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선(세종대 교수, NCCK 화해와통일위원회 위원)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이 년이 되던 해 둘째 달 초하루에, 주께서 시내 광야의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각 가문별, 가족별로 인구를 조사하여라.” ... 주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분부하여 이르셨다. “레위지파만은 인구조사에서 빼고 이스라엘 징집자 명단에 올리지 말아라. 그 대신 너는 레위 사람을 시켜, 증거궤가 보관된 성막을 보살피게 하여라. ... 그들은 성막을 돌보며, 성막 둘레에 진을 치고 살아야 한다.”(민수기 1:1-50)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진실을 살도록 창조되었어. ... 우리는 이 인간 세상의 가장자리에 있지. 우리를 위해서는 아무런 장소도, 오피스도, 타이틀도 없어. 모든 거짓은 자기 자리를 가지고 있지만 영원한 진실, 진정한 삶과 느낌은 자리가 없는 걸!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으로부터 제외된 거야. 너는 그것을 공격했기 때문에, ... 나는 죄를 지을 수 없고 그것과 더불어 거짓을 말할 수 없기 때문에.”(Hannah Arendt, Rahel Varnhagen-The Life of a Jewish Woman, 205)

1. 시작하며

주지하다시피 올해 독일 에버트 재단은 그 인권상을 대한민국의 촛불시민에게 수여하였다. 이렇게 인류 역사상 최대의 시위라는 평가를 받았고, ‘평화와 축제’로 상징되는 촛불혁명으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한국 사회에 요즈음 ‘소수자’(minority)에 대한 이야기가 무성하다. 또한 이와 더불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갑질’과 ‘을질’에 관한 여러 이야기는 그동안 한국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으로 배타적이었고, 분파적이었으며, 그로 인한 상처가 깊었겠는지를 잘 알게 한다.

오늘날 연일 각종 방송매체를 통해서 쏟아져 나오는 지난 정권들에서의 적폐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고, 그 가운데서 힘없고, 새로운 것을 말하고, 다른 길을 가면서 그 일을 살아내고자 했던 우리 사회 소수자들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짐작하게 한다.

2. 소수자의 본분

앞에 든 히브리 성서 <민수기>의 말씀은 <레위기>서에 이어서 계속되는 말씀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해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부탁하신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스라엘 12지파의 인구수를 세고, 그들 중 누가 얼마나 군대의 일을 담당할 수 있겠는가를 정리하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서 레위 지파만은 인구수에 넣지도 말고, 군대 징집자의 명단에도 등록하지 말하고 하신다. 대신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증거궤가 들어있는 성막을 지키는 일을 맡기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레위인들에 대한 이러한 구분과 면함은 그들에게 일종의 ‘특권’을 부여하는 일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사의 위험 부담률이 매우 높고, 노동의 강도가 센 ‘군대’라는 일로부터 면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이 일은 국가의 진정한 공동체로부터 소외를 당하는 일이기도 하다. 군대라고 하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렇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더욱 더 공동체의 안위와 유지를 위해서 참으로 긴요한 일이었고, 국가의 가장 핵심적인 일로 그 일에서 역할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인구수를 세는 데 있어서도 “함께 등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은 열외이고, 오늘 우리의 언어로 하면 ‘소수자’이고,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시한다. 그런데 그 열외의 사람에게 하나님은 ‘증거궤’가 들어있는 ‘성막을 지키는 일’을 맡기신 것이다.

하나님 성막 안에 있는 증거궤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다. 이것은 당시 주변의 다른 민족들처럼 ‘어떤 모양을 본떠 만든 우상’을 섬기지 말고, 오직 예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명령이다.

