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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하르낙의 『기독교의 본질』을 아느냐?[서평] 『기독교 본질 논쟁』에 대하여
이정훈 | 승인 2017.12.03 00:32

소위 “아는 사람” 혹은 “친한 사람”이 직접 저술한 책이나 번역한 책에 대해 서평을 쓴다는 건 나에겐 여간 낯간지러운 일이 아니다. 잘 썼다고 하면 “아는 사람 책이라고 잘 썼다고 하는 거 아냐?” 하는 의심의 눈초리와 잘 번역했다고 하면, “지가 원문 대조라도 해봤대?” 하는 눈총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런 의심과 눈총을 생각하다가 『기독교 본질 논쟁: 하르낙 교수와 그의 옥스퍼드 비평가들』(토머스 베일리 손더스 지음 / 김재현·김태익 옮김[대구: 한티재, 2017])에 대해 차일피일 글쓰기를 미루고 있었다.

하여간 이 책의 번역자 중의 한 사람인 김재현 교수는 대학 때부터 속된 말로 아주 친한 사이다. “어~ 김 교수님 뭐하노?” “아, 행님 또 와 이랍니까?” 이게 으레 전화만 했다하면 첫 번째로 주고받는 대화의 일상이다. 그리고 공부했던 과정이나 학위를 받기까지의 속사정도 속속들이 아는 터라 번역본이 나왔다고 보내왔을 때 속으로 “번역은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 싶었다. 워낙 꼼꼼한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면서도 많지 않은 분량의 책을 읽으며 참 시의적절할 때 번역되어 나왔구나 싶다. 종교개혁 500주년인 해에 여기저기 자신들이 종교개혁의 적통을 잇는 교회라고 교단이라고 핏대 세우는 행태들을 보면서 과연 저 속에 종교개혁이라는 종교적 현상이나 본질에 대한 반성은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기독교라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은 하고 있을까 싶었다.

속사정이야 내가 알 수 없으니 책 이야기나 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먼저, 너무 유명해서 뭐라고 이야기하면 더 할 이야기가 있냐고 할만큼 유명한 독일의 신학자 Adolf von Harnack(아돌프 폰 하르낙)이지만, 번역된 책이 하르낙과 관련이 있기에 조금 더 살펴보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사실 번역된 책의 앞 해제 부분에 『기독교의 본질』을 요약하고 있지만, 서평자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간략한 것 같아 조금 자세히 써 보았다.

하르낙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바르트에게 물어보지 못한 것

먼저 하르낙은 슐라이에르마허와 리츨의 뒤를 있는 19세기 대표적인 독일 신학자이며 특히 주전공이었던 교회사 분야에서 독보적인 학자였다는 것이 지배적인 평가이다. 20세기에 들어와 칼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Der Römerbrief, 1919)에 의해 소위 신학계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불릴만한 신학적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유럽의 신학 사상을 주도하고 이끌어 갔던 핵심적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의 저서 『기독교의 본질』이 출판되자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세계 곳곳으로 운송되기 위해 독일 Leipzig(라이프치히)의 주요 철도역이 폐쇄되기도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각주 1)

▲아돌프 폰 하르낙 ⓒ박경철 교수(한신대)의 http://ot.re.kr에서

그리고 “보수”라는 단어가 “표준”이나 “정통”과 등가어인 것마냥 취급되는 이상한 나라 한국의 신학 현실에서 그의 이름은 낯설다 못해 마귀나 사탄의 우두머리 같은 존재로 남아있다. 그러나 하르낙을 위시한 19세기의 신학자들의 사상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19세기의 신학과 시대적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가지고 있는 20세기는 물론이거나 시작된지 벌써 20년 다되어 가는 21세기의 신학적 사상에 대해서 아무런 의미를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기야 이 말도 아니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르낙은 1851년 5월 11일에 에스파니아의 Dorpat(도르파트)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인 Theodosius Harnack(테오도시우스 하르낙)은 처음에는 도르파트에서 그리고 후에는 독일의 에어랑겐에서 실천신학과 조직신학을 가르친 신학교수로서 엄격한 경건주의적 전통을 지닌 루터교 교인이었다. 하르낙은 도르파트 대학과 에어랑겐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고 1872년에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하여 “영지주의와 역사 문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1873) 라이프치히 대학의 강사가 되었다. 25세 때에는 라이프치히 대학의 교회사 교수가 되었고, 그 후에는 Giessen(기센) 대학(1879)에, 1886년에는 Marburg(마부르크) 대학에, 마지막으로 1888년에는 베를린 대학의 교수로 봉직했다.

