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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라면 강릉에서 어떻게 했을까?강릉 사태는 현재의 기독교가 변해야 한다는 적신호...
송상호 | 승인 2005.07.05 00:00

어릴 적부터 제사와 미신 문제, 늘 따라다녀

유년주일학교 시절, 제사 음식을 먹어 보라는 이웃집 아주머니의 권유에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못 먹었던 적이 있다. 그런 후 나는 신앙을 지킨 무슨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커가면서도 항상 제사 문제와 타종교(특히 불교와 재래종교의식) 문제는 내 주위를 맴돌면서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제사상에는 귀신이 다녀간다는 둥 조상 제사도 우상 숭배라는 둥 타종교의 종교적 행위는 무조건 미신적이라는 둥. 아마도 현대를 살아 온 한국 땅의 그리스도인이라면 항상 따라다니는 문제이리라. 명절 때면 특히 더욱 그러리니. 

예수에게서 해답을 찾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문제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는다. 결국 예수에게서 그 해답을 찾았다. 예수를 보라. 그는 그가 살았던 당대의 최고의 종교인 (그리고 그의 종교이기도 한, 최소한 그 범주에서 살았던) 유대교의 성전을 부숴버리라고 했다.

아무 음식이나 먹어도 괜찮다고 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말이 사람을 더럽힌다는 말과 함께. 또한 불문율처럼 여겨졌던 안식일도 '사람을 위해서 안식일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며 감히(?) 그 시대의 절대적인 불문율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이 밖에도 그는 그 시대의 절대적인 금기사항들을 보란 듯이 어겨가면서 살았다.

분명히 우리 기독교인들이 바이블 상의 구약시대의 유산이라고 믿는 그 조항들을 하나 둘 위반해나갔다. 그가 보여준 것은 진정한 자유 그 자체였다. 규칙이나 율례와 관습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한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당대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것이었다.

그런 종교적 행위와 율례가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없음을 그는 깨달았던 것이다. 종교적 행위는 단지 문화일 뿐이며 그 문화가 사람의 생명에 유익을 주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변화되어야 된다고 생각했으리라. 그의 조그만 어깨로 그 거대한 물결에 맞선 그의 정신을 나는 한없이 사랑한다.

‘강릉 사태’는 신앙체계의 부산물

나는 안다. 지금 강릉시에서 '러브강릉기독교협의회' 관계자들이 왜 그러는지를. 그것은 우상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투철한 신앙관(?)에 의한 것임을. 그래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고 나아가서 일반사회를 미신이라고 하는 무지몽매한 데서 구원해내려는 순수한 열정이라는 것도(물론 개중에는 그러한 집회나 단식들을 통해서 기독교의 파워를 자랑하려는 무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놓치는 것이 있다. 그들이 목숨처럼 여기는 것도 그들 나름의 신앙체계라는 것을. 그들의 신앙관에서 만들어진 부산물이라는 것을. 

‘러브 강릉 기독교 협의회’는 예수를 거스르는 행위하고 있어

하지만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인이라면(나는 그리스도인이란 무슨 신념체계나 기독교적인 교리나 종교적 규칙을 신봉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가 가신 길을 평생을 걸고 따라가는 자임을 확신한다) 그리스도의 자유의 정신을 본받는 자여야만 할 것이다.

이것을 하면 안 되고 저것을 하면 된다는 그러한 규율들을 가지고 자신을 옥죄고 남을 옥죄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2000년 전 예수가 우리에게 보여준 정신과 하나도 맞지 않다.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러브 강릉 기독교 협의회’가 기독교의 간판을 걸고 그들이 단식을 하고 집회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예수의 본 정신과 그가 보여준 모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나는 감히 규정한다. 그들의 행위는 2000년 전 예수 당시의 종교 기득권자들이 보여준 행위와 별 다를 게 없다.

종교 기득권자들도 나름대로는 순수하게 자신들의 종교 신앙체계를 신봉하면서 철저하게 따랐다. 오죽하면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했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그런 모습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다. 자신들의 죽음보다 더 소중한 종교적 신념과 체계와 규율을 위해서. 물론 그들의 종교적 기득권이 위협받는 것을 두려워함과 함께.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죽여야만 했다. 그들의 종교적 규율을 어기고 그들의 기득권을 정면으로 침범하니까.

기독교 역사에서 저질러진 만행도 모두 그릇된 신앙체계 때문

이런 종교적 독선과 아집들이 종교적 암흑기인 중세시대를 만들었다. 이단이라고 하면 무조건 처형하기도 하고 힘없는 여성들을 마녀사냥하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무참히 대학살을 하기도 하면서 그것을 거룩한 행위로 보기도 하고. 십자군 전쟁을 하여 수많은 힘없는 백성들을 짓밟았다. 십자군 전쟁에 동원된 힘없는 백성들도 얼마나 고단했겠는가.

