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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반장 현길아, 연락 좀 다오사람을 따뜻하게 했던 건 사람이었다
박철 | 승인 2017.11.25 03:58

유년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 가운데 하나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었던 일이다. 그 시절, 크리스마스 하면 아기 예수가 유대 땅 베들레헴 마구간에 태어나신 날로 이해하는 것이 전부였다. 12월에 접어들면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는 대로 책가방을 마루에 집어던지고 교회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크리스마스, 난로 그리고 따뜻했던 기억

교회 현관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되었고, 종각(鐘閣)에는 큰 별이 달려 있었다. 그 시절은 매우 추웠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나오기 전부터 애들이 나와서 난롯불을 피웠다. 무쇠로 만든 난로였는데 불을 피우는 담당은 보조교사격인 중고등부 형들이었다.

아이들이 집에서 올 때 나무 장작을 가지고 왔다. 누가 장작을 많이 가지고 오는가에 따라서 어깨가 으쓱해지고 목소리가 커진다. 나는 엄마 몰래 집 뜰 안에 쌓아둔 나무장작을 들고 갈 수 있을 만큼 가지고 갔다.

▲ 그 시절 주일 교회학교 어린이 예배에서 설교하고 있는 아내 김주숙 선생. ⓒ박철

무쇠난로가 벌개 질 정도로 달구어지면 난로 주변에서 불을 쬐고 있던 사내아이들 아랫도리가 고구마처럼 익는다. 남자 애들이고 여자 애들이고 가릴 것 없이 왁자하게 떠드는 소리가 예배당 안을 가득 메운다. 해가 설핏 기울 때쯤 선생님이 나타나셨다.

선생님이 인원파악을 하신다.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결석하는 녀석이 하나도 없다. 콧물을 줄줄 달고 다니고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해 얼굴은 새카맣고 키는 작아도 눈망울은 초롱초롱 했다.

연극 연습이 시작되었다. 숫기가 좋은 애들이 중요한 배역을 맡는다. 연극 제목은 ‘동방박사 세 사람’, ‘빈방 있습니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거리가 뻔한 내용이지만, 대본을 다 외우지 못해 선생님께 야단을 맞는다. 나는 숫기가 없고 발표력이 없어서 한번도 주인공을 맡지 못했다. 그래도 조금도 섭섭하지 않았다.

내가 주로 맡은 역은 천사나 여관방 주인 등으로 대사가 짧은 역이었다. 선생님은 “철아, 목소리를 크게 해봐, 너 며칠 굶고 왔니?”하고 잔소리를 하지만 내 목소리는 언제나 개미 목소리 마냥 작았고 국어책을 읽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6학년 때 처음으로 중요한 배역을 맡았다. 내가 요셉으로 발탁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요셉 역을 소화할 만큼 연기력이 받쳐주질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중도에 탈락하고 말았다. 연극을 지도했던 선생님이 노처녀였는데 약혼식을 하러 간다고 며칠 빠지시는 바람에 지금 현역 대령으로 있는 친구 강아무개에게 요셉 역을 빼앗기고 말았다.

연극 말고도, 캐럴 합창, 무용, 율동, 성경 암송대회, 동화구연 등 프로그램이 다양했다. 성탄절 전야 예배당 안은 사람들로 빼곡했다. 모든 불을 끄고 무대에만 불을 켜 놓는다. 아이들이 기도실 쪽방에 대기하고 있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나가서 발표를 한다. 매 순서가 끝날 때마다 어른들은 뜨겁게 박수를 쳐주신다.

여자 아이들이 하얀 옷을 입고 ‘고요한밤 거룩한 밤’에 맞추어 무용을 하는 모습은 정말 천사와 같았다. 맨 마지막에 연극을 했다. 무대가 열리면 그 동안 연습한 것을 하나하나 진행해 가면서 아이들과 어른들의 마음이 하나가 된다. 아이들의 표정과 연기는 연습 때와는 달리 자못 진지해지고 어른들은 숨을 죽이며 구경을 한다. 연극이 끝나고 모든 출연자들이 나와 자기 역을 소개하면 참았던 웃음이 터지고 예배당 안은 금세 축제 분위기로 바뀐다.

