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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가고 싶다조금 느리고 헐겁고 단순하게 살자
박철 | 승인 2018.03.16 23:24

새벽은 밤을 꼬박 지 샌 자에게만 온다.
낙타야 모래 박힌 눈으로
동트는 지평선을 보아라.
바람에 떠밀려 새 날이 온다.
일어나 또 가자.
사막은 뱃속에서 또 꾸르륵거리는구나.
지금 나에게는 칼도 경(經)도 없다.
경(經)이 길을 가르쳐 주진 않는다.
길은, 가면 뒤에 있다.
단 한 걸음도 생략할 수 없는 걸음으로
그러나 너와 나는 구만리 청천(靑天)으로 걸어가고 있다.
나는 너니까.
우리는 자기(自己)야.
우리 마음의 지도 속의 별자리가 여기까지
오게 한 거야.
- 황지우 詩. “나는 너다”

나는 천천히 가고 싶었다. 내 삶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가는 동안, 나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음미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걸음 나아갈 때마다 달라지는 세상, 그 세상의 숨소리 하나라도 빠뜨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삶의 끝,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되도록 천천히 가고 싶었다. 그곳으로 가는 과정이 바로 내 삶이므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하나 하나가 모여 내 삶 전체를 이루므로.

사실 우리는 너무 조급하다. 너무 빨리 무언가를 이루려고 한다. 남보다 한 발짝 앞서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무턱대고 빨리만 달리려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모든 것은 다 때와 시기가 있게 마련인데.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다고 숭늉이 나올 리도 없고, 바늘귀를 허리에 매어서도 아무 소용이 없다. 천천히 기다릴 줄 아는 지혜, 값비싼 도자기는 불 속에서 오래 구워진 것이라는 것을…

▲ 달리거나 노래할 때에도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는 일상적인 삶에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박철 목사 제공

교회가 신축되어 그 제단에 세울 그림을 한 화가에게 맡기게 되었다.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훌륭한 그림이 완성되어 제단에 세워지길 기대했으나, 화가는 정작 그려야 할 그림은 시작도 하지 않은 채 산이나 바다를 쏘다니며 열심히 자연만 스케치할 뿐이었다. 나중에는 인물묘사만을 했는데, 그의 스케치북에는 사람의 근육이나 얼굴, 그리고 동작 하나 하나의 움직임 등을 그린 그림만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실망하기 시작했다.

“매일 저런 그림만 그린다면 교회의 그림은 언제 그린다는 거지? 왜 저런 사람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했을까?”

그러나 화가는 사람들의 불평과 빈정거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사물의 세부묘사에만 열중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화가는 교회 제단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결국 그 그림은 그 어떤 그림보다도 훌륭하게 완성될 수 있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그릴 대상에 대해 그 본질을 알아내고 그것에 필요한 작업을 완벽하게 준비했던 것이다. 조급함보다는 철저한 준비로 탄생시킨 그 그림이 바로 위대한 명작 ‘최후의 만찬’이었고, 그 화가가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다.

빨리 달려가면 멈추기가 어렵다. 그만큼 실수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거대한 빌딩도 따지고 보면 한 개의 벽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빨리 쌓는 데만 치중하다가 행여라도 벽돌을 잘못 놓게 된다면 그 뒷감당은 참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20여년 전 일어났던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건도 따지고 보면 원칙을 무시한 채 빨리 지은 데서 온 참사가 아니었겠는가.

은빛 영롱한 진주는 언제 봐도 아름답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진주가 만들어지기까지 실로 오랜 세월 인고의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가 종종 잊을 때가 많은 것 같다. 다시금 말하지만 무엇이든 그 때가 있고 시기가 있는 법이다. 그걸 무시하고 무조건 빨리 이루려 하다간 결국 완성도 하지 못하고 큰 낭패감만 보기 십상인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극작가가 된 것이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세계미술의 거장이 된 것은, 마땅히 겪어야 할 그 준비과정을 인내를 갖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갔기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 자연은 결코 서두는 법이 없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열매를 거두기까지 자연은 순리(順理)에 의하여 조용히 움직인다. ⓒ박철 목사 제공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가끔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자연과 사람에 대한 깊은 배려에 나오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순응과 조화가 없이 느리게 산다는 말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삶의 깊이를 논할 수 없다. 자연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사람도 자연도 모두 자기 몫이 있다. 자기 몫을 사는 것이 신에게 가까이 가는 길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인가를 우리 모두는 안다. 다만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그 단순한 진실을 잊고 사는 것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름길을 택한다. 목적지까지 빨리 가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 때문에 그렇게 빨리 가냐고 물으면 우물쭈물 대답을 못한다. 어떤 사람은 남들이 다 빨리 가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참된 진리의 길은 천천히 가는 길이다. 지름길이 없다. 차근차근 가는 길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넓은 길을 향해 간다. 그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의 가는 길은 고속도로를 달리듯이 그렇게 후딱 하고 지나치는 길이 아니다. 그래서 가는 사람이 적은지 모른다. 좀 천천히 걷자. 작은 것이라고 소홀히 지나치지 말자. 그게 외려 더 빠른 길이다. 자꾸만 천천히 가는 낙타가 생각난다.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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