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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비정규직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비정규직 문제의 현황과 대책
최형묵 | 승인 2018.03.13 18:21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신학위원회는 지난 지난 3월6일 서울복음교회에서 '비정규직 문제의 현황과 대책'을 주제로 월례세미나를 열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을 보장받도록 하는 일에 지혜를 모았다. 이 자리에서 발표를 맡은 최형묵 공동대표(비정규직대책한국교회연대, 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의 발제문을 올린다.

자본의 지구화와 더불어 노동계급의 양극화와 주변화 현상은 매우 심각한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비정규직노동의 증가는 노동계급의 양극화와 주변화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현상이다.

1. 노동계급의 주변화, 프레카리아트화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체제의 돌입과 함께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꾸준히 증가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은 한 때 60%에 이를 정도로 급증하다가 최근 수 년간 다소 감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동자의 과반수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각주 1)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불안정한 고용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소득격차의 심화 측면에서도 심각성을 안고 있다. 오늘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거의 절반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있다. 오늘 비정규직 문제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항상 존재해 왔던 계급분해에 따른 양극화 현상에 더해진 노동계급 자체의 양극화 현상으로 볼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각주 2)

노동계급 자체의 양극화와 노동계급 다수의 주변화 현상은 비단 한국사회의 문제만은 아니다. 불안정한 고용과 낮은 수입으로 특징지어지는 불안정 노동계층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적어도 성인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그 비율은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것은 1970년대 후반을 거쳐 1980년대에 이르면서 가속화된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 가운데서 추구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따른 필연적 결과로서 지구적 현상에 해당한다.

▲ 최형묵 공동대표가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 발표를 하고 있다. ⓒCBS 제공

오늘날 노동계급의 양극화와 함께 등장한 주변화된 노동계급은 전통적 자본주의적 산업화 시대의 ‘노동계급’ 또는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통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노동계급이나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용어가 연상시키는 것은 대개 장기적이고 안정적이고 일하는 시간이 고정된 일자리에 있으며, 승진경로가 정해져 있으며, 조합에 가입하고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으며, 누구나 이해할 만한 직함이 붙었으며, 이름과 특성을 아는 현지 고용주를 마주하는 노동자들이라는 것이었다.(각주 3)

그러나 오늘날 주변화된 노동계급은 이전의 노동계급이 지녔던 그와 같은 일체의 특징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아예 실업 상태에 있거나 불안정한 임시고용 상태에서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으로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주변화된 노동계급의 주요 특징이다. 

이처럼 기존의 노동계급 개념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기에 새로운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는데, 그 이름이 ‘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의미로서 ‘프레카리아트(precariat: precarious+proletariat)’이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노동계급의 프레카리아트화는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2. 프레카리아트화 원인과 그 대상들

이미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프레카리아트화의 직접적 원인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된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란 고용과 해고를 용이하게 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그것은 임금 비용을 낮춤으로써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 거시적 배경은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됨으로써 세계적 차원에서 상품의 가격경쟁이 치열해진 데 있다. 그 추세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이미 강화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값싼 노동력을 지닌 거대국가 중국의 세계경제 편입, 인도, 러시아 등의 부상 등으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그 추세 속에서 타격을 받고 프레카리아트화하는 대상은 모든 세대 노동계급에 걸쳐 매우 다양하다. 그 대상은 노동계급 모두에게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타격을 입는 가장 두드러진 대상들로는 여성과 청년층을 꼽을 수 있다.

지구화 시대 노동의 여성화 현상은 매우 두드러진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하게 보자면 노동하는 여성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을 뜻하지만, 그것이 여성의 노동조건이 좋아졌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성별에 따른 임금과 소득의 불평등은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왔거니와, 노동의 여성화 현상은 그 차별구조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하나의 현상이다. 그것은 불안정한 일자리에 여성들이 더 많이 내몰리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한국의 경우 남녀 성별임금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데, 비정규직의 경우 그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진다.

