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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길 위의 존재(요나 3:1-10; 고전 7:29-31; 막 1:14-20)예수의 하느님나라운동, 나눔과 평등
에큐메니안 | 승인 2018.01.31 00:36

이승만 목사님을 기억하며

3년 주기로 반복되는 성서정과를 따라 하늘뜻을 펼치기에 같은 본문의 3년 전 하늘뜻펴기를 읽어보았습니다. 당시 설교의 첫 부분을 그대로 인용하고자 합니다.

지난 수요일 아침 바른교회 아카데미에서 올해 책으로 출간될 세계와 한국 개신교의 신학자 실천가 18명 중 한분이신 문익환 목사님에 대한 글을 부탁받고 며칠을 끙끙대다 글을 마감하고 이를 담당자에게 보내기 위해 이멜을 여는 순간 저는 거기서 미국 아틀란타에 거주하시던 이승만 목사님의 부고를 알리는 메일을 보았습니다. 83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향린교회에도 오래 전에 오셔서 하늘뜻을 펼치셨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신학적으로는 안병무 교수님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면 목회에 있어서는 이승만 목사님이 저의 스승이셨습니다. 이승만 목사님은 평양 출생으로 평양 성화신학교를 다니던 중 한국전쟁이 일어나 아버님 이태근 목사님이 공산당에 의해 순교를 당하시자 목숨의 위협을 느껴 어머님과 여동생 넷을 두고 남동생과 함께 남하를 하십니다.

이후 아버님의 원수를 갚겠다고 해병대에 입대하여 5년간을 복무하고 미국 유학의 길을 떠나 그 이후 60년을 미국에서 사셨습니다. 그리하여 미국교회협의회 동양인 최초의 회장, 미국 장로교 동양인 최초의 총회장을 지내시고 유니온 장로교 신학대학에서 선교학교수로 일하셨습니다. 60년대 루이빌대학의 교목으로 계실 때는 마틴 루터 킹목사와 함께 흑인민권운동에 앞장을 서시었고, 70년대에는 박정희유신독재에 맞서 남한의 민주화운동을 위해 앞장서서 일하셨고, 80년대 이후 돌아가시기까지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온 몸을 바쳐 일하셨습니다.

남한에 문익환목사님이 계셨다면 해외에는 이승만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평양 봉수교회 첫 건물을 세우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셨고, 얼마 동안은 중앙정보부가 블랙리스트에 올려 고국에 들어오지도 못하셨고, 빨갱이라고 하는 수많은 비난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화해의 사도로서 일하여 오신 분이십니다.

1981년 제가 뉴욕에 정착하면서 목요기도회에서 처음 만났고, 해외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중심 기구였던 북미주기독학자회에서 목사님을 도와 일을 했습니다. 당시 이 기독학자회를 주도하시던 분들이 대부분 이 목사님 또래였습니다. 저하고는 연령에 있어 20년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그럼에도 40대 중반이었던 저를 부회장으로 뽑아주셔서 중요한 책임을 맡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승만 목사님은 저의 목사 안수식의 설교자로, 첫 담임목회 임직예배 설교자로, 한인회중과 미국회중과의 통합교회 기념예배 설교자로, 이 교회를 떠나 향린교회로 올 때에는 이임예배 설교자로, 이외 수많은 교회와 통일운동 과정에서 향린교회로 오기 전까지 근 20년동안 가까운 거리에서 목사님과 함께 일해 왔습니다. 제가 미국장로교 대표노회인 워싱톤 수도노회에서 동양인 목사 최초로 노회장을 역임하자 동료들은 이승만 목사님 뒤를 이어 미국장로교 동양인 두 번째 총회장을 하면 좋겠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얘기를 하곤 하였습니다. 

얼마 전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긴 하였지만, 돌아가시기 전 미국 방문 길에 한번은 뵐 수 있으리라 여기고 있었는데, 정말 우연찮게도 문익환 목사님 관련한 글을 마치자 말자 저는 이승만 목사님 부고 소식을 듣고 눈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1월 14일은 이승만 목사님 부고일이었고 지난 일요일인 18일은 문익환 목사님 21주기가(올해는 24주기) 되는 날이었습니다. 지난 주 대구 새민족교회에서 하늘뜻을 마치면서 저는 문익환 목사님의 《꿈을 비는 마음》이라는 통일 시를 읽기도 했었습니다.

