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9일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세계인권선언일 맞이 차별금지법 제정촉구대회”가 열렸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인권운동더하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주공동행동,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등이 공동주최하여 “우리가 연다, 평등한 세상”을 외치고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 조혜인(공익인권변호사모임희망을만드는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지 10년이 지났다고 상기시켰다. ⓒ윤병희

지난 11월16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자체연)는 단시일 동안 1만1천명의 연서명을 받아 낸 경과를 발표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집회를 예고한 바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왜 차별금지법은 아직도?

사회를 맡은 장애여성공감 이진희 사무국장은 “지난 10년 동안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공론화 작업도 거치지 못하고 시간만 지나고 있다. 차별의 현실이 곧 차별금지법이 필요하고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라고 지적하며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조혜인씨는 “십년 전인 2007년 12월 12일은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날”이라고 상기시키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이 시작되어 10년이 지나는 동안 아직까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했다. 10년 동안 정부와 국회는 멈춰있었다.”고 비판하며 이날 첫 번째 단독집회를 열게 되기까지의 경과를 공유했다.

다양한 차별의 경험들이 공유되었다. ‘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 최형숙씨는 미혼모에 대한 차별에 대해, ‘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발끈’ 활동가 난다씨는 대학진학도 하지 않고 직장생활도 하지 않는 20대가 겪는 은근한 차별에 대해, ‘베트남공동체’ 대표 원옥금씨는 이주민 여성들과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사회적 배제라는 차별에 대해,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박한희씨는 인권은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유보사항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필요하다는 주장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소수의 차별경험들을 단상 위로 올렸다.

노래패 ‘참좋다’의 공연에 이어 퀴어댄스팀 ‘큐캔디’는 이날 처음 발표된 ‘차별금지법제정송’에 맞춰 춤사위를 선보였다.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차별받는 내가 있기에

집회 참여자들은 선언문을 낭독한 후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종로와 삼일교를 지나 다시 파이낸스센터로 돌아오는 거리행진을 하고 이날 집회를 마무리했다.

▲ 집회참여자들이 선언문을 낭독했다. 선언문에는 여러 명의 ‘내가’들의 구체적인 삶의 자리와 의지가 담겨있다. ⓒ윤병희

“우리는 우리의 인권을 나중으로 미룰 수 없기에 거리로 나왔다.”로 시작되는 선언문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지진이 나도 교실 밖을 벗어나지 못했던 내가 / 휠체어를 타고 고속버스 계단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내가 나섰기 때문이다. / 성소수자로 체육대회를 열기 위해 궐기대회를 열어야 했고 / 명절마다 동료들이 보너스를 받을 때 참치세트를 받아 들었던 비정규직 노동자인 내가 외치기 때문이다. / 부당하게 해고되도 따져야할 사장이 누군지 모르는 내가 / 아파서 병원에 가도 내가 가진 병 때문에 진료를 거부당한 내가 /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차별을 경험하는 내가 / 아무리 취업을 원해도 학력을 이유로, 결혼했다는 이유로, 가난하다고, 가족상황이 다르다고 수많은 이유로 거부당한 내가 차별금지법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차별의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일어난 경험사례들이 들어 있으며 당사자들이 직접 나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집회를 마무리하며 한 참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있지만 여전히 장애인이 차별받는 곳은 곳곳에 있습니다. 중증장애인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독소조항이 근로기준법에 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는데도 그런 노동차별과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장애인차별금지법(개별법)이 있다 하더라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야 다른 모든 차별이 해소될 근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1년전 이날은 박근혜탄핵소추안이 극적으로 가결되었던 날이다. 이날 집회의 사회를 맡은 이진희 사무국장에 의하면 이날은 ‘길일’이다.

보편적인 인권선언? 무차별인권선언?

세계인권선언문은 1948년 12월 10일에 파리에서 열린 국제연합총회에서 채택되었다. 69년 전이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어떠한 차별도 없이 법의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7조의 첫 문장이다.

‘세계인권선언’이라는 한국어 표기의 영어표현은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이다. 우리말에는 ‘세계’라고 기표된 Universal의 뜻은 ‘보편과 일반과 포괄’이란 의미로서 그 자체로 차별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다. 이를 한국말로는 세계라고 옮겨 놓아 지리적인 의미로 오해를 사고 있다. 본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우리말 번역어를 달리해보는 것도 한 방법일 듯하다. ‘무차별인권선언’은 어떨까?

▲ 거리행진을 하며 호루라기를 불고 있는 참여자들. 이날 호루라기를 부는 것과 빨간 옷을 입은 이유는 인권을 위협하는 세력에게 경고하는 의미라고 한다. ⓒ윤병희

윤병희  ubiquita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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