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고삼난”(三孤三難)의 마당쇠

선교사 “ㅅ”자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내가 선교사로 나간 것 자체가 오랜 나의 기도와 꿈에 대한 반역이었다. 평신도 수도공동체에 대한 일념으로 자나 깨나 금식과 금욕, 노동과 절제, 단순과 자유로운 삶에 대한 훈련을 스스로 실행하면서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꿈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내가 자초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몹시 화가 났고 분노로 깊은 좌절과 원망에 빠졌다.

전심전력으로 달려왔던 길에서 벼랑으로 굴러 떨어진 나는 머리가 텅 비고 백지처럼 하얀 상태가 되어 무시로 하나님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쳤다. 나의 기도는 마치 연기처럼 허공에서 흩어지는 것 같았고 나 자신은 할 일없는 건달처럼 느껴졌다. 나는 주인이 별로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 종이라는 자괴감, 아픔과 슬픔으로 휘청거렸다.

고민과 아픔 속에서 다가 온 꿈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어느 강변에서 한 무리의 독일인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내 옷을 세탁할 돈을 요구하였다. 그들은 망설임이 없이 바로 그 자리에서 돈을 모아서 나에게 주었는데 그 금액이 너무 크다고 생각한 나는 일부를 그들에게 돌려주었다. 그러자 대표되는 사람이 돈을 되돌려주며 ‘내가 써야하는 돈이니 받으라’고 하였다.

▲ 이옥희 선교사

꿈이 참 신기하였다. 강의 폭이 두 개의 큰 강을 합친 것처럼 넓기도 하였지만 물이 맑아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고 강 위에 걸쳐 있는 다리도 평평한 다리가 아니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세상에 없는 다리였으며 그 다리 중앙에 게양대가 있었는데 게양대 끝이 십자가였다. 그 십자가 끝에 하얀 내 옷이 걸려있었고 그 옷이 바람에 날려서 강변으로 떨어졌다. 나는 옷을 찾으러 강변으로 내려갔고 거기서 뜻밖의 독일인들을 만나 뜻밖의 거금을 받았던 것이다.

꿈이 너무 선명하고 좋아서 나는 꿈을 외국에 나가서 일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아무런 의심 없이 단순하게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모든 과정을 다 이수하고 떠날 날이 가까워 오자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 번복하고 싶었다.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주변 사람들이 일터를 찾아주며 외국에 가지 말고 국내에서 일하라고 정색하고 충고하였을 때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나의 자존심이 번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불안에 휘둘리면서도 번복하지 않고 떠날 준비를 하는 나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세미한 음성으로 어떤 약속을 주셨다. 그 말씀이 임하였을 때 나는 감동으로 울었다. 마음에서 두려움과 불안이 사라졌고 비로소 나는 편안히 떠날 준비를 하게 되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현장으로 갔다. 사도행전의 역사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사람들이 영육간에 치유되고 회복되는 사건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면서 성령님께 알아서 써주시라고 모든 것을 일임하였지만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과 너무 다른 언어와 문화, 기후와 음식, 계급차별과 배타의식 절대빈곤과 소외에 직면하여 불가능의 절망의 수렁에 빠졌다. 선교는커녕 날마다 두려움으로 부정적이 된 심신을 거두고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과제였다. 나는 날마다 “삼고삼난”에 직면해서 쥐뿔도 없는 주제에 선교하러 나온 자신의 어리석음을 탄식하여야 했다.

선교 현장에서 겪어야 했던 삼고(三孤)

사도행전을 이어간다는 선교 신념과 자부심, 의욕은 사라지고 나는 날마다 “삼고삼난”(三孤三難)과 씨름을 하였다. “삼고삼난”에서 “삼고”(三孤) 는 세 가지 고독을 의미한다.

첫 번째 고독은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고 대화 상대가 전혀 없는 데서 오는 존재의 외로움이었다. 조건 없는 사랑, 우정우애를 나누며 섬기는 기쁨에서 일단 제외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가치와 의미를 공유하며 함께 노력하며 격려하는 삶을 교류하지 못한다는 것이 슬펐다. 어느 누구도 멀리 있는 나에게 한국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노래와 꿈을 들려주지 않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조용한 것을 좋아하였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독서와 사색을 선호하며 살아왔고 나 자신의 독자적인 사고 체계 안에서 움직였기에 고독에 익숙하였고 침묵과 칩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든지 손을 벋으면, 문만 열고 나가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의 것이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고 나를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이국의 상황은 한국에서 누린 자발적인 고독과 다른 차원의 고독이었다. 모국과도 단절되고 현장과도 단절되었다는 느낌은 마치 잊혀진 존재라는 불안감과 우울감을 가져왔다.

두 번째 고독은 동료, 동지, 협력자가 없다는 고독감이었다. 모든 일을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실행하고, 혼자 결과를 정리해야 하는 부담감과 외로움에 함께 일하던 옛 일터가 너무 그리웠다. 혼자 일하는 것은 마음먹은 대로 해도 그만이었고 하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조언을 하는 사람도 없고 평가를 하는 사람도 없다. 꾸짖는 사람도 없고 칭찬하는 사람도 없다. 기도해주는 사람도 없고 격려해 주는 사람도 없다.

한국에서는 동료와 목회자들이 서로 협력하며 도우며 일을 하였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인 줄 몰랐다. 같은 현장에서 같이 기도하며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함께 일하는 동료가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존재인지를 몰랐다.

선교현장에 와서야 비로소 함께 교육받고 훈련받은 동일한 목적과 방향을 가진 동료들, 선배와 후배들이 앞에서 뒤에서 서로를 받쳐주며 함께 가고 있다는 위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동료와 선배, 후배가 없는 현장에서 독도처럼 떨어져 나와서 일하는 고독감에 눌리곤 하였다.

세 번째 고독은 소속처가 없는 외로움이었다. 물론 교단과 노회에 소속되어 있고 선교단체에 소속되어 있지만 그들은 너무 멀리에 있어서 현장에 있는 나에게 그림 속의 떡이었다. 현실적으로도 한국교회 상황에서 선교사의 고독과 고난에 동참하는 기관과 단체가 존재하기도 어려운 형편인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최소한 애경사를 함께 나누며 교회, 시찰회, 노회와 각 단체들이 서로 도우며 어려움을 나누지 않는가! 함께 기도하며 문제를 헤쳐 나가지 않는가!

나는 끈 떨어진 연처럼 나무에 걸려 자주 찢어졌으며 끈 떨어진 두레박처럼 자주 곤두박질 쳤다. 소속처가 있지만 소속처가 없는 사람처럼 외롭게 혼자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몸이 아플 때, 현장의 일과 사람들로 지쳐있을 때, 사고나 사건으로 고통 중에 있을 때, 한국과 현장에서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모든 고통과 고독은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이옥희 yiso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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