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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쇠 같은 자에게 임한 주님의 은총선교현장에서 선교사가 겪는 삼난에 대하여 ②
이옥희 | 승인 2018.01.28 00:02

“삼고”(三孤)도 문제였지만 “삼난”(三難)도 큰 문제였다. “삼고”(三孤)는 마음의 문제, 내적인 문제였으나 “삼난”(三難)은 현실적인 생활과 사역의 문제였고 외적인 문제였다.

나는 본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기질이어서 문제를 실제보다 가볍게 보며 잘 참고 견디어 끝끝내 극복하곤 하였다. 인도로 떠날 때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처음엔 오만가지 생각과 계산을 하면서 힘들어 하기도 하였지만 일단 가기로 결정을 한 뒤에는 ‘인도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니 사랑으로 지극 정성을 다하면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 것’이라고 편하게 생각을 하였다.

하나님께서 재주가 하나도 없는 나에게 좋은 달란트 하나를 주셨는데 그것이 기다리는 일과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와 집념, 의지였다. 나는 나의 사랑과 정성으로 무쇠도 녹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나의 사랑과 지극 정성이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음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나는 “삼난”(三難)에 직면하여 무식하고 용감한 자신에 대하여 장탄식을 하곤 하였다.

말 못 하고 삼년, 듣지 못 하고 삼년

첫 번째 어려움은 언어와 문화에서 왔다. 영어 실력이 겨우 입을 떼는 정도였는데 힌디가 주언어인 북인도는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오토 릭샤를 탈 때, 거리나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 길을 물을 때 마다 나는 벙어리, 반벙어리가 되었다. 오토 릭샤를 타고 다니는 가난한 외국인 벙어리나 반벙어리는 동물원의 원숭이마냥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 이옥희 선교사

어디서나 무엇에서나 가격 흥정도 어려웠고 속임 당하여도 별도리가 없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형제자매를 데리고 병원이나 외국인 관리사무소에 가도 어려움은 매한가지였다. 우리를 도와주는 대부분의 인도 친구들이 인도 계급사회에서 맨 밑바닥에 있는 달리트와 아디바시이기 때문에 그들의 안내를 받는 한 그만큼의 천대와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달리트, 아디바시와 지내면 높은 계급 사람들과 사귈 수 없고 높은 계급과 지내려면 그 만큼의 경제력과 학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므로 친하게 지내는 것도 현실적으로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정치, 경제, 종교적적으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높은 계급 사람들은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었고 황인종인 우리를 내려다보며 외국에서 온 달리트 정도로 취급하였다. 높은 계급 인들의 철옹성 같은 계급의식, 윤회설, 업설에 숨통이 막힐 지경이었고 달리트, 아디바시들의 저자세와 비굴함에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높은 계급도 낮은 계급도 다 비인간화된 인도사회는 그들의 주장과 선전대로 초월과 금욕, 자유와 해방과는 거리가 먼 땅이었고 문자 그대로 거대한 지옥이었으며 회개와 참회, 심판과 새 역사가 필요한 고난의 땅이었다.

구차하고 부끄럽다

두 번째 어려움은 일을 한 곳에서 생활비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일은 인도에서 하고 생활비는 따로 한국에서 모금해서 받아야 하는 것이 참으로 구차하고 성가셨다. 많든 적든 일을 한 곳에서 생활비가 나와야 하는데 선교사의 비즈니스는 그 특성상 현장에서 생활비를 받을 수가 없다. 특별히 개교회나 단체가 파송한 특별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선교사들은 준비된 것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도 자신이 모금을 해서 받아야 하므로 고달프기 그지없다.

모금을 위해서 교회와 교우,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에게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일을 과장하기도 하고, 포장하기도 하고, 숨기기도 하는 일이 발생한다. 남의 것을 가로채기도 하고 일을 날조하기도 한다. 세상에 어떤 직업이 일은 여기서 하고 월급은 저기서 그것도 자신이 모금하여 받는 직업이 있을까? 여기서 일하고 생활비를 저기서 모금해야 하는 선교사의 생활은 은혜가 아니면 감당하기 참으로 어렵다.

아무도 지켜주는 사람이 없다

세 번째 어려움은 비자와 안전의 문제이다. 기득권을 가진 종교와 그 종교로 인하여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종교와 전리를 전하는 선교사는 자신들과 자기 나라의 평화와 안전을 깨는 불순분자에 불과하다. 종교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의 종교와 정면충돌하는 신학체계와 이론을 지닌 다른 종교를 위험시하며 경계한다. 그런 의식들이 ‘반개종법’이라는 법과 조례, 습관, 배타적인 각종 종교 행사로 나타난다. 반개종법은 외국인들에 의한 전도를 불법으로 규정하며 전도하려는 외국인들의 비자 발급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무리 열정과 집념으로 십자가의 진리를 선포하며 나누고 섬기려 해도 비자를 받지 못하면 하던 일은 중단되어야하고 비자를 받고 들어갔어도 누군가에 의해 신고를 당하면 그 나라의 법에 의하여 추방당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비자의 문제는 난제 중의 난제다.  안전의 문제는 도둑을 맞는 다거나 협박을 받는 일, 신고 당하는 일 등등인데 언제 어디서나 당할 수 있는 문제이고 선교사 본인이 아무리 유의를 해도 막을 수 없는 문제이므로 더욱 힘든 일이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던 팔자타령?

