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생활 박철 목사의 <아름다운 순간>
31년 전 박종철 열사와의 인연을 반추하며고난 당하는 이들과 함께 했던 목회시절
박철 | 승인 2018.01.19 22:59

지금부터 31년 전 정선(旌善)에서 목회하던 시절, 나는 경찰관들에 의해 집이 포위되어 꼼짝없이 갇혀 있었습니다. 도무지 그 울분을 삭일 수가 없어 씩씩거리고 있었습니다. 그해 1월 14일 ‘박종철’이라는 서울대 학생이 경찰의 고문에 의해 죽음을 당한 사건이 있었지요. 처음에는 경찰과 검찰에서 그 사건을 조작 은폐하여, 수배학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박종철 군을 심문하다 책상을 ‘탁’하고 쳤더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했습니다.

▲ 영화 ‘1987’ 포스터 ⓒ영화사 홈페이지

박종철 학생 사건이 바꾼 나의 삶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그 발표를 믿지 않고 있었는데, 다행히 박종철군의 시신 부검에 참여한 의사 중 한 사람이 양심선언을 했었지요. 그래서 결국 박군은 물고문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나는 그때 그 사건을 지켜보면서, 도저히 내 양심상 참고 있을 수가 없었지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때가 목회 초년병 시절이었는데 마침 정선지방 등급사경회가 열렸지요. 낮에는 반을 나누어 성경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부흥사를 초대하여 부흥집회를 했습니다. 저녁마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부흥강사는 분위기에 고무되어 ‘주여 삼창’을 외치게 하고 통성기도를 시키고 박수를 치며 찬송을 부르는데 도무지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부당한 권력에 의해 죽음을 당했는데 이 문제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나라가 어떻게 되든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예수 잘 믿으면 복 받고 구원받는다는 기복적인 신앙에만 빠져 있는 듯했습니다. 나는 이 자리에는 예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녁집회에 불참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을 삭일 수 없어서 매일 정오가 되면 종을 쳤습니다. 내 딴에는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심정을 담아 종을 울렸던 것이지요.

▲ 강원도 정선 덕송교회에서 농목 친구들이랑 함께. ⓒ박철 목사 제공

그래도 내 주변에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기투합(意氣投合), 우리는 목회자로서, 강단에서 진리를 선포하는 사람들로서 가만있을 수 없으니 박종철 군을 위한 추모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또 집회 날짜까지 다 정하고 당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으로 계신 김동완 목사를 강사로 초청하기로 하고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집회 일자를 며칠 앞두고 정선지방 교역자 회의가 있어 참석했는데, 감리사님이 우리를 불러내 하는 말씀이, ‘지금 시국이 어떤 시국인데 그런 집회를 하냐?’고 하면서 심하게 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밖에는 경찰 지프차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경찰에서는 전화도청을 하고 있었고, 그 집회를 준비하는 과정은 일일이 감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형사들이 따라 다녔습니다.

운동권 목사의 시작

드디어 박종철군 추모예배를 사북에 있는 어느 장로교회에서 드렸습니다.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정의와 진리는 결코 숫자로 계산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계속해서 군사정권 퇴진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합세하여 그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나는 글을 좀 쓴다는 이유로 각종 집회의 성명서를 써주는 일을 맡았습니다. 어느 때는 강원도 원주까지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또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모인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그 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희미하게 생각나는 것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문을 조금 인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6월 어느 날, 갑자기 주택에 형사들이 들이닥치더니 집을 에워싸고 문 밖 출입을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군청 공무원까지 동원되어 나의 동태를 감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온갖 악선전을 해댔습니다. ‘박 전도사는 사상이 불온한 사람이다’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선교탄압이라고 생각하여 전화로 항의를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주일날 교회에 나온 아이들까지 나를 이상하게 보고 피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렇게 열흘 동안을 꼼짝 못하게 하고 가택연금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나중 안 일이지만 내무부와 안기부에서 그런 지시를 일선 경찰서와 행정기관에 내렸고, 그들은 그 명령대로 했을 뿐이었습니다.

연금에서 해제가 되고 그 다음날 아침,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전속력을 다해 달려 정선 경찰서를 찾아갔습니다. 경찰서장과 담판을 짓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경찰서 직원의 제지도 뿌리치고 경찰서장실을 들이닥쳤습니다. 나는 크게 고함을 지르면서 서장에게 대들었습니다.

“왜 무슨 이유로 이렇게 선량한 시민을 괴롭히느냐? 무슨 근거로 내가 사상이 불온하다는 말을 퍼뜨렸느냐? 당신들이 열흘 내내 우리 집을 포위해서 꼼짝 못하게 가두어 두었는데, 지금 이 일로 해서 나는 목회도 할 수 없다. 이것은 분명 선교탄압이니 거기에 따른 적절한 공개사과를 하지 않으면 나는 서장실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는 지금부터 서장실에서 단식농성을 할 것이다.”

▲ 1988년 목사 안수를 받고. 교인들에게 선물을 받다. ⓒ박철 목사 제공

그렇게 한참동안 버티다가 경찰서장이 내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날 읍장과 경찰서 정보과장이 우리 집을 방문하여 일차 사과하고, 내가 시키는 대로 이장 집 마당에 동네 전 주민들을 모아놓고 공개사과를 했습니다. 읍장과 정보과장은 내게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덕송리 주민 여러분, 박 전도사님은 훌륭한 애국자이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훌륭한 애국자를 본의 아니게 상부의 지시에 의해 불편을 끼쳐드린 점을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또 주민 여러분께도 많은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널리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난 당하는 이들과 함께 했던 목회

얘기가 처음 제가 생각했던 방향에서 많이 빗나갔습니다. 그로부터 31년 세월이 지났습니다. 한 때 나는 운동권 목사라는 딱지가 붙어 많은 오해를 받았습니다. 나는 그 점에 대해서 예수님도 그렇다면 운동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신 것도 따지고 보면, 당시 기성질서, 로마정부와 제도권에 밉게 보여 ‘정치범’으로 낙인이 찍혀 처형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하느님이 주신 양심에 따라 살아가고자 합니다.

하느님이 목사로 나를 부르셨지만, 나는 내가 섬기는 교우들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억울하게 고난당하고 신음하는 강도 만난 모든 사람들, 그들을 모르는 척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느님이 내게 주신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 작정입니다. 4년 전 10년을 섬기던 교회에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나와 지금은 ‘생명, 평화, 정의, 이웃사랑’이란 기치로 개척교회를 일구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최근 박종철 열사와 6월 항쟁을 다룬 영화 ‘1987’을 아내와 함께 관람했습니다. 아내는 영화가 끝났는데도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한참동안을 울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31년 전 강원도 정선에서 있었던 일을 반추하게 되었지요. 박종철 열사의 죽음으로 내 삶과 목회의 방향이 송두리째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내가 운동권 목사로 진입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요. 나의 장모 권채봉 여사는 민주화유가족협의회에서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 어르신을 만나 장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두 분이 친하게 지내셨습니다. 박종철 열사 형 박종부 씨는 울 처남 김의기 열사의 서강대후배였고, 울 둘째아들 의빈이는 박종철이 나온 혜광고등학교를 졸업했지요. 그리고 지금 나는 박종철 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30년동안 박종철 열사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과 같은 인연이 되었지요. 매우 아픈 이야기지만 또한 그 시절이 만들어 준 아름다운 인연이기도 했습니다.

새해 길목, 더욱 나태하거나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 2016년 10월 민주공원에서 부산민주화운동기독인 합동추도예배를 인도하고 아내와 함께. ⓒ박철 목사 제공

박철  pakchol@empas.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철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