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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안고 꿈을 꾸다-해수탕에서[탐라, 사랑허염쪄]
임정훈 | 승인 2018.02.01 00:43

목욕탕에 가고 싶은 날이 있다. 날씨가 꿀꿀하거나 심기가 불편한 날은 더욱 가고 싶다.

사람에 취해, 광경에 취해

제주에 와서 몇 번 목욕탕에 가고 싶은 날이 있었다. 그렇지만 선뜻 목욕탕을 찾아 나서지 못하고 있을 때 동료 선생님이 외도 부근에 괜찮은 곳이 있다며 가르쳐 주었다. 그곳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냥 ‘선생님이 좋아하실 거예요’라는 말만 듣고 성질 급한 나는 그날로 목욕탕을 찾아 나섰다.

그 목욕탕은 들어서면서부터 기분이 좋았다. 마른 수건을 무려 세장이나 주었기 때문이다. 내 목욕 역사 50여 년 동안 수건을 세장 받은 곳은 처음이었다. 세 개의 수건 중에서 두 개는 나올 때 쓰려고 옷장에 넣어두고 한 장을 가지고 탕 문을 열었다.

ⓒ임정훈

그 순간 내 앞에는 경이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해수 온 · 냉탕 앞에 바다가 확 들어왔기 때문이다. 시야를 가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바다였다. 나는 해수탕 안에서 내 몸이 김장배추처럼 절여져도 좋을 것 같았다. 더구나 바다와 하늘을 함께 볼 수 있는 해수노천탕까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나는 기분이 더욱 좋아져서 함께 탕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디서 오셨냐며 변죽 좋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이렇게 전망이 좋은 목욕탕은 처음이라며 목욕탕 찬사도 늘어놓았다.

삶의 클라이맥스를 지나

그때였다. 갑자기 뒤편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탕 안에서 목욕을 즐기던 사람들과 때를 밀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 나는 쪽으로 쏠렸다. 소리는 사우나 실까지 들렸는지 사우나를 하던 사람들도 나왔고 황토방에서 찜질을 즐기던 사람들도 밖으로 나왔다.

목욕을 하던 모든 사람들의 눈이 동그라졌다. 일제히 큰소리를 지르는 두 사람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들은 시선쯤은 아랑 곳 하지 않고 점점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람들은 목욕탕에서 벌어진 이런 진풍경을 보며 싸움의 발단에 대해 호기심어린 눈빛을 보냈다. 그들의 언쟁은 목욕탕 안을 순식간에 멈추어 놓았고 그들의 목소리는 에코 마이크를 사용하는 것처럼 울림이 대단했다. 곧 머리채라도 잡을 기세였다.

나는 두 사람의 싸움에 끼어들어 말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기도 민망해 그만 노천탕으로 나갔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클라이맥스에서는 고개를 돌린다. 내가 노천탕에서 돌아왔을 때 목욕탕 안은 조용했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위치로 돌아 간 상태였다. 다행이었다. 대중목욕탕에서 언성을 높인 것이 잘 한 일은 아니지만 감정을 풀었으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정훈

우리 세 자매는 종종 어머니를 모시고 목욕을 다녔다. 서천에 살고 있는 큰언니는 어머니를 모시고 올라오고 경기도에 살고 있는 작은 언니와 내가 함께 내려가면 중간 지점이 덕산이다. 우리는 덕산에서 점심식사도 하고 온천욕을 즐겼다. 온탕 안에서 정담을 나누기도 하고 서로 어머니 몸을 닦아드리고 얼굴에 요플레 맛사지도 했다. 그렇게 목욕을 하고 막 나 온 어머니의 얼굴은 발그레하고 콧등은 반짝였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았다.

나는 어느 때 부터인지 목욕탕에 가면 혼자 와서 때를 밀고 있는 어르신이 계신지 살피게 되었다. 어머니가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의 등이라도 밀어드려야 마음이 편해졌다. 어쩌면 훗날의 내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적어도 누군가의 등을 밀어드릴 여력이 있을 때 그렇게 하고 싶다.

오늘도 나는 목욕탕에 간다. 오늘처럼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해수탕 안에 몸을 푹 담그며 추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겨울바다를 가슴에 안고 꿈을 꾸고 싶다. 청 보리 푸른 물결치는 봄날에 대해...

임정훈  author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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