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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의 『행복한 귀환』을 위해이주노동자 운동의 대부 최의팔 목사
에큐메니안 | 승인 2017.11.24 04:19

“아, 네, 대감이 제가 찾아갈게요.”

▲ 한국 이주노동자 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의팔 목사 ⓒ에큐메니안

“너 요즘 아파서 집에 있다며. 그냥 있어라, 내가 니네 집으로 갈게.”

“어, 감사합니다.”

그렇게 누군가와의 인터뷰를 집에서 해 보기는 처음이었지만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일지나래비(경상도 사투리로 한 줄)로 세우면 끝도 안 보이는” 후배들은 그냥 “대감”이라고 부르는 분이다. “야, 1995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2009년까지 이주노동자 운동했으니 벌써 몇 년이야.” 하시는 최의팔 목사님.

왜 귀환인가

그 분이 책을 한 권 출판하셨다. 『행복한 귀환』이라는 책이다. “대감님, 이 책 어제 보내주셔서 대충은 읽어봤는데요, 이 책을 쓰시게 된 이유가 뭐에요?” 책을 읽지 않아도 될만큼 자세히 이야기하신다.

“그게 뭔고 하니,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행복하지 않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을 떠났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또 한국에 들어온단 말이야. 이런 이주노동의 악순환을 어떻게 끊느냐, 그런 거에 관심이 많았거든. 그리고 2005년부터 이주노동자들의 행복한 귀환 운동을 쭉 해 왔었지. 그러다가 네팔에 가서 보니까 전체 주민 중에서, 그러니까 10가구 중에 6가구가 이주노동과 관계된 사람들인 거야. 전체 국가 수익 중에 30%가 이주노동자들의 송금인거야. GNP에 30%인거야. 그래서 모든 사람들, 젊은이들이 전부 외국에 나가게 되는 거야. 한국에 네팔 이주노동자들이 4만 명 와 있어. 한국 뿐 아니라 사우디로 보내고. 원래 네팔이라는 나라가 영국에 용병을 계속 보냈어.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주 노동자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 그래서 2005년도부터 했으니까 십년 동안 이 문제로 씨름을 한 거지. 그래서 네팔에 가면서 귀환 노동자를 만나면서 귀환을 준비했는지, 귀환해서 사업을 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등등을 심층 취재한 거지. 그러면서 이주노동자들이 출발할 때부터 그리고 본국에 돌아가서 어떤 준비를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이 책을 쓰게 된 최고의 동기인 거지.”

하지만 기자의 눈에 이 책의 제목으로 사용한 “귀환”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대감님 귀환이라고 하면 사실은 좀 좋은 말이잖아요. 이주노동자들이 법외에 혹은 불법이라고들 하고 합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귀환이라는 말을 특별히 쓰신 이유가 있으세요?”

“그 문제로 방금 전까지 한신대학원에서 세미나가 열려서 하고 왔는데, 어느 한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온 분이 그러는 거야, “누가 정해서 불법이냐, 영어로는 undocumented라고 미등록 노동자라고 하고, 일본어로는 초과체류라는 말을 쓴다. 과연 불법이면 한국도 마찬가지다. 만약 불법이면 감옥에 넣어야지 안 넣지 않느냐, 그러니 불법이라는 말이 맞지 않다.” 그러는 거야. 그 분이 또 그러는 거야, 그리고 이 책에서도 하는 말이고,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범법 행위를 하냐, 한국의 노동력이 없는 3D 업종에 와서 열심히 자기 청춘을 바쳐서 일을 하는데, 그게 왜 불법이냐, 만약 불법이라면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지.” 맞는 말이야, 그리고 실제로 각 나라마다 미국도 그렇고 전세계적으로 초과체류를 인정해요. 노동력도 원활하게 하고 또 국가적으로 노동력 부족을 경험하기 때문에 국가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인정하는 것이지 불법이라는 말이 안 맞는다고 봐요.”

