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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카우츠키, 낭만적이고 따뜻한 휴머니스트[인터뷰]이승무 소장과 김영호 대표를 만나다
이정훈 | 승인 2018.03.02 00:18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아직도 교회라는 공간에서 Karl Marx(칼 마르크스)는 “죄인 중의 괴수” 쯤으로 취급된다. 게다가 마르크스와 관련된 서적을 읽거나 그에 관한 사상을 언급하는 교회 구성원도 불온시 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받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현상에 대한 원인을 이야기할라 치며 속된 말로 만리장성을 쌓아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불온시 되고 시대에 뒤떨어진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남향린교회 집사이자 ‘순환경제연구소’ 이승무 소장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일지도 모를 일이다. 마르크스가 직접 저술한 책은 아니지만, 소위 마르크스주의 진영에서 마르크스-엥겔스의 적자(嫡子)로 인정되는 Karl Kautsky(칼 카우츠키)의 책들을 번역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속된 말로 돈 안 되는 책을 출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동연출판사 김영호 대표와 함께 만나 책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고, 머피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2-3주 전에 이 두 분을 만나기로 약속한 날, 약속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전동휠체어가 들어갈만한 카페 혹은 조용한 장소를 찾지 못하고 3백 미터나 멀리 떨어진 자그마한 카페를 겨우 발견했다. 더하여 이승무 소장은 약속 날짜를 잘못 알고 계셨던 것이다.

3초 정도 고민을 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기로 하고 한 시간 가까이 김영호 대표와 사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몇 번 스쳐가듯 김 대표를 뵌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는 처음이었고, 가지고 있는 생각이, 누가 보기에는, 그렇게 왼쪽으로 가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속으로 “김 대표님을 인터뷰 할 껄 그랬나?” 하는 우스운 생각마저 들 즈음 이승무 소장이 도착했다.

약속 시간에 늦었다는 죄송한 마음에 몇 번이고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시고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렸다.

▲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강남향린교회 집사이자 순환경제연구소 이승무 소장. 20대 때 한 예장 교회 청년회에서 알게 된 칼 카우츠키에 대한 관심이 영글어 그의 책을 번역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정훈

“저는 순환경제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구요, 환경연구 중에서 다른 환경연구소에 있다가, 기업체, LG에 있다가 LG에서 환경연구소가 없어지면서 함께 있던 사람들과 만든 곳에서 활동하다가 제 자신이 특화된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어서 옮기게 되었습니다. 물질순환, 쓰레기 리싸이클링에 관한 부분으로요. 그렇게 2008년도에 만들어서 활동했고 올해 10년이 되어갑니다. 그동안에 좀 프로젝트와 컨설팅들을 꾸준히 해왔었습니다. 요즘은 조금 침체기입니다. 2011~12년 그즈음에 잘되었다가 지금은 잘 안 되고 있지만 조금이나마 하고 있습니다.”

경제쪽의 일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칼 카우츠키의 책을 번역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번역한 칼 카우츠키의 책들은 내용에서는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독교와 관련된 책이라 번역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결국 이 소장의 종교적인 배경이 궁금했던 게다. 

“저는 강남향린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향린교회를 2003년인가 2004년부터 다녔었고, 지금은 강남향린교회로 옮겨서 다니고 있습니다.”

인터뷰가 마치고 함께 지하철역을 향해 가면서도 이 부분에 관해 좀더 이야기를 나눴지만, 여러 가지 고민 끝에 다니던 예장 측 교회를 나와 처음 명동 향린교회에 참석해, 그 당시 명동향린교회 홍근수 목사의 설교를 들었을 때의 기억은 “평생을 두고 지워지지 않을 만큼 시원했다.”고 했다. “가슴을 짓누르던 무언가가 없어졌다.”는 표현까지 쓸 정도였으니, 신앙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던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도 같았다.

