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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선교사, 불온하지만 즐거운 상상감리교회사회선교훈련원 황인근 목사 ②
이정훈 | 승인 2018.03.20 22:09

황인근 목사와 사회선교에 대해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그간 기자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솔직히 드러내고 물었다. 소위 진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지금 맞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구책이 아닌가 하는 것 말이다. 점점 더 왜소해져 가는 현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여건들을 제도권 내에서 인정받는 과정을 통해 어려움들을 타계해 보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약간은 불온한 생각을 했다는 뜻이다.

▲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사회선교사를 제도화하려는 움직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회체제변혁 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주류가 아니었다. 늘 소수였고, 소수였던 사람들이 이렇게 가야되지 않겠냐 하는 당위성 때문에 움직였고, 당위성이 먹히는 시대에 살았었고, 그런데 이제 그 당위성이 사라지는 시대가 되었고, 사회가 이미 민주화 되었는데, 뭘 또 그런 걸 해? 하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바꿔 말하면 그 전에 주류였던 사람들이 이제 진짜 주류가 된 것이다.
그런 시대를 나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회선교사라는 단어가 내 귀에 들렸을 때부터 나는 상당히 부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주류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 당위성도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에, 뭘 할까 고민하다가 나온 게 사회선교사라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가 얼핏 들었던 생각이, 아니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그게 자구책 같이 보였다.
어차피 주류가 아니었는데, 자꾸 그런 거 때문에 신경을 쓰나, 그냥 우리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인정을 받든지 말든지 쭉 가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역시 우리한테는 자원이 부족하다, 그 자원을 어떻게 마련하기 위한, 뭐라 해야 되나, 틀을 만드는 작업? 나한테는 계속 그렇게 보였다.

▲ 인터뷰 중간 중간 이야기를 중단하며 생각에 잠기는 순간이 많았다.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었다. ⓒ이정훈

저도 제가 이제 막 사람들 만나고 다니는데, 제가 보니까, 형님 말이 맞아요. 설명해보니까 저도 제 안에 상이 분명하진 않아요. 해오던 일들이고 하고 싶은 일이긴 한데, 근데 자극받았던 게 잃어버렸던 거 아닌가? 돌이켜보니까 그래요. ‘예수더하기’라는 친구들, 그리고 ‘옥바라지 선교센터’ 친구들이에요. 어느 날 이 친구들을 봤더니 서대문 독립문 뒤에 있는 옥바라지 골목 철거에 달려들었다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감신대 후배들만이 아니었어요. 한신대 친구들, 장신대, 심지어 총신대 친구들까지, 신학생이 와서 하고 있더라고요.

근데 실은 이 친구들이 무슨 부귀영화가 있고, 거기서 뭘 얻겠어요. 근데 이 친구들이 얘기해보면 신학적으로 굉장히 근본적인 친구들이더라구요. 예수님께서 어려운 곳에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러고 얘기하고 있는데, 너무 뻔한 얘기가 감동적이었어요. 그게 감동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사회선교에 대한, 사회선교가 이게 자구책으로 나오기에 사실은 효용가치가 없는 것 같아요. 이게 무슨 효용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제가 제안서를 쓰다가 이 얘기를 썼는데, 그럼에도 수많은 감리교회 사회선교 영역에 다양하고 역사가 깊고 특히 여전히 주님의 부름에 가슴이 뛰는 젊은 친구들이 있는데, 제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희망적인 건, 오늘도 활동가 친구들 다섯 명을 만나고 왔어요. 신기하죠.

이 친구들이 서른다섯, 스물넷인 친구가 하나 있어요. 근데 이 친구들이 이 일을 하면서 어려운 게 뭐냐? 오래 못할 것 같데요. 4대 보험도 안되고, 퇴직 적립금도 없고, 최저시급도 안되고, 아르바이트 수준. 근데 왜 있어? 그러니까 다들 웃으면서 ‘그러게요 킥킥’거리는데, 그런데도 이 일이 자기소명이라는거에요. 사실 앞뒤 말도 안 맞는거죠. 오래 못할 것 같은데 소명이라고 그러고. 그런데도 얘들이 3년째, 5년째 버티고 있는 거에요.

