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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가 아니다어느 목사의 부부싸움과 화해 이야기
박철 | 승인 2017.12.16 00:18

15년 전 강화 교동 지석교회에서 목회할 때 이야기입니다. 후배 목사들이랑 가끔 점심 도시락을 싸서 교동에 있는 화개산에 올라가곤 했습니다. 화개산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처녀 가슴처럼 봉긋한 서해안 섬을 두루 조망할 있을 정도로 전망이 좋은 산이었습니다.

날이 좋으면 저 멀리 개성 송악산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산 정상에서 도시락을 나눠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필 ‘부부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때 듣게 된 후배 김 모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김 목사는 큰 교회 목사는 아니지만 매우 성실한 목회로 주변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목사였습니다. 성격도 온순하고 매사에 반듯하여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습니다. 교인들도 그런 김 목사를 신임하고 존경합니다.

김 목사 사모님은 활달한 성격이서, 여기저기 다니며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여 봉사활동도 하는 등 출타가 잦은 편이었습니다. 어지간한 사람이면 사모님의 잦은 외출에 대하여 제동을 걸고 이따금 충돌이 생길 만도 한데, 김 목사 부부는 부부지간에도 남이 부러워할 만큼 깊은 이해와 사랑으로 뭉쳐진 사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사소한 문제가 발단이 되어 신경전이 오가더니 한 치의 양보가 없는 열전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동안 아내가 하는 일을 인정해주고 깊은 신뢰감으로 아내를 대해주었던 김 목사도 이번만큼은 양보할 수도 없다는 듯이 강력한 펀치를 날렸습니다.

그러자 사모님은 질 수 없다는 듯이 그동안 여기 저기 세미나에 참석하여 습득한 이론으로 허술하게 보이는 남편의 빈틈을 콕콕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불꽃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김 목사는 속이 상해 점심밥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밀고 아내가 자기를 시골교회 목사라고 무시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오후가 되자 불꽃은 사그라지고 대신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은 쥐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습니다. 깊은 침묵의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저녁 수요기도회가 있었습니다. 김 목사는 난감했습니다. 저녁밥도 한 숟갈 물에 말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어쩔 수 없이 기도회를 인도하러 강단에 섰습니다.

숨이 턱 막히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심한 자괴감이 몰려왔습니다. 등에서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를 시작하여 이제 말씀을 전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불쑥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나왔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아침 저는 제 아내와 부부싸움을 심하게 했습니다. 이 기분으로는 도저히 말씀을 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먼저 제 아내에게 사과부터 하겠습니다. ○○엄마, 미안하오. 오늘 내가 잘못했소.”

잠깐 동안의 침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교인들은 무슨 영문이 몰라서 어리둥절한 눈치였고 김 목사의 사모님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두 분 다 심성이 착한 사림이었습니다.

교동 화개산 정상에서 몇 명의 후배목사들과 함께 부부싸움에 대한 경험담을 나누다 그 이야기를 김 목사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만약 나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불편한 감정으로 예배를 계속 인도 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김 목사가 나의 후배지만, 마음속으론 나의 스승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마 5,23-24)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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