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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금번 크리스천 영화감독 이성수 선교사가 주관한 <한일 간의 용서를 위한 여행> 다큐영화 제작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양국 간 기독교시민사회 차원에서 시작되는 용서와 화해 운동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씨앗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이 선교사는 우리 일행에 ‘마르투스(martus)’라는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진리의 증언자라는 의미에서였을 것입니다. 대원 중에는 10살 배기 시온 군이 있었고, 칠순의 나이에 접어든 제가 있었습니다.

라이더 10명과 촬영진 10명으로 구성된 우리 일행은 2017년 9월 18일 동이 터오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서울역을 출발하여 10월 19일 도쿄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숱한 어려움과 역경을 뚫고 33일에 걸쳐 2054km를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저는 10월 17일 마지막 구간인 하코네(箱根) 언덕을 내려오다가 사고를 당해서 동료들과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 “용서를 위한 여행” 중 일본 일정

20세기 초 일본은 한반도를 강점(强占)하면서 도쿄에서 시작하여, 시모노세키, 부산, 대구, 서울을 잇는 철도 길을 놓았습니다. 무기와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던 전쟁과 죽음의 길이었어요. 역(逆)으로 그 길을 자전거로 달려, 용서와 화해 그리고 생명과 평화의 길로 바꾸자는 것이었어요. 이선교사의 이러한 꿈을 신문지상을 통해 읽었을 때, 저는 마치 감전(感電)된 것 같은 느낌으로 흥분했어요. 제가 평생 탐구했던 예수의 삶과 가르침 그리고 나눔과 용서의 복음정신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선교사는 출발하기 전 참가자들에게 보낸 세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이 각 지역 각 세대에서 휘파람을 불어 모으신 귀한 보배들입니다. 용서의 복음을 일본에 실어 나르기 위해 부름받은 빛의 사도들입니다...” 그는 우리일행이 하나님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용서와 화해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모인 집단임을 각인(刻印)시켜주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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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위한 여행>(赦しの旅) 개막예배가 제암리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온 신도들과 합동으로 드렸습니다. 1919년 4월 15일, 일본군 중위 아리타는 3.1독립만세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제암리 주민 23명을 교회당에 가두어놓고 집단 학살하고 불을 질렀습니다.

일본 패전 후 최초로 사죄단(謝罪團)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했던 오야마 레이지(尾山令仁) 목사는 일본교회 신도들의 헌금을 모아 제암리교회 재건과 순교기념관 건립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 후로 그는 평생을 걸쳐 일본의 사죄와 한일 교회의 우호증진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오야마 목사는 개회설교에서 금번 용서를 위한 자전거 여행을 통해서 일본교회가 각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우리일행은 순교기념관을 둘러보았습니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글귀가 마음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잊어서는 안 되는 화두(話頭)라고 생각되었어요.

9월 18일 서울역을 출발하여 9월 26일 부산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일행은 8일간에 걸쳐 화성, 공주, 익산, 순창, 강경, 거창, 대구, 김해의 교회들을 방문하였습니다. 금 번 자전거 여행의 뜻에 공감(共感)하는 지역교회로부터 따뜻한 환대와 잠자리를 제공받았습니다.

특히 강경 지역의 답사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 강점(强占) 하에서 최초로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펼쳤던 곳이었는데요. 강경성결교회 신도들은 신사참배를 거부함으로써 역사와 민족 앞에 책임을 다하는 참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보여 주었습니다. 히틀러에 저항했던 독일 고백교회와 본회퍼목사의 신앙운동을 상기(想起)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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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 우리 일행은 부산국제여객선 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로 향했습니다. 9월 28일 시모노세키항(港)을  출발하여 우베(宇部), 히카리(光), 히로시마(廣島), 후쿠야마(福山), 오카야마(岡山), 히메지(姬路), 고베(神戶), 오사카(大阪), 교토(京都), 요카이치(四日), 나고야(名古屋), 신시로(新城), 시즈오카(靜岡), 후지(富士), 후지노미야(富士宮), 하코네(箱根), 야마토(大和)를 경유하여 10월 19일 도쿄(東京)에 도착하였습니다. 다음날 도쿄에 있는 성서그리스도교회에서 폐회예배를 드리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요.

