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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짓는 목사]
정준영 | 승인 2018.02.10 22:32

정준영

시는,
나의 죄값 
내가 그대를 함부로 무시한 
언젠가는 아름답게 갚아야 할 원금
내가 서있던 길마다
그대를 누르고 있었고
앉았던 자리마다 그대를
깔아 뭉게고 있었다
그러니 
그대의 마음을 나도 모르게 짓눌러버렸으니
그대를 위해 시를 쓰는 건 
내가 지불해야 할 의무인데 
그 처음 고백의 자세를 버리고
나의 영혼을 팔아 살고 있으니 
나를 위하여 조시를 써야 하는데
마구 긁어 놓은 죄책감의 내역을 뽑자니
칼끝처럼 섬뜩하다 
나의 혀로 그대의 가슴을 후려치고
내 낯빛으로 그대의 눈을 찌르고
내 부주의로 그대의 찬란한 순간을 날려버렸으니
나의 시를 생각할 때
시를 받아적는다는 것은
나를 그대 앞에 발가벗기고 
내가 백지가 되어도 참아내는 일이란 걸
휘어진 겨울 산길을 내려오는데
꼿꼿한 은행나무의 높은 자세가 알려 주었다
시는, 
나의 죄값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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