하르낙의 역사 신학의 사상적 배경에는 큰 두 줄기의 흐름이 있다고들 한다. 하나는 계몽주의적 비판 정신이고 다른 하나는 신칸트주의와 리츨의 반-형이상학적 정신이 그것이다. 계몽주의는 칸트의 정의처럼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의 힘, 이성의 빛을 사용하여 미성숙한 상태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계몽주의의 핵심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성 중심이며, 이성의 힘에 의해서 인간은 우주를 이해하고 또한 이성의 능력과 비판 능력을 사용하여 인간 자신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인간의 이성을 낙관론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며 모든 진리에 이르는 길을 이성의 적용에 두었다. 그래서 이성에 근거하지 않는 즉, 이성의 합리적 사고에 의해서 도출해 낼 수 없는 것은 그것을 실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계몽주의의 이러한 특성은 종교 혹은 기독교에도 적용하게 된다. 그래서 기독교 진리인 하나님의 실재라든지 계시, 기적들이 인간 이성의 합리성에 모순이 된다고 하며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부분이 소위 보수적인 신학자들이 가장 많은 그리고 가장 공들여 비판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한 평가는 개인취향이니 어쩔 수 없어 보인다.

두 번째로, 하르낙은 신칸트주의와 리츨의 반-형이상학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러한 영향은 18세기말의 유럽 대부분의 지성인들의 보였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칸트의 영향을 받아 종교를 하나의 윤리학적 도덕 체계로 봄으로서 종교를 도덕과 일치시키려고 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하르낙은 교회사가로서 교회의 교의들과 신조들의 형성 배경을 밝혀내는데 노력했다. 그의 사상적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역사 신학적 방법으로 기독교를 이해한 것이다. 하르낙은 교리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바우어(F. C. Bauer, 1792-1860)의 역사 발전의 변증법적인 방법으로 이해하지 않고 교의를 기독교의 근원적인 요소와 본질에 첨가된 부수적이고 낯선 것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바우어는 교리사를 기독교 정신의 발전 과정으로 보고 이러한 도그마의 발전 과정을 통해 결국 모든 것은 본래의 근원으로 돌아가고 가장 높은 통전 과정을 거쳐 전체성에 이르게 된다고 본 반면, 하르낙은 바우어처럼 교리(Dogma)를 기독교 정신의 발전으로 보지 않고 교리를 기독교의 본질에 덧입혀진 옷처럼 생각했다. 하르낙은 참된 기독교의 본질을 기독교의 근원적 요소에 첨가되어 있는 기독교 변형들인 모든 이질적인 옷들을 벗겨낼 때 발견 가능하다고 보았다.

▲ 아돌프 폰 하르낙, 『기독교의 본질』, 오흥명 옮김 (서울: 한들출판사, 2007) ⓒ한들출판사 홈페이지

하르낙의 『기독교의 본질』이 이야기는 기독교의 껍데기와 알맹이

이제 하르낙의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 살펴보자. 참 이 책도 오흥명 선생님이 우리말로 번역하여 2007년(한들출판사)에 출판했다. 하르낙의 『기독교의 본질』은 크게 두 부분 ‘복음’과 ‘역사 안의 복음’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구분은 불변의 가치를 식별해내는 것, 즉 껍질로부터 알맹이를 분리시키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라는 그의 원칙을 나타낸다. 알맹이는 복음이며, 껍질은 복음이 필연적으로 연루될 수밖에 없는 그러나 결코 혼동해서는 안 되는 역사를 가리킨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르낙은 첫 번째 부분의 전반부에서 예수의 메시지를 서로 관련되는 세 개의 주제로 정리한다.

