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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나의 뒤와 너의 앞이 서로 포개져 사는 것
박철 | 승인 2018.03.09 23:28

 

사람의 겉모양이 곧 속 모양은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의 겉모양에 속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저마다 예의와 옷차림과 화려한 말솜씨로 열심히 겉모양을 단장한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사람으로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자신과 타인의 겉모양 외에 다른 것을 볼 눈이 없기 때문이다.

▲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면 내 발걸음도 상쾌해진다. ⓒ박철 목사 제공

그러므로 서로 속는 줄 알면서도 서로의 겉모양을 보고 서로를 판단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살다보니… 하면서 잘못된 판단을 애써 합리화 해나가며 위로하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 또 한 가지는 사람은 서로의 앞모습을 바라보고 산다. 앞모습을 가꾸기 위해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고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하며 자신의 앞모습을 가꾸는데 온갖 정성을 다한다. 심지어 앞모습을 더 잘 꾸미기 위해 내미는 명함에도 화려함을 적어두는 것부터 성형수술을 하는 것까지 앞모습에 관심이 많다. 보는 것보다 보이는 삶이 보편화 되어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의 앞모습을 바라보고 사는 일보다는 나의 뒤와 너의 앞이 서로 포개져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머물던 자리에 누군가가 다시 찾아오고, 네가 서 있던 자리에 다시 내가 그 자리에 서게 되는 것. 그래서 앞모습이 아름다운 사람보다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더 좋다.

어려서 어머니의 앞모습에 길들여진 우리도 서서히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밥 짓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걸레질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언제나 뒷모습이셨다. 어머니가 머문 뒷모습의 그 자리에서 오늘도 내가 살고 우리 가족이 산다. 내 어머니가 아름다운 것은 앞모습이 아니라 어머니의 뒷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살아갈 인생을 논하는 핑크빛보다 잘 살아온 뒤를 보는 것이 때때로 아름다워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기 위하여 산업화 시대에는 독점을 해왔다. 내가 아니면 안 되고 또 나를 거쳐야 일이 되었다. 그러나 시대는 정보화 시대가 되었다. 독점보다는 공유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나누어주어야 한다. 일하는 뒷모습이 사람을 감동케 하고 변하게 한다. 나누어주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다.

▲ 뒤러(Albrecht Dürer)의 그림 ‘기도하는 손’ ⓒ독일 뉴른 박물관

독일 뉴른 박물관에 '기도하는 손'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단지 모아 쥔 두 손 그림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에 무척이나 가난했기 때문에 미술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었지만 자기의 학비를 댈 수가 없었던 두 친구는 의논을 했다.

그중 하나가 "뒤러야, 우리가 도무지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데 이렇게 해보자. 네가 먼저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를 하렴, 나는 식당에 가서 돈을 벌어 너의 학비를 대겠다. 네가 공부를 마치면 그 다음에 또 네가 나를 위해서 지원해 주면 내가 공부를 할 수 있지 않겠니?"라고 제의하면서 앨버트 뒤러를 위해서 땀 흘리며 쉬지 않고 일했다. 그리고 매달 이 뒤러에게 학비를 보냈다. 뒤러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서 미술학교를 마치게 되었다. 그가 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그의 그림도 서너 편씩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뒤러가 학교를 졸업한 후 그 친구를 찾아갔다. 식당에 도착했을 때 친구는 마침 식당의 한 모서리에서 친구 뒤러를 위해서 무릎 끓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주님! 저의 손은 이미 식당에서 일하다 굳어서 그림을 그리는 데는 못 쓰게 되었습니다. 내가 할 몫을 뒤러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주의 영광을 위해 참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소서!"

옆에서 지켜보던 앨버트 뒤러는 자기를 위해서 희생하고 기도하고 있는 친구의 손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 자기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무엇보다 가장 커다란 감동을 느꼈다. 그러자 뒤러는 붓을 들어서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곧 앨버트 뒤러의 유명한 '기도하는 손'이다.

모두가 다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화려한 무대 뒤의 숨겨진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목사도 뒤에서 기도해 주는 사람이 많이 그리워진다. 독일 속담에 'Ende gut alles gut(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다)'라는 말이 있다.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는 말이다. 반면 우리나라 속담에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잘못된 출발은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고, 실패로 끝날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시작을 잘해야 하는 이유는 어떤 의미에서 끝을 잘 맺기 위해서이다. 시작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끝을 잘 맺는 법이다.

좋은 사람 만나 멋진 결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이혼으로 끝나면 실패한 결혼이다. 노년이 행복하면 젊은 시절의 고생이나 시련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지만, 노년이 행복하지 못하면 젊은 시절의 부귀영화도 한낱 헛된 것으로 치부된다. 시작도 좋고 끝도 좋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러나 시작이 잘못되었더라도 끝을 잘 맺으면 결국 잘한 것이 된다.

무슨 일이든 끝이 좋아한다. 대인관계도 끝이 좋아야 하고, 기업도 끝이 좋아야 하고, 여행을 해도 끝이 좋아야 하고 모든 것이 끝이 좋아야 한다. 시나브로 경칩(驚蟄)지나 봄의 길목이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이다.

▲ 힘겨운 삶이지만, 때때로 분주한 걸음을 멈추어 서서 뒤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박철 목사 제공

백 가지를 다 잘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많은 일을 하고도 욕을 먹는 사람이 있다.
지혜가 부족해서 그렇다.
겸손할 줄 몰라서 그렇다.
딴에는 제법 똑똑하고 영리하다고 생각하면서
남들은 보다 더 지혜롭고 현명하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독선과 오만은 결국 자신이 쌓아올린 공든탑을 일거에 무너뜨린다.
적지 않은 공적이 있음에도
분에 넘치는 자리에 올라갈수록 머리 좋고 영리한 사람은
교만과 자가당착에 쉽게 빠져들며 핑계가 많이 늘어남을 보게 된다.
그것이 안쓰러워 한마디 충고라도 할라치면
내가 뭐 잘못인가라며 싸울 듯이 대든다.
그리고 모든 허물을 남의 탓으로 돌린다.
그저 잘 하는 건 잘 하고 못 하는 건
못 한다고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이면 족하다.
잘 한 것도 못한 것처럼 못한 것은 부끄러운 겸손으로
스스로를 낮춘다면 이미 그는 큰사람이다.
진실한 사람이 큰사람이다.
큰사람은 진실한 법이다.
진실이란 그저 있는 그대로를 고백하는 것이다.
진실과 겸손은 큰 허물도 덮고 큰 잘못도 용서한다.
진실한 사람을 보고 싶다.
시작은 비록 작았지만 끝이 무궁한 사람을 보고 싶다.
끝이 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싶다.

-박철, "끝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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