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6학년 때 다리가 많이 아팠다. 크느라고 그랬는지, 집에서 학교까지 3km 채 안 되는 거리를 한 두 번씩 쉬어 다녀야 했다. 할머니가 늘 학교 오가는 중간 고개 마루까지 나와 기다리다가 내 책보나 가방을 들어주었다.

동무들 있을 때는 창피해서 짜증을 냈다. “다리 아프니까 괜찮아 일루 줘”하던 할머니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두 여동생들 책 보따리를 들어주는 일은 없었다. 잔치 집에 갔다가 얻어온 떡이며 과자도 나만 주었다. 그것도 보는 데서.

▲ 1965년 초등학교 4학년 때. 저 사진을 찍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첩이 저 표범 눈동자에 카메라 렌즈를 달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얼마 후 어른들 빨간 내의를 사드리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그것도 빨갱이들의 선동 결과였다는 풍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반공이데올로기가 다양한 형태로 주민들의 일상을 지배하던 시대였다. ⓒ박준성

장손인 장남에 대한 지독한 편애였다. 뒷날 동생들이 “우리가 얼마나 서운했는지 알아, 오빠는 그걸 다시 나눠 주지도 않고 혼자만 먹었지......” 하며 옛날이야기를 한다. 어머니도 “니 할머니 손주 사랑 때문에 엄마는 이쁜 아들 제대로 안아 주지도 못했단다”하고 아쉬워하셨다.

다리만 아픈 것이 아니었다. 감기가 걸렸다 하면 편도선이 부어 물도 한 모금 삼킬 수 없었다. 결국 4학년인가 5학년 때는 숨도 쉬기 힘들 지경이 되어 편도선이 부은 채 수술을 했다. 수술용 가위 구멍이 작아 부은 편도선에 들어가질 않아 마취를 하고 칼로 직접 잘라냈다. ‘싸드득 싸드득’하는 소리가 들렸다. 참 무지막지한 수술이었다.

6학년 때는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병원에 갔더니 기관지 확장증이라고 한다. 한 달 내내 마이신 주사를 맞았다. 그러면서도 놀기는 좋아했다. 축구부에 들어가 공을 차고 싶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사이면서 축구와 씨름 코치도 하던 작은 아버지는 몸이 약해 안 된다며 끼워주질 않았다. 야속했다. 어른 들 보기에 초등학교 때 나는 공부는 잘했으나 병약한 귀염둥이였다.

▲ 1968년 2월 초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6학년 때 담임인 허기영 선생님을 모시고 부모님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선생님이 미남인데다 노래도 잘해서 여학생들과 시장에 살던 젊은 엄마들한테까지 인기가 많았다. 선생님이 공기총 들고 꿩 사냥 갈 때 나를 데리고 다녔던 기억, 한 여학생의 무슨 잘 못을 했는지 혼나는 걸 편들다가 지도를 말아 걸던 괘도가 부러지도록 맞았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박준성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춘천에 있는 군인 자녀들이 주로 들어가는 중학교에 입학 시험을 쳤는데 떨어졌다. 입학생 몇 백 명 가운데 민간인 자녀는 10-20명만 뽑는 학교였다. 학비와 기숙사비가 모두 공짜라고 해서 가려고 했다. 6년 내내 1등을 해서 1968년 2월 8일 홍천군교육장상을 받으며 졸업을 했는데도 그 틈새를 뚫지 못하였다. 처음으로 당해 본 좌절이었다. 고향에 있는 중학교에 몇 자리가 남아 보궐로 들어갔다. 한동안 학교 생활이 시시해서 다니기가 싫었다. 뿐만 아니라 중학생이 되자마자 자유롭던 몸이 교복에 갇혀 버렸다.

중학교 생활은 시작부터 시커먼 제복의 세계로 편입된 꼴이었다. 초등학교 때 ‘야자’ 하며 놀던 동네 형들에게까지 꼬박꼬박 존대 말을 써야했다. 선도부가 죽 늘어서서 지키는 교문은 공포의 소굴로 들어가는 관문 같았다. 절도와 규율이 강요됐다. 해방 후 국방경비대에 들어가 한국전쟁을 치르고 육군상사로 제대한 아버지까지 나를 속박했다. 단추 하나, 후크 하나 풀어놓지 못하게 했고, 모자도 반듯하게 써야만 했다. 거수경례할 때 팔꿈치 각도까지 지적을 받았다. 생활과 몸짓이 온통 곡선에서 직선으로 변해 버렸다.

