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무늬(人文)의 소중함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셔서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누구에게 살해되었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의 주검이 들에서 발견될 때에는, 장로들과 재판관들이 현장에 나가서, 그 주검 주위에 있는 성읍들에 이르는 거리를 재어라. 그 주검에서 가장 가까운 성읍이 있을 터이니, 그 성읍의 장로들은 아직 멍에를 메고 일한 적이 없는 암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와서, 물이 늘 흐르는 골짜기, 갈지도 심지도 않은 골짜기로 그 암송아지를 끌고 내려가 물가에서 암송아지의 목을 꺾어서 죽여라. 그 때에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곳으로 나와야 한다. 그들은 주 너희의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주를 섬기며 주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직책을 맡은 사람으로서 모든 소송과 분쟁을 판결할 것이다. 이때에 피살자의 주검이 발견된 곳에서 가장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은 물가에서 목이 꺾인 암송아지 위에 냇물로 손을 씻고 아래와 같이 증언하여라. ‘우리는 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고, 이 사람이 살해되는 현장을 목격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주님 주께서 속량하여 주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에게 무죄한 사람을 죽인 살인죄를 지우지 말아 주십시오.’ 이렇게 하면 그들은 살인의 책임을 벗게 된다. 이렇게 해서 너희는 너희에게 지워진 살인이 책임을 벗어라. 이렇게 하는 것은 주께서 보시기에 옮은 일이다.’”(신명기 21장 1-9절)

1. 참으로 인상 깊은 성경 구절입니다. 누가 살해했는지 알 수 없는 주검이 주변에서 발견되자 하나님은 그 일의 처리를 위와 같이 명하신 것입니다. 그 주검의 거리로부터 가장 가까이에 사는 마을 공동체에게 우선의 책임을 물어서 한 번도 멍에를 메어본 적이 없는 귀한 암송아지를 한 마리 데려와서 속죄물로 대신 죽게 하고, 그것을 제사장들에게 보이면서 자신들의 무죄를 확증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 공동체의 삶은 한 사람의 죽음과 주검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누가 죽였는지도 알 수 없을지라도 우리 주변에서 그것이 발견되었을 때는 그것을 아주 중히 여겨서 일찍이 멍에를 매여본 적이 없는 암송아지를 대신 죽게 할 정도로 중하게 다루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에 비해서 오늘 우리 주변의 삶에는 죽음과 주검이 즐비합니다. 그래도 어느 누구하나 그렇게 주목하지 않습니다. 행려자의 죽음과 주검을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고, 심지어는 가장 가까운 가족 중에서 누가 떠날지라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 경우까지 늘고 있습니다. 고독사가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되었고, 그 고독사가 단지 노인들만이 두려워하는 일이 아니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2. 이렇게 죽음까지도 다반사가 되어가고 그것이 우리의 감각을 크게 일깨우지도 못하게 되어가면서 우리는 묻게 됩니다. 과연 우리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요즈음 크게 논의되는 ‘인공지능’(AI)이나 ‘포스트휴먼’(posthuman) 이야기, 앞으로 인류의 종교는 ‘데이터교’로 전환될 것이고, 인류는 행복과 불사의 지경에 거의 도달했다는 전망들 앞에서 저는 앞에서 우리가 읽은 성서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이와 더불어 요즈음 페미니즘 담론에서 많이 거론되는 동성애와 낙태법에 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물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저의 핵심 질문은 이렇게 우리 ‘몸’과 ‘생물적 생명’과 이 세상에서의 ‘사실’이 크게 교란되고, 문제시되며, 평가절하 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 삶의 닻을 어디에 맬 것이며, 삶의 지렛대를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20세기 이후 인류의 문제를 ‘세계소외’로 지적한 한 사상가는 위의 죽음의 물음과 대척점에 있는 인간의 ‘탄생’에 두 가지 차원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먼저는 제1의 탄생으로서 우리가 생명적 몸으로 이 세상에 오는 것을 말하고, 제2의 탄생은 그러한 생명적 탄생을 기반으로 해서 다시 인간적 말과 행위로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다원성의 세상에 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이 세상에 자신만의 고유한 말과 행위로 스스로를 드러내며 공적 세계로서의 세상을 살아가는 일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두 가지 차원을 가지는 인간 ‘탄생성’에 의해서 이 세상이 아무리 죽음을 향해 가더라도 세상이 매번 다시 새로워지는 기적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도 바로 이 세상에 기적같이 오신 예수님 삶의 기적을 다시 기리고 기념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3. 하지만 앞에서 여러 가지로 지적한 대로 우리 시대에는 제1의 탄생도 매우 위협받고 있고, 그런 상황에서 제2의 탄생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을 정도로 불가능해지고 있습니다. 생명은 쉽게 인공적 가공물로 대치될 수 있다고 여겨지고, 몸과 사실은 쉽게 조작(페이크, fake)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서는 지금까지 호환될 수 없고, 그 가치를 말할 수 없다고 여겨지던 생명과 사실과 진실이 하찮게 여겨집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말과 행위가 펼쳐질 수 있는 장이 무너져 내리고, 인간은 한갓 물질적 집합이나 욕망 덩어리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니 세상은 점점 더 폭력적이 되어가고, 다른 사람과 다가오는 세대의 제2의 탄생을 염려해주는 일이 드물어지면서 인간 삶이 각자도생으로 자아에게만 집중하는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우리 삶의 토대가 되고 기초가 되며, 닻을 내릴 근거로 여겨졌던 생명 몸과 집이 무너지고, 그것들이 얼마든지 조작 가능한 일이 되니 우리 삶은 점점 더 뿌리 뽑힌 부초처럼 되어갑니다.