이국의 땅에서 “삼고삼난”(三孤三難)을 겪으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팔자타령’을 많이 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목회자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면서 그들을 참으로 부러워하였다. 때로는 부러움이 지나쳐서 시샘이 되고 불평과 원망이 되었다.

한국 목회가 아무리 힘들다고 하여도 모든 일들을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교우들과 함께 하지 않는가! 한국 목회자들은 장로, 권사, 집사들과 함께 교회 재정과 행정 문제를 협의하며 역할 분담을 하고 있지 않은가! 심방도 함께하고 구역예배도 역할 분담하고 있고, 부교역자들과 교사들과 함께 교육 분담을 하고 있지 않은가! 성가대와 예배 위원들과 예배 분담을 하고, 모든 관리를 관리인과 책임자들과 함께 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 목회가 아무리 힘들어도 이웃교회 목회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기도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은가! 한국 목회가 아무리 힘들어도 당회, 시찰회, 노회, 총회의 보호를 받지 않는가! 한국 목회가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 나라 말로 자기 백성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가! 한국 목회가 아무리 힘들어도 생활비를 교회 밖에서 따로 모금하는 수고를 손수 하는가! 한국 목회가 아무리 힘들어도 비자 문제로 고통을 겪는가! 안전의 문제로 시달림 받는가!

한국에서 목회하는 자들이 받은 축복이 너무 부러웠다. 어느 날 주님께 ‘한국에서 목회하는 사람들은 무슨 복이 많아서 지네 나라에서 지네 나라 말로 지네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저는 무슨 죄가 많아서 남의 나라에서 남의 나라 말로 남의 백성에게 힘들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라고 징징거리며 계속 여쭈었다.

마당쇠에게 임한 주님의 은총

주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다. 환상 속에서 주님께서 마을 안에 있는 서당에 들어 가셨다. 예수님께서 서당에 오셨다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갓을 쓰고 하얀 도포를 입고 서당으로 몰려들었다.

나는 예수님 바로 옆 자리나 앞자리에 않으려고 서둘러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대청마루 끝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던 것이다. 사람들은 갓을 쓰고 하얀 도포를 입고 책 같은 것을 들고 있는데 나 혼자 머리에 패랭이를 썼고 고의적삼에 짚신을 신고 손에는 빗자루를 들고 있었다. 

야속하게도 환상 속의 나는 그들과 다른 신분의 마당쇠였다. 그럴 리가 없다고 강한 부정을 했지만 차림새가 내가 종임을 증명하였다. 나는 힘없이 마당으로 내려서며 부러운 눈초리로 서당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대청마루 가까운 쪽으로 가서 귀를 쫑긋 세웠다. 하지만 마당쇠인 나는 모임에 늦은 사람들을 위해 계속 대문을 열어 주어야 해서 말씀에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말씀듣기를 포기하고 마당을 둘러보며 쓰레기를 줍고 댓돌 위에 있는 신발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쓰레기장을 정리하며 집회가 끝나길 기다렸다.

1부 집회가 끝나고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나는 토방 아래서 주인의 명을 기다렸다. 주님께서 나오셔서 마당 안을 거닐다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 안타까운 네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다.

“내가 너를 안다. 너는 나를 보고 있고 저들은 나를 듣고 있다. 너는 나와 동행하지만 저들은 말씀으로 나를 기억한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눈물이 시냇물처럼 흘러 내렸다. 그리고 “삼고삼난‘으로 일희일비하며 한국 목회자들을 부러워하며 시샘했던 마음이 말갛게 씻겨 내렸다. 부끄러움과 감동으로 주님 앞에 엎드린 나는 ’고난, 고통,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종으로 살겠다‘고 다짐하였다.

마당쇠 선교사로 살았던 날들의 기억과 경험이 지금도 나를 낮은 자세로 살도록 붙잡아 주고 있다. 끝까지 패랭이를 쓰고 무명 적삼에 홑바지를 입고 짚신을 신은 주님의 마당쇠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살고 싶다. 마당을 쓸고 똥 장군으로 거름을 나르고 아궁이 재를 퍼내며 문간방에서 집을 지키며 주인의 뜻에 순종하며 주인의 마음을 아는 종으로 살고 싶다. 

“삼고삼난” 의 불안과 역경의 고뇌로운 시간을 은혜로 극복했듯이 앞으로 남은 시간도 하나님 나라에서 희년공동체를 지향하며 우주적인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는 종으로 "삼고삼난"(三孤三難)의 삶을 겁 없이 살고 싶다.

이옥희  yiso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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