청년세대의 프레카리아트화는 특별히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프레카리아트화 현상은 전세대에 걸쳐 나타나고 있지만, 특별히 청년세대에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는 ‘청년OTL’(각주 4)이라는 말이 불안정한 청년층의 노동형태를 말해 주고 있거니와,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오늘 한국사회 청년노동층의 불안정한 수입 실태를 나타내는 주는 것으로 통용된 지 오래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천 유로 세대’라는 말과 함께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고, 프랑스에서는 ‘최초고용제도’가 청년층에게는 물론 전사회적으로 반발을 일으켰고, 일본에서는 ‘프리타’(freeter: free+arbeiter) 및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and Training)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각주 5) 이러한 현실은 불안정한 노동이 주로 청년세대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밖에도 아직 노동능력이 있는 고령층, 장애인과 범죄자들, 그리고 특정한 사회 안에서의 소수 종족들이 프레카리아트화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부류로는 시민권 없는 거류민들(denizen)이다. 이 거류민들에는 매우 다양한 부류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가장 두드러진 부류로 국경을 넘나드는 이주 노동자들이 얼마나 취약한 상태에 처해 있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시민권은커녕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극심한 차별적 임금을 받으며 불안정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세계적 차원에서 거대한 상품시장이자 노동력시장으로서 중국에서는 자국민의 경우에조차 이주자들은 권리의 제약을 받고 있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여 노동하는 ‘농민공’(農民工)이 그런 경우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현상이 단지 지역적 현상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각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이와 같은 현상들은 지구화된 세계경제질서 안에서 서로 영향을 끼치며 전 세계적 차원에서 프레카리아트화 현상을 강화시키고 있다.(각주 6)

3. 프레카리아트의 주체화 가능성

전세계적 차원에서 모든 사회에서 프레카리아트화가 광범위하게 진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레카리아트는 아직 명확한 사회적 계급으로서 주체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없다. 프레카리아트는 형성중에 있으나 명확한 대자적 계급으로서 부상하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불안정한 고용 상태와 형편없는 소득 상태에서 공통의 어떤 정서를 갖고 있을 뿐이다. 분노(anger), 아노미(anomie), 걱정(anxiety), 소외(alienation)가 그것이다.(각주 7)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는 그와 같은 정서를 가지고 있을 뿐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공통의 목소리와 행동을 표출하는 데서는 아직 미약한 수준에 있다.

물론 공통의 목소리와 행동을 표출하는 사례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2005년 ‘유로 메이데이(Euro Mayday)’를 통해 공통의 목소리와 행동에 나서기도 했고, 미국에서의 월스트리트 점령, 그리고 세계적으로 확산된 ‘점령하라’도 한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프리터노조’가, 미국에서는 ‘퍼머랜서(permerlancers: permanent freelancers)’가 활동하고 있는가 하면, 한국에서는 ‘청년유니온’이 조직되기도 하였다. 인도에서는 1972년부터 ‘인도여성자영업자협회(SEWA: Self-Employed Women's Association of India)’가 활동하고 있다.