한국 상황에서 이주노동자의 합법화는 이민일 수밖에

그러나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는 것과 그것을 합법화 했을 때의 차이점이 뭘까 싶었다. 일상에서 늘 쉽게 이런 저런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이주노동자들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것과 합법화 시켰을 때의 차이점이 궁금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정부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을 합법으로 인정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런 나라가 몇 개 있기는 하지. 스페인, 이탈리아, 이런 국가에서는 이주노동을 합법화시켰지.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이 다른 유럽 나라로 가거든. 그러니 자기들한테는 손해되는 게 없지. 그런데 한국에서 합법화시킨다는 말은 이민을 받아준다는 말이랑 비슷해지거든. 그래서 나는 귀환과 더불어 두 가지 정책을 병행해야 된다고 주장 하거든. 한국에서처럼 미등록 노동자를 일회용으로 쓰고 버릴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 한국말도 잘 하지, 기술도 있지, 그러니 이민을 받아들여라 하는 거지. 사실 노무현 정부 때 이민 정책까지 갔었어요. 이명박/박근혜 때 완전히 폐기 됐고. 앞으로 한국 사회가 저출산·고령화 문제로 심각 하거든, 그렇게 되면 인구가 피라미드 아녀, 점점 더 심하니까, 그래서 이민 정책을 합법화 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고, 아마 조만간 논의될 거라고 보고 있지. 그런데 이거에 가장 반대되는 논리가 뭔고 하니, “우리는 단일 민족이다.” 이거야. 근데 한국이 뭔 단일 민족이여, 옛날부터 혼합잡종 다 된 거지. 이게 일제 식민지 시대 때 만들어진 허구의 논리기 때문에 곧 깨질 날이 오고, 그게 아니더라도 이제 글로벌 세상인데, 그리고 한국에는 이주민들이 200만 살아요, 그런데 한국에서 나간 이주민은 700만이야. 전세계적으로 흩어진 한국인들이. 그러면 다 불러들여야 할거 아니야. 그리고 700만 명이 다 합법으로 나간 게 아니거든. 미국에도 미등록 한국인이 최소한 100만 명 되요. 그 사람들 다 불러들여야 할거 아니야. 우리가 나가 있으면 좋고, 들어오면 싫고, 이런 건 국제화 시대에 안 맞다고 생각해.”

▲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다시 이주노동을 떠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최의팔 목사. ⓒ에큐메니안

그러나 한국이 단일민족이라는 이러한 논리는 쉽게 깨질 것은 아니라는 어쩌면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아닐까 싶었다. “근데 대감님, 이게 허구이기는 하지만 단일 민족이 아니라는 말은 한국 정서 상 못 받아들이는 게 많잖아요.”

“그러니까 그 정서가 왜 생겼냐는 거야. 그 정서가 조작된 거라는 말이야. 예를 들게요, 내가 목회를 하면서, 2006년도인가 중국의 한족이 우리 교회로 피신을 해 왔어, 그 당시 우리 청암교회는 민중교회거든, 그런데 교인들 사이에서 왜 우리가 한족들을 보호해야 되느냐 하면서 반발이 심했어. 그러다가 3개월쯤 지나서 여름 수련회를 갔는데, 한족들이 소위 손이 빠르거든, 송편을 쫙 빚는데, 800개를 금방 빚었어. 그리고 같이 먹고 그러니까, 저 사람들도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다, 이러면서 굉장히 친해졌어. 그러니까 우리가 저 사람들을 보호해야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게 되었지. 결국 친해지면 허물이 벗어져. 그리고 우리가 너무 폐쇄적으로 오래 살았어. 지금은 아무리 폐쇄하고 싶어도, 농촌에서 일 하는 대부분의 이주여성들은 어떻게 할거야, 막을 수가 없어, 그러니까 국가적 정책으로 받아들여야지. 그리고 요즘 한국사회도 다문화 사회라고 굉장히 선전을 해요. 그게 시행과정 중이지, 내가 볼 때는 길게는 10년 안에는 다 없어질 꺼여. 한국도 국제 결혼한 사람이 200만 명 정도라고 하니까, 이래저래 다 만나, 동네에서도 만나고 마트에서도 만나고 공원에서도 만나고 다 해. 그런데 어떻게 낯선 사람이 되냐고.”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이 뼛속까지

이렇게 민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간 최 목사님을 알고 지내면서 최 목사님의 성향 자체가 민족주의를 조금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대감님, 원래 예전부터 민족주의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셨잖아요. 그런데 한국기독교장로회가 다른 교단보다 민족주의가 좀 강하잖아요. 교단 내에서 이런 문제로 부딪힌 적은 없으세요?”