이 힘이 뭘까? 전 이런 부분에 대해서 사실은 보수적인 신앙이 있어요. 그게 복음이 주었던 소명의식 아니었을까 싶은 거죠. 사회선교, 작은교회 운동의 가장 중요한 건, 큰 교회가 되지 않아도, 큰 공로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같아요. 지금 있는 자리에서 다양한 선교 영역들이 인정받는 것이고. 그리고 지금 내가 가는 그 길이 주님이 주셨던 길이라면, 아무리 작아도 소중히 여기는 일들이 어찌보면 사상적으로는 더 뒤로 물러섰는지는 모르겠으나, 굉장히 뜨거운 가슴을 가진 친구들, 자기 안에 정체성, 소명에 대한 정체성에 확고한 응답하는 친구들은 분명하게 계속 이어오고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이 친구들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계속 나오는 거 같아요. 그리고 그게 교회의 희망 아니었나?

그런데 문제는 사회선교가 여전히 계속 천덕꾸러기처럼, 감리교가 같은 경우에는, 감리교 하면 옛날에는 다들, 옛날시대 사회선교 개념이라고, 감리교 하면 사회선교 잘 하는 교단이라고 했잖아요. 초창기 감리교에서 다들 보면 학교를 짓고 병원을 짓고, 이게 감리교였는데, 지금은 아니란 말이죠. 장로교 하고 전혀 구분되지 않는 상황이고, 오히려 사회선교라고 하는 게 천덕꾸러기 취급 받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친구들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고, 마음을 갖고 있다면 이것을 분명하게 다시 힘을 실어주어야겠다. 이런 동기가 제 안에 있었던 거 같아요.

저 역시 그리고 그게 제 꿈이었고. 내가 하고 있는 그때 고난할 때, 저희 어머니가 맨날 저한테 하셨던 말이, “너 언제 목회할 꺼냐?” “어머니 저 지금 목회하고 있어요.” 실제로. 그리고 저를 잘 돌봐주셨던 본교회 목사님이나 다른 목사님들께 인사가면, “황 목사 목사는 목회해야지.” 이게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목사님 저 이게 목회입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선교 사역입니다. 저는 이게 제가 사회에서 선교사로 부름 받은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계속 목양일력 보래요. 근데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멀어지고 있는데, 이때쯤 되어서 이거를 좀 분명하게 자리를 잡아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 이제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사실 7, 80년대 운동권, 소위 말해서 운동에 투신했던 사람들의 이론적인 근거들은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맑스 아니면 민중신학 아니면 해방신학, 이 세 가지 중 하나에 기대서 운동을 했다. 이 세 가지를 다 가지고 있던지, 셋 중에 하나만 가지고 있던지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지금, 사회선교에 투신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런 게 없어 보이는 데 어떤까?

제 말이 그거예요. 어떤 친구들은, 제가 사실 요즘 제일 존경하는 후배가 이동환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불한당 모임 가지면서 파인텍 기도회 이끌고 있는 친구에요. 이 친구가 그 전에 뭘 이끌었냐면, 동양 시멘트, 이 친구가 그 전에 뭘 이끌었냐면 재능교육, 기도회 계속 했어요. 재능교육 농성장에서 이 친구들이 지난 5년 동안 한 주도 안 빠지고 했어요.

이 친구가 얼마나 보수적인 친구냐면, 은사 이런 거 쫓아다니던 친구예요. 저도 사실 제 안에 그런 게 있어서, 그런 책들 많이 봤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사회과학 서적 보고, 어떤 진보적인 신학책보다 이 책 보면 서로 결이 다른 데도 전 다 좋았어요, 그게.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지. 근데 이 친구 보면 이 친구는 사회과학 서적은 거의 없고, 다 그런, 아주 어떨 때 보면 근본주의 가까운데라고 말할만한 친구인데, 얘가 어느 날 바뀌었어요. 근데 지금도 이 친구는 그 안에 그런 게 있어요. 뜨거운 불 같은 게.

▲ 근데 갈등은 없는 거 같은가?

