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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규홍 교수, 총장이 되기에는 문제 많은 사람”연 총장에게 이용당한 H씨와의 인터뷰
에큐메니안 | 승인 2017.12.26 23:15

항간에 소문으로 떠돌던 이야기가 사실임이 드러났다. 현 한신대 연규홍 총장이 학생들을 동원해 개교회 교회사를 쓰게 하고 원고료는 자신이 챙긴다는 것. 요즘 흔히 쓰이는 말로 “교수 갑질” 말이다.

에큐메니안이 만난 H씨는 모 대학원에서 김재준 목사를 연구하였으나 논문심사에서 주임교수가 받아주질 않았고, 김재준 목사가 활약했던 한신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연 총장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이 악연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처음에는 그저 어려운 영어 책을 몇 쪽으로 번역해 오라고 하더니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그 다음에 모 교회의 역사를 저술하기 위해 교회의 역사가 될 만한 것들이 담겨 있는 박스를 통째로 넘기며 교회사 집필을 맡겼다.

이렇게 교회사 집필을 이야기 하며 등록금 등을 운운하고 장학금을 언급했다. 그러나 연 총장은 얼마를 주겠다고 정확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연 총장이 장학금, 생활비에 대한 암시를 몇 차례 하며 교회사 집필에 착수하도록 시켰다고 한다. 이 자리에 혼자 있지는 않았고 H씨의 아내도 동석한 자리였다.

▲H씨가 집필한 D교회사 부분이 아무런 수정없이 그대로 출판되었다. ⓒ에큐메니안

그렇게 시작된 교회사 집필은 그의 몸을 많이 상하게 하는 작업이었다. 토요일에도 거의 출근을 해서 일을 했고, 이를 보다 못한 아내가 연 교수에게 남편 건강이 위험하니 일을 멈추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연 총장은 그렇게 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결국 한 달 더 일을 했고 그 결과 간수치가 상당히 올랐다는 진단을 받았다.

더 이상 그의 건강이 허락하지 못했다. 그렇게 2주 정도가 지났을까 H씨의 작업을 이어서 하고 있던 연 총장의 다른 제자라는 사람으로부터 집필 작업 때문에 그 당시 연 총장이 보직을 맡고 있던 신학대학원장실로 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연 총장은 건강 문제로 쉬고 있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면전에다대고 “나, H 잊었어.”라고 했다.

그것이 2014년 4월의 일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연 총장의 교수실 출입이 막혔다. 듣기로는 ‘H가 오면 못 들어오게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런 사건을 겪은 후 연 총장과의 관계가 어려워질 것은 예상했던 바이지만 그래도 어려운 형편에 어쩔 수 없이 H씨는 아내와 함께 연 총장을 찾아갔다. 그러나 연 총장으로부터 되돌아온 말은 “H가 끝까지 일을 했으면 내 사재를 털어서라도 돈을 줬을 텐데,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해서 돈을 줄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해서 어디 가서 뭘 할 수 있겠느냐?”라는 말뿐이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함을 느끼고 이미 납부해 놓은 등록금을 생각해 한 학기를 마무리 하고 자퇴했다. 그런 일들이 잊혀질 즈음, 책이 출판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책의 총분량 A4 200여 페이지 중 자신이 작업했던 분량이 120여 페이지인데 그 중 극히 일부분만 수정되고 대부분 책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한다. 관례라고 하기에는 우습지만 책머리에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도 없었다.

연 총장에게 그런 일을 당하고 한신을 떠날 때, 한신에 대한 기대는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숨죽이고 그냥 묻어두고 가느냐? 내가 당한 일을 드러내느냐?’ 수년 동안 참 많은 고민을 했다는 H씨. 그런데 연 교수가 총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냥 묻어둘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다는 H씨. 또 다른 피해가 없기를 바란다며 한숨을 쉰다. 그간의 고민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H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제자들을 소모품으로 활용한 것에 대해 사실을 밝히고 사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H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H씨가 집필한 D교회사 부분이 아무런 수정없이 그대로 출판되었다. ⓒ에큐메니안

▲ 자기소개를 해달라. 연규홍 교수와 만나게 된 계기는? 