1978년 이승만 목사께서 미국 장로교 중동지역 총무로 일하실 때, 리비아에 출장을 가셨다가 북쪽 대사관을 찾아가 어머님의 생사를 알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3일 후에 오라고 하여 다시 찾아갔더니 북에서 원한다면 지금 바로 올 수 있도록 초청장을 보내주겠다고 해서 당시로서는 너무나 갑작스런 일이라 며칠간의 고뇌와 기도 끝에 예정에 없었던 평양을 가시게 되었는데, 그때는 박정희 유신독재가 극에 달하고 남북이 극한 대립하던 상황인지라 아내에게만 이 사실을 알리고 가셨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김일성 주석의 어머님 강반석 권사의 외삼촌이시던 강량욱 목사께서 이승만 목사님의 아버님 이태근 목사님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떠날 때는 혹 어머님을 뵐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갔지만, 도착해서 보니 어머님은 이미 몇 해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27년 만에 만난 여동생 네 명과 함께 어머님의 무덤에서 하염없는 눈물만 흘렸습니다.

평양을 떠나기 하루 전 의사로 일하고 있는 막내 여동생과 단 둘이서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고 합니다. 생후 6개월 되었을 때 집을 떠났으니 서로를 기억하는 기억이 있을 리는 만무하였지만, 며칠 동안 계속 같이 지냈기에 그날 밤 서로는 매우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여동생이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오빠 목사가 뭐하는 사람이야?' 사실 목사의 딸이 목사가 뭔지 모른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 슬픈 일이었지만, 가능한 한 여동생이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로 사회에서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정도의 말씀을 하셨겠지요.

그런데 이 얘기를 듣고 난 여동생 하는 말이 '그러면 목사는 나랑 별 차이가 없네.' 하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처음 의대를 나와 시골의 한 병원에서 일할 때에 심한 화상을 입은 환자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응급처치를 하고 나서 다른 치료방식이 없었던지라 자기 왼팔의 안쪽 피부를 떼어 내서 이식수술을 했노라고 하면서 흉터를 보여주더라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이런 얘기 잘못하면 북조선 찬양 고무죄에 해당하기에 아주 소수의 믿을만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만 이 얘기를 하셨습니다. 지금 이 얘기도 제가 페북에 올리면 국정원에서 저를 국가보안법 4조 반국가단체 고무찬양 죄로 고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당시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에는 북에 대해 알려진 게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그냥 남쪽에서 배운 대로 지옥 같은 세상일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는 차가운 명령만 있지 사랑이나 자발적인 헌신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더구나 의사가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환자에게 자기 피부를 떼어내서 치료를 해주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던 일이고, 자본주의 미국사회에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3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신 이승만 목사님을 추모하는 것은 그분이 목사로서의 단순한 화해자가 아니라 아버님을 죽인 원수들을 예수 사랑으로 품고 민족의 하나됨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셨던 참으로 고귀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이승만 목사님

요즘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 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까 내리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트럼프 못지않게 하도 정신 나간 발언을 너무 자주 하는 홍거시기라는 자한당의 대표는 물론이고 남한정부의 올림픽 위원이라는 사람이 정치를 떠나 스포츠를 통한 인류의 하나됨이라는 올림픽 정신에 따라 중앙사무처에서 주도적으로 이룬 북조선 참여를 반대하는 편지를 보낸 정신 나간 국회의원이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홍 대표는 이번 밀양병원의 화재 참사 또한 자신이 수년 동안 이 지역을 담당하는 직전 도지사였으니 법적 책임을 굳이 따지자면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 이제 겨우 반년을 보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일을 보면서 도둑놈이 오히려 배를 든다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의 고사성어가 그대로 들어맞는 것을 봅니다. 트럼프와 같이 아무리 보아도 인간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이 분을 도지사로 모시고 견뎌 오신 부산 믿음교회 교우분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목사의 정치적 발언?