오히려 이 친구들이 ‘예수님이 저를 그리로 부르셨다.’ 그리스도 정신이라고 고백되어지는 순간, 무엇도 필요 없어. 단순해요. 지극히 작은 자 하나하고 같이 하라고 했으니까, 거기로 가는 거고. 세상에 어떤 불의한 권력에 의해서 고생 받았으니까 가는 거고. 저 사람들 편들어주는 사람 없으니까 편들어 주러 가는 거고.

근데 물론 여기에 이제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맑스 얘기가 들어가더라고. 플러스가 되더라고. 맑스가 끌어간 게 아니고 신앙고백 속에 맑스가 들어가서 맑스로 좀 해석해 내는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그 친구를 7, 8년 보면서 그 친구를 볼 때마다 마음이 뿌듯해요. 5년 동안 제가 재능교육 설교를 5-6번 갔는데, 단 한 주도, 명절에도 안 빠지고 매주 금요일 밤이면 그 앞에 가서, 매주 기도회 주최하는 사람들을 바꾸는 거에요. 오늘은 감청 주최, 오늘은 어디 주최, 계속 연락해서 주최를 바꾸면서 하더라구요. 결국 재능 투쟁 이겼잖아요. 끝나고 바로 동양 시멘트 들어갔단 말이에요. 동양시멘트 1년 반? 한주도 안 빠지고, 동양시멘트 해결되었어요. 해결되고 나서 파이텍 사태 터졌다는  얘기 들으니까 또 파이텍 가서, 지난주가 열네 번째 기도회 지났어요.

오히려 이 친구들 보면, 이 친구들이 그래요. 이 일이 자기사역이라는 거죠. 이 친구가 평화교회 사무국장이기도 한데, 자기는 이거를 목회로 인정받고 싶은데 인정받지 못한다. 저는 사회선교사 제도를 바라면서, 이거 목회로 인정받아야 한다. 평신도들이라고 한다면, 이런 사역이 선교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리고 막말로, 교회 면 살려주는 게, 이런 사회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쪽의 미담 말고 뭐가 교회 면을 살려주겠냐고? 교인들끼린 박수칠지 모르지만, 교회를 향해 박수치는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박수치지, 교인들끼리 박수치는 이야기 들으면 콧방귀를 뀌어요. 미친놈들이라고 하고 정신병자들이라고 하고, 오히려 교회 밖에서 박수 쳐주고 교회를 인정해주고 감동받는 건 그런 친구들의 궤적이고, 그렇다면 이 친구들이 분명 선교의 사역, 이게 선교가 아니면 뭐겠어요?

그래서 사회선교사 제도를 해야 되는데, 이 친구들이 교육훈련을 받은 적이 없어요. 그래서 처음 시작은 그거였어요. 일꾼을 뽑는데 어느 날 보니까 제가, 제가 후배한테 전화해서 “야 후배 중에 일 잘하는 애 없냐? 괜찮은 애 없냐?” 늘 이런 식이야. 그러다보니까 이 바닥이요, 진짜 학연, 지연이 끝내줘요. 특히 감리교 같은 경우는 세 개 신학교잖아요. 이 바닥에 서울권은 다 감신대야. 대전 충남권은 다 목원이야. 경기 서부권은 협성.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이 주로 있다 보니까, 좋은 후배 없냐는 자기 후배한테 밖에 못하게, 자기 후배는 자기 후배밖에 못하게. 학연이 대단한 거죠. 그 담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꾼이 늘 없으니까 사람 찾는 게 일인데, 한편으로 일을 하려고 하고 이런데 관심 있는 친구 중에 부름 받지 못하면, 선배가 콜 하지 않으면, 공적인 통로가 없는 거에요.

