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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치유(말라기 4:1-2)병원치료가 아니라 치유를 갈구하는 시대
이성훈 | 승인 2017.12.05 22:40

말라기 4장 1~2절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몇 년 전부터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2016년에  종영되기는 했습니다만, SBS에서 힐링캠프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도 있었고, 최근에는 ‘마음을 편하게 한다’는 의미를 사용하고자 할 때면 별 생각 없이 ‘힐링’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힐링을 교회 밖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도 영미권에서는 힐링을 많이 사용하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힐링의 번역인 ‘치유’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이 단어가 사용되는 곳을 찾아보면, 판타지 소설에서 마법사들이 치료할 때 쓰는 마법의 이름이 힐링이고, 그 연장선에서 판타지 계열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단어가 힐링이었습니다.

힐링의 의미와 어원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에 와서 교회와 사회를 불문하고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는 ‘힐링’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영어 힐링은 우리나라 번역과 마찬가지로 치유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치유는 병이 나았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만, 사실 병원에서 병을 고친다는 의미를 말할 때는 힐링보다는 ‘큐어(cure)’를 사용합니다. 거기에 병을 고치는 과정, 의사의 집도과정 등을 이야기할 때는 ‘트릿(treat)’을 사용합니다. 요즘에는 머리 감을 때에 린스가 아니라 ‘트리트먼트(treatment)’를 사용하는 분이 많은데, 트리트먼트는 손상된 머리카락을 화학적으로 치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joonhyungpark

이 단어들에 대해서 번역을 할 때, 지금은 그 의미에 차이를 두고 번역을 합니다. 힐(heal)은 치유, 큐어(cure)나 트릿(treat)은 치료로 번역을 합니다. 어떻게 생각해본다면 치료와 치유는 의미상에서 별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과거에 사용된 용례들을 살펴보면, 고치는 과정을 치료라고 했고, 고침 이후에 “병이 다 나았다”라고 말할 때는 치유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차이를 가지고 있는 이 단어들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어원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영어 힐링(healing)은 당연히 힐(heal)에서 온 단어이고, 힐(heal)은 그 어원이 홀(whole)입니다. 구멍을 뜻하는 홀(hole)도 같은 어원을 갖기는 하지만, 전체를 의미하는 홀(whole)이 힐(heal)의 어원이고,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중세 영국에서 만들어진 단어라고 합니다.

즉 영어에서 큐어(cure)는 잘못된 부분을 고쳐서 다시 바르게 만든다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힐(heal)은 ‘완전하게 하다’, ‘온전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의사들의 치료행위에는 힐(heal)보다는 큐어(cure)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된 것이고, 힐(heal)은 ‘신의 고쳐주심’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정신적인 치유를 의미할 때 힐(heal)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도 치유와 치료라는 구분이 있을까요? 구약성경에서 치료한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는 여러분들도 몇 번씩은 들어보셨을 단어인 ‘라파’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고친다는 의미를 쓸 때는 거의 다 ‘라파’를 씁니다.

열왕기하 5장에서 나아만이 고침을 받았다고 할 때는 ‘아사프’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이 단어는 해석해서 번역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지금의 이야기에서 제외해도 될 듯합니다. 또 가끔 ‘라파’가 아닌 ‘하비쉬’가 사용될 때도 있는데, ‘하비쉬’는 본래 ‘상처를 싸멘다’라는 뜻으로 우리말로 번역될 때에는 ‘고친다’로 되어 있습니다. 이 이외에 일반적으로 고친다고 할 때는 ‘라파’ 밖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70인역이나 헬라어로 된 신약성경에서도 ‘고쳐지다’라는 뜻인 ‘이아오마이’만이 사용됩니다. 정리해보자면, 구약이나 신약 성경에는 치유와 치료, 힐(heal)과 큐어(cure)의 구분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번역되어 가면서 단지 ‘치유’라는 의미만을 가지고 있었던 성경의 단어들이 ‘치료’와 ‘치유’로 구분되어 번역되기 시작합니다. 그 구분이 시작된 곳이 라틴어 성경입니다. 라틴어에는 치료와 치유가 구분되어 있습니다. 치료는 큐라(cura), 치유는 사나(sana)입니다. 큐라(cura)는 직감적으로 아시겠지만, 큐어(cure)의 어원이 된 단어입니다.

보통 유럽권과 영미권의 언어는 라틴어에서 왔기 때문에 힐(heal)도 라틴어에서 왔을 듯 합니다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힐(heal)은 그저 홀(whole)에서 파생되어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의미는 라틴어의 사나(sana)와 같습니다.

라틴어에 이런 격언이 있다고 합니다. ‘메티쿠스 쿠랏, 나투라 사낫(medicus curat, Natura sanat)’, ‘의사는 치료하고 자연은 치유한다.’ 이 격언은 분명 의사에 의한 치료와 자연에 의한 치유를 구분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라틴어 사나(sana)의 본래 의미는 ‘온전함’입니다.

힐링이 필요한 사회

단어의 본래 의미나 어원을 찾아가는 일은 여기에 취미를 갖지 않은 이상 상당히 지루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너무도 빈번히 사용하는 단어에 대해서 그 명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심지어 그 단어에 대한 의미가 불분명한 상태로 하나님에게 적용되어 사용된다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라틴어에서 치료와 치유의 구분을 둔 이유에 대해서, 사실 이 단어를 만들어 낸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는 한 그 의도를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당시의 사람들이 의사의 치료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에, 자신이 온전하게, 또는 완전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사나(sana), 치유라는 단어가 생겨나게 되었다고 봅니다.

