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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름다운 명예 퇴임식오늘이 말하는 어제의 삶
박철 | 승인 2017.12.01 23:00

시나브로 계절은 겨울의 길목에 들어섰습니다. 오늘은 18년 전, 제가 경험한 아름다운 순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강화 교동 지석교회에서 목회하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다리가 놓아져서 무시로 다닐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강화 창후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성탄절과 연말을 앞두고 행사 안내장과 각종 홍보물, 그리고 아무 성의도 없는 성탄 카드 등 도무지 우편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대충 겉봉에 적힌 발신지를 확인하고 뜯어보지도 않고 던져두고 맙니다.

▲ 퇴임하는 노형창 씨 ⓒ박철

 

현재의 삶은 지나간 삶의 모습

그러니까 정확히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제가 사는 동네 지석초등학교(전교생이 61명)에서 편지 한 통이 왔습니다. 그 학교에서 28년간 기사(관리인·옛날에는 ‘소사’라고 불렀다)로 봉직해 오신 노형창씨의 명예 퇴임식을 할 예정이니 참석해 달라는 안내문이었습니다. 그 후 교우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노형창씨 퇴임식 얘기가 나오면 저는 그 분의 퇴임식에 꼭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분을 잘 몰랐습니다. 제가 지석교회에 부임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5분 이상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분의 명예 퇴임식에 꼭 참석해야 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교장 선생님이나 어느 유력 인사의 번듯한 퇴임식이기 때문도 아니요, 또 그 행사에 제가 무슨 순서를 부탁받았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목사가 참석한다고 생색이 날 행사도 아니었지요. 이 동네 지석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간단한 삶의 이력을 가지신 분이 군대를 다녀오신 후, 한 학교에서 28년간 봉직하고 IMF 구조조정에 밀리기 전에 자원해서 정든 학교생활을 그만 두기로 했다는 얘기로 마음이 짠하던 차에, 떠나시는 마당에 함께 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의 쓸쓸한 감회, 어쩔 수 없이 밀려나야 하는 이 시대 약자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제 아이들이 지석초등학교를 다니기에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학교 구석구석 향나무며 각종 꽃나무들이 언제나 가지런히 말끔하게 이발된 듯 정돈된 것을 보고 탄복했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가꾼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나무를 가꾸어 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이는 보통 정성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결코 큰 학교는 아니지만 교정 전체 분위기가 전혀 나무랄 데 없는 운치와 정성을 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단아(端雅)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 사람이 노형창씨였습니다.

아름다운 떠남

1999년 12월 27일 아침, 내가 시무했던 지석교회 두 분 장로님과 퇴임식에 참석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로 식장은 북적거렸습니다. 시간이 임박하자 제법 너른 운동장은 축하객들이 타고 온 차로 반은 찼습니다. 기대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동네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웃 동네 사람들도 많이 참석했습니다. 어림짐작 2, 3백 명은 될듯 싶었습니다.

11시 30분 정각, 퇴임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국민의례에 이어 교장 선생님의 격려사, 동문회장의 축사, 졸업생의 송사(?), 재학생들의 석별가, 기념품 전달, 노형창씨의 답사 순서가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난로 옆에 앉은 탓도 있겠지만 벌게진 얼굴로 퇴임식이 끝날 때까지 몇 번이고 슬며시 안경 아래로 손을 넣어야만 했습니다.

▲ 어느 아름다운 명예 퇴임식 ⓒ 김정수

어디서나 볼 수 있듯이 자칫 상투적이고 의례적이고 맥빠진 행사로 그치고 말 퇴임식이 참석한 축하객과 순서를 맡은 사람들의, 한 사람을 공직에서 떠나보내는 애석한 마음이 한 데 어우러져 사뭇 진지하고 감동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격려사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교동 사회에서 아무 집이고 가서 돈 좀 빌려 달라고 하면 안 빌려 주지만 노형창씨가 가서 빌려 달라면 군말 안하고 빌려 준다는 말이 있는데 이분이 얼마나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인지를 말해 주는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 학교에 처음 왔을 때, 노형창씨가 아침 교무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며칠 지나고 나서 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제일 먼저 출근해서 학교 어느 곳에선가 의자나 학교 교구를 고치든지, 벗겨진 곳을 찾아 페인트칠을 하고 있든지, 누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열심히 제 할 일을 다 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가급적 노형창씨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교장이 시키지 않아도 모든 일을 자신이 다 알아서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우리 학교의 모든 나무와 풀 한 포기에까지 이 분의 손이 안 간 곳이 없습니다. 이 분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 분의 근검절약으로 학교 예산을 많이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런 평가는 이 학교를 거쳐 간 많은 선생님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올시다. 이분은 28년 동안 감기 한 번 안 걸리셨고, 결근 한 번 안 하신 분입니다.”

재학생들의 석별가는 60~70년대의 졸업식장을 연상케 할 만큼 모든 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말았습니다. 퇴임식이 끝나자 동네 부녀회와 학부모회는 성의껏 음식을 준비하여 손님들을 대접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가을 운동회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 노형창씨는 새색시처럼 상기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또 숨은 그림자처럼 28년간 남편의 궂은일을 함께 해 온 그 아내의 가닥 많은 인생도 그렇게 만만치는 않았을 것입니다).

▲ 지석초등학교 종. 점심시간 알리는 종소리가 제일 듣기 좋다. ⓒ박철

퇴임식장을 빠져 나오면서 생각했습니다. ‘한 인간이 28년간의 삶을 이처럼 아름답게 끝마칠 수도 있구나. 화려한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참으로 값진 삶을 살았구나, 그의 성실함과 정직한 삶이 이심전심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 이렇게 감동을 줄 수 있구나.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이렇게 아름다운 인생의 향기를 풍길 수 있구나. 내가 은퇴할 때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진한 감동과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밀려 왔습니다. 한 해가 막 지려는 서해안의 붉은 노을처럼 지고 있었습니다.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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