 한다. 정전(停戰)이란 운동경기의 휴식시간 그리고 음악회장에서 화장실을 다녀오는 중간휴식과 같다. 전쟁은 심판이 따로 없으니 어느 쪽이든 먼저 총을 쏘고 시작하면 그게 쉬는 시간이 끝났다는 표시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정전하에서의 도발은 없다. 왜냐하면 종전(終戰)선언이 없는 한 전쟁은 계속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전선언을 통한 평화협정이 중요하다. 

평화협정은 다음과 같은 사항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기독교회협의회는 1988년도 평화통일선언문에서 이미 미군 철군이 통일의 전제조건임을 밝힌바 있다. 김대중 노무현정권 시절 여론조사에서 단계적 미군철수와 즉각적 미군철수를 지지하는 국민들이 최소 40%에서 최대 62%에 달했다.

따라서 가장 현실적인 남북통일의 전제 조건은 미군의 단계적인 철수와 함께 핵무기를 포함한 남북의 군축협상이 다루어져야 한다. 2000년대 초 북은 남에 20만명으로 군대를 줄이는 공동 군축을 제안한바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핵탄두 군축을 시행하는 것처럼 함께 줄이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요원한 일이지만 스위스와 같은 영세중립국가로 나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과 북의 화해와 통일은 서로 다른 국가 체제와 경제 체제로 굳어진 오늘날에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태로 계속 가는 것은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가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다. 신앙이란 궁극적으로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를 얻는 일이다. 지금 남한에서 살아 있는 신앙인으로 살아갈수 없다. 왜냐하면 양심에 따른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나 장점이 있듯이 북한에도 분명 장점이 있지만, 국가보안법 이적단체 찬양고무죄로 감옥에 갈 각오가 서지 않는 한 이를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유엔의 엄연한 한 회원국이지만, 남한에서는 이적단체일 따름이다. 그러면서도 언론에서는 615 혹은 104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말을 한다. 엄연한 모순이지만, 이 모순을 당연시여기는 또 하나의 모순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한국교회의 과제

거대한 타이타닉호는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침몰하였듯이 지금 남한 교회는 서서히 침몰하여 가고 있다. 천만 성도가 650만성도로 급격하게 줄어들었으며 현재 대부분의 교회들은 극심한 노령화 현상을 겪고 있다. 젊은이들은 이제는 교회 비판도 하지 않는다. 무시와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어떻게 해야 교회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130년 개신교 선교역사에서 두 번 크게 수적으로 부흥한 적이 있다. 하나는 일제의 식민지배가 노골화된 1905년 직후로부터 1910년까지이다. 두 번째는 1960,70년대 농촌에서 도시에로 인구가 대거 이동하기 시작한 때이다.

이 두 시기의 공통점은 사회불안으로 개인불안이 커졌던 시기이다. 이때 교회가 사회에 관심하지 않고 개인 불안 치유에만 치중하면 초기에는 교회가 부흥시기를 맞이하지만, 결국은 줄어들게 된다. 나라가 망하는 위기 속에서 교회는 회개운동과 예수천국만을 외침으로 잠시 부흥했었지만, 결국 나라를 잃고 일제 식민치하 속에서 교회는 명맥만을 유지했고, 해방 이후 신사참배 후유증으로 교단 분열만 심화되었다.

6,70년대 이후 도시산업화가 일어나며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위안을 얻기 위해 대거 교회로 몰려옴으로 한국교회는 세계선교역사에 유례가 드물게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리하여 세계 최대 50대 교회 중 절반 이상이 서울에 있었다. 그러나 80%에 가까운 교회는 교인 수 50명 이하 수준이고, 농촌교회는 죽어가고 있다. 장자교단으로 자부하는 한 장로교단의 서울노회 회원교회 3분지 1이 어린이부와 중고등부가 없다.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채찍을 휘두르시며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호통을 치셨던 예수님의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 오늘 우리는 교회에서 정의 평화 생명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 아니면 강도와 같이 나의 세속 욕망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향해 주여! 주여! 라고 외치는 사람이 아닌,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셨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우리가 취해야 할 평화의 길은 무엇일까?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의 길을 찾아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것이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는 진정한 전도(傳導)요 땅 끝까지 예수의 증인이 되는 참다운 선교(宣敎)이다.

조헌정  choshalo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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