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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하층민들의 폭력적 전복 행위를 긍정한다는 것임미리 교수, 형제복지원 참사를 새롭게 읽는다
맹준규 | 승인 2018.02.10 01:01

또 다른 1987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시금 복원하는 일을 둘러싼 발제와 토론회를 마치고, 에큐메니안은 민주화세력의 주도적 항쟁 속에서 잊혀 갔던 도시하층민을 주제로 발표를 맡았던 임미리 한신대 학술원 전임연구원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도시하층민들의 저항에 우리가 참여해야 한다

임미리 교수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주목하게 된 개인적 이유로 1987년에 있었던 사건 보도를 꼽았다. 모두가 거세고 주도적인 민주화의 물결을 따라 움직일 때, 미처 민주화의 ‘세력’이 되지 못했던 얼굴들이 임 교수에게 만큼은 마음 한 켠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제라도 도시하층민들을 우리들의 저항에 참여시킬 것을 촉구하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임미리 교수는 그들의 저항에 우리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뒤집힌 답을 내놓았다. 또한 그들의 폭력적 전복 행위가 그 자체로 긍정될 수는 비록 없을지라도, 그들의 ‘예외성’과 ‘잔여’를 관심을 갖고 해석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들과 같은 우리사회의 예외자들, 배제되고 여백으로 존재하는 이들의 잠재적 욕망을 더 적극적으로 포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을 때, 그 사회가 더욱 진보적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왜 서양과 달리 한국에서는 형제복지원같은 중대한 인권유린 사태가 충분히 공론화 되거나 담론화 되지 못했는가의 질문에 대해 임 교수는 1987년 민주화 세력이 ‘안전’을 지상목표로 하는 국민국가정상화에 몰두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들이 믿었던 ‘가치’는 누군가에겐 충분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 천막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형제복지원 생존자들. 그들과 연대하고 있는 임미리 교수. ⓒ임미리 교수 제공

다음 임미리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형제복지원 관련 문제에 대해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되었나.

1987년 초 사건 보도를 접한 때부터 마음 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박사학위논문이 ‘열사’ 호명에 대해 비판적 문제제기였는데 초고 결론에 형제복지원 얘기를 썼었다. 전태일의 분신을 대속 행위로 보아 영웅시하고 신성화 하는 대신 수많은 ‘전태일들’의 생존권과 500여 죽음을 낳은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의 인권에 대한 공감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87년의 항쟁이 생존권과 인권의 보장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비판의식이 계속 있었고 이것이 형제복지원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된 것 같다.

▲ 언젠가 계기가 생긴다면 주도적인 민주화세력들이 도시하층민과 같은 예외인들을 저항주체로서 ‘정상’의 자리에 호명하게 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때 도시하층민들이 그들과 연합해야 한다고 보는가, 혹은 자신들만의 특수한 저항의 형식을 더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가?

지배세력과 저항세력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기존의 적과 동지의 구분에 반대한다. 또 정치권력의 교체를 목적으로 하는 전국민적 연합은 허구일 수밖에 없고 가능할 수도 없다고 본다. 따라서 거대한 하나의 연합보다는 각각의 생존권투쟁, 인권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연대가 필요하다. 즉 도시하층민들이 민주화운동 같은 이분법적 전선 운동에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도시하층민들의 생존권과 인권 보장을 위해 기존의 민주화운동세력들이 지원, 연대해야 한다.

▲ “정상의 저항행위가 경계 내 안전을 복원하기 위한 것이라면, 예외상태의 저항행위는 전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발표문에 언급하셨다. 예외상태의 저항행위의 양상과 그것의 나아갈 방향성에 관해 더 자세한 설명해주신다면?

국민국가는 언제나 예외상태를 둘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예외상태는 정상과 구별되기 때문에 예외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예외상태의 저항은 정상의 저항행위와는 성격이 다르다. 그것은 세상 전체를 적으로 하여 전복을 꿈꾸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소망이며 그 때문에 폭력적인 양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도시하층민들이 스스로를 조직화 하여 목적의식적 운동을 전개하는 순간 예외상태가 아닌 정상의 저항행위가 된다. 그리고 동시에 정상의 경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예외상태의 저항도 여전히 존재하게 된다. 도시하층민의 저항이 정상이 되었을 때를 일컬어 도시빈민운동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운동’이 되지 못한 ‘잔여’가 존재할 것이다. 즉자적인 저항을 ‘운동화’하려는 노력과 여전히 존재할 ‘잔여’에 집중하여 그것의 의미를 해석하려는 노력이 병행해야 한다.

▲ 저항 자체가 제도화되고 보수화 됐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중산층 계급이 아닌 배제된 계급으로부터의 ‘저항의 진보화’라는 표현을 반대로 제시할 수도 있다고 보는지?

배제된 사람들의 욕망이 반영될수록 저항행위는 전복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그러나 전복성이 크다고 해서 더욱 진보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보수의 반대로서 진보의 내용은 제도화의 반대로서 비제도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비제도화란 열린 상태를 의미한다. 하나로 획일화 할 수 없는  무수한 욕망이 존재하고 그러한 욕망들이 발현될 여지가 큰 상태를 ‘진보적’이라 할 수 있다.

▲ 권력집단과 대중들이 타자를 격리,관리하고자하는 욕망을 가졌고 그 결과물이 형제복지원 사건이었다면, 이에 관한 연구가 푸코의 작업을 연상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이렇듯 바깥에서는 권력에 의한 타자 억압이 담론화 되고 또 공론화되기도 했는데, 한국에서의 담론화는 충분했다고 보는지, 혹 그렇지 않았다면 그 원인을 무엇으로 꼽고 싶은지 들려달라.

형제복지원 사건이 30년 간 공론화되지 못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사회에서 이에 대한 본격적인 담론은  거의 없었다. 이유는 지배권력뿐 아니라 소위 민주화운동으로 대표되는 저항세력도 국민국가의 정상화를 과제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정상의 내용만이 각기 달랐을 뿐이다. 이것은1980년대 민주화운동세력조차도 병역의무 자체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데서 알 수 있다. 병역은 국민국가의 안전과 직결되는 의무이다. 따라서 병역의무의 무비판적 수용은 당시 민주화운동세력의 목표가 국민국가 틀 안에서의 정상화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때의 국민국가를 남한만에 한정했든지 한반도 전체를 대상으로 했든지 마찬가지다. 도시하층민에 대한 끊임없는 배제도 이런 분위기 속에 가능했던 것이다.

맹준규  mjk34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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