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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되 바쁘지 않다”-用之不勤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06
이병일 위원 | 승인 2018.02.12 21:55
“곡신은 죽지 않는다. 이를 일러 현빈(검은 암컷)이라 한다. 현빈의 문을 일러 하늘과 땅의 뿌리라 한다. 면면히 이어져서 있는 듯하다. 일을 하되 바쁘지 않다.”
- 노자, 『도덕경』, 6장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계곡의 신은 계곡과 같이 깊어서 보이지 않으나 소멸과 생성을 지속시키는 신령한 작용입니다. 잘 보이지 않으나 자기의 역할을 하는 현빈은 하늘과 땅 속에 숨어 있으면서 활동하니 하늘과 땅의 뿌리입니다. 만물을 낳는 현빈의 작용은 약하고 부드러워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끊어지지 않고 겨우 이어져 있는 듯 하기도 합니다. 또한 곡신은 일하되 바쁘지 않습니다.

노자는 예와 법이 없으면 세상에 무질서가 온다는 유가와 법가의 주장을 비판하고, 沖, 不仁, 谷神 등 자연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道의 질서를 규명하고 있습니다. 자연에 조화와 순환의 질서가 있는 것이 해명되었으니 자연 상태가 무질서하다는 이유로 예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허구이며 사적인 욕망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드러난 것, 즉 성과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습니다. 일을 하거나 투자를 하면 바로 그 효과나 효율이 나타나고 보여주기를 강요합니다. 가고 싶은 어딘가로 향할 때에도 곧바로 빨리 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다 보니 좁은 땅덩어리 안에 수많은 고속도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는 건설 토건 업자들과 정부의 정책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측면도 있습니다. 과연 빨리 곧바로 가는 길만이 좋은 것일까요?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 구부러진 길을 가면 //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 구불구불 간다. //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 이준관의 시 “구부러진 길”

지금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인간의 욕망이 서로 상승작용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더 편하고 더 쉽고 더 안락한 길을 찾아서 끈임없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사람을 소외시키고 점점 더 가박하게 만드는 비인간화의 숨결이 숨어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보다도 지금의 삶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편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사람들은 얼마나 더 행복할 수 있을까요?

노자가 일을 하도 바쁘지 않게 하라는 것은 드러나는 봉우리보다도 그 봉우리를 봉우리 되게 하는 깊은 계곡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으라는 일침입니다. 드러나고 빠른 성과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우리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그 삶의 시간도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일으킨 사건의 본질은 사람들을 비인간화시키고 있던 제도와 이념의 숨결로부터 그들을 인간으로 회복시킨 것입니다. 기존의 삶의 구조가 안겨 준 당연성의 세계를 무너뜨림으로써 예수님은 오직 새로운 사람의 출현을 이룩합니다. 하느님의 대리자인 예수님은 하느님의 영을 대적하는 악한 영의 세력과 맞섭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강요하는 욕망의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언제나 질병과 악한 영의 지배와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한 유혹을 거부하고 당당하게 악의 세력을 폭로하고 내쫓았습니다. 생태적 환경뿐 아니라 우리의 삶을 둘러싼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을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만들려는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어두운 시대를 밝혀줄 빛의 사자, 죽음의 문화를 거부하고 생명의 문화를 전파하는 결사, 전쟁의 소용돌이를 몰아내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필요한 때입니다. 인간뿐 아니라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하려는 정책에 대해서 확실히 알고 거부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은 먼저 자연과 인간 앞에서 자기를 내어 놓고 낮추며 감사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 이병일, 『미친 예수』(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악한 귀신 들린 사람과 괴담” 중에서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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