사는 곳은 바뀌었지만, 사람살이는 달라지지 않더라

강원도 정선에서 목회할 때이다. 성탄절을 한달 앞두고 성탄 축하의 밤 행사를 위해 동네 어린이들이 매일 밤 교회에 모였다. 나의 유년시절 성탄절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쇠난로도 똑같았다. 연료는 톱밥이었다.

불을 피우려면 먼저 솔잎으로 불을 붙인 다음 톱밥을 살살 붓는다. 갑자기 톱밥을 왕창 부으면 숨이 막혀 불이 죽고 만다. 그러면 예배당 안이 시커먼 연기로 가득 찬다.

난로 불을 제일 잘 피우는 당번이 따로 있었다. 현길이라는 키가 작은 아이였다. 키는 작았지만 조숙해서 코밑에 털이 나서 까뭇까뭇했다. 이 녀석은 한번도 불을 꺼트린 적이 없을 정도로 불 피우는 데는 도사였다. 톱밥은 경운기를 빌려 정선 읍내 목재소에 가서 사오고, 솔잎은 아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주워온다.

처음 불을 피울 때 솔잎 향이 참 좋았다. 일단 난로에 불이 붙으면 화력이 끝내준다. 아이들이 집에서 감자나 고구마를 갖고 온다. 그걸 난로 위에 올려놓고 굽는다. 구수한 냄새가 진동하고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고 아이들이 치고받고 야단법석이다.

▲ 성탄축하의 밤 온 교우들과 함께. 아내가 사진을 찍어서 빠졌다. ⓒ박철

연습을 마치고 나서 아이들에게 간식을 주었다. 우리 내외가 정선에 갔던 첫해에 간식으로 떡만둣국을 끓여주었다. 아내가 정선읍 내에 가서 가래떡을 해 가지고 와서 맛있게 떡만둣국을 끓였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만두만 골라먹고 떡은 먹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너희들 왜 떡은 먹지 않니? 맛이 없어서 그러니?”
“아뇨, 전도사님요. 우리는 떡국은 안 먹어봐서 먹을 줄 몰라요.”

강원도 정선, 두메산골 덕송리, 논은 하나도 없고 누더기를 기운 것 같이 비탈진 밭뙈기만 있으니 쌀이 귀하다. 옥수수, 감자, 고추 등 밭작물만 나는 곳이다. 겨울에 만둣국이나 과수기(칼국수)는 많이 해먹어도 떡국은 해먹지 않는다. 아이들이 떡국은 먹어본 경험이 없어서 먹지 않았던 것이다. 그 얘길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짠하다.

그렇게 지나간 세월에서도 남아 있는 건 사람

아이들이 제일 잘 먹는 간식거리는 강냉이 튀밥이었다. 옥수수가 흔했으므로 정선 읍내에 가서 옥수수 두 되를 튀겨갖고 오면 그 날 밤으로 다 없어진다. 밤이 늦었는데도 아이들이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강냉이 튀밥이 다 없어질 때까지….

성탄절 전야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다. 아이들 줄 과자봉지를 사들고. 아이들은 신나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 때 그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자랐을까? 보고 싶다.

“난로반장 현길아, 난로 불 피우느라 네 놈 코 밑은 언제나 새카맸었는데. 지금쯤 네 나이가 40대 후반쯤 되었겠구나. 너도 장가가서 애들 주렁주렁 낳고 잘 살겠지! 지금쯤 길에서 만나면 알아 볼 수 있을까? 소식 좀 다오.”

▲ 성탄축하의 밤 행사. 꼬맹이들이 율동을 하고 있다. ⓒ박철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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