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5일, 서울 라마다 호텔, 2박3일간 일정으로 ‘한국교회 88선언 30주년 기년 국제협의회’가 열리고 WCC를 비롯하여 전세계 에큐메니컬 기관과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첫날 일정을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특히 이 날은 공교롭게도 남쪽 정부가 대북 특사를 북쪽에 보낸 날이어서 평창 동계 올림픽으로 떠오른 대화와 평화정국으로 30년전 선언한 88선언의 의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이홍정) 화해·통일위원회(위원장 나핵집 목사)는 1988년 2월29일 발표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이하 ‘88선언’) 30주년을 맞이하여 ‘평화를 심고 희망을 선포하다’라는 주제로 국제협의회를 개최한 것이다. 88선언은 체제와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북한의 동포들을 적대시한 한국 교회의 죄책을 고백하면서 통일의 5대 원칙 즉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 민의 참여, 인도주의를 천명했다.

이 88선언의 영향으로 노태우, 김대중 정부는 88선언의 5대 원칙을 통일 정책에 적극 반영한 바 있다.

첫날 일정은 오전 9시부터 개회예배에 이어 두 차례에 걸쳐 ‘분단을 살다’라는 주제로 분단과 통일에 대한 세대간 대담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상황의 피해자들의 이야기 나눔이 이어졌다.

▲ 분단과 통일에 대한 세대간 대담이 진행되고 있다. ⓒ윤병희

세대간 대담에서는 이문숙 목사(NCCK 화통위 부위원장)의 사회로 서광선 박사(88선언의 주 편집자)와 서보혁 교수(서울대학교), 양광수 목사(가평중앙교회), 김기리 사제(대한성공회), 백승훈 청년(EYCK) 등이 출연해 전쟁을 겪은 세대부터 청년 세대까지 통일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다.

특히 서광선 박사는 30년 전 88선언을 마련한 주요 인물중 하나로서 "당시에는 30년 안에 통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며 "오늘 행사가 고맙기는 하지만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광야 끝에 가나안에 입성 못한 모세를 비유로 "동족의 피를 손에 묻힌 세대는 자격없다."며 여전히 분단상황임을 자책했다.

한편 백승훈 청년(EYCK)은 88선언이라는 것을 어제 들어 알게 되었다고 말해 세대간 의식의 차이를 실감하기도 했지만, 참석자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두 번째 이야기 나눔 시간에는 이은선 박사(NCCK 화통위 위원)의 사회로 제주 4.3 학살 생존자 고완순 선생이 당시 학살의 현장에 대한 증언과 간첩 조작 사건의 희생자로서 국정원에 의해 억류되고 누명을 쓰고 간첩으로 기소된 탈북민 홍강철 선생의 증언이 이어졌다.

먼저 고완순 선생은 당시의 학살 현장을 생생히 이야기 하던 중 "나중에 (4.3학살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것을 알고 미국이 싫어졌다."고 말해 좌중을 놀라게 했다. 이러한 제주 4.3 학살에 대한 증언을 듣고 비상한 관심을 보이며  NCCCUSA 짐 윙클러 총무 등 미국 교계 관계자들은 따로 이들과 대담을 갖고 4.3학살에 대한 미국 책임을 미국교회에 알리기로 해 관심을 모았다. 작년에 PCUSA  관계자들은 노근리에 찾아와 공식 사과를 전달한 바 있다.

또한 탈북민 홍강철 선생은 "북한이 싫어서 탈북했지만 남한에서 탈북자는 우파가 안 되면 간첩으로 몰리고 거짓증언을 강요당한다. 교회가 거짓증언을 가장 많이 시킨다."고 말해 교회가 이들을 어떻게 착취하는지 드러내 장내를 숙여하게 만들었다. 선교라는 이름으로 탈북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교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겨지는듯 했다.

그리고 금강산 폐쇄 결정이 한 가족을 망가뜨린 사연을 전한 증언(가족의 자녀인 이상영 선생)으로 청중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모두 분단의 시대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 제주 4.3학살 생존자 고완순 선생(왼쪽)이 증언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간첩조작 탈북민 홍강철 선생, 이은선 박사, 금강상 관광사업 피해자 이상영 선생. ⓒ윤병희

내일까지 이어지는 주제 강연 중 첫 번째로 “한반도 평화통일을 향한 에큐메니칼 여정”이란 주제로 WCC 울라프 총무로 예정되어 있던 발표는 WCC 피터 프루브 국제협력국장이 대신 발표했다.

울라프 총무는 발제문에서 "한반도 또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핵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 상상할 수도 없는 가능성에 직면하여, 대화만이 우리가 가야할 경로"라고 강조했다.

또한 "북남 기독교인들간의 만남과 대화, 긴강 완화, 상호 이해 한국민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에큐메니칼 동참은 평화를 위한 새로운 정치적 계획에 함께하고 이를 지원함으로써 앞으로 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계속해서 "88선언 이후 30년이 지났고, 우리 마음 속에는 평화를 위한 새롭지만 깨지기 쉬운 소망이 자리잡고 있다."며, "이번 협의회는 88선언의 원칙을 상기하는 좋은 기회"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 반도, 이 지역 및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한 우리 기독교인들의 부르심은 전쟁광이 아닌 평화주의자가 되는 것"라며 마무리했다.

이어 NCCK 이홍정 총무가 “평화가 아닌 다른 길은 없다”라는 주제로 적극적 평화를 통한 민중 생명 안보의 증진 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이 총무는 강연에서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2022년 도쿄 하계 올림픽,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으로 이어지는 동북아시아 올림픽 맥락 속에서 평화를 위한 동북아시아 민중 연대는 동북아시아 공동이 평화와 안보체계를 지지하면서 한반도 치유와 화해, 평화 통일을 위한 에큐메니칼 평화과정을 구상하고 실천할 수 있다."며, "평화가 아닌 다른 길은 없다."고 강조했다.

▲ “한반도 평화통일을 향한 에큐메니칼 여정”이라는 주제로 강연이 이어지고 있다. ⓒ윤병희

마지막으로 오후 6시에 시작된 환영만찬에는 조명균 통일부장관 대신 이주태 통일부 교류협력국장과 대한적십자사 회장 박경서 박사가 참석해 축하의 말을 전했다. 이주태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은 조명균 통일부장관의 인사말을 대독하며 “2018년 2월 한반도에서 피어난 작은 불꽃이 한반도와 전세계로 번져 북미 대화로 선순환시켜 나가길 바란다.”며 이를 바탕으로 “종교교류를 비롯한 민간교류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박경서 박사는 한국 적십자사 회장으로 선언할 수 있는 것은 “이땅의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결의를 약속하는 것.”이라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날 참석 예정이었던 WCC 총무 울라프 총무는 유럽의 폭설로 인한 항공결항으로 참석하지 못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종교 자문위원인 복음주의권 자니 무어 목사 또한 전날 불참을 통보해 왔다고 전했다.

특히 무어 목사의 불참은 미국의 대북 정책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하기도 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쏟아내고 있는 대북 강경책의 반영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환영 만찬에 축사로 예정된 조명균 통일부장관은 이날 대북 특사 파견이 불거져 대신 이주태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이 참석했다.

2박3일 일정으로 진행 중인 이 행사는 내일(6일) 두번째 주제 강연과 두 차례에 걸친 패널 토론, 그리고 분과토론이 진행될 예정이며 마지막 날(7일)에는 종합토론을 한 후 선언서 및 실천계획을 채택할 예정이다.

윤병희  ubiquita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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