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성. 현장에서 요구하는대로 강의하러 다니고 역사기행을 기획하고 안내하느라 바쁘게 지낸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란 어떤 걸까. 이곳을 떠나 어디로 가고 싶은 마음이다.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들에게 고향은 늘 그리운 곳이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는 해방된 나라를 뜻하기도 하였다. 아까시 꽃이 한참 필 때나 고향생각이 날 때면 초등학교 시절 부르던 ‘고향땅’을 가만히 불러보곤 한다.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

고개 넘어 또 고개 아득한 고향
저녁마다 놀 지는 저기가 거긴가
날 저무는 논길로 휘파람 불면서
아이들도 지금쯤 소 몰고 오겠지

내가 태어난 곳은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하군두리, 높지 않은 고개를 사이에 두고 30여 집이 1반 2반으로 나뉘어 있던 작은 동네였다. 그곳에서 3km 쯤 떨어진 면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녔다. 1960년대였다.

우리 집은 높이 650여 미터 되는 산의 중턱에 절처럼 외따로 떨어져 있었다. 동무들과 어울려 놀려면 오솔 길을 따라 신작로까지 내려가야 했다. 신작로 옆으로 개울이 흘렀고, 개울을 건너 논두렁 몇 개를 지나면 앞산이 시작되었다. 푸른 하늘 끝닿고, 저녁마다 노을 지는 ‘저기’는 빤히 건너다보이는 앞산 봉우리 너머였다.

우리 집 농사는 다른 집에 비해 주곡 작물보다 ‘상업적 농업’을 더 많이 했다. 토끼 몇 십 마리 에 닭 300여 마리를 치기도 했고 , 염소 30여 마리, 소를 몇 마리씩 기르기도 했다. 조그만 연못과 논에 잉어를 기르다가 장마로 물이 넘쳐 몽땅 떠내려 보낸 적도 있다. 밭에도 반 이상 담배를 심거나 작약이나 당귀 같은 약초를 키우기도 하고, 다 걷어제치고 온통 뽕나무를 심었을 때는 봄가을 누에치기가 주업이었다. 남은 밭에는 집에서 먹을 감자, 콩, 팥, 옥수수, 참깨, 들깨를 심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신동이나 천재니 하는 소리를 들으며 공부를 제법 잘했다. 같은 시골이라도 면소재지 시장 동네에 살던 애들은 농사일을 몰랐다. 시장 살던 고향친구들은 지금까지도 내가 공부만 열심히 한 줄 안다. 하지만 농사짓는 집 아이들은 다들 일을 거들어야 했다. 나도 날마다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토끼 풀 뜯어 와야지, 시간 맞춰 닭 모이와 물주고, 염소와 소 내다 맸다 끌어오는 일이 내 몫이었다. 누에가 4-5령일 때는 뽕 따 대느라 온 집안이 전쟁이었다. 밭에 심은 집 뽕이 모자랄 때는 먼 산에 가서 산 뽕을 따와야 했다. 커서도 집에 있을 때 소 먹이로 풀을 베는 일이나 논두렁 깎기는 내 몫이었다.

아버지는 또 얼마나 무서웠는지 학교에 낼 돈 달라고 할 때 말고는 ‘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신작로에서 동무들과 놀다가도 시장 갔다 오는 아버지가 저 멀리 언덕 위에 보이면 쏜살같이 집으로 뛰어 올라가 다래끼를 어깨에 메고 풀을 뜯으러 가거나, 뒷방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척했다. 한창 젊은 시절 10여년 군대 생활을 한 아버지는 중학교 때 선도부보다도 더 엄하고 무서웠다. 모자도 언제나 반듯하게 써야했고 단추 하나도 허투루 풀어놓질 못하게 했다. 농사일도 숨 막힐 듯 깔끔하게 예술처럼 해야 직성이 풀리셨다.

공부도, 일도, 아버지도 싫을 때 호젓한 곳에서 나직하게 ‘고향땅’을 불렀다. 앞선 봉우리를 넘고 넘어 아득한 곳으로 도망처 버리고 싶었다. 그때 내게 가고 싶은 ‘고향땅’은 우리 집 가훈이었던 '正道'를 버리고, 배고프고 힘들었던 고향집을 떠나 다르게 살고 싶은 자유의 공간이었다. 어떤 때는 그곳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아담한 학교이거나, 책이 가득 찬 도서관이기도 했고, 15소년이 표류했던 자그마한 체어먼 섬일 때도 있었다.