최근에 어떤 목사님이 이런 글을 페북에 올렸습니다. “존경하는 권사님께서 ‘목사는 정치적 발언을 해서는 안 되고, 오직 영혼 구원에만 관심해야 합니다.’라고 하셨는데, 이에 동의합니다.” 정치적 활동 속에 영혼 구원은 포함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아니면 영혼 구원이라고 할 때, 그 영혼은 육체 없이 존재하는 허공 속의 영혼인지? 하는 물음을 던지면 이런 발언이 얼마나 모순에 찬 ‘정치적 발언’인지 금방 알 수 있지만, 그보다는 그냥 예수는 어떤 분이셨는가에 대해 답을 찾아보는 것이 보다 간결하고 정확할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은 다른 세 복음서 보다 먼저 씌어졌고, 다른 세 복음서 저자들은 모두 이 마가복음을 읽고 여기에 대해 자신의 예수 이해에 따라 그 내용을 첨삭(添削)하였습니다. 그러나 마가가 제시하는 예수 이해에 대해 근본적인 이의 제기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네 복음서가 모두 동의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건 예수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세례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로 인침을 받는 중요한 종교 예식이긴 하지만,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당시의 종교정치 상황을 감안하여 본다면 이는 매우 중대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뿌리를 둔 제사장들만이 모든 종교행사를 행할 수 있었을 뿐더러 게다가 할례는 있었지만, 세례는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모세가 받은 율법에는 없는 신앙행위였습니다. 당시에 이를 행했던 집단은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들이 로마와 헤롯권력에 기생하는 부패한 종교집단으로 비난하고 사해 근처 쿰란지역에서 별개의 신앙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던 에세네파에서 행하던 예식이었습니다. 곧 세례를 행하거나 받는 행위는 반 성전 행위에 속하는 일종의 저항이자 반 율법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이러한 세례 운동에 앞장 서 있었고, 거기에 동의한 것입니다.

출신으로 본다면 세례 요한의 아버지 스가랴는 누가복음에 의하면 성전의 제사장이었지만, 세례 요한 자신은 제사장이 아니었고, 광야 출신 곧 떠돌이 예언자였던 것입니다. 세례는 오늘날 교회의 눈으로 본다면 자신의 죄를 회개한다는 의미에서는 종교 영역에 속하는 일이지만, 이천년 전 예수 당시에는 유대정치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 체제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정치행위였던 것입니다. 여기에 로마군사권력에 아부하며 호의호식하는 지배층에 불만을 갖고 있었던 억눌리고 가난한 백성들이 호응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촛불운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던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힙니다. 이런 세례운동으로 말미암아 지배자들로부터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배다른 남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아내로 삼는 헤롯왕의 탐욕한 행위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그는 목이 잘려 죽임을 당합니다.

그의 투옥과 죽음은 영혼 구원 복음을 전하다 일어난 일이 아니고 정치 권력자 헤롯왕을 비난하는 정치적 발언과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예루살렘 성전 체제를 뒤흔드는 반동의 행동으로 인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1장의 말씀은 단순히 예수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것뿐만이 아니라, 예수가 하느님 나라 운동을 펼치기 위해 세상에 등장하게 된 시점이 바로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히자”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세례 요한의 뒤를 이어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힘으로 하지 못하게 된 세상 권력자에 대한 정치 비난을 계속 하기 위해 나왔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서는 그 이후 약 50년의 세월이 흘러 예루살렘 함락 이후 반로마적인 발언이 극도로 감시를 받던 상황에서 기록되었기에 이를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이렇게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론으로 말하자면 예수의 하느님 나라 복음 운동은 철저하게 정치적 활동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고 하는 것 자체가 마치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듯이 논리는 가능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종교와 정치는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입니다. 정치나 종교나 그 방법과 주장은 다를지라도 그 지향하는 목표는 같습니다. 그건 이 땅에 정의와 평화, 생명이 이루어지는 평등한 사회 건설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모범기도에서 우리는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지, 우리 영혼이 세상을 떠날 때에 천국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영혼 구원이라는 말이 성서에 등장하고 있지만, 그건 부수적 언어이지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의 본질 언어는 아닙니다.

두 길 사이에서

제가 오늘 하늘뜻펴기 제목을 ‘(두)길 위의 존재’라고 했는데, 이는 단지 ‘길 위의 존재’라고만 하면 우리의 삶이 나그네의 삶이라는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어 ‘둘’이라는 곧 길을 걷되 이 길 위에서 항상 고민하고 성찰하고 길을 선택해야 하는 실존적인 존재임을 강조하고자 함입니다.