1990년대에 상담학이 유행하면서 ‘웰빙(well-being)’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웰빙’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웰빙도 본래는 심리적인 의미에서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육신의 건강 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건강해야 ‘좋은 존재’, ‘웰빙’ 상태가 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웰빙은 자연식품이나 건강식품 등에 관련된 단어처럼 느껴집니다. 지금도 홈쇼핑 채널을 보면 웰빙식품, 웰빙을 위한 건강 보조기, 웰빙 체력단련기 등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웰빙이라는 단어가 완전히 오용되어서 사용되고 있기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만, 웰빙은 본래 마음과 정신까지 건강하여져서 완전한 건강을 찾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라틴어에서 사나(sana)가 만들어진 이유, 1990년대부터 미국에서 시작하여 웰빙(well-being)이 널리 퍼져나간 이유, 지금 우리나라에서 힐링(healing)이 빈번하게 사용되는 이유, 그 이유들은 모두 다 비슷하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때나 지금의 사람들 모두가 어딘가 부족감을 느끼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자신이 온전하다고, 완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기에 우리는 힐링을 찾고, 웰빙하려고 합니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병원의 치료가 아닌 치유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힐링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힐링, 온전함을 위해서 무엇인가 많은 일들을 합니다. 인터넷에서 힐링을 찾아보면 첫 페이지에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여행정보입니다. 가끔 기업들에서 ‘힐링을 위한 연수’ 같은 것도 나오던데, ‘연수’라는 이름은 왠지 힐링을 방해할 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도 이런 연수에 참여한 사람 중에는 나름 힐링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앞서 인터넷에서 힐링하면 여행정보가 나온다고 말씀드렸듯이, 많은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마음을 치유한다고 말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거나, 아름다운 경관을 봄으로 마음을 치유한다고 합니다. 또는 여행 자체가 힐링이라고도 말합니다. 미술 전공자를 아내로 둔 사람으로써 아름다운 어떤 것, 심미적인 것을 보았을 때에 사람의 마음에 비어있는 한 부분이 채워진다는 점은 동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여행으로 우리가 힐링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확답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힐링, 치유가 되었다면 이제는 온전한 사람, 비어 있는 부분을 채운 완전한 사람이 되어서 즐겁게 사회생활로 복귀해야 하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여행가서 힐링하고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대부분 여행 다녀온 지 몇 일 되지도 않았는데 또 여행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이 채워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부족한 공백, 여행에 대한 새로운 갈망을 늘려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여행을 통한, 또는 연수를 통한 힐링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운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났기에 좋아했던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여행 자체를 통해서 마음을 산뜻하게 만드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여행을 하면서 견문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고, 여행을 통해서 얻게 되는 점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완전해짐, 우리의 힐링과 연결되는가의 문제에 있어서 완전히 긍정할 수만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치유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온전하여짐, 힐링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세상의 이런저런 힐링을 쫓아다니기 보다는 힐링의 본래적 의미에 다시 눈을 돌려봐야 합니다. 영어의 힐링이나 라틴어 사나는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인간이 행하는 치료행위가 아니라 초월적 존재에 의한 치료를 뜻하는 말입니다. 즉 우리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료하실 때에 우리는 치유, 힐링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온전케, 완전케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말라기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 그 날개 안에서 치유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말 번역하고는 좀 다르지만, 히브리어 원어로는 이렇게 됩니다. 날개 안에서 치유한다는 말은 품어서 치유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날개를 날아간다는 의미로 보고 광선이라고 번역한듯 합니다만, 본래 의미는 품어서 치유한다는 말입니다.

사실 말라기의 4장의 말씀은 종말의 때, 야훼의 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의 본문인 1절과 2절은 종말 때에 악한 자들은 심판을 받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치유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하나님의 심판 날이 우리가 생각하는 날짜 개념으로 지정될 수 있을까요? ‘몇 년 몇월 몇일 몇시에 심판이 일어난다는 개념으로 생각해도 될까?’ 하는 문제입니다.

복잡한 문제이기에 길게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저는 오히려 우리는 모두다 이 세상에서 종말을 경험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존재들이기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든 날이 하나님의 날, 야훼의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며 살아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날짜를 특정할 수 있는 종말이 있다면, 그 전날 회개한 사람이 가장 운 좋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치유 역시도 특정 날짜에 따른 시기에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 당신을 두려워하며 악을 경계하는 사람들을 지키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부족감을 느꼈을 때에, 그들의 마음에, 육신에 부족함이 생겼을 때에 그것을 채우시며 완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치유는 치료가 아닙니다. 병든 육신을 고치는 일이 치유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셨던, 우리에게 주어주셨던 모습 그대로 완전하게 하시는 행위가 치유입니다. 물론 우리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픔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그 아픔을 이겨낼 수 있게 도우시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고 힘을 주시는 은혜의 행위이지 치유가 아닙니다. 치유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습 그대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며,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는 그 모습으로 온전케 하심을 말합니다.

여행은 쉼을 통한 즐거움을 위해서 다녀오시고, 힐링은 하나님 안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적인 방법들로 여러분 마음의 빈 자리를 채우려고 노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 순간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라고, 우리가 그렇게 신앙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경외하는 우리에게 온전케 하시는 힐링을, 치유를 행하시리라 믿습니다.

이성훈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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