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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녹두빈대떡이 먹고 싶습니다지나간 시절을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
박철 | 승인 2018.01.26 21:25

나이가 들어가면서 속이 헛헛해 지는 게, 먹을 것이 당깁니다. 아내가 이따금 파전이나 배추전을 부쳐주면 감지덕지해서 먹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다른 데 가 있습니다. 실은 녹두빈대떡이 먹고 싶습니다. 요즘은 녹두빈대떡을 잘 안 해먹습니다. 추석이나 설에 먹어보고, 다른 때는 구경조차 하기 힘든 음식이 되었습니다.

녹두부침개는 손이 많이 갑니다. 녹두를 타서 물에 불려 껍질을 벗겨내고, 또 믹서나 맷돌에 갈아서 만들어야 하니, 시간도 많이 가고 성가셔서 잘 안 하려고 합니다. 나의 유년시절, 녹두빈대떡을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생각했습니다. 빈한한 집안 살림에 언감생심, 녹두빈대떡을 부쳐 먹었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얘기이지요. 나의 아버지는 본래 경찰공무원 출신이셨는데, 월급도 박봉이고 전근을 많이 다녀야 하는 직장이므로 사임을 하고, 이것저것 사업이라는 핑계로 손을 대셨지만 크게 재미는 못 보셨습니다.

아버지는 약주와 여자를 좋아하시는 호방한 분이셨습니다. 집에 못 들어오시는 때도 많았고,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시며 술을 자셨으므로 조금 과장하면 해장을 하기 위해 띄엄띄엄 집에 들어오셨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남편에게 바가지도 긁지 못하고, 당신의 남편이 하라는 대로만 하시는 순종지향형 어머니셨습니다. 잘못은 아버지가 하시고도 집안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시는 분은 늘 아버지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 안부가 궁금하시던가, 아니면 긴요한 용무가 있을 시는 꼭 내게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아버지의 단골 술집 몇 군데를 내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야! 철아, 아버지 어디계신지 알아보고 오너라” 아니면, “야! 철아, 아버지한테 가서 엄마가 빨리 오라고, 집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씀드려라. 꼭이다.”

나는 아버지 단골 술집, 일명 대폿집을 찾아가서 술집 안을 기웃거립니다. 술집여자들의 간드러지는 웃음소리가 들리고, 간간히 아버지 목소리도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술집 문을 열고 ‘아버지!’ 하고 부를 만한 배짱이 없었습니다. 술집 문 앞에서 서성이면서 나를 봐주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한겨울이면 발이 시려워 종종걸음을 하며 술집 안을 살핍니다. 아버지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술집에서는 녹두 빈대떡 구수한 냄새가 밖으로 풍겨 나오고, 나는 연신 침을 꼴깍꼴깍 삼킵니다.

술집에서는 손님들에게 팔기 위해 미리 녹두빈대떡을 부쳐놓았다가 프라이팬에 슬쩍 덥혀 상에 내놓곤 했는데, 내가 녹두빈대떡 맛을 아는지라 어머니의 심부름은 안중에도 없고, 아버지가 나를 얼른 발견해서 내 손에 빈대떡이라도 한 장 쥐어주길 바라면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더러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술집 밖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시곤, 녹두빈대떡 서너 장을 신문지에 싸서 주시면서 “빨리 집에 가서 누나랑 동생들이랑 나눠 먹어. 그리고 다음부터는 아버지 찾으러 술집에 오지 마라. 알았지? 다음부터 오면 혼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날은 수지맞는 날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식은 빈대떡을 다시 데워서 우리 형제들에게 나눠주시면 먹는 게 아까워 천천히 조금씩 떼어 먹었습니다. 녹두빈대떡이 입에서 녹는데 그 맛이 환상적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내가 6년 동안 다니던 화천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졸업식 사은회에 필요한 음식을 애들마다 한 가지씩 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고민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음식을 가장 잘 잡수실까?’, ‘엄마가 음식을 만들어 주실까?’ 한참 고민을 하다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옳다, 바로 그거다. 녹두빈대떡!’ 당장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는 “녹두빈대떡을 부쳐 가려면 돈도 많이 들어가고, 또 맛있게 부칠 자신이 없으니 돈 주고 사다 드리자”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녹두빈대떡 열장을 아버지 단골술집에서 사다가 접시에 켜켜이 담아 졸업식 날 갖고 갔습니다. 눈물의 졸업식을 마치고 사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과 지역 유지 분들, 학부모들까지 해서 왁자한 술판이 벌어졌습니다. 술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빈 접시를 어머니가 꼭 갖고 오라고 했으므로, 두어 시간 지난 다음 잔치가 끝났는데 가 보았더니 녹두 빈대떡 열장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아무도 손댄 흔적이 없었습니다. ‘식어서 안 잡수셨을까? 식은 빈대떡도 맛이 괜찮은데.’ 어린 나이에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모멸감이 밀려왔습니다.

다른 졸업생들은 어머니들이 따라와서 선생님들 옆에서 ‘이것도 잡숴보세요, 저것도 잡숴보세요.’ 해서 음식이 다 팔렸는데. 녹두빈대떡은 손 하나 대지 않았으니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 때 어린 생각에 ‘선생님들이 우리 집이 못 산다고 무시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덕분에 집에 와서 누나와 동생들이랑 맛있게 나눠 먹었지만, 녹두빈대떡 이야기는 유년시절 나의 작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달 가난한 동남아 이웃들에게 좋은 일 많이 하는, 그리고 빵 굽는 목사로 알려진 평화교회 이수기 목사님이 내가 녹두빈대떡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그걸 읽고 네팔, 캄보디아산 녹두를 보내주셨습니다. 참 고마운 인연입니다. 그걸 잊고 지내다가 불현 듯 녹두빈대떡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유년시절 강원도 화천 하리 어느 술집 앞에서 ‘아버지가 얼른 나를 발견해서 녹두부침개 한 장만 주셨으면’하고 한겨울 발이 시려워 발을 동동 구르던 내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 연세보다도 더 나이 들어 그 때 일을 생각하게 되니, 마음이 짠해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녹두빈대떡'은 나의 유년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또 하나의 단추였습니다.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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