H: 2013년 S대학교 대학원에서 지도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김재준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는데 1차 심사에서 논문 주임교수가 “김재준 연구는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가치가 없다” 라고 하며 거절했기 때문에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연규홍 교수를 찾아갔다. 한신대니까. 김재준에 대한 논문을 쓰는데 김재준의 신학 사상이 기반인 한신대학교로 찾아 온 것은 당연하지 않겠느냐. 2014년 봄학기로 석·박사통합과정(4년 과정)에 우여곡절 끝에 등록하게 되었다. 그러나 2014년 3월 석·박사통합과정이 시작되기도 전에 2013년 10월부터 연교수 밑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나?

H: 연 교수가 나에게 처음엔 영어텍스트 몇 페이지를 주면서 번역을 해오라고 시켰다. 쉽지 않은 철학 텍스트여서 번역하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번역해서 제출하자, 바로 <D교회 교회사> 집필을 시켰다. D교회 교회사 집필은 D교회에서 보내온 대형 박스 서너 개에 담긴 백여 년의 교회자료를 정리해서 책으로 펴내는 작업이다. 내가 그 집필을 맡기 이전에 이미 다른 학생이 앞부분을 작업해 놓은 것이 있었다. 연 교수는 나에게 “다른 학생이 이만큼 쓰고 일본으로 갔다. 여기에 이어서 쓰라”고 했다. 당시 S대학교 대학원에서 받은 충격으로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처음 연 교수를 찾아갈 때 아내와 몇 차례 동행했었는데, 연 교수는 우리에게 등록금 등을 운운하며 장학금을 말했다. 연 교수는 이것을 하면 얼마를 주겠다고 정확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연 교수가 장학금, 생활비에 대한 암시를 몇 차례 하며 교회사 집필에 착수하도록 시켰다. 사실 논문 쓰는 학생이 지도교수에게 계약서 체결 같은 거 하기 어렵고 말 꺼내기도 어렵지 않느냐. 당시 연 교수가 다른 제자에게 봉투(생활비 명목)를 주는 것을 보기도 했다. 연 교수는 나의 생활비에 대해서도 몇 차례 언급했기 때문에 일을 하는 중간이나 마치고 나면 당연히 급여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 D교회사 집필 과정은 어떠했나?

H: 쓰다가 석 달쯤 지나 몸이 급속히 안 좋아졌다. 병원에 갔더니 건강이 많이 좋지 않은 상태이니 의사는 당장 일을 멈추라고 했다. 토요일에도 거의 출근을 해서 일을 했는데, 이를 보다 못한 아내가 연 교수에게 남편 건강이 위험하니 일을 멈추게 해 달라고 요청했고 연규홍 교수는 그렇게 해 주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한 달 더 일을 했고 그 결과 간수치가 상당히 올랐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동안 작업했던 것과 자료들을 연 교수의 다른 제자에게 전달하고 나는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으면서 요양을 하였다. 몸 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시작할 생각이었다.
요양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이러다 연 교수에게 버림받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두 차례 연 교수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문자로 “죄송합니다. 몸이 회복되는 데로 다시 일을 하겠습니다.”라는 의사를 두 차례 보냈다. 사실 죄 지은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정중하게 의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제자가 치료를 받고 있으면 몸이 좀 어떤가? 하는 전화 한 번쯤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시키는 일을 하다가 건강에 무리가 와서 치료 받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 한 번 없는 것을 보고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나를 제자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일 시킬 사람이 없어서 나를 급히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2주 동안 누워서 지내는 중에 연 교수의 다른 제자로부터 전화가 몇 차례 왔다. 그 사람은 내가 하던 일을 이어서 하고 있었고, 몇몇 각주를 수정하는 작업을 하는 것 같았는데 짜증을 내며 나에게 신학대원장실로 나오라고 요구했다. 2주 쉬고 나서 신학대학원장실 나갔더니 연 교수는 다짜고짜 내 면전에서 ‘나, H 잊었어.’라고 말하더라.

▲ 그때가 언제였나?