1968년 중학교 1학년 때 면소재지에 태권도 도장이 생겼다. 태권도 문파 가운데 '지도관'이었다. 40살이 넘은 아버지가 태권도를 배우면서 나도 배우게 했다. 그때 합기도 도장도 새로 생겼다. 합기도를 배우는 친구들과 맞붙지는 않았어도 팽팽하게 편이 갈렸다. 서로 더 열심히 운동하게 하는 자극이 되었다. 1년여 만에 사범이 떠났다. 그 뒤 홍천읍에 나가 단을 따온 젊은 어른들이 검은 띠를 매고 반 년 여를 더 가르쳤다. 1년 반 동안 수련을 했어도 학생들은 검은 띠를 못 딴 채 도장은 문을 닫고 말았다. 도장은 없어졌어도 집에서 운동은 계속하였다. 맨주먹으로 팔굽혀 펴기를 하면서 정권을 단련하고, 샌드 빽을 치면서 알통과 복근을 키웠다.

▲ 1968년 중학교 입학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석면 소재지에 태권도 도장이 생겼다. 우리가 중학교 입학하면서 서석고등학교가 새로 생겼다. 중 1부터 고 1까지 학생들과 어른들이 승급심사 후에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고등학교 때는안 하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도 꼬박 1년을 새벽마다 태권도 수련을 했다. ⓒ박준성

1968년 1월 21일에는 북한 민족보위성(民族保衛省) 정찰국 소속의 무장게릴라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하여 서울 세검정고개까지 침투하였던 사건이 있었다. 예비군 중대장을 하던 아버지는 그들이 움직인 거리를 계산해 보고는 걸음이 나는 듯했다면서 어머니에게 모래 조끼를 만들게 했다. 허벅지와 장단지에 찰 수 있는 모래주머니도 만들었다. 광목천에 어른 손가락만큼씩 틈을 주고 누빈 사이에 모래를 넣어 만든 조끼와 주머니였다. 내 것도 만들었다. 모래조끼를 입고 모래주머니를 다 차면 지금 환등기를 짊어지고 다니는 배낭 무게만큼이나 묵직했다. 나도 이따금 그 조끼를 걸치고 모래주머니를 묶은 채 산과 길거리를 혼자 뛰어 달렸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등록금 달라거나 돈이 필요할 때 말고는 ‘아버지’라고 부를 일이 없을 만치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와 틀에 박힌 학교 교육에 대한 불만, 사춘기 때 치밀어 오르는 화를 내 몸을 학대하듯하며 다스렸는지도 모르겠다.

태권도를 배우면서 병약했던 내 ‘몸’이 급격하게 달라졌다. 초등학교 때는 운동회에서 달리기를 3등 안에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중학교 3학년 때는 전교에서 1.2등을 다툴 정도로 뜀뛰기도 빨라졌다.

몸이 바뀌면서 좋아하는 책들도 달라졌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는 도서관이 없었다. 한 반 교실 뒤쪽 한 면에 책장을 놓고 도서실로 썼다. 학생들로 도서반을 정해서 관리를 했다. 도서반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전에도 <15소년의 모험>, <80일간의 세계일주>, <톰소여의 모험>, <헉클베리 핀의 모험> 같이 모험심 자극하는 책을 좋아했지만, 태권도를 하면서 <삼국지> <수호지>나 <정협지> <군협지>같은 무협지를 즐겨 읽었다. 무협지류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무예의 고수가 되어 붕붕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책을 읽다가 눈을 감고 상상하면 언제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 1969년 중학교 2학년 1학기 춘계소풍. 면소재지 중학교에서 6km 쯤 떨어진 서봉사라는 절 뒤 계곡이 단골 소풍지였다. 한 학년 2학급이었는데, 여학생은 한 반의 반밖에 안 되었다. 1학년 때는 남녀공학반인 2반에서 보냈고 2.3학년 때는 남학생들만인 1반에서 학교 생활을 했다. 중학교 때만해도 내 키는 큰 편에 속했다. ⓒ박준성

중학교 1학년이던 1968년 광화문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졌고, 12월 5일에는 국민교육헌장이 제정 공포되었다. 초등학교 때 외웠던 ‘혁명공약’ 대신 이제는 그보다 더 긴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했다. 조회 때 마다, 행사 때 마다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하였다. 교과서 겉장 안쪽에는 국민교육헌장이 실렸다. 때때로 외우기 시험을 보았다. 못 외우면 얻어맞았다.

조회시간에는 부동자세로 서서 똑 바로 맞춘 줄 사이로 군복을 입은 교련 교관이 설치고 다녔다. 내 쪽으로 오는가 싶었는데 허리를 확 돌리면서 지휘봉으로 옆의 아이 가슴을 쿡 찌르며 외우게 했다. 잘 외우던 국민교육헌장도 더듬거리게 된다. 못 외우면 엎드려뻗쳐를 시켜놓고 다른 손에 든 각목으로 엉덩이를 때렸다.

그 전까지 머리 속에는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한다”가 들어 있는데 이제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바꿔서 외워야 했다. 국민교육헌장은 시작부터 거짓말이었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무슨 사명을 띠고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술술 외워질 리가 없었다. 그래도 내가 못 외워서 맞은 적은 없다.

전 세계는 유럽에서 타오른 68혁명의 열기가 휩쓸고 있던 1968년, 내 몸과 마음은 부활한 군국주의, 국가주의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박준성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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