“이렇게 생각해. 상대하는 나라가 강한 나라일 때는 민족주의가 필요하지. 그런데 지금 한국은 강한 나라잖아. GDP 세계 랭킹 십 몇 위야, 이제 한국이 민족주의가 되면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게 돼. 그리고 기독교가 민족주의를 폐쇄해야 하고, 그리고 야, 원래 성서적으로 이야기 하면 국경이 없어요. 또 역사적으로 국경을 만든 지가 얼마 안 되잖아. 비단 4-5세기 밖에 안 돼. 그때까지 국경이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앞으로는 더 없어질 꺼야. 봐요, 이 핸드폰 같은 거는 전세계가 다 통해, 이런 세상에서 무슨 민족주의를 이야기 하냐고, 원래 기독교인이 뭐야, 보편적인 세계 사랑이잖아, 그러니까 이 『행복한 귀환』이 결국은 국경을 넘어서 사람들이 서로 행복하게 살자, 이게 가장 기독교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기장 교단도 우리가 강대국을 대상으로 미국이나 또는 일본을 대상으로 민족주의적으로 접근해도 되지만, 베트남이나 약한 국가를 대상으로 민족주의적으로 접근하면 큰 실수를 하게 되요. 민족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걸 강조해야 할 때는 강대국이여야 한다는 거지. 점점 민족주의 개념이 없어질 꺼야. 지금 봐, 유럽은 하나의 공동체야, 아시아도 그렇게 돼야 해. 그리고 그렇게 밖에 나갈 수 없어. 더군다나 기독교적으로 볼 때는 더 말이 안 되지.”

 참 어려운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유럽 공동체화, 북미공동체화, 그리고 아시아 공동체화. 현대 사회는 점점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감님 이게 블록화 되는 거잖아요. 블록화 된다는 게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사실 블록화 되고 있지만, 이게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해. 옛날 같으면 다 마을 공동체였잖아. 그러다가 지역 공동체가 됐고, 또 국가공동체가 됐고, 그러면 이제 전세계 공동체가 되는 거지.”

행복한 귀환을 위한 이주노동자들의 준비?

이렇게 블록화, 공동체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주노동자의 발생은 어쩌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주노동자 활동을 하시다가 보면 이제 막 한국에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도 보시게 되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해 주시는 이야기가 뭐에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한국은 그 사람들이 평생 살 곳이 아니야, 귀국 해야지. 그러면 한국에 오기 전에 귀국해서 살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말해. 내가 여기서 어떻게 돈을 모으고 살아야겠다, 한국에 들어와서 그것을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 그것을 바탕으로 본국에 돌아가서 해야 된다고 생각해.
여기 이 책에 보면 나와 있어요. 「행복한 귀환을 준비하자」라는 제목으로 쓴 글인데, 첫 번째 본인 건강에 유의하자. 건강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 한국에 와서 적지 않은 수의 이주노동자들이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3D 업종에 일하다 보니까, 병도 많이 들고 치료도 또 못 받으니까, 폐인이 되는 이주노동자들을 많이 봤거든. 초창기에 이주노동자 운동을 하면서 여러 단체들이 많이 생겼거든, 그런데 교회 목사로 이들을 위해 쉼터도 하고 그랬거든, 그러면서 그 이주노동자들한테 자주 그랬어요, 건강 잃으면 안 되니까 건강에 유의하자고 잔소리 많이 했어요.
두 번째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자. 그리고 열심히 일을 하자. 대부분 한국에 오는 이주노동자들 중에 한국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본국의 생활이랑 너무 다르고 일이 너무 힘들고. 그런데 그렇게 적응을 못하면 다 실패해. 그런데 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 하는 사람들은 돈도 모으고 대개 성공을 해요, 기술도 배우고. 거기서 중요한 게 말을 배워야 하는 거에요. 지금은 그래서 각 나라마다 한국어 시험을 패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시험 준비 밖에 안 돼. 그러니까 말을 열심히 배워야 하고 의사소통이 되면 무시하는 게 없어져요.
그리고 세 번째는 저축을 먼저 하는 생활습관을 키우자. 그런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한국의 70년대처럼, 속된 말로 서울에 온 공돌이·공순이처럼 서울에서 돈을 벌어 보내면 시골에서는 그 돈으로 퇴비사고 집고치고 그러거든, 계속 돈이 올 줄 알고.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계속 공돌이·공순이 생활을 벗어날 수 없었던 거야. 이주노동자들도 마찬가지에요. 이주노동자들이 돈을 열심히 벌어서 본국으로 보내잖아, 일단 한국에 올 때 낸 빚 갚고, 가족생활에 돈을 쓰고. 그런데 합법적으로 일 할 수 있는 기간이 3-5년 사이인데, 그러니까 돈을 못 모아. 그리고 본국에 가 보면 다시 이주노동을 떠나, 그러니까 또 폐인 생활을 하게 되더라고. 그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미리 계획을 세워서 저축을 해야지 안 그러면 가족들도 돈이 있으면 다 쓰게 되어 있잖아, 본인들도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는 1년, 2년 뒤면 적응도 하고 그러니까 자기들도 편하게 돈을 다 써. 그래서 돈을 저축하지 못하면 미래의 준비를 할 수 없다는 말이에요.