H: 병원에서 내 간수치가 매우 높다는 진단이 나온 날이 2014년 2월 4일이었다. 그로부터 2주간 누워 있었다. 쉬고 나서 다시 일하겠다고 전했다. 그런데 2주 후에 나가보니 딱 한마디 ‘잊었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는 나의 출입을 막았다. ‘H가 오면 못 들어오게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 연 교수가 H씨에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H: ‘H는 잊었다’는 말을 듣자 ‘앞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는 재정적으로도 어려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연 교수와의 관계였다. 고민 끝에 아내와 함께 찾아갔더니, 우리가 돈 얘기를 꺼내지도 않은 상황에서 연 교수는 “H가 끝까지 일을 했으면 내 사재를 털어서라도 돈을 줬을 텐데,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해서 돈을 줄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해서 어디 가서 뭘 할 수 있겠느냐?”고 하더라. 그것도 아내 앞에서 들으니 매우 화가 많이 났다. 그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아내는 “저 사람을 보니 이곳에 더 이상 김재준 목사님의 사상은 없는 것 같다. 이런 학교 다닐 필요가 있겠나?”라는 말을 했지만, 이미 한 학기 등록금을 납부한 상태였기 때문에 한 학기 공부한 후 자퇴하였다. 

▲ 본인이 집필한 원고가 출간된 책에 실려 있나?

H: 나중에 책으로 나온 것을 보니까, 책의 총분량 A4 200여 페이지 중 내가 작업했던 분량이 120여 페이지인데(그 외 부록 부분도 작업에 참여) 그 중 극히 일부분만 수정되고 대부분 책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김재준 목사님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보니 김재준 목사님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는데, 그 부분이 빠져있는 것도 불쾌했다.
얼마 전 내가 페이스북에 ‘이렇게 책이 나왔으니, 고생하고 대가는 못 받았지만 보람을 가져야 할까’고 풍자적으로 언급한 것에 대해 연 교수의 제자 중 한 사람이 “그 책 구입해서 확인해라. 네가 쓴 내용 지우느라 며칠 밤을 샜다.”라는 리플을 단 일이 있었다. 그래서 얼마 후 D교회사 책을 직접 보고 그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 내용 중에 내가 쓴 분량이 거의 대부분 실려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때 그가 남긴 댓글에는 ‘빌빌거린다’는 등 비속어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나를 인격적으로 형편없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박사학위 못 받았다고 이러느냐, 비겁하게 이 짓 하느냐’, ‘우리 교단의 적폐세력과 부화뇌동 하느냐’는 등의 글도 있다.

▲ 연 교수는 한신대학교 총장이 되었는데?

H: 연 교수는 총장이 되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가 나 말고도 또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그가 학생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본다.
기가 막힌 건 내가 상당 부분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글에 나열된 사랑하는 제자 명단에 나는 이름조차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걸 보니, “연 교수는 나를 팽시켜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거구나, 나는 그저 소모품으로 이용당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연 교수의 제가 중 한 사람이 글을 쓰던 N교회사에도 내용 수정 등을 도왔는데, 그 책에도 나에 대한 언급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공익적인 차원에서도 제자들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연 교수는 총장으로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연 교수에게 그런 일을 당하고 한신을 떠날 때, 한신에 대한 나의 큰 기대는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숨죽이고 그냥 묻어두고 가느냐? 내가 당한 일을 드러내느냐?’ 수년 동안 참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런데 연 교수가 총장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었다. 그냥 묻어둘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인터뷰에 응한 것이고, 또 다른 피해가 없기를 바라기에 지금 밝히는 바이다. 

▲ 이런 결심을 하기까지 여러 가지 고민을 했을텐데?

H: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면서 기도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무능력한 애비라 해도 자기 새끼 굶지 않게 하고 나쁜 선생님으로부터 보호해야 하지 않겠나?” 나는 한신을 졸업한 사람도 아니고 기장 목사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 한신의 학생들은 모든 목사들의 후배이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자녀이며 모든 신학자들의 제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위를 받은 후 학계에서 만나는 몇몇 지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묵묵히 지내라. 마음의 상처를 길게 갖지 마라” 그래서 나도 묵묵히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묵묵히 지낼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아내가 결국 이런 말을 하더라. “그래! 만약 당신이 말해야 할 때 침묵 한다면, 나중에 신학생들 앞에서 떳떳하게 가르칠 수 있겠어?”
지금이라도 제자들을 소모품으로 활용한 것에 대해 사실을 밝히고 사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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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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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의 2019-06-04 02:39:22

    총장되기엔 문제가 많다고 한 말이 맞았네.
    사찰에 금품수수. 저서대필 ~~ 앞으론 뭐가 더 나올지 기대된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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