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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을 세워도 거하지 않고”-功成而不居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02
이병일 | 승인 2018.01.15 23:32

“천하의 모두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알고 있지만, 이것은 이미 악함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선하다는 것이 선하다고 알고 있지만, 이것은 이미 선하지 않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있음과 없음은 서로 낳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루고, 긴 것과 짧은 것은 서로 드러내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고, 소리와 노래는 서로 화하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 이러므로 聖人은 無爲로 일함을 대처하고, 不言으로 가르침을 행한다. 만물을 이렇게 만들어도 탓하지 않고, 낳고도 소유하지 않고, 말(일)을 하더라도 기대지 않고, 공을 세워도 거하지 않고, 아! 오직 거하지 않는다고 해서 떠나는 것은 아니다.”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形(較), 高下相傾(盈), 聲音相和, 前後相隨. (先後相隋恒)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不居, 夫唯不居是以不去

- 노자, <도덕경> 2장

노자는 인위적인 예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도덕을 비판합니다. 여기에서 美는 훌륭하다는 말이고, 당시의 禮를 나타내고, 그 반대는 惡입니다. 善은 예절을 잘 아는 것을 뜻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의 입장에서 하는 말입니다.

예를 아름답다고 하고 예를 잘 지키는 것을 착하다고 하면서 명예와 재물을 주면, 백성들은 그것을 좇느라 타고난 자신의 자연적 현실을 악하거나 천하게 여기게 됩니다. 노자는 만물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기 위해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없는 것, 쉬운 것, 짧은 것, 낮은 것, 자연의 소리, 뒤는 모두 사람들이 싫어하고 천하다고 여기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없으면 있는 것, 어려운 것, 긴 것, 높은 것, 운율에 맞는 소리, 앞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낮고 천하게 여기는 자연의 도가 밑받침이 되지 않으면 만물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노자는 예법을 따르느라 자신의 자연적 현실을 낮고 천하게 여기는 현실을 비판하며, 도의 존재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있는 것은 없는 것이 낳고, 어려운 것은 쉬운 것이 이루고, 긴 것은 짧은 것이 모여서 형태를 만들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이 채워 올리고, 궁상각치우 등 운율에 맞는 음악은 무질서한 소리가 합해서 내고, 앞은 뒤가 떨어져 오래 있는 것이다.)

성인의 다스림은 함이 없습니다. 위는 욕망을 가지고 하는 일입니다. 무위라는 것은 집착이 없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법을 아름답다고 하고 잘 따르는 것을 착하다고 인위적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이익과 명예가 오는 것을 가르치지 않으니, 성인은 말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합니다.

장자는 명예와 이익으로 다스리는 정치가 계속되면 결국 이익을 구하기 위해서 사람이 사람을 서로 잡아먹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연의 도는 만물을 만들되 자랑하지 않습니다. 공을 이루고는 머물지 않고 떠납니다. 도는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니 공이 떠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아름답고 선한 이데올로기에 메이지 않고 그것과 무관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노력으로 얻은 것을 누리며 사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람들 각자가 자기의 밭에서 거둔 소출을 먹는 것이 복(福)이라는 한자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노자는 그것을 넘어서 공을 세워도 머물지 않는 것이 성인의 길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내가 법관이 되기를 원하셨고
가난으로 평생을 찌드신 어머니는
아들이 돈을 잘 벌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어쩌다 시에 눈이 뜨고
애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나는 부모의 뜻과는 먼 길을 걸어왔다
나이 사십에도 궁티를 못 벗은 나를
살 붙이고 살아온 당신마저 비웃지만
서러운 것은 가난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시대는 없는 사람이 없는 대로
맘 편하게 살도록 가만두지 않는다
세상 사는 일에 길들지 않은
나에게는 그것이 그렇게도 노엽다
내 사람아, 울지 말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아라
평생에 죄나 짓지 않고 살면 좋으련만
그렇게 살기가 죽기보다 어렵구나
어쩌랴, 바람이 딴 데서 불어와도
마음 단단히 먹고
한치도 얼굴을 돌리지 말아야지”
- 정희성의 시 “길”

功成而不居를 다른 용어로 말하면 盡人事待天命의 신앙입니다. 제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신앙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예수님이 일으키시는 사건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을 찾아서 하고, 그 결과는 하느님께 맡기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생애를 통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메시아로서의 사명과 하느님의 뜻을 다른 사람들과 나눕니다. 예수님의 깨달음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공동체를 향한 하느님의 뜻을 펼쳐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깨달음은 그들을 위한 헌신, 자기희생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리가 삶을 돌아본다는 것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소명, 천명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역사, 성령의 임하심은 개인에게 일어나서 공동체를 향하게 합니다. 공동체에서 필요한 일을 맡기기 위해서 개인이 선택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깨달음과 동시에 자기 헌신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아는 것이나 감동받은 것에서 몸의 움직임,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게 사람으로서 할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 이병일, 『미친 예수』(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하늘소리를 들으며” 중에서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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