결국 그 당시 주류 한국교회들이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을 때 청년들이 느꼈을 답답함을 이 소장을 통해 다시 한 번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오늘날의 한국교회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다. 여전히, 아니 더 극단적으로 우경화 되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교회들의 상황에서 그 당시는 수평 이동이라도 가능했지만, 이제는 수평 이동도 할 수 없을 만큼 교회들의 우경화는 청년들로 하여금 아예 교회를 등지도록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무슨 취조를 하는 것도 아니지만,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번역자의 종교적 배경을 알고 나니 사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것도 사실이었다. 전혀 다른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번역자라면 인터뷰가 쉽지 않았을 일이라 그나마 안심되었는지 그제서야 조금 가벼운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질문을 돌이켜 보니 가벼운 질문도 아니었다. 

“우스운 질문일 수도 있는데, 긴장을 좀 풀어 볼겸 해서요. 마르크스주의의 계보가 맑스-엥겔스-카우츠키로 이어지는 계보라고 합니다. 올해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입니다. 소장님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라고 하니 기분이 어떠세요?”

“말씀해주셔서 아, 그렇구나 했는데, 마르크스가 저한테는 굉장히 뭐랄까, 어려운 분야에요. 자본론을 읽어보고 학교 다닐 때부터 접하고, 강의들을 들어보았지만, 경제이론들이나 그런 부분들에서는 뛰어난 분이지만, 인간적인 부분에서는 가깝게 가기는 어려운, 그런 느낌이 저는 있습니다. 그의 전기를 살펴보면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카우츠키의 책을 번역해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으신 어떤 이유인가요?”

“제가 생각해보니 향린교회에 다니기 이전에 응암동에 있는 한 예장 교회에 다녔었는데 그 때 청년부에도 참석했어요. 청년회에서 총회에서 나온 교재를 가지고 공부를 했었는데, 그 청년 교재에 카우츠키에 대한 이야기가 있더라구요. 거기에서 카우츠키가 예수를 사회민주주의자로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읽었어요. 각자마다 자기의 관점으로 예수라는 인물을 그리고 생각한다, 그런 예를 몇 번 들으면서 관심을 키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이후에는 학교 도서관을 다니면서 보니까, 실제로 그런 책들이 있었어요. 언젠가 한번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이후 연구소를 시작하면서 아침 시간에는 책을 많이 읽어버릇 할 때인데. 이 책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으면서, 이걸 읽는 것도 좋지만, 읽다가 지루해지면 제가 스스로 안 읽을 것 같아서 번역을 하면서 읽으면 놓치지 않고 쭉 읽겠다는 생각해서 번역작업도 시작했습니다.”

“그럼 20대에 가졌던 관심이 쭉 이어져서 결국에는 번역작업 까지 이어진 것이군요?” 

“그렇죠.”

“20대에 카우츠키를 처음 접하시면서 들었던 느낌이랑 이제 연세가 조금 드셔서 느껴지는 부분에서는 어떤 게 다른가요?”