아마도 전통적인 노동계급이 대자적 계급으로서 스스로를 주체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오늘의 프레카리아트가 그와 같이 되는 것 또한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지 모른다. 여러 가지 계기와 경로를 통하여 프레카리아트가 스스로를 자각하고 공통의 목소리와 행동을 제기할 때 세계는 분명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프레카리아트가 지니는 영속적인 불안정성을 주목하게 된다. 앞서 우리는 프레카레아트화 현상이 지구화된 자본주의 경제질서 가운데서 상품의 가격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노동자의 임금 비용을 낮춤으로써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려는 과정에서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것은 프레카리아트가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체제에 귀속되어 있지만 매우 불안정하게 귀속되어 있으며 그 체제가 존속하는 한 완전하게 귀속될 수 없는 잉여와 같은 존재로 계속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 프레카리아트가 기존의 체제 안에서 명확하게 포착될 수 없는 새로운 주체로서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 기존의 체제 안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할 수 없다는 한계상황을 명확하게 자각할 때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이들은 서로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대항적 계급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비정규직 운동이 주로 정규직화를 목표로 하는 반면 일본의 경우 ‘프리터노조’를 중심으로 하는 운동이 탈노동사회적 지향과 함께 광범위한 사회적 의제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는 점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도 운동의 방향이 선회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만, 한국보다 앞서 그 현상을 경험한(각주 8) 일본에서는 비정규직 운동이 이미 탈노동사회적 전망을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적 규모나 폭발력에서도 양국간 비정규직 운동은 차이가 있는데,(각주 9) 적어도 그 지향점의 측면에서 일본의 비정규직 운동이 새로운 대항계급으로서의 가능성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하는 사순절 금식기도회에서 설교하고 있는 최형묵 목사 ⓒ윤병희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현재의 체제 안에 귀속되어 있지만, 불안정하게 귀속되어 있을 뿐 아니라 결국 귀속할 수 없는 잉여로 남게 된다면 전혀 다른 사회의 구성원리가 이들로부터 제기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점에서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한 노동자계급에 머물지 않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계급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각주 10) 다시 말해 기존 사회를 동요시키며 그로부터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그 역할은 스스로의 자각을 동반한다는 측면에서 주관적이지만 동시에 그들이 처한 상황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측면에서 객관적 성격을 띤다.

4. 한국사회의 비정규직 문제와 그 대안

한국사회는 촛불혁명으로 새로운 희망을 안게 되었다. 촛불을 함께 들었던 모두의 마음은 단지 정치권력을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저마다의 삶을 바꾸고자 하는 희망으로 가득했다. 거리의 시민과 일터의 노동자들이 분리되었던 1987년 항쟁과 달리 평범한 시민과 노동자들이 광장에서 하나가 된 촛불항쟁은 그 간절한 희망의 발로였다. 

촛불항쟁에 이은 새 정부의 등장과 함께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 안에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부패한 권력의 적폐와 권위주의를 청산하는 과정에 진입하였고, 어려운 국제적 여건 가운데서도 남북간 평화의 물꼬가 열리게 되었다. 그 가운데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가고 있다.

그러나 그 기대에도 불구하고 땀 흘려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현실은 여전히 팍팍할 뿐이다. 부끄럽게도 한국사회는 아직도 노동자의 기본권리가 정당하게 보장되고 있지 않다. 노동조합 조직율은 10.3%로 낮은 상태이고, 곳곳의 사업장에서 노사간 협의는 결렬을 겪고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고공으로 나서 절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며, 노동자들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선택으로서 단체행동 또한 처벌의 대상이 되어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산업재해 또한 빈발하여 매년 세월호 희생자 6배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산재로 하나뿐인 목숨을 잃고 있다. 더욱이 일하는 노동자들의 절반에 이르는 이들이 비정규직의 굴레에 매여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처해 있고 극심한 임금차별로 최저생계비도 보장받지 못해 생활고를 겪고 있다.

촛불항쟁으로 탄생한 새 정부가 일자리 대책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최저임금의 인상을 추진하고 있지만, 지금 그 취지가 무색해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공공부문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예외의 대상이 남발되고 있는가 하면 변형된 형태의 정규직화로 이른바 ‘중규직화’라는 사태가 야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다른 한편 정규직의 반발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자체가 난항을 겪고 있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최저임금의 인상 역시 난관에 봉착해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으며, 그 가운데서 여전히 최저생계비를 보장받지 못한 노동자들의 생활고는 지속되고 있다.