훈련원을 하고 싶은 이유는 그거였어요. 이런 공적인 통로 하나 없이 언제까지 이렇게 할 꺼냐? 그러니까 보면 학연, 지연 때문에 왔다가, 자기 전문적인 역량도 키우지 못하고. 저도 고난 나올 때, 평화 통일 인권 사역한다고 많이 했는데, 내가 인권에 대해 하는 게 뭐가 있으며, 통일에 대해 하는 건 뭐가 있으며, 평화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게 뭐가 있냐? 다행히 고난 그만두기 2년 전에 박성룡 선생이랑 비폭력 대화 하면서 처음으로 평화 교육을 받았던 거 같아요. 늘 평화를 이슈로만 들고 싸우다가 평화가 이슈가 아니고 내 안에 프로세스가 되는 거, 내 안에 동기가 되는 거를 그때 처음 고백하면서, 훈련이라는 게 필요하겠다. 사회선교 훈련이 필요하겠다. 그런데 공적인 인력풀이 있어야겠다. 이 친구들이 이런 자리를 통해서 양육, 교육 받고, 그리고 또 단체들도 이런 자리를 통해서 몇몇 특정한 어떤 소재의 사람들이 아니라 교육 받은 친구들을 좀 받아줄 필요도 있겠다. 훈련원은 현장이 필요로 해야 되고, 또 현장에 필요한 사람들을 내보내도록 만들어야겠다.

▲ 이야기를 들으니 마치 그런 거 같다. 처음 사회 체제의 변혁을 위해서 일했던 선배들이, 처음엔 맑스도 모르고, 민중신학도 없고, 해방신학도 없고, 오직 신앙으로 시작했다가, 그러다가 맑스도 이야기하게 되고, 민중신학도 태동하게 되고, 해방신학도 들어오고 이러면서.. 그렇게 했던 게 지금 이 시대의 모습이 또 아닌가 싶다.

그렇게 시작했다가, 결국 신학은 그걸 뒷받침해주고 정당화해주고 그 전망을 봐주고 했는데, 신앙이 끌고 간 다음에 신학이 그걸 정리해주고 보완해주고 했던 것 아닌가 싶고, 그러다가 한때는 신앙이 아니라 이제 사회과학이 어떤 이데올로기가 이끌고 갔는데, 이게 유효기간을 찍은 거 같아요. 새로운 사상, 더 심각한 이야기가 아니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물론 지금도 맑스 이야기가 효력을 발휘하고 힘이 있긴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부족한 것들이 있는 것 같고, 사람을 온전히 견인해 내는 건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 지금 얘기를 들어보면, 사실 우리 시대에 뭔가 운동을 한다는 게, 의제 중심으로 갔지, 그게 내 삶으로 오지 않아서, 늘 고민하게 되고 갈등하게 되고, 하는 걸 겪다가, 지금 세대들은 오히려 그게 내면화되지 않는 게 무슨 소용이 있냐, 하는 것 같다.

내면화된 친구들이 어느 센가, 이 친구들이 이미 등장했고, 저는 훈련원이 이 친구들을 견인하는 게 아니라 등장했으니, 이제 이 친구들을 제대로 관리해주고 전망해주고, 훈련원의 삼대 목표가 이거예요. 교육훈련, 정책 제안 전망, 마지막 하나가 제도화에요. 교회 내 인식 개선.

형님 만나러 오기 전에 김오성 목사님하고 얘기했는데, 제가 지금 샬렘에서 영성수련을 하고 있거든요. 제가 작년, 재작년에 대단히 아팠어요. 어떤 선배들은 쟤 저러다 죽는 거 아니냐, 할 정도로요. 일주일에 몸무게가 8kg이 그냥 빠지고, 알 수 없는, 제 삶에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와서 한 3개월은 집 밖에 못나가고, 지나가는 버스만 봐도 그 자리에 주저 앉아가지고 못 일어나서 집까지, 두 걸음 갔다가 앉았다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신기했죠.

제가 왜 그랬을까? 그러다가 제가 얼마 전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때 선배 몇몇 목사님이나 몇몇이 했던 관상기도가 생각나서, 근데 신기하게 그거 아니면 제가 못살겠더라고요. 그래서 관상기도하고 침묵기도하고, 그거 하면서 한 6개월 계속 하면서 몸이 좀, 정신적으로도 좀 많이 안정화되고, 삶의 기류들을 좀 다시 보게 되었는데, 그래서 요즘 좀 나아졌죠.