“어떤 선입견, 이게 과연 그런 책이었던 것인가, 이 사람이 어떤 정치적 고정관념에 잡혀있던 것인가, 생각하고 다시 보니까 꼭 그렇지는 않더라구요. 상당히 풍부한 내용들이 들어있기도 하고, 제대로 된 실체를 확인하려는 노력들, 학술적인 책은 아니더라도 일반인들에게 최소한의, 나름대로 이 사람이 이야기하는,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이런 식으로 바라보아야지만 한다는 주장을 하지만, 그리고 편협함 없이 바라볼 수 있기 위해 도식적인 것들만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20대 초반, 그 때에는 사실 초심자였거든요. 그런데 그동안에 교회나, 여러 곳에서 말씀을 들으면서 다시 보았을 때는, 내가 몸담고 있는 기독교라고 하는 것이 교회에서 이야기하거나, 기독교 서점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것들이 아니라 사회과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굉장히 흥미롭더라구요. 복음서나, 예수님의 이야기들이나, 진리의 여부에 대해서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신학자들이 분석하기 어려운 부분들, 일반 사회학자나 역사학자가 보았을 때는 다른 면으로 볼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신학자들이 어렵게 말하는 것들을 그 사람들은 쉽게 말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소장님도 말씀하셨지만, 기독교라는 실체를 외부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게 사실은, 다른 책들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관여를 하게 되면, 거기에 굉장히 몰입을 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이 왜 이렇게 썼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하는데, 결국에는 그 사람 편이 되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 점에서 그 전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 신학적 생각들, 기장 측의 생각들과 비교해 보고 이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와 바벨론에게 포로로 붙잡혔다가 유럽으로 퍼져나가는 이야기들, 가설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잖아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중간에서 상인 역할을 하던 사람들인데, 바다로 가는 길이 개척이 되면서, 무역로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리면서, 노상강도 일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주로 상업으로 영위하던 사람들이고, 농업이나 수공업은 서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생존기반이 사라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럽의 대도시로 퍼져나갔다는 이야기들이 인류의 이동을 설명하는 것에 있어서 신학적, 정치적 이유보다도 더 중요한 이유였겠구나 싶더라구요. 기후의 변동, 사람들의 생계유지, 경제활동의 변화가 제일 밑바닥에서 사람들의 이동을 야기하는 부분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그런 부분들은 충분히 납득이 가고, 경제사적인 부분들을 무시하게 되면 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거죠.”

기독교라는, 아니 그 전에 기독교의 뿌리가 되는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에 관해 사회과학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어서 흥미로운 책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이런 사고를 할 수 있는, 아니 이런 사고를 평범한 생각이라고 긍정해 줄 수 있는 교회는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에서 머리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 매섭고 날카로운 마르크스에 비해 낭만적이고 따뜻한 휴머니스트에 가깝다고 칼 카우츠키를 소개하는 이승무 소장. ⓒ이정훈

“제가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카우츠키가 마르크스에 비해 기독교에 대해서 그렇게 비판적이거나 비난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카우츠키가 마르크스에 비해 기독교인들에게 좀 더 따뜻하게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맑스의 종교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을 사회경제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신앙적인 게 어딨어!’ 이런 식으로 될 수 있지만, 오히려 마르크스의 느낌보다는 그러한 부분들이 조금 적었다고 느꼈거든요.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는 볼 수 있지만요. 이런 부분에 있어서 마르크스의 종교관과 카우츠키의 종교관이 비교되는 부분들이 있을까요?”

“제가 마르크스의 책들을 전부 자세히 본 것은 아니구요, 카우츠키의 책들은 많이 보았는데, 카우츠키는 휴머니즘을 명시적으로는 사회주의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제가 보니 유토피아 사회주의에 대해서 상당히 주의 깊게 바라보고, 사회주의의 근원을 찾는 과정에서 유토피아, 기독교적인 뿌리 등을 토마스 무어와 같은 사람들에게서 찾는 것들이, 제가 봤을 때는 조금은 이상주의적인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마르크스의 역사관에 대해서 보급하는 역할이 있었지만, 굉장히 메마른 유물론적인 관점뿐 만이 아니라,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 시대에서의 역할을 중요시 하는 것 같았어요. 스스로가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처럼 읽혔거든요. 그 뿐만 아니라 농촌문제 등에서도 현실을 그대로 드라이하게 묘사하고 냉정한 결론을 내린다기 보다는 실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그 사람들에 대해서 단순한 발전된 농업사회를 구상하는 것도 맞지만, 사회민주주의는 그런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실제를 바라보고 그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때 카우츠키는 골수 사회주의로 보기에는 조금 낭만적이고, 휴머니스트적인 부분들이 크구나 싶은 부분들이 많더라구요.”

