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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홀 다문화주의한국사회 다문화의 정의
이영 | 승인 2017.11.13 00:54

한국사회는 2009년 이주민 100만 시대를 맞아 다문화사회가 되었다고 떠들어댔다. 또한, 미국의 미식축구선수 하인스 워드가 MVP가 되면서 한국인 어머니가 소개되면서 더욱 다문화에 대한 의제가 우리 사회에 확대되었다. 그런 반면에 과연 한국은 다문화사회에 필요한 요건들을 갖추고 있었던가? 한국사회 다문화의 정의는 무엇일까?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묻고자 한다.

1.

한번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설악산을 간 적이 있었다. 울산바위까지 올라가기로 했는데, 인솔자인 나보다 먼저 내려오는 이주노동자들이 있었다. 벌써 갔다가 왔다는 것이다. 내가 인솔자인데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니, 울산바위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내심, 기분이 안 좋아 딴 척을 했다. “한국은 아름다운 금수강산이야!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있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나라이지!”라고 자랑을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주노동자가 물었다. “신부님! 한국에서 제일 높은 산이 어디에요?” 나는 가보지도 않은 “백두산!”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 이주노동자는 “자기네 나라에서는 그 정도면 동네 뒷동산 정도 된다.”고 했다. 이 친구는 네팔 사람이다. 세계 최고의 8개봉을 가진 친구이니, 백두산은 뒷동산 정도인 것이다. 할 말을 잃었다.

2.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경주에 갔을 때였다. “천년 역사의 고도를 찾아서”라는 거창한 현수막을 걸고 갔다. 첫날 경주박물관, 안압지를 관람하고 숙소로 돌아와 다음날 불국사 탐방을 하기로 했다. 출발하려고 하는데 한쪽 무리가 자신들은 바다로 가겠다고 한다.

그래서 바다는 내일 일정에 있으니 오늘은 동양 최고의 불국사와 석굴암에 가야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이 “자기네 동네에는 그 보다 더 큰 사찰과 불상이 있다.”고 한다. 결국 그들은 바다로 갔다. 중국 분들이었다.

3.

몽골 친구들이 상담을 하고자 센터를 방문했다. 한 여름인데 상담실은 비좁은데, 부부 4명이 있다 보니 발 냄새가 너무 심해 상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기마민족이라 발을 잘 씻지 않는다는 소리도 있다.

그래서 또 실없는 소리를 했다. “몽골에는 아직까지 디지털 카메라나, 핸드폰이 없지요?” 이 말을 들은 몽골 친구 한명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탁자를 치며 “신부님! 옛날에 이 땅이 누구 것인지 아십니까?” 하는 순간 칭기즈칸이 떠올랐다.

▲ 한국적으로 변화되기를 강요하는 것은 다문화 사회의 모습이 아니다. ⓒ이영

다문화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함을 절실하게 체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문화는 포장만 다문화일 뿐 획일적이다. 어느 한 기업광고에 나오는 장면이다. 다문화가정이라는 베트남 엄마를 둔 한 소년이 “축구경기를 보며, 대한민국을 외칩니다. 그리고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습니다.” 하물며 군화를 신고 있다. 광고의 코멘트는 “당신처럼 이 아이는 한국인입니다.”이다.

이와는 달리 혹시, 베트남과 한국이 축구시합을 하면 이 아이는 베트남을 응원하면 안 되는 될까? 김치 말고도 베트남 쌀국수를 더 좋아하면 안 될까? 끊임없이 우리는 한국적인 것을 강요한다. 한국에 동화되지 않으면 이 아이는 살 수가 없다.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한국에서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2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이혼 등)에는 체류자격을 상실한다. 모든 것이 한국화 되어야한다. 소위 동화되지 않으면 버려진다. 이것이 한국의 다문화이다. 한국의 다문화주의는 동화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일방적이고 획일적이다. 이와 같은 한국의 다문화주의를 ‘블랙홀 다문화주의’라고 정의하고 싶다.

한국의 현대사를 비추어 보아도 한국의 다문화는 아직 초보적인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이조 말 쇄국정책으로 문호를 폐쇄하고, 일본의 식민지와 독립과 함께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한국은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 한국이 세계 속에 알려진 것이 88올림픽이었다면 다문화의 경험은 기껏 3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유럽의 수백 년의 다문화사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마치 훌륭한 다문화의 업적을 이룬 듯 온갖 허황된 선전을 한다.

한국사회가 다문화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블랙홀에서 벗어나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식의 틀을 새롭게 정립해야한다. 다문화 수용에 대한 자세를 갖추고, 다름을 차별이 아닌 차이로 인식하고 충분한 학습을 통해 체득해야한다.

아마도 남북이 이념으로 대치되면서 타자에 대한 강한 적개심이 은연중에 발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다. 분단의 전형이 한국사회의 다문화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한국화가 아니면 철저하게 배제하는...

한국역사 유래 없이 다문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는 한국 통일국가로 향한 하나의 훌륭한 학습장이며, 통일국가의 모델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계기이다. 이미 북한과는 반세기를 넘어 서로 다른 이념과 정치, 문화 등으로 격차를 겪고 있다. 이를 해소하고 통일국가로 가는 지름길이 있다면 현재 한국사회의 다문화의 소중한 자산을 활용하여 새로운 통일국가 탄생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한국의 다문화는 하느님께서 주신 통일국가로 향한 시험대이며 선물이다.

▲ 단군 이래 가장 다문화시대의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영

이영  eotjde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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