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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픔이 묻어나는 ‘전화결혼식’본국의 가족들을 위해 청춘을 보낸 이주노동자들
이영 | 승인 2018.03.10 21:33

이주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한국에 와서 본국에 있는 가족들의 소식을 나누는 것이 소중한 일과 중 하나이다. 90년대 초반 이후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은 가족과의 안부를 전하는 유일한 수단이 공중전화였다. 동네의 공중전화 부스에는 어김없이 이주노동자들이 긴 줄로 서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가끔 앞사람이 긴 통화를 하면서 다툼이 있기도 했던 일이 기억난다. 그 이후, 핸드폰(폴더폰)이 나왔고 국제전화카드를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에는 스마트폰을 통해 어디서나 쉽게 영상통화를 하게 되었다.

▲ 방글라데시 전통 결혼식에 참여했다. ⓒ이영 신부 제공

여기에서는 이와 같은 전화기에 얽힌 ‘전화결혼식’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 있는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온다. 경제적 기반이 없는 본국에서 저임금과 일자리 부족으로 인해 ‘코리안 드림’이라는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오게 된다. 대체적으로 20대 초반에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은 젊음 하나가 유일한 재산이다. 가족의 부양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 보면 어느덧 한국에서 청춘을 다 보내게 된다.

때로 우스갯소리로 “내 청춘을 돌려 달라!”고 하는 이주노동자들도 있다. 그러다보니 결혼 정년기를 놓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본국에 있는 동생들 역시 혼기가 차 한국에 있는 형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되기도 한다. 예전에 한국문화도 형 다음으로 동생이 결혼하는 것이 관례적으로 받아들여졌듯이, 지금도 이주노동자의 본국에서는 아직도 그런 풍습이 남아 있다.

결국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는 본국에 있는 부모님이 정한 여인과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에 대한 의사와 상관없이 사진 한 장을 주고받고, 부모님이 정하신 배필과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식도 결혼식장이 아닌 한국과 본국에서 ‘전화기’ 하나를 놓고 결혼식을 치른다.

아래의 글은 ‘전화결혼식’을 참석했던 당시의 생동감을 위해 글을 옮겨보았다.

 

서글픔이 묻어나는 ‘전화결혼식’

방글라데시 결혼식이 있다고 해서 구경(?)을 갔다. 그런데, 신부는 없고 전화로 결혼식을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결혼식을 하는지 하는 호기심에 참석을 했다. 결혼 전날 신랑은 방글라데시 전통의상을 입고, 마치 임금님처럼 근엄하게 앉아 있다.

친구들은 한 쪽에 있다가 몰려 나와 신랑에게 축하의 인사말을 전한다. 그리고 꽃잎을 찧어 놓은 붉은 색 염료를 친구들이 신랑의 얼굴에 찍어 주며 행복을 빌어 준다. 신랑도 친구들의 얼굴에 염료를 찍어주고 감사의 표시를 한다. 그게 전부였다.

특별한 예식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결혼식도 전화로 종교 지도자가 주례자가 되어 확인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후,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한다.

하기야 우리 결혼식도 다르지는 않다. 초호화 결혼식은 아니더라도 결혼식의 풍경은 말 그대로 잔치 분위기이며, 축하 분위기이다. 떠들고 웃고 신나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런 가운데 왠지 모르는 서글픔이 느껴졌다. 결혼식이 끝나면 신랑 신부가 함께 손을 잡고 행복의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그리고는 꿈의 ‘허니문’을 향해 둘만의 신혼여행을 떠난다. 그 후, 둘만의 가정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들의 결혼식은 그렇지가 못하다. 단지, 전화상으로 얼굴도 보지 못하고 목소리만으로 서로의 기나긴 부부의 연을 맺게 될 뿐이다. 어쩌면, 이처럼 이들의 시작마저 험난한 시작을 예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현듯 망부석(望夫石)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애처로이 남편을 기다리는 한 여인의 모습. 기다리는 부인을 생각하며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고 일하는 남편. 그들에게는 현실의 아픔과 고통을 보상받을 내일의 희망만이 있을 뿐이다. 아마도 그 희망마저 잃어버린다면 그들에게는 아무런 삶의 의미가 없다.

신랑은 빛바랜 사진을 바라보며 다짐한다. 헤어져 있는 시간에 대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에 고개 숙이고 있지만, 언젠가는 한 여인의 남편으로 당당하게 서겠노라고. 아마도 신랑은 이를 위해 더욱더 열심히 일할 것이다. 가느다란 한 가닥의 전화선처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결혼식을 참석하고 찹찹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반쪽자리 결혼식이기에 더욱 그러했나보다. 신부에게 축하의 말 한마디도 전하지 못하고, 정작 있어야 할 사람 없이 치러진 결혼식의 서글픔을 안고 말이다.

하지만, 어둠의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이 꽃피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늘이 맺어 준 사랑이 하나가 될 수 있기를...

‘전화결혼식’의 후문으로 들었던 이야기도 있다. 전화로만 알던 부인을 몇 년의 세월이 지나 한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만났는데 사진과는 다른 여인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소위 시쳇말로 사진빨(?)이었다는 것이다.

일륜지대사라고 하는 결혼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지만, 이 역시 이주노동자의 삶의 분절을 통해 전해지는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 인종이나 국적을 불문하고 결혼은 축복 받아야 할 소중한 행사이다. ⓒ이영 신부 제공

 

이영  eotjde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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