카우츠키의 책을 주의 깊게 읽은 사람이라면 느꼈을, 과학적이고 메마른 이론가가 아니라 조금은 “낭만적이고 휴머니스트”에 가깝다고 이야기하는 이승무 소장의 평가는 이제 본격적으로 번역되고 연구되기 시작한 카우츠키 연구자들도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었다.

“사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자본주의가 어디에서 왔는가 생각하고, 그 시대를 태동시켰던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인데 카우츠키는 그 반대로 이상사회가 어디로부터 왔는가 생각했을 때 기독교로부터 왔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기독교를 차분히 해석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소장님이 읽으시면서 그렇게 느끼셨다는 것이 카우츠키를 이렇게 소개하는 게 더 잘 먹히지 않을까 싶습니다.(웃음)”

“다른 책들도 봤을 때 그 책뿐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책들도 있기는 한데, 전체적으로 민주주의와 사람들이 돈에 얽메인, 돈의 문제에 대해서, 평등에 대해서 그런 가치들을 가지고 있어요. 정치적 강령들을 보게 되면, 무언가를 유도하는 것도 아니고, 폭력혁명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전혀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오히려 사회혁명단계가 아니라 프랑스 혁명이 아니라 부르주아 혁명 단계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을 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하는 것은 의회민주주의라는 체제 아래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프롤레타리아가 수에 맞게 정치적 기회를 잡고 절대적인 집권당이 되는 것이라고 보거든요. 그렇게 해서 민주주의라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사회주의적인 이상에 대해서 계속 언급을 하는데, 이런 것들이 어찌 보면 관념적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카우츠키가 지속적으로 작업을 하는 것을 보면, 플라톤, 토마스 무어 등 지식인들의 계보를 이어받은 사회주의자인 것이죠.”

“제가 좀 찾아보다가 소장님이 카우츠키의 『농촌문제』를 번역하셨잖아요? 제가 연도를 잘 몰라서 어떤 책이 먼저 나왔나요?”

“이 책 다음에 농촌문제를 번역했습니다.”

카우츠키의 책들을 인터넷 서점 등을 검색해 보면 이승무 소장과 동아대 경제학과 강신준 교수가 대부분 번역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독교와 관련된 카우츠키의 책들은 모두 이승무 소장의 번역작들이다. 엄밀한 사회과학적 입장을 중요시 하는 학자들에게 카우츠키의 이 책들은 어쩌면 도외시될 수 있는 책들이겠지만, 사회주의 자체가 어디서 왔는가 하는 역사적 연원을 찾아들어간 카우츠키의 이 책들은 카우츠키의 역작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카우츠키의 중요 서적들이 번역되었으니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승무 소장의 역할은 큰 것이 아닌가 싶다.

“출판사에 입장에서 보면 이 책이 잘 안 팔리는 책인데, 특별히 동연출판사 김영호 대표님에게 가신 이유가 있으세요?”

“네. 인연이 있지요. 제가 출판사에서 잠깐 편집부 일을 했었는데, 그 출판사에 1~2년 정도 함께 있었습니다.”

“사실 이게 대중서적은 아니잖아요? 출판사에서도 책이 많이 팔리고 이득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건 어떻게 감당하시나요?”

이런 질문에 동연출판사 김영호 대표는 그냥 한 마디로 정리하고는 웃는다. “고전이니까요.(웃음)” 하지만 이어진 이승무 소장의 대답이 더 재미있다. “좀 잘 알려진 사람이 번역을 하고 했으면 더 책이 빛을 보았겠죠.(웃음) 많은 사람들이 알더라구요, 이 책은.” 기초적인 사회과학 분야의 책들을 번역하고 유통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에 “고전”임을 알고 이익에 상관없이 출판하는 출판사 대표나 20대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읽고 번역한 번역자나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조금 엉뚱한 사람들이 아닐까도 싶지만, 이들로 인해 한국 사회과학 분야는 더 풍요로워진 것만은 사실이다.