▲ 최의팔 목사가 책을 출판한 이유는 이주노동자들의 『행복한 귀환』을 위해서였다. ⓒ에큐메니안

네 번째로 한국 생활을 계속적으로 할 수 없어요, 돌아가야 되는데, 귀국해서 보면 자기 나라에서 취업생활을 하기 굉장히 어려워요, 한국에서 생활이 자기 나라에서 10배 이상의 돈을 벌고 쓰고 했으니까. 그런데 사업을 하게 되면 돈이 없거나 아이템이 적당하지 않아서 다 실패해요. 여기 책에 보면 실패한 예가 많이 나와요. 그 한 예가 어떤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피씨방이 유행하는 걸 보고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피씨방을 한 거야. 한 5천 만원 들여 가지고, 1년 뒤에 망했어. 이유는 뭐냐, 한국은 인터넷이 발전해서 속도가 빨라요, 근데 본국의 상황을 인터넷 속도가 빠르지 않으니까, 피씨방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사업 아이템을 본국 상황에 잘 맞추어야 하는 거지. 그래야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거야. 그에 반해 성공한 사람들은, 이 책에도 써놨지만, “참타파”라고 돼지 농장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은 한국에서 딴 일을 하다가 돼지농장에서 일을 했어. 일도 열심히 하고 돈도 열심히 모았어. 그리고 본국에 가 보니까 현대식 돼지농장이 없거든, 네팔은 돼지고기 잘 안 먹어, 그런데 어쨌든 현대식 돼지 농장을 한 거야, 잘 했어, 그래서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어. 그리고 그 사람을 따라서 돼지농장을 하는 사람도 많아졌어요. 지난 번 네팔 갔을 때, 돼지 축제를 하더라고, 그 사람이 돼지를 한 2천 수 길러요. 그러니까 아이템을 정확하게 본국과 맞춰 가지고 준비를 해야 사업을 잘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 다음에 혼자 하기 힘들면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자, 이런 내용이 이 책에 있어요.”

장애를 입게 된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그간 민간의 차원에서 열심히 이주노동자 운동을 해왔지만, 적지 않게 법을 바꾸어 왔기도 했다. 그러면서 정부 기관들과도 숱하게 투쟁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었다. “혹시 정책적으로 제시하시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으셨어요?”

“장애인이 된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이곳저곳 뛰어다니면서 치료를 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노동부에는 이런 치료해 줘야 한다, 좋다, 그렇게 해야 한다 했는데, 문제는 법무부야. 법무부는 이 사람들이 불법 체류자들인데 왜 우리가 치료를 해줘야 되나 이러는 거야. 비자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되니까. 결국 장애를 입은 이주노동자들이 다 귀국하게 됐어요. 다 실패한 거죠.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을 떠나기 전에 충분히 교육을 시키고 한국도 그런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그것까지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는 거에요. 결국 국가의 이미지를 높이려면 이 사람들이 본국에 귀국해서 사업을 하게 되면 한국 물품들 쓰게 되거든, 그리고 한국과 깊은 관계가 되거든요. 가만히 앉아서 장사되는 거야. 긴 차원에서 설계를 했으면 좋겠다는 거지. 이런 주장을 하니까 실제 네팔은 본국을 떠나기 전에 출국 전 교육을 시켜요. 이렇게, 이렇게 준비해라, 다른 나라들은 이런 경우가 드문데, MOU를 맺을 때 그런 것을 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한국 정부가 바꼈으니 잘 되지 않을까 싶어요.”

시간 상으로는 30분 정도였지만, 워낙 많은 말들이 오고 간 인터뷰였다. “대감님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신다면?”

“2003년도에 법을 만든 후에 2005년도부터 귀환 사업을 추진했어요. 외국인을 채용하는 기업에서 교육을 했어. 근데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바뀌고 나서 다 폐기됐어. 지금이라도 이주노동자 지원 정책들이 이제 법률적인 투쟁들은 잘 해요, 또 정부 기관들도 많이 하고 있고, 이렇게 인간을 전인적으로 봐서 지원했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곰곰이 이야기들을 살펴보며, 인권적 차원에서 운동을 하고 정책을 제시하고, 그것들이 결과를 맺어질 쯤 정부가 바뀌면서 폐기되었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렸다. 종종 하는 말들이지만,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새삼 다가왔다. 그리고 “이제 정부가 바뀌었으니” 하는 후렴구도 종종 들으면서 어떤 희망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행복한 귀환! 이주노동자들의 행복한 귀환을 위해 동분서주 하는 나이를 잃어버리신 “대감님”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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