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무망지복, 무망지화(열왕기하 4:14-17)우리의 삶에 복과 화가 밀어 닥칠 때
이성훈 | 승인 2018.01.21 23:25
14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까 하니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하니 
15 이르되 다시 부르라 하여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16 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17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엘리사가 여인에게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들어가는 말

오늘은 엘리사가 일으켰던 기적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엘리야가 승천한 후에 엘리사는 엘리야의 뒤를 잇게 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종종 후임자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전임자와 거의 동일한 능력 또는 이적을 후임자가 행하는 이야기들이 바로 이어서 나오곤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모세와 여호수아일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는 이적으로 홍해를 갈랐던 모세의 후계자임을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엘리야의 후임자인 엘리사도 마찬가지인데, 엘리사는 엘리야의 후임이 된 후에 몇 가지 이적을 일으킵니다. 쓸 수 없는 물에 소금을 던져 고치기도 하고, 자신을 대머리라고 놀리던 아이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유다, 에돔과 함께 모압을 공격할 때에는 그들을 도와 승리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에 또 엘리야와 동일한 기적인 과부의 집에 기름이 넘치게 하는 이적을 일으키고 오늘 본문인 수넴 여인에게는 아이가 생기게 하고, 또한 죽었던 아이를 되살리기도 합니다. 이 후로도 여러 가지 이적을 베푸는데, 그 이적과 관련된 이야기가 8장 초반부까지 이어집니다.

수넴 여인 이야기

오늘은 그 이적들 중에서 수넴 여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엘리사는 요단강 지역과 갈멜산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는데, 이 두 지역의 거리가 50Km 정도 됩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위치한 곳이 수넴입니다. 그렇기에 엘리사는 수넴을 자주 지나치게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던 중 수넴에 살고 있던 여성이 엘리사를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하였습니다. 음식이 좋았던 것인지, 여성의 대접이 좋았던 것인지 엘리사는 수넴을 지날 때마다 그 여성의 집에 들러서 음식을 얻어먹습니다. 쉽게 말해, 이 여인의 집이 엘리사의 수넴 지역 베이스캠프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 헤르브란트 반 덴 데크하우트(Gerbrand Van den Eeckhout), <선지자 엘리사와 수넴 여인>, 1664년, 유화, 캔버스에 유채, 155x110cm, 부다페스트 미술관. ⓒWikimedia Commons

엘리사 자신도 이 집을 자신의 거점처럼 드나들었지만, 이 여성도 엘리사를 대접하기를 즐겨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자신의 남편에게 엘리사를 위한 방을 마련하자는 제안을 하였고, 남편이 받아들여서 그 집에 엘리사를 위한 방이 마련됩니다. 그저 지나가면서 음식을 얻어먹는 장소가 아니라 하루 묵었다가 지나갈 수 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 여인이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잘해주자 엘리사는 이 여인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환 게하시를 통해 그 여인의 요구를 알아보았는데, 그 여인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럼에도 엘리사는 뭔가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게하시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을지 물어봅니다. 그러자 게하시가 이 여인에게 자식이 없음을 이야기하였고,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자식이 생길 것을 예언하고 떠납니다.

실제로 여인은 아이를 낳게 되었고 아이는 잘 자랐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조금은 성장한 어느 날, 아이는 여인의 무릎에 누워 있던 중에 갑자기 죽게 됩니다. 아이가 죽은 후에 이 여인은 아이를 엘리사의 방에 눕혀놓고 엘리사를 찾아 갑니다. 갈멜산에 도착한 이 여인은 게하시의 안부에 평안하다고 답한 후에 엘리사 앞에 가서 그의 발을 잡고 자신의 아이가 죽었음을 이야기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자신의 지팡이를 가지고 가라고 명령합니다만, 이 여인이 꼭 엘리사가 동행해야 한다고 붙들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이 여인과 함께 수넴으로 와서 아이를 살리게 됩니다.

무망지복, 무망지화, 새옹지마

수넴 여인의 스토리를 쭉 살펴보았는데, 이 말씀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 여인이 얻은 아이를 사자성어로 이야기해보자면, 무망지복(毋望之福)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바라지 않았지만 얻게 된 복입니다. 수넴 여인은 아이를 갖고 싶다고 바라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도 그녀의 본심을 읽었다던가 하나님께 간구해서 그녀의 진정한 소원을 들어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게하시에게 물어본 후에 그녀가 아이를 갖도록 해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자성어를 하나 더 쓰자면,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말하듯이 그녀에게 주어졌던 복은 결국 아이를 잃는 큰 슬픔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는 무망지화(毋望之禍)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외국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어떤 자린고비 할머니가 있었는데, 사람이나 은행을 믿지 못하고 자신이 번 돈은 약간의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뒷마당 땅 속에 묻어놓았다고 합니다. 이 할머니에게는 자식이 셋 있었는데, 자식들에게도 이 돈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간이 흘러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자식들은 어머니의 집을 처분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연히 뒷마당에 묻혀있던 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돈이 상당히 많은 돈이었던 것 같습니다. 평생 동안 모아놓은 돈이니까 상당히 많았겠죠.