일하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갖가지 이유로 생활고를 겪고 있는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정책과 제도가 지금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문명국가의 기본규범이자 동시에 국제사회의 공통규범으로서 노동삼권은 완전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노동자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행위로 그 어떤 불이익도 겪어서는 안 되며 노동자의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생활인으로서 삶의 향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그 기본권이 보장되는 바탕 위에서 당면한 과제로서 비정규직화의 정규직화, 최저임금의 인상 정책 역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상시지속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예외없이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하는 가운데 그 현실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자발적인 선택을 포함하여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비정규직을 용인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어떤 경우이든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견지함으로써 고용과 근무의 형태가 차별의 요인이 되는 사태를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사회적 공정성의 기준을 합의할 수 있는 각계의 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 지금까지 우리사회에서는 광범위하게 비자발적인 비정규직의 형태를 허용해 온 까닭에 제한된 상시 정규직이 일종의 특권으로 인식되어 왔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공정성의 문제는 사실상 그 특권체제를 상식적인 것으로 용인하는 전제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그 정규직을 보장하는 절차만이 유일한 공정성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고 다양한 공정성의 기준을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사회적 약자들에게 충분한 기회가 허용되고 결과적으로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을 보장받도록 하는 절차에 대한 합의가 사회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합의와 제도적 방안이 강구된다면 근래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온 과제로서 경제민주화는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각주 1) 2014년 8월 기준으로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은 852만 명(임금노동자의 45.4%)이고 정규직은 1,025만 명(54.6%)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변형된 파견노동자가 정규직으로 분류되고 있고, 특수고용노동자가 자영업으로 분류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비정규직은 과반수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비정규직 비율이 대략 35%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의 경우 이보다 훨씬 높은 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각주 2) 이진경, “프롤레타리아트와 프레카리아트”,『마르크스주의 연구』9/1(2012); 고병권, “우리 시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물음”, 맑스코뮤날레 조직위원회 엮음, 『맑스주의와 정치』, 문화과학사, 2009 참조.
(각주 3) Guy Standing, The Precariat: The New Dangerous Class, Diana Publishing, 2010. [한국어판] 김태호 옮김, 『프레카리아트 - 새로운 위험한 계급』, 박종철출판사, 2014, 21 참조.
(각주 4) ‘OTL’은 인터넷상에서 인사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이모티콘의 일종으로, 오늘 한국사회에서 대형마트 또는 주차장 등에서 안내요원으로 일하는 청년들의 노동형태를 상징한다.
(각주 5) 雨宮処凛 , 『生きさせろ! 難民化する若者たち』, 太田出版, 2007. [한국어판] 김미정 옮김,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 미지북스, 2011; 이진경ㆍ신지영 엮고 씀, 앞의 책 등 참조.
(각주 6) Lee Jin-Kyung은, 한국사회의 서비스 이코노미를 분석하면서 트랜스내셔날한 맥락에서 “성과 인종의 프롤레타리아트화” 현상을 주목하고 있는데, 여전히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개념을 재정의함으로써 우리가 ‘프레카리아트’라고 사용하는 실재에 대한 현상을 검토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Lee Jin-Kyung, Service Economies: Militarism, Sex Work, and Migrant Labor in South Korea, Univ. of Minnesota Press, 2010. [한국어판] 나병철 옮김, 『서비스 이코노미, 한국의 군사주의ㆍ성 노동ㆍ이주 노동』, 소명출판, 2015.
(각주 7) Guy Standing, 앞의 책, 48 참조.
(각주 8) 일본에서 그러한 경향이 나타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95년 일경련이 「새로운 시대의 일본식 경영」을 표방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주 9) 한국의 경우 비정규직 운동은 그야말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지만, 일본의 경우 정규직마저 포함할 뿐 아니라 실업자나 노숙자, 히키코모리, DV(가정폭력으로 인해 가출한 피해자들), 장애인이나 이른바 ‘멘헤라’(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 젊은이들에서 나이든 사람까지 다양하게 포괄하고 있다. 雨宮処凛 , 앞의 책; 이진경ㆍ신지영 엮고 씀, 앞의 책, 27 참조.
(각주 10) 이진경,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휴머니스트, 2011,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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