첫째 하나님 나라와 그 도래
둘째, 성부 하나님과 인간 영혼의 무한한 가치
셋째, 더 높은 의와 사랑의 계명

하르낙은 첫 번째 주제인 하나님 나라, 즉 예수의 종말론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해석을 한다. 비록 예수가 당시의 묵시론적 언어를 사용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지만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역동적이고 도덕적인 관계를 맺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나님 나라는 도덕적 힘이다. 그것은 현재적이고 내재적인 하나님의 통치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는 영원하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안에서 영혼이 소유하는 보물이다.” 하르낙은 이것이 예수의 원래 가르침이고 우리가 강조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각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통치이다. 그것은 권능을 지니신 하나님 자신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외형적이고 역사적인 의미에서의 극적인 모든 것들은 사라지게 되며 또한 미래에 대한 모든 외형적인 희망들도 없어지게 된다. 그것은 천사와 악마, 왕좌와 권력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영혼 영혼과 그 하나님과의 문제이다

두 번째 주제는 예수의 가장 영속적인 메시지와 종교 그 자체의 본질을 나타내는데, 즉 성부 하나님과 인간의 영흔의 무한한 가치이다. 하르낙에게 있어서 이것은 “복음 안에 있는 복음”이다. 이것은 복음의 요약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부름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분명히 각 사람에게 지고한 가치를 부여했다.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구조보다도 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곧 인간을 경외한다는 말이 된다.

세 번째 주제 ‘더 높은 의와 사랑의 계명’은 예수의 윤리적 가르침이다. 하르낙은 복음을 내적, 인격적 체험으로 이해하는 입장을 더욱 분명히 한다. 예수는 윤리와 종교의식(儀式)의 외형적 형태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단절시켰다. 예수는 윤리를 종교 의식적이고 자아추구적인 관심으로부터 자유롭게 함으로써 모든 도덕을 “하나의 근원이요 하나의 동기, 즉 사랑”으로 함축시켰다. 예수는 종교와 도덕을 결합시켰으며, 이런 의미에서 종교는 도덕의 영혼이요 도덕은 종교의 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르낙은 대부분의 리츨학파 자유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웃 사랑으로 고취된 공동체를 건설하는 윤리적 과제를 예수의 복음이 지니고 있는 필수적인 내용으로 보았다. 그는 비록 ‘하나님과 영혼, 영혼과 하나님’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개인주의적인 경향을 나타내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이 본질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첫 번째 부분의 후반부는 복음과 현대적 문제들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첫째, 복음과 세상, 또는 수덕주의의 문제.
둘째, 복음과 가난한 자들 또는 사회적 문제.
셋째, 복음과 법, 또는 공공질서의 문제.
넷째, 복음과 일, 또는 문명의 문제.
다섯째, 복음과 하나님의 아들, 또는 기독론적 문제.
여섯째, 복음과 교리, 또는 신조의 문제

하르낙의 시대는 사회적 기독교의 시대로서 기독교를 근본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운동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했다. 또한 당시 세상적인 것들을 거부하고 수덕적 실천을 추구하는 운동이 있었다. 하르낙은 복음은 세상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며, 수덕주의는 그 안에 설자리가 없다고 단언한다. 두 번째 문제에 대해서 하르낙은 예수가 재물과 자기걱정과 이기심에 맞서서 싸올 것을 요구했으며 이것은 사랑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는 사회혁명가가 아니었다. 그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어떤 행동 방침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사회적 메시지이다.

그것은 단합과 형제애의 선언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난한 자들의 편이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인간영혼의 무한한 가치에 대한 인식과 결부되어 있으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말씀에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근본적으로 개인주의적인 것처럼 또한 근본적으로 사회주의적이다. … 그 목적은 이익 다툼의 원리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를 영적 연합 의식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르낙은 복음과 공공질서의 문제를 다루면서 두 가지 구분을 한다. 첫째 예수는 정치혁명가가 아니었으며 정치적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둘째, 복음이 모든 법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일을 염려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어야 하며 항상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하르낙은 문명의 문제에 대해서 복음은 문명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복음을 세상일에 빠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르낙의 이야기 중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예수가 선포한 복음은 오직 성부와 관련이 있고 성자와는 관련이 없다.”는 말이다. 이 진술의 의도는 복음의 목표가 형이상학적인 신-인 연합의 교리와 동일시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결코 예수가 복음 밖에 서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르낙온 예수의 하나님 아들 신분이 그의 ‘하나님 지식’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그가 가지고 있던 하나님 아들이라는 의식은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그리고 그의 아버지로서 알고 있다는 것이 실제적인 결과로 나타난 것뿐이다. 바로 이해하자면 아들이라는 명칭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의미할 뿐이다.

이 말은 결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리스도의 지위와 역할의 중요성을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의미한다.