우리 일행은 거의 매일 아침 6시에 기상(起床)하였습니다. 아침기도회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어요. 하루에 평균 80km – 100km씩 달렸습니다. 일본의 도시들을 가로지르고, 산과 들을 달렸습니다.

악천후를 만나 길을 잃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요. 우베에서 시카리를 가는 구간에는 1.8km의 암흑 터널을 지나가야 했어요. 마치 지옥을 뚫고 지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자동차 전용도로로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 나오는 경우도 있었고요, 때로는 일본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달리는 동안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잇달았습니다. 좁은 도로에서 장차(長車)들과 함께 달리며, 생명의 위험에 노출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일행은 이 일을 계획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맡기고, 오직 페달을 밟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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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하루 전 날이었어요. 새벽부터 엄청난 비가 내렸습니다. 우리 일행은 자동차로 후지산을 올랐습니다. 안개와 비로 덮인 후지산의 웅장한 모습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전망대에서 후지산의 장엄한 기운을 느끼며 일본교회와 복음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10월 17일도 비가 계속 내렸어요. 허나, 우리일행은 하코네 정상을 향해 페달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도쿄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었는데요. 늦은 오후에 정상(頂上)에 도달하여 편의점에서 마지막 휴식시간을 가졌습니다. 피로가 쌓인 몸으로 저는 야마토(大和)로 가는 다운 힐 구간을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시속 40km였어요. 비가 내리고 있어 길이 미끄럽고 안개 때문에 시야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커브 경사 길을 돌다가 저는 그만 브레이크를 잡지 못했습니다. 순간 우두둑 하며 갈비뼈들이 부러지고 몸 전체가 파열(破裂)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었고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지요. 얼마 안 있어 앰뷸런스 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오다와라 시민병원으로 호송되었습니다. 폐를 둘러싸고 있는 갈비뼈 5개가 부러졌고, 골반 뼈가 으스러졌습니다. 위급상황이었습니다. 담당의사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심장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박았습니다. 폐에 차오르는 공기(氣胸)와 피(血胸)를 밖으로 빼내기 위해서였지요. 병원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저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입니다만, 사고가 있던 당일 아침, 기도 중에 이성수 선교사 부인께서 119에 대한 환상(幻想)을 계속 보았다고 했습니다. 사고 당시, 우연히 내 뒤에 일본인 119 구조대원이 따라오다가 사고현장을 목격하게 되었고요, 그는 즉시 앰뷸런스에 연락했다고 했습니다. 때마침 병원에 응급환자를 내려놓고 병원 문을 나서던  앰뷸런스 대원이 전화를 받았고요, 즉시 차를 돌려 사고현장까지 달려왔다고 했습니다. 사고발생 7분 후였습니다.

사고가 발발하면서부터 병원으로 후송되는 과정, 그리고 병원에서의 신속한  치료 프로세스 하나하나가, 마치 톱니바퀴 돌아가듯이 빈틈없이 진행되었어요. 저는 이 모든 과정에서 내 생명을 구하기 위해 활동하고 계신 하나님의 손길과 순간순간 나의 삶 속에 임재(臨在)하고 계신 하나님의 현존(現存)을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세고 계신 하나님(루12:8),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큐(Q)의 예수말씀(마10:29)들은 한계상황(限界狀況)에 부딪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과 신비를 체험했던 신앙공동체에 의해서 우리에게 전해졌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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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깨어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과거 역사의 트라우마(historical trauma)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서로가 하나임을 확인해야 합니다. 용서와 화해를 주축으로 한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실현은, 하나님께서 일본과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시대적 과업일 것입니다.

저는 금번 여행을 통하여 한일 간의 용서와 화해는 더 이상 미래의 숙제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현재진행형의 사건임을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금 번 여행 동안 우리일행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용서와 화해의 모범을 보여주신 일본교회 신도들에게 심심(深深)한 사의(謝意)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김명수  kmsi12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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