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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어느 길로 가시는가?길이란 한 지점과 다른 지점을 연결시키는 줄 역할을 한다
박철 | 승인 2018.03.03 00:10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내 마음에 속내를 다 들어 내놓고
신에게 가장 솔직해 지는 길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길을 떠난다는 것은
사람이 절대로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배우는 길이다.
한번도 가지 않은 낯선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신이 보낸 사람이 틀림없다.

- 박철, <길>

서울의 거리는 본래 복잡하기로 유명하지만, 특히 근일에는 출퇴근 시간이면 그야말로 살인적인 교통지옥의 모습을 보여 준다. 어쩌다 서울에서 모임이 있어 갔는데 너무 복잡한 교통 환경 때문에 마치 무슨 외계에라도 온 느낌이 든다. 서울에서 10년을 넘게 살았는데도 말이다.

도대체 현대적인 도시 계획을 한다면 길의 정비와 교통 기관의 원활한 운영을 동시에 고려하지 않고는 안 되는 일인데 오늘의 서울이란 그렇게 되지 못하고 기형적으로 발달되고 팽창되었으니 그런 곤란을 당하게 되는 셈이다.

어떤 의미에서 길은 그 사회의 문명의 정도를 알아보는 척도이기도 하다.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다"라고 하셨다. 그것이 무슨 뜻인가?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 자신이 길이신가? 길이란 인간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에 들어서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란 도대체 선택과 결단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 앞에 사방으로 설친 길은 우리에게 선택과 결단을 요구한다. 대학에 지망하는 학생이 어느 과를 택하고 무슨 방면을 전공할 것인가를 고르는 일과 같다. 의사가 되려고 한다든지, 교사가 되려고 한다든지, 기술자가 되려고 한다든지, 과학자가 되려고 한다든지 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는 일이다.

▲ 오랜 인류의 역사는 방황과 미로의 수많은 흔적을 기록하였으며, 희귀하게 좋은 길잡이가 나타난 일도 있으나, 거짓 안내자들이 인류의 역사와 그 당대의 시대정신을 그릇된 방향으로 인도하였고, 오늘도 이런 일은 반복되고 있다. ⓒ박철 목사 제공

다만 그런 목표를 앞에 두고서도 우리가 허영의 길을 택하려는가, 위선자의 길을 택하려는가, 임시 편법의 안이한 길을 택하려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하느님께 이르는 길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를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진리와 생명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면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심이 그런 뜻이다. 그의 높으신 인격에 부딪치고 그를 깊이 사모하라. 그리하면 진리를 알고 영원하신 이 곧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길이란 어느 한 지점과 다른 지점을 연결시켜 주는 줄의 역할을 한다. 길이 막혔거나 길이 끊어졌으면 서로 통할 수 없다. 굴을 파거나 다리를 놓아 이를 연결하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인간과 인간의 마음이 서로 통할 수 있어야만 그것이 정상적인 사회의 유대를 형성하는 인간관계가 된다. 그런데 그 사이에 무슨 담장 같은 것이 막혔거나 건널 수 없는 구렁이 있어서 인격 관계의 단절이 생기는 수가 있다. 그것은 크나큰 비극이요 불행이다.

현대 도시인들의 생활 속에서 그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한 이웃에 여러 해 살면서도 서로 통하지 못한다. 의심과 시기와 교만과 허영은 인간의 마음을 피차 격리시키고 단절시키는 담장이요 구렁이다. 거기에는 오해가 생기고, 소외감, 고독감, 절망감 등의 무서운 사실들이 빚어질 뿐이다. 이것이 현대인의 비극적인 삶의 이유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길이시다. 인간과 인간을 피차 통하게 만드시는 다리요 굴이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에 간섭하시게 되어 거기 비로소 연결이 생기고, 교섭이 이루어지며, 참된 인간관계가 성립된다. 사랑과 진실과 옳음을 주로 하는 그리스도의 생활 태도는 인간끼리의 간격을 소멸시키고 마음과 마음을 통하게 하는 다리가 된다.

과연 그리스도는 길이시다. 동과 서, 위와 아래, 흑과 백이 서로 어울릴 수 있게 하는 길이시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의존되고, 사랑의 교제를 가능하게 하며, 이해와 용서와 협조와 화해 속에 참된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이가 곧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곧 길이다" 하셨을 때에 그것은 인류의 구속을 위한 자기희생을 의미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본래 길이란 길 자체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요, 그것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오직 봉사하는 곳에 그 존재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길은 끊임없이 사람의 발길에 짓밟히고 유린당하면서도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리하여 인간을 통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길의 생명이다. 그것으로 길은 자체의 기쁨을 삼을 것이다.

▲ 길은 언제나 부단히 물어질 것이다. 길을 묻는 자는 잘 물어야 한다. 길이 잘못 안내되면 그의 평생의 삶이 헛수고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도자로서 길의 안내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자신 없는 위선적 언어와 행동을 삼가야한다. ⓒ박철 목사 제공

그리스도는 자기를 희생의 제물로 삼으시어 인간의 마음을 연결시켜 주시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참된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셨으며,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사회와 사회 사이에 강한 유대로 연결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제공해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기를 위하여 잠시라도 사신 일이 없다. 다만 인간의 구속만을 위하여 자신을 제물로 내 주신 것이다.

예배당을 가는 길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그것이 곧 자기 자신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 중대한 말씀 또한 그리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요 오히려 섬기려 하고,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이 되어 주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것 때문에 사시고, 말씀하시고, 죽으신 것이다. '아!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길이시다. 우리의 참된 길이시다.'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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