어느 누구도 예수가 하나님을 아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성무 하나님을 안적이 없었으며, 그는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지식에로 이끌고 그렇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봉사를 한다. 그는 자신의 말로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자신의 존재와 행동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고난으로 사람들을 하나님에게로 인도한다.

하르낙의 관점에서 볼 때 복음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치는 어떤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가 복음의 단순한 내용도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는 복음의 인격적 실현이며 힘이다.” 이러한 믿음은 그리스도의 고유성에 대한 교리적 보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독론적 신조를 복음의 맨 앞에 놓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조는 합당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과 그의 자녀와의 관계에 대해서 어떤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하르낙은 교회와 교리가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 복음이 반복해서 잊혀지거나 왜곡되었다고 생각했다.

▲ Adolf von Harnack, 『Das Wessen des Christentum』 ⓒGoogle Image

『기독교의 본질』의 두 번째 부분은 ‘역사 안의 복음’을 다룬다. 하르낙은 복음 자체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발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주어진 것이다. 역사가가 연구하는 것은 기독교 종교의 역사이며 그것은 복음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다.

바울의 특별한 역할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을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으로 변화시킨 것이었다. 바울은 이렇게 하여 뒤이어 등장할 교회의 초석을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그리고 그리스도에 관한 바른 교리의 형성이 오히려 복음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복음의 위대성과 단순성올 왜곡시키는 위협을 한다.”는 사실은 바울을 통해 생긴 것이었다. 교회는 새로운 형태의 교리를 정교하게 다듬어야 했고 자신이 믿는 바를 진술해야 했다. 그러나 “기독론을 복음의 근원적 본질로 삼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비극적인 오류는 종교를 무엇보다도 교리로 간주하는 것이다. 초대 기독교에서 복음은 그 힘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 그리스도에 대한 전적인 신뢰, 기꺼이 회생하려는 자세, 그리고 도덕의 순수성”이었다. 그러나 껍질이 자라나서 복음 속에 점점 더 깊이 침투함으로써 복음은 “본래의 생명력을 많이 잃게 되었다.”

초대 그리스 기독교는 다신론을 극복하고 종교를 국가로부터 분리시키는 두 가지 업적을 이룩했지만 “기독교 종교를 영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부터 상징과 형식과 우상 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그리스 기독교 안에서 “복음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한편 로마 가톨릭교회 안에서 복음은 세속화 되었으며 본래의 방향을 잃고 바론 길에서 벗어났다.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한 하르낙의 심판은 매우 준엄하다. 그에 의하면 로마 가톨릭교회는 기독교를 단지 왜곡시킨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전도(顚倒)시켰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복음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복음과는 근본적으로 상반되는 것이다.

하르낙은 복음이 개신교 안에서 본래의 자리를 회복했다고 주장한다. 종교개혁은 2세기부터 현 시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위대한 운동이라고 평가했다. 종교개혁의 중요성은 기독교를 그 본질적인 요소에로,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에로 되돌아가게 한 데 있다. 그러나 이렇게 회복된 것을 다시 잃게 될 위험성은 항상 있다. 왜냐하면 개신교회는 법령과 교리와 예식의 교회가 됨으로써 로마 가톨릭교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의 과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르낙은 책의 끝 부분에서 종교개혁의 원리인 복음을 보존할 것을 호소한다. 기독교는 반드시 복음을 붙잡아야 하며 그 정신을 증명해야 한다.

하르낙의 의도는 “현대 역사신학이 반드시 종교개혁이 시작한 것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종교개혁의 근본과제는 기독교의 본질인 복음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자유주의 개신교 역사학자인 하르낙은 종교개혁의 원리를 따르려면 역사비평학적 환원주의(reductionism)의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종교의 역사에서 모든 중요한 개혁은 항상 무엇보다도 먼저 원리에로의 ‘비판적 환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역사적이다. 그러나 복음은 불변하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역사가 없으며 장애물이 있다고 해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하르낙에게 있어서 “복음 안에 있는 본질적 요소들은 시간을 초월한다.” 그는 기독교의 본질이 역사 안에서 항상 똑같은 것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보이고 증명하려 했다.