그러다가 얼마 전에 문득 ‘내가 왜 그랬지?’ 하고 다시 묻게 되더라고요. 저는 문수산성교회 와서 너무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행복한 거에요. 매일 매일. 이런 말 하면 그렇지만 고난에 있을 때는 매일 매일 눈 뜨면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고, 가야 할 자리가 너무 많고, 그러면서 자기 정체성을 세우기는 했지만, 문수산성교회 와서는 그런 게 없는 게 너무 편해요.

몇 년은 편했는데, 어느 날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일하지 않고 있구나. 싸우지 않고 있구나. 그게 정점이었던 것 같아요. 정점을 치면서, 분명 일하지 않는 게 문제는 아닌데 그걸 죄로 여기고 있고, 뭔가 계속 업적을 만들어내고 뭔가 막 이게 어느 순간 제 안에 쌓였던 거 아닐까 싶더라고요. 내면의 힘이 아니라 외적인 당위성으로만 살아오던 게 너무 오랫동안 오다보니까 오히려 그 일을 하지 않으니까 제가 흔들렸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고요. 뭔가 해내지 않아도 되는데, 내 안에 그 맘을 갖고 내 삶에서 살면 되는데, 꼭 앞에 나가야 되고 일을 만들어야 되고 하면서 살고 있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어쨌든 그런 고민을 하던 찰나에 김오성 목사님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하는데, 목사님은 그런 얘기 하더라고요. 이런 모델이 있었다는 거에요. 외방선교의 얘기를 해주시더라구요. 1960년대에 외방선교가 한국에 들어와서, 신앙고백이, 사회과학이 어떻게 신앙고백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프로세스를 가지고 사람들을 양육했어요. 그런데 그 전통이 사라지고 나니까 신앙고백으로 시작되었는데, 사회의식이, 사회과학만 너무 커져서 균형이 맞지 않았던 거에요. 반대로 이 사회과학적인 토대는 없고, 신앙고백만 있다 보니까 어떤 데에서 폐해가 벌어졌다고 하셨어요. 듣다 보니까 맞아요.

그래서 사회선교훈련원이 보면, 지금 친구들 보니까, 좋긴 좋은데 어떨 때 보면 이 친구들이 신앙고백으로 나왔는데, 사회과학이 부족해서 제대로 이것들을 바라보지 못해서 조금 열정이 너무 과하다가 넘어지는 친구가 있는 반면, 어떤 친구들은 사회과학으로 모든 걸 보려고 하고 신앙고백은 작은 동인밖에 안 되니까 결국은 교회하고 끈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러면 사회선교라고 말할 필요가 없죠. 물론 교회란 이름이 없어도 선교가 되긴 하지만, 사회선교훈련원의 중요한 것들이 그런 거 아닌가 싶어요. 신앙고백과 사회과학의 중간에서 어떻게 신학화 해주고, 어떻게 하나님의 선교로 자리 잡게 하는지. 지금 딱 그게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어요.

▲ 마지막으로 두, 세 가지만 묻고 싶은데, 처음 질문 중에 사회복지 운동이랑, 사회선교랑 기본적으로는 어떻게 구분하고 싶어? 아니면 그냥 이대로 같이 갔으면 좋겠어? 아니면 구분을 해서 갔으면 좋겠어?

제가 구분한다고 구분이 되지 않더라고요. 사회복지에 있는 많은 분들은 사회선교라는 이름을 안 가지려고 하시더라고요. 전 구분이 저절로 될 거 같아요. 그리고 오히려 내가 사회선교야 하는 분들은 사회선교에 대한 본질이나 전망을 갖고 있는 사람인거 같아요. 그런 사람은 저절로 올 것 같아요. 그러면서 훈련원은 이걸 나누는 게 훈련원은 아닌 거 같아요. 나눠지지도 않을 것 같고.

▲ 사실 냉정하게 사회과학적인 용어로 하면, 사회복지는 체제 내에서 소외받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밑받침하는 거지만, 사회선교라고 하는 건 이 체제가 어떻게 가야 될 거냐는 고민을, 외적인 고민을 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렇죠. 체제를 바꾸는 체제 변혁을 원하는거죠.