▲ Geertgen tot Sint Jans, <Nativity, at Night, 1484-90>, Oil on oak, 34×25cm. ⓒNational Gallery, London

4. 스티븐 호킹과 같은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이제 인류가 살 길은 30년 안에 지구를 떠나서 다른 행성으로 이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제 인류가 이 지구라는 행성 안에 그렸던 모든 인간적 그림(인문)을 버리고 다른 집을 찾아 떠나는 것을 말하는데, 위의 하나님은 거기에 반해서 한 사람 행려인의 생명과 그 생명이 담지 되었던 주검까지도 결코 허투루 다루면 안 된다고 경계하십니다.

그 행려인의 주검도 우리가 쉽게 처리해 버리거나 대체하거나 조작적으로 만들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찾고, 이루고자 하고, 완성하고자 하는 어떤 행복, 새로운 집과 문명, 영생과 지복이 바로 그 몸과 그 무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적 몸과 그 몸을 낳는 일과 그리고 그 몸을 인간적인 마음으로 기르고, 살피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거기서 창조되는 모든 인간적인 무늬들을 소중히 여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5. 모든 것을 스스로가 다시 만들 수 있다고 여기고,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서 탄생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오늘 우리 세대는 그런 의미에서 어떤 조건이나 기초를 받아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존재는 누군가에 의해서 탄생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한편으로 조건 지어진 존재입니다. 그 탄생에는 집이 있고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다시 집을 지키고, 토대를 가꾸고 소중히 하는 일을 맡아야하겠습니다. 그것은 이미 많은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수고로 일구어진 인간의 무늬를 소중히 하는 삶이기도 합니다. 비록 죽었지만 그 주검조차도 소중히 다루어지는 시대, 인간적인 말과 약속이 귀중하게 여겨지고 그것을 지키는 일을 소중히 여기며, 그래서 우리 삶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과 삶, 저는 이것을 맡아서 하는 일이 종교와 신앙의 일이고, 역사와 과거를 중시여기는 삶이며, 그럴 때만이 참으로 미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수행되는 그것이 진실한 여성주의적인 배려와 보살핌, 생명의 삶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성서가 가르쳐주는 사람 사는 모양은 마을 사람 전체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 사람의 죽음이라도 귀히 여기고, 거기서 주목하고, 자기 주변에서 홀로 죽어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자신들의 죄과로 여기면서 거기에 대해서 속죄하는 깊은 인간성이 살아있는 삶을 말합니다.