성서는 창세기 처음부터 선악과열매를 앞에 두고 명령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이를 어기고 먹을 것인가 하는 두 길 사이에서 고뇌하는 첫 인간 아담과 하와에 대해 얘기합니다. 모세는 시내산으로부터 받은 십계명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전하면서 이를 따르면 축복이 오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가 오는 두 길을 얘기합니다. 여호수아 또한 백성들에게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서 모세가 광야에서 전한 율법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가나안의 다른 민족들이 걸어가는 길을 따를 것인지를 묻습니다. 예언자의 대표인 엘리야는 갈멜산 정상에서 아합왕과 이세벨 왕후가 후원하는 바알신과 아세라신의 사제 850명과 대결하면서 백성들에게 왕의 길과 야훼의 길 사이에서 결단을 촉구합니다. 

예수의 말씀은 더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넓은 길과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좁은 길이 있는데, 좁은 길이 생명의 길이요 진리의 길이요 구원의 길임을 설파하십니다. 또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인간은 야훼 하느님의 길과 세상 성공을 보장하는 맘몬 신의 길을 동시에 따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기 인생의 존재 의미를 묻는 순간이 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물론 그중에는 세상사에 묻혀 이런 질문을 하지 못한 채 급급하게 쫓겨 사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사고사가 아닌 한, 아니 사고사라 하더라도 저의 죽음 이해에 따르면 마지막 순간 이 질문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 살아오면서 이런 질문에 소홀했던 사람들은 죽음의 천사가 자신의 방문을 두들길 때, 모두 회한과 후회 그리고 죄책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조금만 더 삶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죽음의 천사는 이미 여러 차례 그런 기회를 주었다고 말하면서 그 요청을 매몰차게 거절합니다.

저는 작년에 이어 12-1월 한 달 동안 산티아고의 까미노 순례 길을 걸었습니다. 몇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명상하고 성찰하며 기도하는 일, 새로운 지역을 밟아가면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자연의 경치와 그 도시가 겪어온 역사의 단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일, 그리고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루소의 고백록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 <걷기의 인문학>의 저자 레베카 솔닛은 “인간의 의도적 행위 중에 육체의 무의지적 리듬(숨을 쉬는 것, 심장이 뛰는 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 보행이다. 보행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돠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보행의 리듬은 생각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 속을 지나가는 일은 생각 속을 지나가는 일의 메아리이면서 자극제이다.”(21쪽)

예수의 첫 번 제자로서 오늘 본문에도 등장하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의 로마식 이름인 스페인 서북부에 위치한 산티아고를 향한 순례 까미노 길은 잘 알려진 루트만도 십여 개가 넘고 유럽인들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집에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정해진 길은 없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길에 방향 표시가 되어 있고, 지방 정부가 후원하는 값싼 공동 숙소가 계속 이어져 있는 길은 대여섯 개에 불과합니다. 일 년에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대체로 수만 명에 이르지만, 대부분은 날씨가 좋은 여름철에 걷고 우기에 해당하는 추운 겨울에 걷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올해 처음 열흘 동안은 숙소에서 언제나 혼자였고 그 이후 함께 잠을 자더라도 대 여섯 명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두 번 다 일부러 겨울을 택했습니다.

▲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조헌정 목사 제공

여름 해변을 찾는 사람과 겨울 해변을 찾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단순 비교는 때로 위험하기도 하고 또 항상 예외가 존재하기 마련이긴 하지만, 여름 해변을 즐겨 찾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외향적 성격의 소유자이고, 겨울 해변을 찾는 사람들은 대체로 홀로 자신과의 대화를 찾는 내향적 성격의 사람일 가능성이 높지요. 마찬가지로 겨울 까미노를 걷는 사람들은 혼자 걷는 사람들이 많고, 또 말을 걸어도 말수가 매우 적습니다.

이번에 제가 걸은 길은 흔히 포르투칼의 수도 리스본에서 출발하기에 포르투칼 까미노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제가 작년에 걸었던 프렌치길 보다는 덜 알려진 길입니다. 그런데 프렌치길은 야고보 사도가 걸었던 길은 아니고 이는 약 천 년 전 신앙 회복 차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순례함으로 인해 만들어진 길입니다. 반면 포르투칼 까미노는 야고보 사도가 직접 걷고 복음 전파를 했다고 하는 전설이 담겨 있는 길입니다.