▲ 어떻게 보면 사회복지가 아니라 사회선교라는 이름을 달았으면, 어떻게 되던지 정리가 되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데 그런 면에서 어떻게 생각해?

학교에서 한창 통일운동할 때, 곧 혁명을 일으켜서 뭔가 될 줄 알았어요. 전 처음에 에큐메니칼 운동을 한다는데 너무 덧없게 느껴지는 거예요. 혁명을 해야지 지금. 맨날 형들이 곧 왔다 그러고. 그런데 그렇게 세상이 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통일운동이 저한테 줬던 인사이트가 있긴 했어요. 이 사회 근본적인, 어떤 사회 고질적인 문제가 왜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지금도 뭐 그런 맘을 갖고 보긴 해요. 그러나 그게 나에게 시야를 주고 관점을 주긴 했는데, 그게 세상을 변화시킬 거란 생각은 안 들어요.

▲ 활동가와 목회 현장을 오가며 고민이 켜켜이 쌓여 오늘의 그를 있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정훈

그러다가 목사가 되어서 오래 살다보니까 점점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하나님 나라 개념이 떠올랐어요. 하나님 나라는 지역으로 나누지 않잖아요. 너가 어떤 사회 시스템에 있든지 하나님이 너의 삶의 주인인 거, 너의 삶을 통치할 것을 믿고 사느냐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한테 사회 체제라는 건 이제, 사실 아직까지 이 시대에 대한, 이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며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죠. 그럼에도 대안적인 사회주의로 나갈는지 이 양자택일 문제 아닐까 싶어요.

근데 양자, 진영논리가 크게 와 닿지는 않더라고요. 어디건 내가 러시아에 살아도 하나님 나라를 살 수 있겠고, 뉴욕에 살아도 하나님 나라를 살 수 있겠다 싶어요. 그렇게 오히려 생활로부터 나아가는 게 체제 변화의 진짜 알짬이 아닌가 싶구요. 체제가 바뀐다고 내가 바뀔까 싶은 의심도 들었고, 목사니까 이렇게 정리하지 않으면 제가 못 견디겠더라고요, 어느 날.

아니면 전 여전히 다른 걸 두르고 살아야 되는데, 이제 저한테 설득력이 없어요. 근데 제 안에 여전히 정말 누군가를 사랑, 정말 주님이 낮은 곳으로 가라 이 말씀은 거기에 주님이 계신 거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그게 인생의 정말 중요한 삶의 본질이 거기 담겨 있으니까 내 안에 그런 인생이 주어진다는 그건 변하지 않는 거 같아요.

저한테 신앙은 중요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점점. 샬렘에서 영성수련을 하면서는 오히려 신앙적인 생각은 자유로워져서 ‘하나님,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절대 목사는 아니고 타종교인으로 태어나면 좋겠습니다.’

▲ 어, 이거 위험한데, 그대로 나가도 되나?(웃음)

(웃음) 괜찮아요. 이런 기도가 제 안에 편하게 들어오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이라는 건 기독교를 어떻게 하는 게 아니고 내 안에 있는 신성,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사회선교가 그런 바탕, 그런 출발점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저도 마지막으로 처음에 사회선교훈련원 만들 때, 벌써 2년 되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원래 작년쯤에 개원하고 싶었어요. 한창 사회선교훈련 이름으로 나올 때, 바로 시작해야겠다 싶었는데, 그래서 몇몇 리스트 뽑아서 한 15-20교회가 20만원씩만 내면 충분히 사무국이 꾸려지겠더라고요. 그리고 본부에서 사업 따오고, 사람들 교육훈련 하면 되겠다 싶은 거에요.

그리고는 피스빌리지 네트워크라고 라오스에서 지역운동 하는 선배 하나, 선배를 찾아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선배가 냉철하게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이미 단체도 많은데 무슨 단체를 또 만드냐? 그게 무슨 의미야? 너 말에 동의하는데 그럴 꺼면 정말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사람들의 생각이 반영되고, 밑에서부터 사람들이 만들겠다고 하는, 이제 이런 모임이 필요하지 않겠냐! 언제까지 맨날 교회 몇 개 도움 받아서 대의명분 가지고 사람들 불러들여서 운동할래? 그렇게 하면 사무국은 꾸려서 일은 하겠지, 두 명 일자리 생기겠구만.” 그러시는데 듣고 보니까 부정을 못하겠어요.

