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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따라 세상의 밥으로 사는 자는 복이 있다예수와 한국교회를 갉아먹는 목회자들을 향해
이옥희 | 승인 2018.02.24 21:52

멀리서 돌아오니 사람들이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르고 목회자들과 교인들을 폄하하고 혐오하는 말을 함부로 하였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심기가 불편하였고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끔 어떤 집단 또는 언론 매체가 의도적으로 왜곡하며 음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들과 변론을 하고 싶기도 하였다.

예수와 한국교회를 갉아먹는 목회자들

차츰 한국사회에 익숙해지면서 교회의 문제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렸다. 크고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의 교권남용과 교회예산의 오용, 세습, 부도덕한 생활 뿐 만아니라 대형화되고 물질화된 교회들의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행태와 폭력, 크고 작은 교회들의 다양한 대립과 분열, 사기와 갈등, 목회자 초청의 잡음과 이단 분쟁 등으로 한국 교회가 온통 시험 속에 있었다.

항간에 떠도는 가장 크게 떠돌며 씹히는 소문은 은퇴하는 목회자들의 세습과 퇴직금 건이었는데 그 내용이 거짓말 같은 참말이었다. 다양한 교회들의 담임목회자 부자 세습을 비웃는 세상 사람들에게 아무런 할 말이 없고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은퇴하시는 목회자들이 몇 억이나 십억이 넘는 돈을 퇴직금으로 받을 때, "억"하고 놀란 교우들이 실망한 나머지 한 사람에게 "억" 소리를 전하면 금방 그 지역사회에 "억" 소리가 퍼진다. 그 "억" 소리를 들은 크리스천, 넌 크리스천 할 것 없이 “억! 억!” 거리면서 교회와 목회자가 함께 세상 속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하였다.

은퇴할 때 돈에 걸려 넘어져서 평생의 목회한 영광과 명예를 일순간에 잃는 목회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가슴이 아팠고 목회에의 진심과 헌신을 "억" 대 돈과 기꺼이 바꾸고자 하는 은퇴 목회자들이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셨는지? 과연 그 분들 안에 주님의 생명이 있었는지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참된 양식, 참된 음료를 마시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섬긴 목회자라면 상식적으로 중소형의 교회가 감당해낼 수 없는 몇 “억” 대 또는 “십억”이 넘는 돈을 결코 퇴직금으로 요구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억" 대의 소문으로 지역사회를 술렁거리게 만드는 목회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런 소문들이 복음전파와 교회의 이미지와 기독교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생각할 때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거금이 유명한 교회와 별 볼일 없는 교회의 판단 기준이 되고 성공한 목회자와 실패한 목회자를 나누는 교회현실 속에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자신을 밥으로 주신 예수님 앞에 엎드려 예수님을 먹고 마시며 예수님처럼 세상의 밥이 되고 싶다.

그러나 '야소(耶稣)'라는 이름에 담긴 깊은 의미

나는 '예수' 라는 이름을 좋아한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을 가진 '예수' 이름의 그 우주적인 깊이와 높이, 넓이 앞에서 말문이 막히고 옷깃을 여미게 된다.  

예수의 히브리어 이름은 '예슈아' 또는 '예호슈아' 였으나 신약성경이 희랍어로 쓰여 지면서 '이에수스'(Ἰησοῦς) 라는 희랍어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변형되었고, 희랍어 성경이 라틴어로, 라틴어 성경이 영어로, 영어 성경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Jesus'에 가까운 음가인 '예수'로 번역되었다. '예수'라는 한국어 이름은 'Jesus'의 소리를 따라서 지어졌기 때문에 그 자체에 '구원자'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가 ‘구세주’ 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므로 예수의 이름에 감격하고 감동을 하게 된다.

금번 성탄절에 耶稣(이에수, 중국식 발음/ 야소, 한국식 발음)라는 중국어 예수 이름을 묵상하면서 전율하였다. 예수님의 삶과 그 분의 구세주 됨의 의미를 너무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실체를 잘 표현하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이 살아야 하는 삶을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름이었다.  

耶稣(야소)의 첫 글자인 耶를 살펴보면 좌측은 귀를 뜻하는 '이' 자이다. 귀는 소리를 듣는 일을 하는 우리 신체의 기관으로 우리는 귀를 통해서 세상의 소리를 들으며 세상에 응답하며 세상과 관계를 맺고 산다. 耶의 우측은 한자 부수의 하나로 고을읍 변과 언덕부 변을 총칭한다. 고을과 언덕은 사람이 사는 생로병사와 온갖 다양한 인간사가 일어나는 장소와 사람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꾸며 수확하며 넘나들어야 하는 피조세계, 자연을 칭한다.

