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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제2의 고향 “대한민국”숭고한 인간애를 보여준 미등록이주노동자들
이영 | 승인 2017.11.28 00:45

2002년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를 기억해 본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함성으로 메아리친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이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한국의 4강 신화를 일구어냈다. 경기가 끝나면 모든 국민들이 길거리로 나와 누구 할 것 없이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그들 속에 이주노동자들도 있었다. 평일에는 공장에서 힘겹게 일을 했지만, 한국경기가 있는 날에는 그들도 그 현장에 있었다.

딱 그때까지만

아마도 TV화면 속에서 외국인들이 비추어질 때 상당 부분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임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평생 자기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월드컵을 한국에서 본다는 기대감으로 값비싼 입장료와 버스를 대절하여 경기장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한민국”을 응원했다. 나라와 언어, 피부는 다르지만 그 구호 속에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였다. 월드컵의 열기가 식기도 전에 외국인력 도입제도인 고용허가제 시행을 앞두고 2003년에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진행되면서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고 부상을 당하는 일들이 발생했다. 그 이후 매년 이런 일들이 반복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악화되면서 2007년 정부의 합동단속이 예고된 가운데 이주노동자 리더회의에서 강제추방 단속에 맞서 사업주 탄원서운동을 전개하며 전면적인 투쟁을 강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이를 위해 선포식과 홍보활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뜻밖에 충격적인 비보가 머나먼 곳에서 날아들었다. 2007년 7월 18일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3명이 탈레반에 피랍되어 그 중 한명이 죽고, 22명이 생사를 알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급박한 상황에서 협상시한이 하루하루 연장될 때마다 온 국민과 피랍가족들은 피를 말리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신변 보장을 위한 집회를 한다는 것은 국민정서상 좋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에 대한 정보를 이주노동자 리더들에게 상황설명을 해 주었다. 그들도 이를 이해하고 집회를 철회하기로 하였다.

▲ 피랍된 한국인들의 무사 귀환을 위한 집회 현장 ⓒ이영 성공회 신부

회의가 끝날 때쯤 그들이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한국인들이 그런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자신들도 그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아울러 피랍된 한국인들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기도를 하겠다는 것이다. 애초에 하기로 한 집회 대신에 아프가니스탄 피랍 한국인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모임을 갖자고 제안하였다.

정말 뜻하지 않는 제안에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자신들의 처지도 힘겨운데 피랍 한국인을 위해 기도해 준다는 그들의 따뜻한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를 함께 하기로 하고 7월 29일 ‘아프가니스탄 피랍 한국인 무사귀환 기도회’를 갖기도 하였다.

숭고한 인간애

바로 당일이 되었다. 자신들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한 이주노동자가 200여명이 넘어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기독교가 함께 모인 가운데 기도회를 갖게 되었다. 이주노동자들이 종교를 넘어서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기도를 드렸다. 이슬람의 종교지도자(이맘)는 이슬람식으로, 힌두교는 힌두식으로, 불교는 불교식으로 기도를 드렸다. 50분 동안 진행된 기도모임은 경건하고 엄숙하였다. 인종과 종교와 국가, 문화를 넘어서서 숭고한 인간애를 표현하는 예를 행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한국인들에게 그 마음을 표현하고자 거리행진을 하였다. 경춘 국도의 인도에서 “한국을 사랑합니다.”, “꼭 살아 돌아오세요.” 가냘픈 외침이지만 살아있는 생명의 외침이었다. 진심으로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의 무사 귀환을 간절히 기원해 주었다. 아프가니스탄의 피랍 한국인들의 무사귀환처럼 이 땅에 미등록이주노동자들 역시 단속과 추방이라는 피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함께 기원했다.

▲ 노동의 정당한 대접도 받지 못하는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보여 준 숭고한 인간애 ⓒ이영 성공회 신부

이주노동자는 오늘도 우리 곁에 있다. 한국인이 하지 않는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사업장에서 구슬 진 땀방울을 흘리며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인을 탓하지 않는다. 그런 반면에 우리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번 생각해 보라! 지금 신고 있는 신발, 입고 있는 옷, 오늘도 잠자리에 편히 눕는 침대도 모두 그들이 만든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비록, 미등록이주노동자라 할지라도 그들은 생존이라는 벼랑에서 묵묵히 지금도 손을 놓지 않고 망치질을 하고 있다. 그 예날 나자렛이라는 촌 동네에서 누군가처럼 말이다.

미등록이주노동자가 어제 꿈을 꾸었는데, 단속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은 반대이니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강압적인 강제단속과 추방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미등록이주노동자는 두 다리를 편히 뻗지 못하고 쉽게 잠들지도 못한다. 그런 그들이 단 하루만이라도 편히 잠들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영  eotjde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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