6. 예수 탄생일을 맞이하여 서로 축하하고 있는 오늘과 더불어 이제 곧 2017년이 지나갑니다. 올해 2017년은 우리가 함께 일구는 개신교가 그 탄생 5백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 죽은 사람까지도 돌보는 인간성 대신에 탐욕과 교만과 하늘까지 닿는 욕심과 자기팽창으로 그 비인간성이 말할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 5백주년을 지나면서도 우리 교회는 회개와 성찰 대신에 더 크게 바벨탑을 쌓으려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이것이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나의 모습이며, 우리 자신의 사라져버린 생명 감각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저는 이러한 무뎌지고 죽어가고 있는 우리 인간성과 우리들 집의 회복을 위해서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 삶이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전환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면서 예수의 탄생과 그 예수를 낳고 기른 마리아의 상황을 다시 그려봅니다. 그녀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매우 고통을 받았을 것이고, 그렇게 어쩌면 사생아일지도 모르는 삶으로 태어난 예수는 그러나 그 마리아에 의해서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어난 속된 삶에서 시대와 인류의 구원자가 되는 큰 전회를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는 제1차의 생명을 받은 것에 더해서 제2의 탄생으로 자신의 고유성을 더해서 세상에 복음을 가져왔고, 오늘 2천년 후의 우리까지도 그의 공덕으로 살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집을 지키고, 그의 생명적 삶을 소중히 여기고, 그를 품어주고, 제2의 탄생이 가능하도록 했기 때문이겠습니다. 그의 착한 남편 요셉도 그 시대와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깊은 신앙적 모성의 사람이었고, 그의 가족들도 어쩌면 당시 주변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인간적이고 모성적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7. 내년은 유엔에서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한지 7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합니다. 오늘 인간 몸의 천시와 더불어 인간이 이룩한 무늬들이 거의 무시되는 상황에서 이 인권에 대한 선포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또한 그 다음 해인 2019년은 모두 아시다시피 3.1운동 100주년의 해이기도 합니다.

2017년 종교개혁 5백주년을 지내고 우리는 이렇게 이어서 세계인권선언과 그 척박한 식민지 상황에서도 세계 인류 문명에게 인간의 존엄을 선포한 삼일절 100주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바로 1919년 우리 민족의 3.1운동에서 큰 견인차 역할을 했던 이웃종교 천도교에서는 오늘 우리의 크리스마스 이브날인 24일이 그들에게는 ‘인일’(人日)이라고 합니다. 천도교 3대 교조 의암 손병희 선생(1861-1922)이 수운 최제우과 해월 최시형에 뒤이어서 천도교의 도통을 이어받은 날이라고 합니다.

‘인일’(인간의 날)이라는 단어가 저는 참 좋습니다.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고, ‘사인여천’(사람을 한울처럼 섬겨라)의 뜻이 이어지게 된 날을 기리기 때문입니다. “나라엔 경제적 지엔피(국민총생산)만 있는 게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존엄하게 대하는 지로 가늠되는 ‘정신적 지엔피’”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8. 이제 저는 오늘 우리 모두에게 관건이 되는 이 정신적 지엔피를 기르는 일에서 최근에 접하게 된 ‘불식이정’(不息之貞),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정직하고 진실된 삶을 놓지 않는 일’, ‘불이지심’(不已之心), ‘이미 모두 되었다고 하는 마음이 아니라 아직도 더 해야 한다는 참고 인내하는 마음’, 이 두 가지 말을 새롭게 새기면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제 종교개혁5백주년을 보내고 또 다시 백년을 시작하는 오늘에 이 말과 함께 우리 인간성과 생명성이 더욱 귀하게 여겨지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매우 깨어지기 쉽고, 조작될 수 있으며, 인공의 몸보다 훨씬 약해 보이지만, 그러나 어쩌면 그 속에서만이 진정한 생명과 포스트휴먼이 싹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곁에서 유아세례를 받는 아기들의 모습 속에서 그와 같은 진실이 깊이 감지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들의 모습 속에서 이미 우리 시대를 위한 큰 기적과 새로운 그리스도의 탄생을 보기 원합니다. 오늘 한반도의 현실이 일촉즉발의 전쟁의 위기 가운데 있지만 그럴 때 일수록 우리 사회 전체가 죽음과 주검과 취약한 인간의 몸을 소중히 여기는 일을 통해서 그 위기를 우리가 넘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와 겨자씨 교회와 한국교회의 새해가 그렇게 인간의 무늬(人文)를 소중히 여기는 일에 더욱 진전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한 일의 실험과 더불어 저 자신의 시간도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이은선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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