청교도인들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평화롭게 잘 살던 인디언들을 '미신을 추구하는 미개종족'이라며 무참하게 학살하고 생존의 터를 빼앗기도 했다(수많은 인디언들이 흘린 피 위에 세워진 것이 현재의 미국이다). 노예매매는 어떠한가. 그들이 노예들을 잡아 배 갑판 밑에 감금하여 (짐승처럼) 놓고 그들은 바로 그 위에서 신의 은총을 찬양한 걸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대학살한 명분 중에 하나가 ‘예수를 죽인 피의 대갗라고 하니 정말 어처구니없지 않는가.

수많은 기독교 국가들의 수많은 침략전쟁(그들은 하나같이 기독교 선교를 앞세웠다)은 어떤가. 이렇듯 역사에서 기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만행을 쌓아 놓으면 하늘에 닿을 것이다. 또한 무참히 쓰러져간 영혼들의 원한도 하늘에 닿을 것이다.

이런 행위들이 다 어디에서 나온 줄 아는가. 성경에서 나왔다. 성경의 구절들이나 관습들을 보면서 당시의 기독교가 만들어 놓은 신앙체계이자 신념체계인 것이다. 지금 보면 어처구니없는 것들도 그 당시에는 그러한 것들이 통하여 성경의 명분에 힘입어 만행이 저질러졌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역사를 거울로 삼자. 갈릴레이를 죽이려 했던 그 당대의 기독교 관계자들도 그들의 그릇된 신앙체계 때문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 누를 범하지 말자. 무엇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인지 시대마다 진지하게 고민되어야 한다.

기독교의 지난 전철들을 되풀이하면서 '우리는 순수하게 신앙을 지키려 하고 있다'고 외치지 말자. 이 말은 지나간 모든 시대에 있어 만행을 저질렀던 기독교인들도 그랬었다는 것을 명심하자.

강릉 사태도 그릇된 신앙체계 때문

지금의 강릉 문제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강릉에서 벌어지고 있는 ‘러브 강릉 기독교 협의회’ 관계자들의 모습이 결국 지나간 세대에 독선과 아집으로 벌여 놓은 기독교 선배들의 모습이다. 강릉의 모습이 우리 한국 전체의 기독교의 모습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현재 한국의 기독교의 독선적이고 아집적인 실상이 그대로 표출된 것이다. 지난 근세사와 현세사에서 보여준 기독교의 독선이 아직도 잔재해 있다는 표현인 것이다. 이승만 정권에서부터 키워진 기독교 기득권의 사생아인 것이다. 

현재 기독교의 모습이 변해야 한다는 적신호

이제 변할 때도 되었다. 변하지 않으면 기독교는 필요 없다. 예수가 원래 말한 평화를 주지 못한다면, 오히려 분쟁의 중심에 항상 서 있다면 기독교는 필요 없다. 예수는 원래 기독교를 만들려고 한 사람도 아니다. 그는 단지 하늘의 자유와 생명을 전했고 몸으로 실천하며 살았을 뿐이다.

기독교는 그의 추종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따르는 그 분의 정신을 계승하지 못한다면 기독교는 사라져야만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칼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종교(기독교)는 민중의 아편’일 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그 종교로 인해 종교 기득권을 누리게 하는 사람들의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앙 논리를 떠나서 일반 시민과 타종교와의 형평성에서 어긋나

여기까지는 기독교 자체적인 입장에서 말한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을 '러브강릉기독교협의회' 관계자들은 놓치고 있다. 앞에서 말한 나의 논리와 ‘러브 강릉 기독교 협의회’ 관계자들과 그들의 입장에 선 그리스도인들의 논리가 상당 부분 대립할 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태는 기독교 자체에서의 신앙논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그들이 펼치고 있는 것은 기독교가 아닌 일반사회에 영향을 지대하게 끼치는 사회적인 활동임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일반 백성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 줄 아는가. ‘크리스마스를 없애자. 기독교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혜택을 반납하라’ 등등.

그들이 왜 그러는 줄 아는가. 그것은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형평성’의 문제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강릉단오제’에서 행해지는 것들이 미신행위라고 치자(나는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엄연히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당신들의 신앙체계에서 나온 신앙논리지 않는가. 자유국가에서 그러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누가 말리겠는가. 하지만 그 논리를 가지고 ‘시민이 뽑은 공인(그대들의 표현에 따르면)’을 공격하고 시위를 하고 있다면 그대들의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형평성에서 한참 어긋나는 것임을 왜 모르는가.

일반 시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여기에 있다. 강릉의 유권자들 중에서 타종교인, 무속인, 재래 종교인 등이 수없이 많을 텐데 ‘공인’을 운운하며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제발 상식선에서 이야기하자.

나는 ‘러브 강릉 기독교 협의회’ 관계자들에게 정식으로 요청한다. 단식과 집회를 그만두라고. 더 이상 기독교에다 먹칠하지 말라고. 그대들의 행동이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세월이 지나면 그대들의 행동이 기독교 역사(물론 일반 역사에는 두말 할 것도 없겠지만)에 또 한번의 부끄러운 일로 기록될 것임을 명심하라.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서 강릉시민과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사과를 드린다. 기독교 목사의 한사람으로서. 물론 나 한사람의 사과가 무슨 힘이 있을까마는.

 

일죽 더아모교회 송상호 목사

 

송상호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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