이 명령이 의미하는 바를 나는 두 가지 차원으로 이해해 보고자 한다. 첫째, 모양을 본떠 만든 우상을 섬기지 말하는 것은 어떤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형상’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의 과거의 경험에 대해서 말하고 이야기하는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일에 집중 하라는 것이다. 즉 주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인간 언어와 ‘사고’(상상)의 일로서의 하나님 신앙과 믿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하나님에 대한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는 것은 다시 그 사고의 한 유형이기도 한 ‘상상’을 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즉 주변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신의 모습을 그들 자신의 주관대로 그리고 상상하여 어떤 형상을 만들어 숭배하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러한 주관적 상상을 모두 금지한다는 말씀이다. 대신에 그들이 과거에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체험해서 전승된 이야기(증거궤)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3. 소수자와 상상

이렇듯 이스라엘의 백성 중에서도 소수자이고 열외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맡기신 일은 ‘상상’과 관련된 일이다. 그 상상과 관련된 일이 ‘성막’(聖)을 지키는 일이고, 당시 공동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군대의 노동이 아니라 ‘믿음’과 ‘상상’과 ‘언어’와 ‘역사’와 관련된 특별한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우리 시대 소수자의 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 소수자들을 형상화 한 일러스트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오늘 우리 시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왜곡되게 상상하여 아주 편파적으로 자신들만의 가치(聖)와 옮음(善)을 특정한 형상으로 만들고, 그것을 자신들의 신(神)으로 배타적으로 섬기면서 거기에 들지 않는 그룹과 가능성은 천하고(俗) 악한(惡) 것으로 소외시키는 행태에 대해서 저항하고, 그 왜곡된 형상을 해체하는 일을 말한다. 여기서 소수자가 하는 일도 다시 ‘상상’이다. 그러나 왜곡되고 편파적인 상상이 아니라 바른 상상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다시 보고 상상하여 지금까지 가치와 존재의 영역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것들을 다시 복권시키라는 것이다.

그 일은 한편으로 시대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빠져있는 잘못된 상상을 부수는 일이고, 즉 상상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눈에 그릴 수는 없지만 말씀과 언약과 약속을 믿는 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상상으로 과거의 형상을 넘어서 하나님을 새롭게 그리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소수자 레위인들이 성막을 지킨다는 일은 그곳의 증거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꾸 빠져드는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진 우상을 깨부수는 일이고, 또 그 증거판의 언어로 잊혀져가는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새롭게 상기시키는 일인 것이다.

4. 변방인(pariah)으로서의 소수자

그렇지만 이렇게 기성의 상상을 깨고 새롭게 다시 가치와 의미를 세우는 일을 하다 보니 그 일을 하는 소수자는 자기 시대 주류의 사람들로부터 소외를 당하고, 명단에도 끼지 못하는 열외의 아웃사이더(outsider)와 변방인(pariah)으로 취급당한다. 시대는 종종 그러한 소수자를 핍박하고 억압하고, 자신과 다른 것을 말하고 상상하면서 그 시대가 가지는 상상과 형상의 한계와 불의를 지적하기 때문에 그것을 싫어하고 어떻게든 억누르고자 한다. 과거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그러한 일들을 혹독하게 겪었고, 예수의 삶도 그와 다르지 않으며, 우리 시대에도 각 분야의 소수자들이 하고 겪는 일이 그렇게 다른 일이 아니라고 본다.

오늘 각종 갑질에 저항하는 사람들, 스스로 을질을 그만두고 거둠으로써 그전에 을질을 통해서 가까스로 유지했던 안정과 소속을 과감히 떨치고 용기 있게 스스로 서고자 하는 사람들, 나라와 언어를 잃고 혹독한 식민지 속에 놓였을 때 그것을 넘어서 큰 희생으로 나라를 다시 찾고자 애쓴 사람들, 민주화운동의 혹독함을 넘어서 민중과 촛불과 시민의 새 시대를 연 사람들, 가장 먼저 용기 있게 자신의 존재와 일본제국주의 국가의 불의를 알린 김학순 여사 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등, 이런 각 시대와 영역의 소수자들이 이룬 일들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고독’을 견디는 일이었고, 지금 뚜렷한 형상으로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용기 있는 ‘상상’과 ‘저항’으로 시대의 주류와 일반에 맞서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은선  leeus@sejong.ac.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