그러나 시설이나 풍경에서 본다면 프렌치길이 더 잘되어 있습니다. 포루투칼 길은 아직도 개선되어야 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간 이후부터의 길은 프렌치 길에 못지않고 또 이 길만 걷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포르투칼에는 백 년 전 성모 마리아가 연속하여 여섯 번 그것도 매월 13일에만 출현했다고 하는 파티마라는 성지가 있어 또 이 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세 명의 어린 목동에게만 나타났는데, 마지막에는 7만 명의 운집한 사람들이 태양을 비롯한 자연계의 이상 현상을 목격한 것으로 당시 신문에도 기사화가 되었습니다. 하여간 이곳 포루트칼과 스페인에서는 예수 신앙이 단지 교회만 들락날락 거리는 신앙이 아니라, 이렇게 순례와 함께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은 개혁을 추구하는 오늘 남한 교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도시의 길과 광야의 길

성서는 크게 보면 두 길을 대비하여 말하는데, 시편 1편이 대표적입니다. 의인이 걸어가는 길과 악인이 걸어가는 길. 전자는 야훼의 길, 율법의 길, 정의와 평화의 길로 말해지고 후자는 이와 반대되는 사탄의 길, 세상 욕망의 길, 불의와 전쟁의 길로 말해집니다.

그런데 이 두 길을 장소에 대비하여 보면 전자는 광야와 연계되어 있고, 후자는 성/도시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하느님의 말씀인 율법을 받았고, 엘리야, 세례 요한, 예수 모두 광야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히브리어로 광야(‘므드바르’)는 하느님의 말씀이 존재하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반면 인류 죄악의 상징인 소돔과 고모라는 성이며 바벨탑 또한 바벨론의 도시를 상징합니다.

오늘 요나는 앗시리아의 니느웨 성에 가서 회개의 복음을 외칩니다. 그러자 왕으로부터 신하 백성 심지어는 짐승에 이르기까지 다 회개했다는 일종의 우화 얘기가 나오는데, 이는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민족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 또한 구원받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대민족의 선민사상 이 갖는 위험성 곧 배타적 구원에 대한 일종의 비판입니다. 나의 원수라고 해서 내가 믿는 하느님의 원수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을 넘어 하느님을 자신의 종으로 여기는 엄청난 죄악입니다.

하여간 요나서에는 앗시리아가 죄악에 빠진 것은 야훼신이 아닌 다른 이방신을 섬겨서 그랬다는 말도 없을뿐더러, 또 회개한 그들이 야훼를 참신으로 믿었다는 얘기도 없습니다. 요나와 연계해서는 ‘야훼’가 말해지는데, 앗시리아와 연계해서는 그냥 ‘하느님(히브리어로 일반 신)’으로 나옵니다. 회개한 내용은 ‘못된 행실’입니다. 따라서 앗시리아의 죄악은 성/도시에 기초한 사회집단적인 죄를 말하는 것이지 종교적인 죄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류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들이 집단으로 모여 살면서 힘과 지혜를 합쳐 성/도시를 건설함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집단 도시문화는 필연적으로 계급을 만들어 노예, 평민과 귀족 그리고 왕족 지배사회를 만들어내고 동시에 땅에 금을 긋고 땅문서를 만들어 각자의 점유권을 주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오늘날 우리가 강남아파트투기 현상에서 볼 수 있듯이 자기가 사는 집 한 채로 만족하지 않고 많이 갖기 위해 경쟁하고 그럼으로 투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자연히 부조리와 불평등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확대하면 이는 곧 나라간의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 광야에서는 금을 그어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목민은 풀이 자라는 곳을 따라 이동하는 삶이기에 모두의 소유입니다. 땅은 하느님의 것이라는 성서의 선언은 바로 여기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목민들이 쉽게 이동하기 위해서는 순례길이 그렇듯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 적을수록 좋고, 집 또한 이동하는 형태입니다. 접은 천막을 펴면 그게 집입니다. 광야와 도시는 곧 개인욕망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정착문화와 이웃과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는 유목문화의 지역 상징언어입니다.

