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지 잘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오래된 일이다. 시내 한 서점에 책을 보기 위해 방문했다가, 속된 말로 제목에

▲ 시몬 베유(Simone Weil). ⓒGoogle Image

눈이 번쩍했다. 『중력과 은총』(시몬 베유/유진 옮김 [서울: 이제이북스, 2008])

아무 연관도 없어 보이는 두 개념을 이렇게 떡하니 제목으로 붙인 걸 보면서 속으로 “도대체 무슨 깡이야?” 하고 욕을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중력이 작용했던 걸까, 결국 서가에서 꺼내 책표지를 본 순간, “아, 시몬 베유 책이구나.” 하고 순간 부끄러워졌다. 말로만 들었지 눈으로 확인한 건 처음이었다.

혹자는 시몬 베유의 책 『중력과 은총』을 이렇게 평했다.

“중력은 인간에게도 작용하고 식물에게도 작용하며 지구에도 작용하고 우주에도 작용하는, 우주의 보편 법칙이다. 우리는 중력을 벗어나서 살 수 없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가 일정한 법칙의 구속 안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중력과 은총』은 우리의 삶에는 현실적 구속력(중력)과 그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영혼의 움직임(은총)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이어령 전 이화여대 교수)

하지만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의 중력은 그저 내 손에 쥐어지는 것 이상은 없었다. 시몬 베유의 삶에 대해 귀동냥으로 들었던 것과 이 책에서 그가 단발마적으로 쏟아내는 언설들이 너무 큰 이질감으로 다가와 사실 책을 거의 집어던지다 싶이 했었다. 이 책의 중력으로 벗어난 순간이었다.

그러고는 몇 년을 지났을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온 몸으로 느꼈던 올 한 해의 정점으로 재활치료를 위해 병원행을 택했을 때, “서너 권의 책은 들고 가야지” 하고선 책장을 둘러보다가 결국 이 책의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병원침대 머리맡으로 위치를 이동시켰다. 그리고 또 한 구절 한 구절 읽어가니 처음 접했을 때의 이질감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집어던질만큼은 아니었다. 중력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가 싶다.

세상을 향해 강생했던 베유

내가 귀동냥으로 들었던 시몬 베유의 이력은 이렇다. 1909년 2월 3일에 시몬 베유(Simone Weil)은 프랑스 파리의 유태계 유복한 의사가정에서 태어났다. 병약한 아이로 자란 베유에게는 여러 병  특히 두통은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따라다녔고 베유의 손은 유달리 작은 일종의 기형이었다.

그의 인생 이력 중 두고 두고 회자되는 것 중 하나는 베유가 노동자들의 삶을 알고자 공장에 취직해 박봉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노동자들의 수고와 절망, 그리고 공허를 실제로 함께 겪었다는 것이다. 이 때의 경험들이 모여 『노동일기』가 되었고 이속에는 작업량, 시간 임금 그리고 그에 따른 심리적·정신적 박탈감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공장에 취직하기 전 베유는 1930년 에콜 노르말을 졸업한 후, 다음 해에 철학으로 아그레가씨옹(Agrégation: 일반대학 제2과정 졸업후 고등학교 선생 자격)을 통과해 선생 자격을 취득한다.

이 시기에 베유는 사회주의 및 노동운동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해 1931년 노동조합 연합회의(CGT)에 참석함과 동시에 계급투쟁에 관한 수필을 써 잡지 L'Effort에 발표하며 이 잡지에서 노동조합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1933년에는 심지어 소련에서 추방당한 레온 트로츠키를 파리에 있는 부모님의 집에 머물게 하였으며, 트로츠키와 소련과 노동자계급을 주제로 열띤 논쟁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그에게 잘 어울릴 이러한 일들을 버리고 그의  끈질긴 노동 체험은 1936년까지 계속된다.

또한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그는 인민전선의 의용군으로 첨전한다. 이 참전으로 인해 노동체험이 끊기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병약했던 몸이 잠시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그는 전쟁으로 그의 몸을 내몰았다. 1년이 조금 못되게 내전에 참여한 베유는 결국 1937년 포르투칼로 휴양차 가게 되는데 여기서 종교적 체험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쉼을 가지면서 종교적 경험을 하게 된 베유였지만,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에서 프랑스 망명정부의 레지스탕스로 활동한다. 그러면서 조국 프랑스에 남아 투쟁하지 못한 것을 늘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격렬한 활동으로 인해 결국 베유는 폐결핵으로 쓰러졌다. 그렇게 회복되지 못한 베유는 43년의 불꽃같은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신과 신앙의 깊은 사색

베유의 삶의 거의 마지막을 밝혀주는 이 『중력과 은총』은 신과 신앙에 대한 깊은 사색의 결과물이다. 마치 파스칼의 『팡세』를 대하는 것 같다. 문단 자체가 연속성이 거의 없거니와 이는 베유 사후 그의 단편들을 모아 출판했기 때문이다. 읽다가 보면, “어? 이게 뭐지? 이게 뭐지?” 이럴 때가 대부분이었다.

▲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윤진 옮김 (서울: 이제이북스, 2008) ⓒ이제이북스

읽다가 화들짝 놀랐던 몇 구절만 옮겨 본다. 괄호 안의 숫자는 이 책의 쪽수이다.

이렇게 소개한 몇 구절 속에서도 드러나는 것이지만, 사람을 잠시 멍하게 하는 능력을 가진 책이다. 아니 그런 능력을 가진 베유라고 이야기해야 정확할 것 같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계절, 겨울에 이 책을 손에 든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어울리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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