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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마지막 시험(누가복음 22:31-34)홀로 있음과 함께 기도함
이성훈 | 승인 2018.03.05 00:28

사순절 넷째 주일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최후의 만찬이라 부르는 그 사건 속에서 누가복음이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일전에 가롯 유다와 베드로에 대한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나의 복음서에 나타난 이야기는 아니고 4복음서에 나타난 유다와 다른 제자들의 모습을 살펴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때에 드렸던 이야기는, 유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고,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의도조차 헤아리지 못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결국 유다는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또한 만약 예수님을 팔아야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된다는, 자신이 따르는 분을 배신해야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된다면 과연 우리는 그 뜻에 따라 행동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었습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라는 소설에 보면 ‘로드리게스’라는 신부가 과거 일본에서 몰래 포교활동을 하다가 결국 붙잡히게 되고, 일본 정부에 의해 배교를 요구받습니다. 배교의 방법은 예수님의 성화를 발로 밟는 것입니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배교가 아닌 순교를 택하려고 하지만, 일본 정부는 악랄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함께 잡아온 신자들을 밀물 때의 바다에 빠뜨려놓고, 로드리게스 신부가 배교하면 살려줄 것이고 아니면 모두 죽인다고 말합니다. 배교와 순교의 갈등 지점에서 로드리게스 신부는 한 음성을 듣습니다. ‘나를 밟아라. 나도 너와 함께 고통 받고 있다.’ 침묵이라는 소설은 어떻게 생각하면 가롯 유다의 선택,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취하라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셨을 때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재연인 것도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가롯 유다라는 인물을 재구성해보았을 때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저희가 살펴보려고 하는 이야기는 가롯 유다나 제자들에 대한 재구성이 아니라 ‘누가복음이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입니다.

사탄의 존재

다른 복음서들과 다르게 누가복음은 유다나 베드로의 행동에 사탄의 개입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사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면, 기본적으로 복음서에서 마귀나 사탄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존재이며 사람들에게 불행과 고통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사탄은 분명 사람들과 적대적 관계이지만 하나님과는 어떤 관계인지가 명확하게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유대인들의 개념 속에서 사탄은 욥기에 나타난 사탄의 이미지와 비슷할 것 같습니다. 욥기에서 사탄이 욥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던 것처럼, 사람에게 고통과 슬픔을 주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밑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는 존재이며 그렇기에 천사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도 될법한 존재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탄을 하나님에 적대하는 존재처럼 생각하거나 하나님이 구원을 하신다면 사탄은 저주를 내리는 존재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이러한 생각은 중세 교회에서 정립시킨 개념들이고 성경에서 사탄은 하나님의 명령 안에서 누군가를, 특히 사람을 시험하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그렇기에 사탄의 시험은 단지 고통과 아픔을 주는 시험이 아닙니다. 그 시험을 이겨냈을 때에 이전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얻게 되는, 사람을 한 단계 성숙 시키는 시험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흔히 말하는 ‘연단’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다면, 그것을 시행하는 존재가 사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하시기 전에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성경에서 사탄이 시험하는 존재로 나타난다는 점 외에 우리가 한 가지 또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때로 성경의 저자들에 의해 사탄의 이야기가 첨가되는 부분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탄은 선한 세력에 반대되는 악한 세력으로 나타납니다. 그렇기에 성경에 나타나는 어떤 인물이 한 행동에 대해 일종의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 그에게 사탄이 들어갔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이나 22장 3절에서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고 표현되는데, 이는 마치 유다 본인이 원해서 한 행동이라기보다 사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행동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탄에 의해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역대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나라를 안정시킨 후에 인구조사를 행한 적이 있습니다(삼하24:1; 대상21:1). 이는 자신의 나라가 얼마나 강대해졌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일이었고, 다윗이 작은 군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자신의 군대 숫자에 의지하려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일은 분명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행동입니다. 다윗의 이런 인구조사에 대해서 사무엘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분노하셔서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시고 인구조사를 하게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다윗에게 우호적인 역대기에서는 사탄이 이스라엘과 적대하기 위해서 다윗을 충동하여 인구조사를 하도록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이를 생각해보면 사무엘서는 이스라엘의 악함이 원인이 되어 다윗이 이런 일을 행하게 된 것이고 역대기는 단순히 사탄의 계략에 의한 일이 됩니다. 두 경우 모두 다윗에게는 면책권이 주어지게 됩니다.

사탄의 개입

그러나 오늘의 본문인 누가복음은 열두제자에게 면책권을 주어주기 위해 사탄을 등장시키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누가복음은 예루살렘 중심적이고 열두제자 집단에 우호적이며 그들을 높이려고 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탄의 이야기가 첨가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누가복음은 오히려 사탄의 개입을 통해서 나타난 결과를 우리가 살펴보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최후의 만찬 때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사탄은 누구에게 개입하고 있습니까? 먼저 가롯 유다에게 개입하여 예수님을 팔도록 하였습니다. 그 다음은 베드로에게 개입하여서 예수님을 세 번 배반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본문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너’가 아니라 ‘너희’입니다. 본문에서 ‘너’라고 말했다면 베드로 한 명에게 해당되는 사탄의 개입이었겠지만, ‘너희’는 분명 예수님 제자 집단 전체를 가리킵니다. 사탄이 개입한 것은 유다와 베드로 뿐 만이 아니라 제자 전체입니다.