▲ 그저 “고전”이기에 출판사 사정 생각하지 않고 출판했다는 동연출판사 김영호 대표(사진 왼쪽)와 한 출판사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으로 책을 들고가 출판을 요청한 이승무 소장. 이들의 수고가 기독교를 더 풍요롭게 하는 ㄱㅅ이 아닌가 싶다. ⓒ이정훈

“저는 사실 많이 놀랐어요. 이 책이 번역이 되는구나! 해서요. 워낙 유명한 책이라서요. 그래서 이승무라는 분이 누굴까 궁금했거든요. 번역하시면서 어려운 부분은 없으셨나요?”

“번역하면서 독일어가 많이 늘었죠(웃음). 독일어를 고등학생 때부터 공부를 하긴 했지만, 뭐 시험 볼라고 했던거죠 뭐. 대학원 들어가면서 좀 하긴 했지만, 써먹을 곳도 없고, 불어도 하긴 했었는데,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또 하니까 되더라구요. 그리고 프루동의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도 번역을 했습니다. 아직 출판은 안 했구요. 그 책은 사후작인데, 그 안에 문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제목 중심으로 되어있는 것들이 있어서, 그런 부분들은 뒤로 보내는 등의 편집이 필요한 책입니다. 일단 1차 번역은 마친 상황입니다. ‘프루동‘이라는 사람이 성서를 꽤 연구를 했더라구요.”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마르크스는 프루동을 심하게 비판하잖아요. 공상적 공산주의자라고 비판을 하는데, 프루동을 읽어보시니까 또 어떠세요?”

“프루동만의 독특한 신관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곳에서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일 텐데요, 신이 인간들의 일을 잘 모른다는 겁니다. 시간 개념이 없고, 무한의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들의 어떤 희노애락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는 개념입니다. 다른 책이긴 한데 프루동의 신관이 잘 나타난 책이, ‘빈곤의 철학’이고, ‘철학의 빈곤’이 마르크스의 책인데, 마르크스가 프루동의 저 책을 비판하면서 쓴 책이에요.
어쨌든 프루동이 이 책에서 신관에 대해서 꽤 많은 두 개의 장 정도를 할애해서 써놓았어요. 그러니까 어떤 신관이 기초가 되어서 사회경제학이 나온다고 주장을 해요. 제일 앞부분보다도 제일 뒷부분에 그런 식으로 해놓았는데, 그 사람은 그런 점에서는 신에 대해서 도전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고, 어떤 사회과학에서 추구해야하는 부분이 전체적인 부분에서 어느 부분에 속하는가라는 것들을 다루었더라고요.”

마르크스에게 비판 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이라고 하면 너무 속좁은 편견이 되겠지만, 한국사회과학계에 유난히 천대받는 프루동의 책을 번역했다는 이승무 소장.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뜬금없는 질문이 떠올랐다.

“카우츠키가 좋으세요? 아니면 프루동이 좋으세요?”

“카우츠키가 우리한테는 더 가까운 것 같아요. 프루동은 괴팍한 천재라 그러거든요. 지금도 그 사람의 사상을 학자들이 조금씩 발굴을 하는데, 그 사람은 굉장히 탁월한 부분도 있고, 아주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없는 난잡한 글을 쓰는 부분도 있어요. 그러나 카우츠키라는 사람은 비교적 글이 쉽고 그렇게 어렵지는 않죠. 또 우리들의 정서나 추구하는 것이나 역사적인 부분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공감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조금 실례되는 질문일 것 같은데, 카우츠키의 책이 교회현장에서 쓰인다면 어떠한 부분에 도움이 될까요?”

“먼저 기독교를 공부한다고 할 때 성경책을 읽는 것 그리고 거기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이 기본이고, 저는 그런 부분들이 카우츠키의 책에, 성서에 나와 있는 역사적인 부분들에 대한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신앙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는 둘째 치고, 성서를 읽는 데에 좀 더 집중해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객관적으로요.”