耶자는 인간과 자연의 소리를 들으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의미한다. 창조주는 마을과 도성, 세상에서 들려오는 인간의 소리와 우주 만물의 소리를 들으신다. 하나님의 귀는 열려 있어서 힘없는 자, 가난한 자, 노예와 학대 받는 자, 고아와 과부들의 억울한 소리와 탄식을 들으신다. 저자에서 들려오는 생로병사, 흥망성쇠, 성공과 실패, 분노와 증오, 전쟁과 폭력, 기아와 학대의 크고 작은 소리를 들으신다. 평화와 감사, 사랑과 우정, 찬양과 화해, 치유와 회복의 소리를 들으신다. 자연에서 들려오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충만한 생명의 소리와 파괴와 몰사, 기아와 가뭄, 학대와 착취의 소리를 들으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은 힘 있는 자, 지식을 자랑하는 엘리뜨들의 소리에 둘러싸여 있다. 세상은 돈의 힘, 정치의 힘, 지식의 힘, 예능의 힘, 체능의 힘, 기타 힘을 가진 자들을 영웅과 성공의 주인공으로 추앙하며 그들의 소리에 광분하며 열광한다. TV, 라디오, 신문과 잡지는 앞을 다투어서 성공자, 권력자, 영웅들의 소리를 전한다.

세상은 약자, 가난한 자. 실패자, 낙오자, 고아와 과부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 세상은 이주 노동자들, 실업자들, 난민들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 민주주의 정치는 민을 주인이라고 말하면서 민의 소리를 듣는다고 하지만 선거를 통해서 민의 대표가 된 자들이 자기 생각을 민의 소리라고 착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예수님은 조용히 듣는 분으로 우리 곁에 오셔서 작은 자들의 소리를 들으신다. 세상의 약자와 죄인들의 말, 소리, 탄식, 눈물을 들으실 뿐만 아니라 소리 없는 소리, 말 없는 말까지도 들으신다. 예수님은 죄악, 탐욕, 의심과 두려움으로 병든 모든 인간과 피조물의 소리를 들으시며 치료하신다.

稣 자의 좌변은 물고기 '어' 자이고 우변은 벼꽃 '화'자로 조, 좁쌀, 벼, 곡식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稣 자는 물고기와 좁쌀로서 일용할 양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이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밥이라는 뜻이다.

우리 예수님은 일용할 양식으로서 우리의 생명을 주는 밥으로 세상에 오셨다. 우리의 밥이 되기 위해서 창조주가 피조물의 몸을 입고 세상에 와서 몸소 밥이 되어주신 사건이야말로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이고 우주적인 대사건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며 사랑이시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채소, 씨 열매, 과일 열매를 양식으로 주셨다. 노아 홍수 이후에는 모든 산 동물을 먹이로 주시면서 피와 함께 먹지 말도록 권고와 경고를 하셨다. 사람은 땅 위와 바다 속의 것과 하늘을 나는 모든 것을 양식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을 모르고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 더 큰 것을 탐하며 죄악과 불안과 고통으로 노예가 된 삶을 살았다.

하나님은 이를 가슴 아파하시며 타락한 인간의 회복을 위해서, 평화를 위해서, 해방을 위해서, 구원을 위해서 자신을 대신하는 아들을 세상에 내보내셨다. 예수님은 이런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잘 아셨고 자신의 피와 살을 생명의 밥으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주었다. 그는 짧은 공생애 동안 담대하게 외치고 선포하였다. 자신을 먹고 살라고! 그리고 십자가에서 우주의 잔치를 배설하시고 기꺼이 우리의 밥이 되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자신이 사람들의 밥이요, 음료임을 손수 고백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뜨겁고 간절한가! 이에수, 耶稣, 두 글자를 묵상하면서, '생명의 떡'이라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의 경륜에 감동되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예수를 따라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밥으로 내어주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나님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우주에 메아리치고 있는데 인간이 탐욕과 교만과 무지에 빠져서 마음을 닫고 귀를 막고 죽음의 길로 가고 있음이 얼마나 불쌍한가! 하나님의 사랑을 조소하며 능멸하는 바벨탑의 역사가 아직도 계속되며 미혹되는 자가 많음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예수님의 아름다운 중국어 이름 '이에수', 耶稣는 하나님 아들이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의 소리를 듣는 자임과 인간의 일용할 양식, 밥임을 선포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면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는 너무 분명하다.

'개독교'라는 말은 교회가 세상의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사람들의 밥이 되고 있지 않음을 반증해주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세상을 향해 '거짓 진리와 탐욕의 소음'를 발하며 사람들의 것을  속여 빼앗고 훔치며 약탈하며 세상을 오염시키는 존재라는 증명이 아니겠는가! 

예수를 일용할 양식으로 먹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

그들 안에 예수의 생명이 역동하며 영생을 사는 축복을 받으니 이 세상에서 천국을 사는 것이다. 예수의 생명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자신을 누군가의 식탁에서 밥으로 주는 삶을 산다. 자신을 누군가에게 밥으로 주는 사람은 세상을 이긴 행복한 작은 ‘예수’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날마다 누군가의 식탁에서 밥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이옥희  yiso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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