그래서 자식 세 명이 이 돈을 나눠 갖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자식 세 명은 전부 망합니다. 갑자기 돈이 생기니까 누구는 사업을 벌였다가 망하고, 누구는 주식 투자하다가 망하고, 또 한 명은 그냥 흥청망청 돈 쓰다 망했습니다. 원하지 않았던 복으로 인해서 오히려 이 세 사람의 인생은 망가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본래 무망지복, 무망지화라는 사자성어의 의미도 그렇고 이와 연결되는 새옹지마의 의미도 한 순간 한 순간의 복이나 화에 연연하지 말고 삶을 살라는데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이야기하는 것은 앞서 말한 사자성어들의 의미와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복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이런 화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복 받기

우선 여러분께서 분명히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 여인이 엘리사에게 행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엘리사라는 인간에게 행해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행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란다는 점입니다. 간혹 엘리사의 기적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종을 잘 대접해야 한다던가, 하나님의 종을 신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도 계신데, 글자 그대로 읽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이 여인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엘리사에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본문을 지금에 대입하여, 목회자에게 잘 대접해야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여인이 복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엘리사를 극진하게 대접했기 때문이지만, 그 근본에는 하나님을 극진히 모셨던 것입니다. 즉 이 여인은 하나님을 자신의 집에 모시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올 때는 깔끔한 옷을 입는다거나 경건한 마음을 하면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내 생활 터전에서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곳에도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갑니까? 평상시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점잖은 옷을 입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나 행동에 대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이 여인은 그런 일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는데 두려움이 없었고, 오히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기뻐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이 여인과 같이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하나님과 함께 살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을 모심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신다면 원하지 않았던 복까지 얻게 되실 줄 믿습니다.

화에 대처하기

다음으로 이 여인이 자신에게 닥친 화를 어떻게 대했는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여인은 복으로 얻었던 자식의 죽음을 겪게 됩니다. 그때 이 여인은 우선 엘리사의 방에 죽은 아이를 눕힙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아이의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고 엘리사에게 향합니다. “아무에게도”에는 남편과 엘리사의 사환인 게하시까지 포함되었습니다. 그녀는 안부를 묻는 게하시에게 평안하다고 말하고 오직 엘리사를 향해서만 갔습니다.

이 여인의 행동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바는 우리가 ‘누구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가?’입니다. 목회자에게 말씀하시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제일 먼저 고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미 아시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이미 알고 계신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먼저 간구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먼저 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먼저 말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물론 성도님들끼리 어려운 일에 대해서 함께 상의하고 또한 아픔을 나누는 일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또 이를 통해서 어려움이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 먼저 말하느냐의 우선순위는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고하고, 하나님과 상의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중요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아무에게도, 특히 남편에게도 아이의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엘리사를 향한,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살려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녀는 남편에게도 아이의 죽음을 말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시대에 죽은 사람을 살려달라는 굳은 믿음이 있으면,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그런 사이비적인 믿음을 가지시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삶의 어려움, 삶에 닥친 화에 대처할 때에 하나님을 향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대처해 나가시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여인은 엘리사를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사실 엘리사는 이 여인과 함께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수넴은 요단과 갈멜산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그 거리는 두 지점의 절반정도로 잡았을 때에 25Km쯤 됩니다. 이 거리는 서울에서 남한산성 또는 인천 부평까지의 거리가 됩니다. 이만한 거리이기에 지쳐서 그랬는지 귀찮았는지, 엘리사는 자신의 종 게하시에게 자신의 지팡이만을 맡겨서 보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붙들고 놓지 않았습니다. 나는 당신 곁에서 떨어지지 않겠다고 엘리사를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엘리사가 그녀와 동행하도록 만들었고, 엘리사가 직접 아이를 살리게 만들었습니다. 이 여인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과부와 재판장 비유에 나오는 과부와도 비슷합니다. 끝까지 재판장을 물고 늘어지는 과부, 끝까지 엘리사를 잡고 늘어진 이 여인, 결국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굳은 믿음도 있었고,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먼저 고하는 신앙도 있었지만, 이 여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그때에 그녀에게 닥쳤던 화가 사라졌습니다.

나가는 말

우리의 삶에서 원하던 원하지 않던 복과 화는 언제라도 닥칠 수 있습니다. 새옹지마의 고사처럼 얻었던 것을 모두 잃을 수도 있고, 잃었다가도 다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단순한 우리 인생의 원리를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느 때에 복을 얻게 되는가? 우리의 삶 전체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살 때에 복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화를 입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먼저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었을 때에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복과 화를 반복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심으로 확실한 복을 받으시고 세상에서 우리를 덮쳐오는 어려움과 화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간구, 또한 끝까지 하나님을 붙드심으로 이겨내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성훈  joey8100@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성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