두 명의 일자리 생기고 몇 개의 과업이 생기기 때문에? 이미 단체는 많은 걸 뭘 또 만들겠어? 진짜 이 사람들에게 필요할 걸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다보니까 이 사람 저 사람 얘기를 다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회선교훈련원은 그래서 처음에 로드맵을 세세하게 짰다가 다 지우고는 만들어가는 것을 해보고 싶었어요. 과정부터가 그러고 싶더라고요. 과정부터가 평화라면 평화의 과정을 거쳐서 평화에 이르고 싶은, 민주라면 민주의 과정을 거쳐서 민주가 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계속하고 있는 게, 집행위 만나는 것도 그렇고, 계속 이야기를 듣고 싶더라구요.

그리고 이 1차 선교세미나를 하는 이유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쭉 모여서 각자의 사회선교 상들을 제안해 주시오 하는 거죠. 형이 지적하셨던 어떤 분명한 담론으로서의 사회선교에 대한 지적이 나올 것이고, 근데 또 담론의 시대를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아니고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조직될 것이고 우리가 어떻게 훈련의 길을 갈 수 있죠? 하는 실질적인 얘기가 나올 수 있죠.

제가 세 스텝(step)을 잡았어요. 첫 스텝이 세미나. 이때 서로 확인하고 간단하게 가고. 두 번째 스텝이 중요한데 사회선교 활동가들 대회 같은 거에요. 공청회를 열어서 정말 훈련원이 필요한 건지, 필요하다면 어떻게 할 건지,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회선교협의체를 구성하고 싶어요. 베이스가 있어야 되는 거니까. 이 사람들이 우리가 필요로 하고, 우리가 여기 회원이 되고, 바탕이 되어서 우리가 사람을 쓰겠고 사람을 요구하겠다 싶으면 하고 싶어요.

그러면 마지막 3차로 9월 달에 사회선교 대회를 할 거에요. 이건 제 개인적인 경험인데요, 저희 장모님이 몽골 선교사에요. 지금도 몽골에 계신데, 7년 전쯤에 한국에 나왔는데, 때마침 감리교 중에 큰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는 출석 교인도 2,000명도 넘고. 그 목사이 움직이니까 목사들 40-50명이 움직이더라고요. 그 사람들이 4, 50만원씩 내서 7, 8천 만원원 모았나, 그래서, 선교사 12명을 외국의 큰 호텔에다가 2박 3일 먹이고 재우고 선교 보고대회 시켜주고, 또 그 자리에 왔던 사람들이 보고대회 보면서 감동되고 하니까 자기들도 선교하겠다고 하는데, 되게 부러웠어요.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사회선교 진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실 최저시급도 못 받잖아요. 벌써 몇 년째 10년째, 15년째. 그리고 또 얼마 안 되어도 고생하면서 하고 있는데, 교회가면 오히려 담임목사 너 언제까지 그런 거 할 거냐, 하면서 쪼그라들게 하죠. 자기의 정체성도 표현 못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회선교 하는 사람들이 정말 외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인정 못 받잖아요. 그런 걸 보니까 선교대회를 하고 싶은 거에요. 저는 사회선교대회를 하면서 훈련원을 출범시켰으면 하는데요, 결국 교회의 언어로 사회선교의 언어를 이해시키겠다는 말인 거죠. 그래서 터미널 역할을 해서 “봐라, 이 얼마나 많은 이 땅의 사회 진영에 나가있는 선교사들이냐?” 이건 교회를 향한 선교사들이예요. 사회 정의하곤 그렇게 설명하는 건 아니고. 사회 곳곳에 나가서 필요한 일들을 하고 있는 이들이다. 약간 이중 플레이가 될 텐데 저는 그렇게 가고 싶어요. 

▲ 황 목사님 개인적으로는 어떤가? 언어가, 전환된 거 같은가?