아브라함 믿음의 숨은 진실

우리가 흔히 일컫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축복, 도대체 그가 가졌던 믿음의 실체는 무엇이면 그가 받은 축복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아지리라는 축복. 지금 그래서 그에게 축복이 임했나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는 종교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인데, 이 세 종교는 지난 이천년동안 계속 전쟁을 해왔습니다. 하늘에 있는 아브라함이 지금 이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축복의 근원’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그는 세계 전쟁의 근원 곧 저주의 근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은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연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사실 저도 이걸 깨닫게 된게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이건 제가 작년 이란의 여러 역사박물관들을 돌아오면서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된 사항인데, 그가 축복의 근원이요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것은 정착문화인 도시로부터 탈출하여 유목문화로 전환하는 광야의 삶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본래 메소포타미아 비옥한 땅에 있었던 우르 왕국의 왕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때 우르 왕국이 멸망을 당합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와 함께 갈대아 우르로부터 하란을 거쳐 가나안까지 피신을 왔습니다. 그의 가진 꿈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아버지가 그에게 남긴 유언은 무엇이었을까요? 빼앗긴 영토를 되찾아 그곳에 우르왕국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갔을 때 그가 그를 되찾기 위해 끌고 간 사병이 318명이었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도대체 그 옛날에 삼백 명이 넘는 군사가 왜 필요했을까요? 도대체 먹을 게 없어 애굽까지 피신을 갔던 사람이 무엇 때문에 300명의 군사가 있어야 했던 것일까요? 그 많은 군사를 먹여야 하는 일은 엄청난 일입니다. 그건 우르왕국을 회복하기 위한 전초작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군사력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아들을 통해 그 꿈을 이룩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야훼 하느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이삭보다 하느님이 더 소중하다고 하는 하느님 우선 믿음을 시험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질투하는 신이 있다면 그건 이미 신이 아니지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한 것은 아들 그 자체가 아니라, 아들로 상징되는 왕국 회복이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향해 칼을 들었다는 말은 이제는 계급과 소유 경쟁 그로인한 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왕국 곧 도시건설의 꿈을 버리고 모두가 공평하게 함께 공존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광야의 삶으로 전환하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사회학의 고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에리히 프롬의 <존재냐? 소유냐?>라는 책이 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이삭 바침은 소유적 존재에서 존재적 존재로 변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성서에서 애굽이나 바빌론이나 앗시리아나 로마나 이는 제국들로서 차별과 불평등과 경쟁의 소유문화를 대변하는 도시문명의 상징입니다.

창세기 1장으로부터 11장까지를 신학에서는 전역사(Pre-history) 혹은 원역사(Ur-history)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이 단순한 인류의 전역사가 아니라 바로 정착과 도시문명의 결정체인 제국의 역사를 고발하기 위해 재해석된 신화의 역사임을 깨달았습니다. 어제 밤에 자다가 불연 중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12장에서부터 아브라함을 통해 이에 대응하는 유목과 광야의 새로운 문명이 등장하는 것이고, 바로 이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이요 이 새로운 믿음 위에 곧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자손들이 많아지리라는 야훼 하느님의 약속 곧 가나안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은 지역의 이름이 아니라, 나눔과 평등을 전제하는 유목문명의 상징인 것입니다. 이것이 갈릴리에서 펼쳐진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을 통해 재천명되었고, 이에 맞물려서 광야 오천명 급식 기적 이야기의 진실이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성서에서의 광야 가나안을 점령하고 있는 국가 이스라엘 그들은 이러한 모세 율법의 근본 가르침을 뒤집고 도시를 상징하는 제국의 길을 따름으로 가나안의 저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60년대에 출간된 토를라이프 보만의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비교>라는 고전의 책이 있습니다. 유럽의 사상사를 크게 이 두 개의 흐름으로 본 것인데, 흔히 헬라적 사고는 인간본위/이성과 합리성/정적/공간성 - 히브리적 사고는 신본위/감성과 믿음/동적/시간성의 사고형태로 대비하는데, 저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러한 사고를 낳도록 만든 지역성, 곧 정착에 기초한 도시 그리고 유목에 기초한 광야를 함께 대비할 때, 더 분명해질뿐더러 오늘의 도시문명 속에서 허덕이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살아있는 가르침이 된다고 봅니다. 