『기독교 본질 논쟁』이라는 책이 가진 미덕

하여간 하르낙의 작업에 대해 옥스퍼드의 학자들이 반론을 편 것이 오늘 소개하는 책이다. 특히 W. Sanday(센데이) 교수의 비평을 소개하고 있다. 목차를 보면, “‘환원’ 문제와 관련된 논쟁”, “센데이의 ‘총체’에 대한 반박”, “요한복음과 기독론에 관한 논쟁”, “스트롱과의 논쟁” 순으로 이어진다.

재미있는 것은 “옥스퍼드 대학과 베를린 대학의 학풍 차이”를 언급하는 첫 번재 부분이다. 이런 표현이 있다.

“그 두 대학에는 각각의 지역성과 이부적 환경들로부터 유래하는 고유의 특성들이 존재하며, 그 특성들은 또한 어느 정도는 그 두 대학의 서로 다른 성격을 드러내준다. 그 두 대학이 이런 특성들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중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더 나아가 특수한 수준에서 본다는 이러한 특성들로 인해 두 대학이 또한 같은 종류의 결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세상의 분주함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작은 도시에 위치한 대학은 아마도 대도시의 격렬한 삶에서 묻어나는 분위기보다는 더욱 숭고한 분위기를 가질 것이다. … 따라서 옥스퍼드 대학교의 의견은 필연적으로 과거의 이념을 과도하게 수용하는 것에 안주한다. 반면에, 베를린 대학교의 의견은 새롭고 모험적인 것에 더욱 접근한다. 비록 베를린 대학교가 그 의견을 펼치려고 노력할 때 인류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놓치는 듯 하지만 말이다.”(81)

이 부분을 읽고 정말 한참을 웃었다. 이 책이 1900년도 초입에 출판되었으니 지금과 천년 이상의 차이가 난다. 그런데 사람은 안 변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급진적이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혹은 이질감에 대한 거부는 역사가 증명하는 인간의 “본질”이 아닌가 싶다.

▲ 토머스 베일리 손더스, 『기독교 본질 논쟁: 하르낙 교수와 그의 옥스퍼드 비평가들』, 김재현·김태익 옮김(대구: 한티재, 2017) ⓒGoogle Image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소개하고 싶은 구절은 저자가 옥스퍼드 학자들 중에서 센데이와 옥스퍼드 학자들 모두를 비판한 부분이다.

“영국 교회의 신학자들의 태도는 어떠한가? 나는 고백하건대 비록 그들이 때때로 비평적이라는 사실과 비평의 필요성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 대부분이 신약성서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없다. 나는 영국의 신학자들이 신약성서에 있는 많은 역사적 문제를 다루면서 그 문제들을 기꺼이 역사적으로 취급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여기에서 현재 대표적인 영국의 신학자 센데이 교수의 의견을 살펴보면, 나는 그가 이 문제들을 이제껏 다루어 오면서 도대체 어떠한 통찰을 제공했는지 모르겠다.”(112)

손더스의 비판은 하르낙만큼 철저하지 못한 부분이 옥스퍼드 학자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나는 후세 사람들이 이런 견해에 동의할 것이라 믿지 않는다.”고 하며 아주 냉혹하게 옥스퍼드 학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르낙과 옥스퍼드 학자들의 주장을 비교해 가며 비판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손더스는 하르낙 편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대부분 하르낙에게 손을 들어주니 말이다. “나는 하르낙 교수가 발전의 원칙을 무시했다는 그러한 비난의 근거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159)

또한 어떻게 보면 이 책은 논쟁을 다루었다기보다는 하르낙을 오해한 옥스퍼드 학자들을 질책한 것으로도 읽힐 수 있다. 다시 말해 오늘날에도 일어날 수 있는 하르낙에 대한 오해들을 질책한 책일 수도 있고. 어느 쪽으로든 이 책의 미덕은 하르낙을 다시 읽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번역이 매끄러운 것은 이 책이 가진 최고의 미덕이 아닐까 싶다. 번역한다고 수고하신 두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각주 1) 하르낙의 『기독교의 본질』이 출판된 지 2년 만에 “독일 개신교측에서 11권의 책, 49개의 정기간행물 논문, 14개의 신문 평론, 14개의 가톨릭측 답변, 21권의 외국서적, 그리고 이 저서에 대한 6개 언어의 번역”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G. Wayne Glick, The Reality of Christianity: A Study of Adolf von Harnack as Historian and Theologian (New York: Harper & Row, 1967), 292, n. 147.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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