나는 떠돌아다니며 강의하고, 역사기행을 하는 일이 많다. 어느 정도 방랑기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고향땅’을 부르며 새로운 고향을 찾아 떠나고 싶어 하던 때부터 역마살이 붙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아까시 꽃을 보면 ‘고향땅’이 떠오르고 고향땅을 부르다 보면 ‘찔레꽃’이 생각난다. 찔레꽃 하얀 꽃은 서럽다. 아까시 흰 꽃이 바람에 날리며 떨어질 때쯤이면 찔레꽃이 한창이다. 찔레꽃은 조팝나무, 이팝나무 하얀 꽃이 지고난 뒤 피어난다. 이 꽃들을 보면 배고플 때 쌀밥 생각이 더 났다. 배고플 때 부르면 눈물이 나기도 했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 꽃 
찔레 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나뭇잎이 피어나고 초록빛이 짙어질 때 나무에 피는 꽃들은 흰색이다. 곤충은 초록색과 붉은 색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신록이 짙어지면서 피어나는 꽃들은 자신을 드러내려고 흰 꽃을 피운다. 이때가 모내기 철, 보릿고개, 배고픈 계절이다. 찔레 순을 꺽어 먹어도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없었다. 그때쯤이면 알이 채 여물지 않은 감자를 캐 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초여름부터 한 철은 감자와 옥수수로 한 끼를 때워야 했다. 가을 겨울에는 쌀 한 줌에 옥수수를 갈아 밥을 짓는데 식으면 돌덩이 같이 껄끄럽다. 감자와 옥수수에 어찌나 물렸던지 나는 찐 감자와 옥수수를 내 돈 내고 사먹어 본적이 거의 없다. 감자탕 집에 가서도 감자는 밀어 내놓는다.

아내는 보리밥이 그렇게 싫었다고 한다. 고향이 다르니까 보릿고개 넘기려고 먹던 음식도 다르다. 내가 “강냉이밥에 비하면 보리밥은 양반이지”하면 아내는 “뭐든 똑 같은 것을 질리도록 먹어봐”하고 맞선다. 옥수수밥과 보리밥을 놓고 맛없는 타령을 하지만 '며느리밥풀꽃’에 담긴 배고팠던 시절 가슴 아픈 사연에 비하면 그것도 배부른 소리일까.

내 둘레에도 암탉이 품고 있던 계란을 훔쳐 먹다 얻어맞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달걀 훔쳐 먹은 적은 없으나, 양계장을 할 때 알 낳는 닭이 300여 마리나 있었어도 달걀을 마음대로 먹지 못했다. 아버지는 예외였다. 어머니는 주발에 기름 두르고 밥솥에서 쪄낸 계란 반숙을 아침마다 해 드렸다. 하루는 아버지가 “오늘은 계란을 서너 판 삶아 한번 실컷 먹어보자”고 하셨다. 중학교 다닐 때였다. 삶은 계란 100여개를 양동이 물속에 수북하게 담가 놓고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우리 네 형제 모두 일곱 식구가 둘러 앉아 까먹었다. 열 개가 넘으니까 닭똥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오랴 싶어 꾸역꾸역 까먹었다. 열일곱 알까지 까먹고는 손을 들었다. 그 뒤로는 갈증이 좀 풀렸는지 달걀 생각이 덜 났다.

오랫동안 이 땅 백성들이 바라던 꿈과 상상이 실현되는 현실은 생일, 제사, 명절이 아니어도 기름이 반지르르 흐르는 쌀밥에 고기반찬, 고깃국 배불리 먹어볼 수 있는 세상이었다. 어쩌다가 쇠고기라도 먹어 볼 수 있게 됐나 싶었더니 광우병 쇠고기 문제가 터졌다. 아까시 꽃이 바람이 날리고 찔레꽃이 필 때 아이들이 나서서 촛불을 밝혔다. 광장으로 모이는 촛불이 늘어갔다. 광우병 쇠고기, 한반도 대운하, 공기업.의료 사유화, 언론탄압, 공교육 자율화, 한미 FTA, 비정규직 같은 지금 여기의 문제를 비키거나 뛰어넘어 '고향땅‘에 갈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가 빚어내는 문제들과 맞닥뜨려 저항하지 않고는 탈주도 불가능하다.

박준성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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