가인과 아벨 형제 살해 얘기가 창세기 처음에 나옵니다. 도대체 하느님이 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아니하고 아벨의 제사만 받았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다만 가인은 농사꾼으로 농산물을 바쳤고,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으로 양을 바친 것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들이 이를 설명하면서 아벨은 양떼 가운데서 가장 좋은 맏배의 기름기를 드렸지만, 가인은 첫 곡식을 드리지 않고 대충 드렸다고 해석을 하고 했는데, 사실 가인이 그렇게 소홀한 제사물을 드렸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여기서 해석의 열쇠말은 성의 있는 제물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정착도시 문명에 대한 신의 거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시문명의 아들 가인은 전쟁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 그가 걸어가는 길입니다. 따라서 살인은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그의 이마에는 살인자라고 하는 낙인이 찍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가인의 낙인은 단순히 신화로 끝나는 얘기가 아닙니다. 오늘 21세기에도 여전히 전쟁무기 개발과 생산과 그리고 그 판매와 소비처 개발에 열중하는 제국들에게 찍힌 낙인입니다.

제가 순례 길을 택한 것은 바로 이러한 도시문명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시 문명이 주는 안락함과 풍요로움 분명 좋습니다. 저도 집에 오니까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계속 머물면 자기도 모르게 물질문명에 빠져 이웃을 협력과 사랑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닌 시기와 경쟁의 대상으로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필요한 물질 욕망으로 인해 자신 안에 본래 주어진 하느님의 형상이 파괴되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순례 길을 통해 내 안의 도시문명이 심어놓은 그런 소유가치에 대해 저항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내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보다 자유로운 인간이 되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울 또한 그러한 자유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고, 그는 로마제국의 십자가 처형을 당한 갈릴리 예수에게서 그런 자유함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가 받은바 예수 안에서의 자유를 여러 편지에서 말하고 있는데, 오늘 고린도전서 7장의 말씀 또한 바로 그러한 말씀의 일부입니다.

호스 메

‘아내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살고 슬픔이 있는 사람은 슬픔이 없는 사람처럼.. 기쁜 일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마치 ....가 아닌 것처럼’ 살라는 구절인데, 이를 그리스어로 ‘호스 메’인데, 그래서 호스 메 신앙으로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불가에서 말하는 색즉시공과도 그 뜻이 닿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어떤 처지에서든지 자족하는 길은 불교나 유교 혹은 힌두교 사상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슬픔이 있는 사람은 슬픔이 없는 사람처럼.. 기쁜 일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이 말씀은 쉽게 이해가 되는데, 가장 먼저 나오는 아내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처럼 하라는 건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글입니다. 결혼반지도 빼고 다니고 싱글처럼 행세하라는 건 부부싸움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7장 전체는 믿는 자들의 결혼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가능하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결혼 전에는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살지만, 결혼하면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에 메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아닌 듯이 살라는 것은 허무주의나 도자의 자연주의가 아니라, 소유에 매여 정작 본인이 삶에서 추구해야 할 하느님의 나라와 의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부합하는 사도 바울의 가장 유명한 말은 빌립보서 4장 11절과 12절 말씀입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길을 배웠습니다. 비천하게 살줄도 알고 부유하게 살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풍부하거나 궁핍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수개월 이상 수년씩 걷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야 말로 이런 지혜를 깨달을 뿐 아니라 실천하고 있는 사람으로 봅니다.

오늘 예수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광야의 길로 같이 가자고 제자를 부르십니다. ‘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닌,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살아가자고.’ 우리는 분명 도시에 살고 있고, 도시 문명 또한 하느님이 축복하신 세계라고 저는 고백합니다. 그러나 도시에 묻히면 우리는 길을 잃고 맙니다. 밤 하늘의 별을 보려면 방의 불을 꺼야 하듯이 우리 인생길을 제대로 보려면 가끔 광야에 나가 자신의 소유와 욕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참 자유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두)길 위의 존재입니다. 오늘 새벽 나오다보니 광화문 교보문고 외벽에 새겨진 시구가 더 가깝게 다가옵니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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