“기장이건 예장이건 감리교이건 80년대 운동에 투신했던 분들이 ‘기독교를 드라이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욕들을 들었습니다. ‘신앙이 없다’, ‘하나님도 없고, 성령도 없고, 예수만 있다.’ ‘신도 아닌 인간 예수만 남았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고, 사회경제적으로 기독교를 바라보면 기독교라는 것이 사회적 현상 중에 하나, 즉, 신적인 실재, 신앙적인 것이 낄 틈 없고 사회가 흘러가는 중에 그저 하나의 것이라는 이야기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우리가 우리의 역사에서 유교, 불교와 같은 것들을 우리의 문화로 생각을 하고 받아드리잖아요. 이처럼 받아드리는 것을 유교나 불교를 신봉한다고 하기 보다는 우리의 실체로써 받아드리는 것처럼 유럽의 실체를 이 사람은 그것을 본 것이죠. 어떤 신앙적인 입장이라기보다는 그 당시에 존재하는 (현재까지도) 유럽 사람들의 정신적인 뿌리, 문화 등을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가를 정리한 것이죠.
제가 그 책을 독일에다 주문을 했는데 배달이 잘 안 되었어요. 그래서 연락을 했더니 환불해주더군요. 그런데 환불을 받고난 뒤에 책이 도착했어요. 그래서 다시 연락을 보냈더니 책값 대신 먹을 것을 보내든지 아무거나 보내주고 싶으면 보내주라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영문으로 된 한국의 불교에 대한 책을 보내주었더니 ‘자신은 기독교에 대한 책을 보냈고, 불교에 대한 책을 받았다.’라면서 잘 받았다고 연락을 받았어요.
그 사람은 그 책을 그 사람을 불교로 포섭하려는 것이 아니라 불교에 대해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한 책이었다고 생각했겠죠.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역사에서 기독교에 대한 깊이 있는 소재정도였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유교나 불교의 경우에는 그렇게 바라보지마는, 기독교에 대해서 문화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신학 책은 대부분 신앙을 가진 신학자들이 접근하는 책들이 대부분이죠.”

“그럼 소장님은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면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교회, 신학을 바라보는, 기독교를 바라보는 작업들을 사회과학적으로 진행하지 못하여서 발생한다고 진단을 하시는 것인가요?”

“그렇게 진단을 하지는 않고, 한국교회에서 발생되는 문제들은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문제들이잖아요. 이것들을 사회과학적으로 받아드려서 그런 것이 없어져야 된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게 생각을 할 수도 없고요. 이것은 우리나라 사회에서 여러 가지 종교가 가지고 있는 역할 등에서 발생되는 문제이고, 사회의 갈등, 부패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것들이 한발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고, 제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지마는, 거기에 매몰되기보다는 긴 역사적인 관점으로 사회과학적인 배경으로 생각을 한다면 그런 것들에 일희일비하면서 크게 실망하는 등의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거기서 어떤 절대적인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큰 시야에서, 성숙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장님을 뵙기 전에 김영호 대표님과 잠시 이야기를 했었는데, 종교개혁 운동을 그냥 신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 사회과학적인 눈으로 바라봐서 종교개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출판을 결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생각이 이루어진 것 같으세요?”

이 질문을 듣자마자 동연출판사 김영호 대표가 먼저 대답한다.

“제가 이야기를 좀 한다면, 근대로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종교개혁이 있었는데,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사람이 95개 조항을 딱 붙이면서 사회가 그냥 뒤집어진 것이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죠. 그리고 종교개혁이라는 자체도 여러 가지 흐름들이 있었고, 성공하는 배경도 있고 한데, 이 모든 것을 쳐내버리고 종교개혁을 인식하려는 것은 좁은 시각으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떠세요? 독자들은 그런 데에 대해서 깨어났을까요?”

“알게 되겠죠.”

