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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봄은 어디에서 오는가탐라, 사랑허염쩌
임정훈 | 승인 2018.03.16 00:17

3월이 되면서 제주는 매일 비가 내린다. 봄을 업고 오는 비다.

지난 겨울 제주는 얼마나 춥고 눈이 많이 내렸던가 만나는 사람마다 제주에서 살아 온 햇수를 말하며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린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제주에서 태어나 오십 여 년을 살았다는 택시기사는 40여 년 전에 많은 눈이 내린 이후로 처음이라도 했다. 

제주의 눈은 눈길을 걸어서 출근을 하여도 돌아 올 때는  봄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니 어느 날부터 심술궂은 시누이처럼 심통을 부리며 주저 앉아 있었다. 나는 눈 멀미가 났다. 

그런데 요즘 제주는 눈이 사라진 대신 연일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딱 한 곳 한라산은 아직도 눈이 덮여있다. 꼭대기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는 것처럼 여전히 한라산은 설산이다. 한라산에 눈이 녹으면 제주는 봄이 활짝 열리겠지.

봄 마중이라도 나가야 할 것 같아 집을 나섰다. 3월이라고 해도 아직은 걷기에 추운 날씨지만 봄을 기다리는 성급한 마음으로 길을 나선 것이다.

▲ 제주의 5대 채소 중의 하나인 양배추 ⓒ임정훈

나는 지난 달 중 산간 지역을 떠나 바닷가와 접해 있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바닷가와 접해 있지만 주민들은 대부분 밭농사를 짓는다. 돌담으로 밭의 경계를 이룬 길을 지나다 보면 빼꼭히 심어 논 양배추 밭이 먼저 눈에 띈다.

양배추는 제주의 5대 채소 중에 하나다. 무(월동무), 마늘, 양배추, 브로콜리, 당근은 제주가 자랑하는 채소로 맛이 좋기로 유명하고 재배도 많이 한다. 우리 동네는 양배추 뿐 아니라 마늘 농사도 많이 짓는다. 가을에 콩을 거두고 난 자리에 마늘을 심는다는데 지나다 보면 겨울을 이겨낸 마늘이 잘 자라고 있어 장하다고 쓰다듬어 주고 싶다.

돌담 밑에 핀 수선화를 보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담장 밑에서 수선화가 봄을 알리고 있었다. 수선화는 황색 꽃술을 하얀 꽃잎이 감싸고 있다. 삶은 계란처럼 배색을 이루고 있는 이 꽃은 제주종이다. 한그루에 여러 개의 꽃이 달린다고 하더니 사이좋게 몇 개 씩 꽃을 피우느라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수선화 옆에 질세라 금잔화도 담장 아래에서 봄을 알리고 있었다.

봄 마중을 나갔다 오는데 이웃집 아주머니가 한라 봉을 양손에 가득 들고 서있다. 귤 농장에서 직접 따오는 중이라며 농약을 치지 않은 것이라고 한마디 덧붙여 나에게 안겨준다. 농장에서 막 따온 한라봉은 오래 숙성이 되어야 더 맛을 낸다. 한라봉도 시간이 지날수록 시들어 가는 게 아니라 익어 가는가보다.

▲ 담장 밑에 핀 수선화 ⓒ임정훈

며칠 전에도 옆집 아주머니가 양배추를 두 통 가지고 왔다. 이삭줍기를 한 거란다. 밭에서 주어 온 양배추라지만 혼자 사는 나에게 두 통이나 들고 온 이웃의 인심이 고맙다. 이웃들이 나누어 먹을 만큼 남겨 놓고 수확을 한 밭주인의 넉넉한 마음도 아울러 고마웠다.

그전에도 이삭줍기를 하였다며 브로콜리 잎을 가져다 줘서 쌈을 싸먹은 적이 있다. 브로콜리 잎은 어떤 쌈보다도 아삭거리며 식감이 좋다. 야박하지 않은 제주의 인심이 달달하다.

제주의 봄은 꽃보다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사람들의 후한 인심에서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눈덮힌 겨울 속에서도 탱글탱글하게 속을 꽉꽉 채운 양배추처럼, 세상 밖으로 쑥쑥 잎을 밀어 올린 마늘처럼, 봄은 나에게 아름다운 감동을 주며 찬란하게 열리고 있다.

임정훈  author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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