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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와 정들다[탐라, 사랑허염쪄]
임정훈 | 승인 2018.01.15 23:42
▲ 제주에 폭설이 내려 꼼짝없이 갇혀지내야 했다. ⓒ임정훈

육지에 사는 지인들이 ‘제주는 눈이 많이 왔다는데 괜찮냐’며 안부를 물어왔다. 괜찮지 않다. 제주의 중 산간에 살고 있는 나는 눈 속에 고립되어있다. 눈은 계속오고 도로에 차는 한 대도 다니지 않는다. 나는 눈이 녹을 때 까지 김치전이나 부쳐 먹고 귤을 까먹으면서 지내야 할 것 같다.

친구에게 눈을 담은 풍경 사진을 보냈더니 문정희 시인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러나 눈이 온 것이 나에게 그처럼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차라리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이 생각나는 눈 세상이다.

이층에 거처하고 있는 내방은 외풍이 세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노트북 좌판을 두드리고 있는데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팔이 시리다. 그런데도 얼굴은 참 두껍다. 만져보면 조금 찬기가 있을 뿐 춥지는 않다. 오랫동안 맨살로 지내 온 내공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자연 속에서도 사람의 얼굴처럼 단단한 내공을 가지고 있는 식물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억새다. 제주의 가을은 귤 밭으로 왔다. 제주는 어딜 가나 온통 황금빛 귤 세상이었다. 또 하나 귤처럼 많은 것이 억새였다. 길가나 들녘이나 산이나 어디든 하얀 억새 세상이었다. 억새는 어디서든 살랑 살랑 지나가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배웅했다.

어떤 사람들은 억새꽃을 억새풀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나도 처음엔 억새에게 무심했다. 그냥 길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풀이려니 했다. 그런데 억새꽃이 내 눈에 띄기까지 억새는 나에게 한결 같았다. 학교 가는 길가에서 언제나 반갑게 몸 전체를 흔들며 반겨 주었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또다시 아는 체를 했다. 

그뿐이랴, 환영을 받으며 행사장에 들어서는 것처럼 어디서나 그렇게 일렬로 맞이해 주었다. 사랑보다 더 한 것은 정이라고 하였던가 참으로 정이 들 수밖에 없는 억새다.

▲ 제주에 감귤처럼 흔한 억새 ⓒ임정훈

나는 더 많은 억새의 환영을 받고 싶은 마음에 오름을 올랐다. 우리 집 가까이에 있는 새별오름은 온통 억새밭으로 장관을 이뤘다. 민둥산인 새별오름을 길 따라 내려오다 순간 뒤를 돌아보면, 그 자리에서 소금기둥이 되어도 좋을 새로운 억새꽃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아끈다랑쉬오름은 집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있다. 억새가 거기에 있는데 못갈 것은 없다. 아끈다랑쉬오름에 있는 억새꽃은 또 다른 세상을 보여 주면서 나를 맞이했다. 저녁 무렵에 찾아 간 그곳에서 본 억새꽃은 황혼 빛을 받아 더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늦가을_임옥훈

이른 봄 민들레만
어여쁜 줄 알았더니

향 짙고 속내 깊은
국화도 그러하고

빈들에
노을 입고 선
억새꽃도 곱구나

누가 정물 오름의 억새꽃을 말했다. 그날은 허리가 아팠다. 그럼에도 허리를 양손으로 바치며 정물오름을 올랐다. 어떤 시름도 다 받아 줄 거 같은 억새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정물 오름에서 본 억새는 얌전했다. 그동안 축제 같은 억새를 보았다면 정물 오름에서 본 억새는 평온한 세상을 말하는 것 같았다. 정물 오름을 오른 후 나는 한 동안 허리에 침을 맞으러 다녔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면서 세상에는 무수한 꽃들이 다녀갔다. 민들레, 수선화, 나팔꽃, 코스모스, 더덕꽃, 해바라기, 들국화... 많은 꽃들이 지나간 자리에도 억새꽃은 남아있었다.

▲ 더 많은 억새의 환영을 받고 싶은 마음에 오름을 올랐다. ⓒ임정훈

억새도 처음엔 여린 잎이었다고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여리디 여리게 세상을 나왔을 것이다. 찬 서리가 내리던 날, 한풀 꺾여 있을 줄 알았던 억새꽃이 나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 첫눈이 내린 날도 억새는 변함없이 자신의 선 자리에서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하늘거리며 인사를 했다.

간밤엔 눈 만 내린 것이 아니고 바람도 몹시 불었다. 몽골에서 유학 온 한 학생이 제주가 몽골보다 더 춥다고 했다. 의아해 하는 나에게 제주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더 춥게 느껴진단다. 억새는 육지 사람들도 걱정하던 간밤의 눈보라를 잘 견디고 있을까

억새를 보러 가고 싶어도 나는 눈 속에 갇혀 있으니. 그래도 며칠 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이 맑고 사르르 눈이 녹아 있을 때 억새는 그 자리에 여전히 있겠지

긴 시간 꼬장꼬장한 세상을 하얗게 빛내주던 억새는, 어느 날 내 앞에서 사라진다 하더라도 새 순으로 이어 나와 속 좋게 흔들거리며 부러지지 않은 세상을 다시 보여 줄 것이다.

임정훈  author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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