이승무 소장을 기다리며 한 시간 가까이를 김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일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김 대표는 카우츠키의 책을 통해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해 더 현실감 있게 알게 되었다.”며 종교개혁을 이해하는데 이 책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 면서에서 지난해 종교개혁 500주년에 맞추어 출판되었으면 했지만 조금 늦어져 아쉽지만 그럼에도 종교개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는 변함없다고 한다.

“소장님은 어떠세요?”

“기독교인이라면, 교회를 진지하게 다닌 사람이라면 그 부분에 대해서 한번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거에요. 저도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그 부분을 굉장히 재미있게 이 책을 통해서 봤고, 물론 루터에 대한 다른 책들도 있지만, 다른 책들은 현실감은 없었어요. 전기라던가, 그 사람의 신앙적인 체험에 대해서는 기술을 해놓았지만, 그것이 일반인과 다르고, 어떤 격정에 휩싸여 개인적인 개성을 강조하는데 그것만으로는 충족이 안 되죠. 그 현장에서 사람들이 어떤 것이 문제였었고, 각각 사람들의 입장들이 주말연속극처럼 알고 싶었는데 그런 면에서 ‘이런 거였었구나. 루터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공부를 했고 이런 배경에서 문제제기를 했구나.’라는 것을 알았고, ‘루터 전에도 다른 사람들이 루터와 같은 생각을 했는데 루터와 같은 파급효과가 없었는데 차이가 무엇인가’에 대해 현실적으로 잘 설명해준 것 같아요.”

지난해 기독교 출판계와 서점가에는 책을 진열하는 곳에 종교개혁과 관련 있거나 마틴 루터의 관한 책들이 점령하다 싶이 했었다. 지금은 물론 썰물 빠지듯이 사라졌지만 말이다. 이승무 소장이나 김영호 대표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종교개혁 전후로 사회변동이나 상황을 다른 책은 전무했다. 신앙의 관점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강변하는 두 사람이었다.

“꼭 카우츠키의 책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것들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을 가지고 읽어왔던 사람들은 한국 신학계에서는 소수잖아요? 빨갱이니 뭐 이런 이야기도 듣고요. 웃기지만 이런 이야기가 한국 사회에서 주류가 될 날이 있을까요? 독일 교회나 독일 신학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오히려 주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한국 사회에서도 주류가 되고, 비판적인 눈으로 읽어내고, 교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사실 기장이 그러다가 지금은 기장마저도 등을 돌렸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어서 저는 한국사회에서 이런 담론이 주류담론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소장님의 생각은 어떤지 듣고 싶습니다.”

“교회 사람들끼리만 신조로 똘똘 뭉치는 것보다는 그 담이 허물어져서 지성계에서 기독교를 같이 공유할 수 있고, 일반인들 하고 가치에 대해 공동의 역사적인 하나의 음성으로 우리가 그렇게 해 나가는 것이 우리 기독교의 입장에서도 더 바람직 할 것 같아요. 신자를 위한 교육체계, 교리보다는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그걸 가지고서 우리 사회에서 열어놓고 우리 사회의 문제 등 같이 대화를 해나갈 수 있는, 다른 종교와 소통도 충분히 해야 하고, 그런 관점이라면 사람 사는 선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고, 사람 사는 사회에서 특별하지 사람들이 좀 더 제대로 살고, 눌려있는 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이고, 그런 것들이 더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해가 갈 것이고, 다른 종교에서도 원불교나 침례교 등등 다른 종교에서도 무슨 신비적인 부분이나 그런 것 보다 우리하고 가까운 것들을 얼핏 요즘 느낍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도 (거의 옛날의 이야기이지만) 그런 것들이 우리한테 실감나게 전달될 수 있다면 플러스가 된다고 생각해요. 다른 종교들과 같이 대화할 수 있고요.”