전 많이 된 거 같아요. 이것도 제 경험이지만, 저한테 적확하고 냉철하고 예리한 단어가 교인들한테 안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는 고민이 들더라구요. 그러다가 시골에서 8년쯤 목회하다보니까 이제 설교할 때 그 단어가 안 나오는 거에요. 다른 말로 바꿀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제가 그 말 쓸 때는 다들 주무시고 그러더니, 말을 바꾸고 나서, 아, 원래 문수산성교회 원래 전임자들이 그러고 했지만, 그 시골교회에서 세월호 간다 하면 할머니들이 짐 싸서 3, 40명이 버스타고 안산 네, 다섯 번 가고, 세월호 아이들 초대해서 밥해 먹이고 같이 얼싸안고 울어주고. 근데 제가 시골교회 이 분들이 놀라운 건, 선거 때는 이분들이 박근혜를 찍어요. 자유한국당을 찍어요. 뭔가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없으셨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가지고 이거는 그리스도 정신을 가지고 우는 자들 곁에 우는 게 우리 일이고, 울고 있으면 왜 우는지 같이 고민해 주는 게 우리 일이다, 하면 오시는 거에요.

지금도 예전 시골교회 성도님들 중에는 장기수들 몇 분 계신지 몰라요. 그런데 사실 이 분들 간첩들이다, 그런데 통일 위해 나름대로 꿈꿨다, 언젠가 우리가 도와야 할 사람들이다, 언젠가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숙제 통일을 해야되는 거다, 이거를 옳다, 그르다로 보면 안 된다, 이렇게 언어를 바꿨죠. 그러면 교인들이 김치해서 가져다 드리자, 쌀 가져다 드리자, 8.15 예배드리면, 공동기도 더듬더듬 읽으며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걸 보면서 ‘왜 교회가 남아있을까?’ 이런 고민 많이 했어요. 시대가 이러고 교회가 이 모양이면 교회가 진즉에 없어져야 했던 거 아닌가? 그런데 교회가 남아있다면 남아있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교회는 2,000년 동안 남아있는 건 유용가치가 있고,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프트웨어만 세련되게 바꾸어주고 지향을 다시 조금 조정해주면 여긴 다시 활동할 수 있는 근거지가 될 거라 믿어요. 사회선교는 그걸 믿고 교회 안으로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올 거 같아요.

▲ 마지막으로 사회선교라는 말만 들으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회선교는 이런 겁니다, 오해하지 말고 이런 겁니다, 하고 한 마디만 해주면 좋겠다.

짧게 말하는 게 제일 어려운데. 예수님이 가신 곳에 가는 게 선교다. 예수님이 거기 가셨으니까 우리가 가는 거다. 사회선교는 그런 거다 싶어요. 벌써 교인들 중에 많은 교인들은 이미 갔어요. 보니까 교회가 못 가고 있다, 그러니 가야 된다, 원래는 교회가 인사이트를 줘서 교인들이 가야되는데, 그게 아니고 교인은 가 있는데, 교회가 오히려 인사이트를 주는 게 아니고 인사이트를 못 받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 말 하고 싶어요. 사회선교는 거기에 인사이트를 주려고 하는 거에요. 이미 그 사람들이 가 있고, 교회 일이고, 예수님이 그곳에 가라고 하는 건 예수님이 거기 있으니까 가라고 하는 거잖아요.

어느 날 설교하다가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왜 날 맨날 거기 가라고 할까? 당신이 거기 있으니까. 당신 만나게 해달라고 맨날 기도하는데, 나 만나려면 거기로 오라고 하는 거 아닌가, 그 마음만이라도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사회선교야말로 정말 복음적인 예수가 있는 곳에 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날따라 유난히 소음이 많았던 카페에서 장시간 이야기를 건네 준 황인근 목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돌이켜 보면 꺼내기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자신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가족들 이야기까지. 그리고 교단 내에 여러 이야기들까지.

이제 감리교단도 사회선교사 제도에 대해 본격적으로 궤도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총회 내에서 이미 이야기가 오고 간 상태이고 말이다. 한국 개신교 내에서 가장 진보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두 교단이 앞으로 어떻게 이 제도를 정착하고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내게 될지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봐 줄 일만 남은 것 같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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