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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순례에 관한 아브람의 사명“사람의 땅으로의 순례”(창세기 12:1-9) ①
Jione Havea | 승인 2018.02.08 00:32
WCC가 개제한 “성서가 말하는 정의ㆍ평화의 순례”라는 제목의 일련의 성서연구에 관한 글들 중 Jione Havea(지온 하베아) 목사가 쓴 “사람의 땅으로의 순례”라는 글입니다. 기사의 원본은 <여기>를 클릭하시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의 첫 부분을 윤병희 기자가 번역했습니다.
WCC는 출처를 밝히는 조건에서 자유로운 출판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이 번역본을 사용하시고자 하는 독자분들은 에큐메니안이라는 출처와 번역을 명시하시고 사용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2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3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4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일흔다섯 살이었다.
5 아브람은 아내 사라이와 조카 롯과, 자기가 모은 재물과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길을 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6 아브람은 그 땅을 가로질러 스켐의 성소 곧 모레의 참나무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때 그 땅에는 가나안족이 살고 있었다.
7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주겠다.”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님을 위하여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
8 그는 그곳을 떠나 베텔 동쪽의 산악 지방으로 가서, 서쪽으로는 베텔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아이가 보이는 곳에 천막을 쳤다. 그는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다.
9 아브람은 다시 길을 떠나 차츰차츰 네겝 쪽으로 옮겨 갔다.

“가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지명을 말하지 않은 어떤 땅으로 가라하고 거기서 복지체제(welfare system)와 같은 것을 설립하도록 위임했다. 하느님은 “만일 네가 간다면 나는 너를 위해서 이걸 가능하게 할것이다.”고 말한다. 이 모습은 마치 롤리팝 사탕을 인센티브로 주면서 어린아이가 먼저 일을 처리하도록 유도하는 이모나 삼촌과 같은 모습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관광객이나 식민지 개척자가 되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축복을 주셨고 아브람은 그 축복을 전파하도록 위임을 받았다. 그러므로 독자 여러분! 여러분은 이 본문을 축복의 순례에 관한 아브람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읽어 보라. 그의 순례의 목적지는 명명되지 않았지만, 이미 사람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간주되어 있다. 

축복의 순례

12장 1절~5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여러 가지 인센티브를 선물하며 다음과 같은 일을 유도한다. (1)어떤 땅으로 가라. (2)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3)하나님의 복을 받으리라. (4)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5)남에게 복을 끼쳐주게 될 것이다. (6)너에게 복을 비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할 것이다. (7)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이다. (8)세상 사람들이 받을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 지온 하베아 목사. 통가(태평양 상에 있는 나라) 출신 감리교 목사. 호주 찰스스터트 대학의 ‘공공신학·상황신학 연구센터’ 연구원. 뉴질랜드 트리니티 감리교 신학대학의 방문교수. 지온 하베아 목사는 현재 ‘성서와 기후변화’ 및 ‘태평양 해석학’ 등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이러한 인센티브들은 융합되기 쉽다. 큰 민족이 되는 것(2)과 이름을 떨치는 것(4)의 과정은 아브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3, 5, 7)과 복을 전파하는 것(6, 8)과 결이 같다. 그러나 이름(명예)과 국가(통제)라는 두 가지 과정이 반드시 교차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축복을 주고 그 자신에게도 복을 주도록 했다. 그의 사명의 장소는 지명되지 않았으며, 아브람의 이주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축복에 대한) 욕구의 순례로 읽힐 수 있다. 아브람은 그가 들어갈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의미하게 될 것이며, 그것을 너머서 온 땅의 모든 가족들에게도 축복이 될 것이다.

아브람에게 주어진 실제 축복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의 아내 사래는 잉태를 하지 못하는 몸이었으므로(창 11:30) 그의 축복에 자녀를 갖는 것이 포함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야기가 펼쳐짐에 따라, 그것은 아브람의 기대 중 하나가 되었다.(창 15장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에게 제안한 것들을 상향시키는 이야기의 장소에 주의해 보면 좋겠다. 하나님은 "땅"과 "큰 이름"과 "큰 민족"을 언급하면서 아브람이 하나님의 의도와 의지를 바꾸는 여지를 남겨 둔다.

그의 목적지가 될 그 명명되지 않은 땅은 그의 소유물로 의도된 것이 아니었으며, 사람이 거주 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이주시켜 살도록 한 그곳의 사람들은 누구나 그를 환영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축복할 것이지만 몇몇은 그를 저주할 것이다. 이것은 모든 이주민과 난민이 처한 삶의 방식이다. 그들의 환영은 지속되지 않으며 그들에 대한 환대는 종종 피상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자신의 이름없는 목적지를 소유하지 말고 축복의 사명을 수립하라고 부르셨다. 축복의 땅은 많은 원주민들의 토지의 점령을 정당화하는 교리인 <비어있는 땅 혹은 아무도 없는 토지(terra nullius)>가 아니다. 그 땅을 소유하고 사유하려는 욕망은 후에 아브라함 주기에 나타났다.

아브람에게 땅에 대한 주권 부여로 독해하는 것은 모두 이 12장 1절에 대한 오독으로서 큰 민족과 큰 이름이 되라는 축복을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은 주권(토지와 물에 대한 지배권)이 여러 집단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형태(inter-nationalism)가 아니라 (군주제와 같이) 하나의 집단에만 속한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창 12:1~5에서 축복 사명에 대한 부름은 집단들 사이의 공유로 읽힐 수 있다. 왜냐하면 아브람은 원주민 가족들의 재산과 축복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가정이 자신을 위한 축복을 누릴 수있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아브람이 위임받은 것은 축복이 도달하는 플랫폼인 것이다. 이 본문은 아브람이 받은 큰 이름과 큰 민족의 축복이 다른 사람들과 나라들 사이에서 하나의 플랫폼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민족과 토지에 대한 권력과 통제권의 행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Jione Havea  oikumene@oikumen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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