▲ 지금까지 번역된 기독교 관련 칼 카우츠키의 책들을 들고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두 분과 사진을 찍었다. ⓒ이정훈

“마지막으로 소장님과 대표님께 공통적으로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이런 면에서는 기독교인으로써 도움이 된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까 이야기하고 연결을 지어서 하자면 주술적인 샤머니즘적인 종교가 아직 주류이잖아요. 그 주류 세대가 지나가면서 점점 축소되고 있어요. 기존보다 위축되고 있지요. 그러나 여전히 다수에요. 그것이 다 없어질 때까지 최소한 50년은 걸릴 것이고, 여전히 주류일 것이지만, 이런 책으로 기독교를 접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이 교회를 가겠느냐, 교회를 다녀야만 기독교인이냐, 안 다니면 기독교인이 아니냐? 하는 논쟁이 있잖아요. 어쨌든 이런 식으로 접근하여 기독교를 이해하고, 기독교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 추세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 사람들이 교회를 가느냐와 그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냐에 대해서는 별개의 부분이죠. 현재는 기독교를 넓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 집단은 사실 기독교인이 아닌 우상숭배자들 같아요. 그것은 기독교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면 지금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많이 해결 될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거기는 거기대로 가고, 새로운 쪽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쪽에서 그걸 수용하는 순간 엄청난 갈등이 일어나겠죠.”

김영호 대표가 예상하는 한국 주류 기독교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지켜보아야 할 부분이지 싶다. 어쩌면 김 대표의 표현대로 “새로운 쪽이 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위를 둘러보면 주류에 편입하지 못해 안달하던 목회자들의 모습이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성경책을 사람들이 읽을 때 긴가민가하면서 읽는단 말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근데 카우츠키의 책에 있는 이야기는 역사에서 일어난 일이거든요. 그러고 실제로 기독교의 힘에 의해서인지 다른 어떤 목표를 추구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순교의 이상을 추구하다가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차 있거든요. 이거는 굉장히 힘이 강하다, 기독교라고 하는 종교가 예수를 둘러싼 교리의 힘이라고 보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기독교적인 생활, 공동체적인 생활모습에 대한 신념, 물론 사회의 모순 때문에 그런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결집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굉장히 강했고, 중세부터 꾸준히 힘을 발휘했어요. 사회를 변화시키는 불씨가 분명히 되었기 때문에, 저는 그것은, 기독교라는 말을 쓴다면, 굉장히 위대하다고 실제로 느낄 것 같아요. 순교자 열전에서 말하는 그런 것과는 다르지만 그렇게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공산주의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교회에서는 이상하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저는 굉장히 주목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기독교인으로써 자부심을 가지고 지금의 기독교에 대해서 실망할 수 있지만, 이 여기 나와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질 수 있는 내용입니다. 또 몰랐던 내용도 많이 있는데, 재세례파 사람들이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내용들, 꾸준하게 자신들의 공동체를 이어가려는 노력들, 그런 노력들이 꾸준히 지금까지 이어지더라고요. 사실은 그 당시 시대에 재세례파들이 지금의 기독교인, 합리적인 기독교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것 같아요. 십일조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었고, 사람이 이성이 다 성장했을 때 세례를 해야지 아기한테 세례를 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 등을 생각해 보면 재세례파 사람들이 가장 현대인들의 정서를 가지고 있고, 예수를 순수하게 따르려고 했었던 사람들 같아요. 저한테는 재세례파 사람들의 이야기가 꽤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이 기독교를 떠난다고, 버리려고 생각을 하잖아요? 근데 이 책을 읽어보면 상당히 많은 이런 사람들도 있었구나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이승무 소장과 김영호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며 주류가 되지 않아도 좋은 사람들, 주류가 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 아니 “주류”라는 단어조차도 쓰지 않는 사람들을 만난 것 같다. 이들이 신앙하는 기독교는 전혀 다른 것이 아닐까 싶다.

인터뷰 기사를 쓰고 나니 “주류”라는 단어를 내가 몇 번이나 썼나 싶어 궁금해진다. 이제 봄이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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