그리고 사탄의 개입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는 모든 제자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나가는 일입니다. ‘밀 까부른다’는 것은 키를 가지고 티끌을 날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사탄이 제자들을 밀 까부르듯 한다는 것은 결국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떠나도록 만들었음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판 행위를 후회하면서 받았던 은을 성소에 던지고 자살하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누가복음에서는 그 이후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누가복음에 이어지는 사도행전 1장 18절에 잠깐 이야기가 나오는데, 유다가 예수님을 판돈으로 밭을 샀지만 몸이 곤두박질쳐서 죽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즉 누가복음에서 유다는 철저하게 예수님을 배신하고 돌이킴 없이 종말을 맞습니다.

유다 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신 이후에 모든 제자들은 도망갑니다.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갈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다만 몇 명의 여성들만이 예수님의 곁을 지켰을 뿐, 예수님의 옆에서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갔습니다.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함께 식사를 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이라고 하셨고, 실제로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다만 결국 예수님을 떠나간다는 결과만을 남기게 됩니다.

예수님 부활 이후 이야기 속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고향으로 떠나간 이들이었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부활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모든 제자들이 이들과 마찬가지로 다들 고향으로 떠나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한 명, 예외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베드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자신을 세 번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시지만 이는 베드로의 믿음 없음에 대한 경고나 질타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탄에 의해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신할 것을 미리 알려주시는 일이었고, 더 중요한 이야기는 뒤에 32절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 Gerrit van Honthorst, The Denial of St Peter, 1622-24, Oil on canvas, 111x149cm, Institute of Fine Arts, Minneapolis

즉 베드로가 닭이 울 때에 자신의 배신행위를 깨닫게 된 것이 예수님의 기도 때문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없었다면 베드로 역시도 떠나가게 되었을 것이고, 베드로를 구심점으로 제자들이 모이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경고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그가 지금 시험을 받고 있는 중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한 경고였고, 또한 이를 위해 기도하셨음을 알려주시는 행위입니다.

떠나감과 고독

누가복음이 이야기하고 있는 사탄의 개입은 예수님과 제자들 모두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사탄의 시험은 예수님이라는 구심점의 상실이었겠지만, 예수님에게 있어서 사탄의 시험은 제자들의 배신과 떠남이었습니다. 이 제자들은 그냥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님과 모든 시험을 함께 받고 있는, 언제나 함께였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떠나감과 배신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님께서 철저한 고독 속에 던져졌음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이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을 통해서 전하고자하는 사탄의 개입과 시험은 바로 여기에 핵심이 있습니다. 사탄의 시험은 누군가를 고독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철저한 고독, 철저하게 나 혼자 뿐이라는 생각을 심는 것, 또한 실제로 그렇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사탄의 시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사탄의 시험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고독해진 상태에서 겟세마네에 올라가 기도하시게 됩니다. 겟세마네의 기도는 다음 주에 더 살펴보겠지만, 누가복음이 묘사하고 있는 기도 장면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더욱 생생하게 예수님의 고뇌를 그립니다. 예수님은 버림받았습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버림받고 혼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누가복음은 이런 예수님의 상황을 통해 우리들에게도 이야기합니다. 때때로 우리도 사람들에게 버려져, 또는 버려졌다고 느끼게 되어 고독한 존재가 된다고, 철저하게 나 혼자만 존재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보여줍니다. 그것은 기도였습니다. 아무리 고독하게 된 순간에도,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배신당하고 나 혼자만 남겨진 상황이라 하더라도 내 앞에는 아직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신 앞에 선 단독자라는 말로 인간의 주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누가복음이 말하고 있는 바는, 이러한 단독자, 나 자신, 주체정신을 가진 개인이 되는 상태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변으로부터 버림받은 개인, 고독하게 되어버린 존재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고독의 한 복판에서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키에르케고르 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 앞에 선 고독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가는 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라는 영화에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받으셨던 시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속삭임이었습니다. 그 영화 속에서 예수님은 십자가가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십자가에서 내려가는 상상을 합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꿈꿉니다.

하지만 그런 평범한 인생의 끝에서 자신의 걸어야 할 길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이라는 점을 깨닫고 다시 십자가로 돌아가며 영화는 마칩니다. 이런 은혜롭고 감동적인 영화를 일부 교회에서 왜 상영 반대를 하며 시위까지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영화의 결론은 예수님께서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음에도 평범한 삶을 택하지 않으시고 인류를 위한 십자가를 택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사탄의 유혹이 있었다면 이런 시험도 있지 않았을까 상상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냈지만, 누가복음에서 전하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사탄의 마지막 시험은 ‘고립’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도 마찬가지의 시험을 받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탄의 시험은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저 우리를 고독하고 외롭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 이후에 사탄 자신은 우리에게 별다른 고난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고난을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 스스로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고독 속에서 외로움 속에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만들어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순간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런 순간에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선 우리를 위해 베드로와 같은 존재, 지금 우리가 시험에 빠져 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형제를 굳게 만들어주는 존재를 예비하셨습니다. 그것이 함께 예배드리며 신앙을 나누는 성도들일 것입니다.

우리가 사순절 기간 동안에 홀로 남게 되신 예수님, 고독한 존재가 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가슴아파할 수도 있겠지만,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아픔을 우리가 느끼며 같이 아파하고만 있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안에 고독이 밀려올 때에, 외로움이 밀려올 때에 아직도 내 옆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또한 내 옆에 누군가가 그러한 상태에 빠졌을 때에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그들을 굳게 붙들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을 붙잡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십자가 죽음을 이긴 예수님과 같이, 고난을 이기고 구원에 이르는 성도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지독한 고독의 순간이 오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 순간이 찾아왔을 때에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심으로 시험을 이겨내시고 지금도 옆에서 살아 숨 쉬며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이성훈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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